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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라본 창밖. 다행히 일기예보와 달리 하늘에는 비 대신 먹구름만 잔뜩 끼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제주도의 비 내리는 운치 또한 느끼고 싶었으나, 지난해 교통사고를 당하신 뒤 부득이 휠체어를 타셔야 하는 장인어른을 생각하자니 비가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훌륭했던 제주도
▲ 가족사진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훌륭했던 제주도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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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꾸린 뒤 숙소를 나와 우리가 가장 먼저 간 곳은 제주시 동문시장이었다. 타지에 가면 유적이나 무덤을 가장 먼저 찾아가는 나와 달리 아내는 현지 시장 돌아다니기를 가장 좋아했는데, 이는 장인어른도 마찬가지라고 하니 아침도 해결할 겸 시장으로 향했던 발걸음이었다. 어쨌든 동문시장은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상설시장으로서 볼거리도 많다지 않은가.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라 예상했던 동문시장. 그러나 시장은 생각 외로 조용했고 그만큼 볼거리도 많지 않았다. 물론 3월 1일 공휴일의 이른 아침이기 때문이었겠지만, 어쨌든 시장에 오면 제주 특유의 뭔가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잠시 접어둬야만 했다. 아내에 따르면 내일 제주 5일장을 들른다 하니 그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시장 입구의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한 뒤 우리는 장인어른의 휠체어를 대여하기 위해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향했다. 여행 계획을 짠 아내의 말대로 복지관은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운영 중이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휠체어를 무상으로 빌릴 수 있었다. 공휴일의 당직인 분은 짜증낼 만도 하건만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친절하기만 했다.

이후 여행을 다니는 곳곳마다 느낄 수 있었던 제주도의 장애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 물론 그 따스한 손길이 관광을 주수입원으로 하는 제주도의 전략적 사고의 산물인지, 아니면 고립된 행정단위로서 제주도가 가지는 특수성 때문인지 정확히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 사회도 조금만 노력한다면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로는 세계적으로 가장 절망적이라는 우리 사회지만, 어쨌든 제주도는 그와 같은 편견을 극복하고 있지 않은가. 부디 장애인 자식 때문에 이민을 생각하는 부모들이 어서 빨리 사라지기를.

우도 가는 길에 들른 비자림

우도 가는 길에 들른 비자림
▲ 제주 비자림 우도 가는 길에 들른 비자림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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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의 휠체어를 대여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의 제주여행. 그 첫 코스는 아내 계획대로 우도 가는 길에 위치한 비자림이었다. 수령이 500~800년 된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모여 있는, 단일수종의 숲으로는 세계 최대규모이자 제주도 최초의 삼림욕장이라는 그곳 비자림.

비자림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아내는 깊게 숨을 들이 내쉬며 호들갑이었다. 깊은 숲에서 우러나오는 맑은 공기가 너무도 상쾌하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지리산 밑에서 자라다가 20대 이후 서울의 찌든 공기를 맡으며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아내에게 비자림은 여행 그 자체인 듯했다.

반면 난 무덤덤했다. 회색도시 서울 태생으로서 꽃과 나무에 별로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오염된 대도시에서 태어나 적응 혹은 진화했기 때문인지, 난 마시는 공기나 물에도 둔감한 편이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뭐가 상쾌하다는 거지? 캐나다 밴쿠버와 서울 공기의 차이도 잘 모르던 나로써는 아내의 반응이 신기할 뿐이었다. 진짜 그리 다른가? 비자나무는 또 뭐야?

장인어른한테는 전혀 새롭지 않았던
▲ 비자림의 원시림 장인어른한테는 전혀 새롭지 않았던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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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게 신기한 까꿍이
▲ 이게 뭐야 뭐든 게 신기한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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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알쏭달쏭한 것은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반응이었다. 아내의 예상과 달리 두 분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던 것이다. 조금 당황하는 아내. 그러나 수수께끼는 장인어른의 감상을 통해 이내 밝혀졌다. 비자림 산책로 주위에 무성한 나무들의 모습이 산청 처갓집 주변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장인어른의 말씀.

그렇다. 두 분께 비자림은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었던 것이다. 60년 평생을 지리산 밑 산청에서 사셨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아내는 그제서야 시골에서 부모님들이 올라 오시면 아름다운 자연 풍경보다는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높은 스카이라인과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선배의 조언을 실감했다. 비자림 같은 관광명소는 바쁜 일상을 사는 도시인에게 필요한 휴식처일 뿐, 주체에 따라 관광명소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자림 산책로
▲ 나란히 나란히 비자림 산책로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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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는 장인어른의 휠체어를 밀고, 장모님은 손녀의 유모차를 밀고, 아내는 돌도 지나지 않은 둘째를 안고, 여섯 명의 가족이 제각기 쌍을 이루어 비자림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시고 무척이나 즐거워하시는 장모님. 그런 당신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사위도 자식이라고 평소에 가깝게 살면 자주 찾아 뵙고 자식 도리 할 것을. 죄송할 뿐이었다.

섬 안의 섬 우도

비자림을 훑어보고 난 뒤 도착한 성산항 우도 선착장. 제주도에서 우도 가는 배 삯은 꽤 비싼 편이었다. 차를 끌고 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영수증을 보아하니 우도 입장료도 따로 붙어 있었다. 우도라는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정책이겠거니.

드디어 출발. 저 멀리 성산 일출봉이 보였다. 3년 전 여름 마라도와 제주도 사이의 해협을 건널 때는 송악산이 보이더니 이번에는 일출봉이로구나. 생각이 3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또 그때와 비슷한 의문이 들었다. 과연 우도 출신에게 이 해협은 어떤 의미였을까? 단순히 제주도와 우도 사이의 바다였을까?

우도 가는 배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 제주 우도 간 해협 우도 가는 배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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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좁은 해협은 마라도 주민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동안 우도 주민을 옭아매는 하나의 굴레였을 것이다. 우도의 정착이 1697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 근 300년 동안 이 바다는 섬과 섬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했을 것이며, 우도 사람들은 그것을 근거로 제주도 사람들에게 차별을 받았을 것이다. 뭍사람들이 제주도 사람들을 차별했듯이, 제주도 사람들은 우도 사람들을 촌놈이라고 생각했겠지.

우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섬이지만 우도의 첫인상은 마라도와 무척 달랐다. 마라도가 최남단이란 상징성만 가지고 있는 느낌이라면 우도는 진짜 사람이 사는 느낌이랄까? 크기도 크기였지만, 평평한 모습의 마라도와 달리 산과 평야가 섞여 있는 우도의 모습이 익숙했기 때문이리라.

아름다운 우도의 풍경
▲ 산호사해변 아름다운 우도의 풍경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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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신난 까꿍이
▲ 할머니와 함께 누구보다 신난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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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 내려 지도에 표시된 대로 우도에서 가장 유명한 산호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서빈백사라고 불리는, 하얀 모래와 에메랄드 빛 바닷물, 그리고 멀리 보이는 제주의 성산일출봉이 어울려 최고의 풍광을 만들어내는 그곳. 해변에 도착하니 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 왜 많은 감독들이 굳이 여기서 촬영하고자 하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감탄사.

해변의 아름다움에 가장 격하게 반응을 보인 것은 다름아닌 까꿍이였다. 6개월 전만 하더라도 무섭게 밀려드는 파도에 놀라 바다가 무섭다며, 그 곁으로 가지도 않던 녀석이 어쩐 일인지 하얀 모래를 머리 위로 흩뿌리며 신나게 놀기 시작한 것이다. 할머니와 모래장난을 하며,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왔다며 조잘조잘 떠드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녀석에게 넓은 세상을 좀 더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 이것이 바로 부정의 현현이겠지.

모래장난을 더 하겠노라고 징징거리는 까꿍이를 간신히 말려 차에 태운 뒤 우도를 한 바퀴 돌았다. 결혼 전 우도에 한 번 왔었다는 아내의 말마따나 우도는 아주 간단한 구조를 하고 있었는데, 섬 중심의 아주 작고 초라한 번화가와 등대 등 바닷가 명소 옆에 자리한 상업지구들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민가들.

처음 해보는 바닷가 모래장난
▲ 신난다 처음 해보는 바닷가 모래장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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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해변가와 달리 폐교 등이 위치한 섬 중심은 황량한 느낌이었다. 흘러간 역사의 흔적들. 아마도 과거 제주도, 하물며 우도까지의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을 때 이곳 섬의 중심은 주변 바닷가의 산물이나 부를 모두 끌어 모으며 꽤 번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제주도 혹은 뭍과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그 모든 기능을 외부로 빼앗겼겠지.

큰 중심이 작은 중심을 흡수하고 주변부만이 중심의 관광지로 특화되어 버티는 우도의 모습. 씁쓸했다. 비록 어쩔 수 없는 발전단계라고는 하지만 그 모습이 꼭 자본주의 체제 하 불균등한 지역발전의 축소판이기 때문이었다. 현재도 이와 같은 현상은 국가적으로 혹은 글로벌적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우도의 주변부
▲ 우도 바닷가 우도의 주변부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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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서는 해변가에 차를 세워놓고 우도의 정상을 지나 등대도 들르고 싶었지만 이제 그만 숙소에서 쉬고 싶으시다는 장인어른 말씀에 핸들을 돌려야만 했다. 나중에 또 시간이 된다면 그때는 꼭 가방 하나 둘러메고 우도를 일주하리라.

다시 배를 타고 우도를 나온다. 섬의 모양이 누운 소와 같다 하여 우도라더니 얼핏 보아 소 비스무리한 모습도 보이는 것도 같았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아는 만큼 보이고,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몇 백 년 전 선인들이 봤던 바를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질 뿐이었다.

이윽고 도착한 선착장. 자 이제 숙소로 가자. 그곳은 섭지코지에 있단다. 이름도 오묘한 섭지코지.


태그:#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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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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