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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 척박한 돌틈에 피어나 한창 때임에도 벌써 단풍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의연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 애기똥풀 척박한 돌틈에 피어나 한창 때임에도 벌써 단풍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의연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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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언젠가 달빛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발밑의 풀들을 보며 삶의 희열을 느꼈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짓밟아서 풀잎에 구멍이 나고 흙이 묻어 있지만 그 풀은 의연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상처와 먼지에 찌들린 풀잎이 하늘의 달과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형편없는 나의 그날의 생활이 떠오릅니다.' (나락 한알 속의 우주 -'삶의 도량'에서)

그 분이 느꼈던 그 느낌에 저도 근접한 적이 있습니다. 아니, 그 경험은 여전히 저로 하여금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그들처럼 살지 못함이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의 위대한 스승입니다.

민들레 하필이면 그 마당에 뿌리를 내렸을까 싶습니다. 상처와 먼지에 찌들렸어도 여전히 그의 삶은 아름답습니다.
▲ 민들레 하필이면 그 마당에 뿌리를 내렸을까 싶습니다. 상처와 먼지에 찌들렸어도 여전히 그의 삶은 아름답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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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다리던 봄이 오는가 싶더니 무더운 날이 이어지고, 겨우내 감춰두었던 신비를 앞다퉈 피워내는 계절입니다. 이제 너무 많아 흔하디 흔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심드렁해졌습니다.

요 며칠간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강연을 묶은 <나락 한알 속의 우주>와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씨의 행복 여행>을 반복해 읽었습니다.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 행복을 얻으려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행복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어쩌면 안다는 말은 어패가 있을 수도 있겠군요. 삶으로 살아졌을 때 비로소 '앎'에 이르는 것이니까요.

'모든 잡초들이 나의 스승이요, 벗이요'

철쭉 낙화한 철쭉이 풀잎에 살포시 앉아 쉬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참으로 잘 어울리게 합니다.
▲ 철쭉 낙화한 철쭉이 풀잎에 살포시 앉아 쉬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참으로 잘 어울리게 합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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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은 돌틈에, 민들레는 주차장 무지막지한 바퀴 아래에, 낙화한 철쭉은 풀잎 위에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소곳이'입니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상관하지 않고 그곳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햇살과 비와 이슬과 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때론, 떨어진 꽃조차 더 아름답고 강렬한 메시지를 품고 말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그 경험 이후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것을 맛본 후로는 길가의 모든 잡초들이 나의 스승이요, 벗이요, 이 연약한 사람이 도인(道人)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길 걷는 동안 참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고 즐겁게 길을 걷습니다.'

잡초 밟히고 뽑혀나가도 오히려 그들은 풍성합니다.
▲ 잡초 밟히고 뽑혀나가도 오히려 그들은 풍성합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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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삶, 그 삶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니 퍽퍽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경쟁사회에 내몰려서 일등이 아니면 기억되지 않는 세상에 편입하지 못해 안달하는 나를 보게 됩니다. 그 경쟁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일이 나의 삶을 삶되게 할 것인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지금 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젠 행복합니다. 이 삶도 행복합니다. 스스로 자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나 됨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한, 일등을 하지 못해도, 무지렁뱅이로 살아가도 의미가 있는 것일터이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숨쉬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들이 모시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나도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니 나 역시도 나의 위대한 스승들과 같은 삶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겅이 밟혀 구멍이 뚤린 이파리지만, 여전히 대기와 호흡을 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 질겅이 밟혀 구멍이 뚤린 이파리지만, 여전히 대기와 호흡을 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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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 전 이런 기쁨에 근접하는 삶을 살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나의 텃밭은 도서관이요, 들풀은 친구요, 해와 달과 바다와 산은 쉼터였습니다. 작은 벌레들 조차도 온 우주의 기운을 품은 존재요, 저의 친구들이었지요. 이런 맑은 마음(돌아보니 그렇습니다)을 망각하게 하는 것은 바로 도시인의 삶, 경쟁에 찌들린 삶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도피하려고만 했었지요.

그러나 이젠 아닙니다. 덤덤히 받아들이고, 늘 그런 마음 잃지 않으려 하고, 나 자신의 삶을 조금씩이라도 바꿔간다면 언젠가는 그 위대한 스승의 삶에 근접하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나의 스승, 그냥 스승이 아니라 위대한 스승은 바로 이들입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피어나는 애기똥풀과 민들레와 질겅이와 이름모를 잡초와 떨어진 꽃 그런 것들입니다. 물론, 좋은 곳에서 피어나는 그들도 나의 위대한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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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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