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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1일 오후 8시 10분]

 하태경 새누리당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부산 해운대기장을).
 하태경 새누리당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부산 해운대기장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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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장이 크게 바뀐 계기는 문익환 목사가 돌아가신 일 때문이다. 북한이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해체하려 한 문 목사를 안기부 프락치로 몰았다. 그런데 주사파 NL(민족해방전선)들이 입장을 바꿔 북한의 주장에 따랐다. 충격이었다."

하태경 새누리당 당선자(44. 부산 해운대기장을)의 말이다. 하 당선자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소속 운동권 출신으로 1990년대 후반 북한인권 운동에 뛰어들며 전대협 출신 운동권 인사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는 총선 전 이정희 진보당 공동대표에게 공개편지를 보내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 것을 성토하기도 했다. 19대 국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놓고 가장 선두에서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당선자이기도 하다.

하 당선자는 8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비례대표 부실·부정경선을 겪고 있는 진보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주로 당권파를 향한 얘기였다. 그는 특히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반(反)민주성이 높은 집단이 진보당 당권파다, MB정부보다 더 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9대 의정활동 과제로도 '북한 문제'와 '우파 혁신'을 제시하고 "북한 인권문제만이 아니라 종신제 폐지와 같은 정치개혁도 요구하고 안보·시장우파가 아닌 3세대 우파가 되겠다"고 밝혔다.

"돌려막기? 호기심만 있고 호감은 못 받는 문성근 덕분이다"

사실 하 당선자는 공천 및 선거 과정 중 각종 논란이 불거진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이정희 대표가 출마했던 서울 관악을 출마를 희망했다가 문성근 민주당 후보가 출마했던 북·강서을에 공천을 신청했고, 결과적으론 부산 해운대·기장을에 공천돼 '돌려막기' 논란이 불거졌다. 또 동문 인터넷 카페에 '독도는 공인된 분쟁지역' 등의 글을 올린 사실이 확인돼 '친일파 논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 유창열 후보를 1만2414표 차로 꺾었다.

하 당선자는 '돌려막기' 논란에 대해 "선거 초반 당은 나를 '문성근 맞수'로 생각했지만 민주당의 공천 잡음으로 문 후보의 지지율이 내려가면서 전략이 바뀐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오히려 내가 북강서을에 출마하면 문 후보가 더 부각될 수 있었다"며 "문 후보의 북강서을 공천은 지역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정치공학적 공천이었다"고 말했다.

또 '독도 발언 논란'에 대해선 "독도가 분쟁지역으로 인식되는 만큼 전략을 잘 짜서 대처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며 "선거기간 중 후보들이 이 문제를 집중제기했지만 (유권자들에게) 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하 당선자는 이번 총선을 통해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새롭게 평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박 위원장을 정치적으로 높게 평가하지 않았는데 이번 선거를 통해 박 위원장의 리더십을 인정 안 할 수 없었다"며 "문제가 있는 후보를 빠른 속도로 정리하는 등 정치적 판단력과 결단력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하 당선자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인근 커피숍에서 나눈 일문일답이다.

"독도 발언 취지 왜곡돼... 유권자들도 상식적으로 이상하다 생각해"

 하태경 새누리당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부산 해운대기장을).
 하태경 새누리당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부산 해운대기장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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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통합당 유창열 후보를 1만2414표 차로 꺾었다. 낙승이라고 해야할까.
"이긴 것도 감사하다. 공천 발표가 늦어서 논란이 많았고, 때문에 끝날 때까지도 긴장했다. 해운대기장을이 여당에 유리한 지역구지만 역대 무소속 강세지역이었다. 게다가 민주당의 '낙동강 벨트'로 야당 바람이 많이 불 수 있다는 관측까지 있었다. 무소속 후보와 3파전으로 진행돼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으려 했다. 선거운동 기간이 사실상 20여 일밖에 없었다. 공천에서 낙천한 안경률 의원과 관계를 푸느라 시간도 보내서 주민들을 만난 시간은 2주뿐이었다. 짧은 기간에도 유권자들이 지지를 해주셔서 감사하다."

- 실제로 2주라면 본 선거기간밖에 못 뛴 건데도 당선됐다. 결국 '낙동강 벨트'가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 아닌가.
"그래도 과거에 비해서는 야당의 바람이 많이 불었다. 선거가 끝났으니 하는 말인데, 나는 민주당이 공천을 잘못했다고 본다. 문성근 후보를 부산 북강서을에 보낸 것은 지역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말 그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한다는, 정치공학적 공천이었다. 북강서을은 아파트단지가 많아 야당 지지세가 약하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문 후보는 지역주민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호기심을 호감으로 이끌어내는 데 역부족이었다. 민주당이 만약 지역정서를 고려한 후보를 냈다면 훨씬 선전했을 것이다."

- 하 당선자는 당초 문성근 후보가 출마했던 북강서을 공천을 희망하다가, 해운대기장을이 최종 공천지가 됐다. 공천 당시 '돌려막기' 비판이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유권자를 만날 때는 '돌려막기'란 비판을 받은 기억이 없다. 오히려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제가 지역을 쇄신할 사람으로 비춰졌던 것 같다. 공천 심사 당시에도 '지역구가 바뀌더라도 수용할 수 있냐'고 당에서 물었다. '제 삶의 의미가 부각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전시에는 상황의 변화에 맞게 장수를 쓰는 법이다. 당은 나를 '문성근 맞수'로 생각했다. 왜냐면 선거 초반만 하더라도 야당 바람이 셌다. 문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를 10%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민주당의 공천 잡음으로 문 후보의 지지율이 내려갔다. 새누리당의 어떤 후보가 나가더라도 문 후보를 이기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내가 북강서을에 출마하면 문 후보가 더 부각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의 전략이 바뀐 것이다." 

- 선거 중 '독도는 공인된 분쟁지역'이라고 쓴 글이 문제가 됐다. 지역구에서도 상당한 논쟁이 제기됐을 텐데 어땠나.
"8년 전 일이다. 사실 잊고 있었다. 2004년 일본 시네마현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면서 독도 논란이 일었다. 이 때문에 당시 (동문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대한민국의 땅인 독도가 분쟁지역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략을 잘 짜서 대처해야 한다'는 취지로 글을 쓴 거다. 사실 전 세계 지도 가운데 독도를 우리 땅으로 표시한 지도는 1.5%밖에 안 된다. 그만큼 국제사회는 독도가 한국 땅이란 점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분쟁지역으로 공인됐다'는 표현을 썼기 때문에 언론에서 '매국노다, 친일파다'고 몰아붙인 것이다. 하지만 전체 내용을 보면 그런 뜻이 아니다. 선거기간 중 후보들이 이 문제를 집중제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 중 누가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하겠나. 누가 봐도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날 향한 비판이 유권자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에피소드를 하나 얘기하자면, 독도 발언 논란이 제기된 후 상대 후보들의 현수막이 '독도는 우리 땅'으로 바뀌고 선거 로고송도 <독도는 우리 땅>으로 바뀌었다.(웃음)"

-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여러 차례 부산을 방문했다. 특히 하 당선자와 재래시장을 함께 도는 등 해운대기장을 선거구에 '공'을 들였단 느낌이다. 박 위원장의 방문이 도움이 됐나.
"박 위원장과 함께 간 기장시장이 기장의 중심지다. 그 전엔 기장시장에 인사를 안 갔다. 왜냐면 첫 인상이 중요한데, '니 어디서 왔노', '기장 놈도 아닌데 딴 데 가라'고 할 수도 있지 않나. 첫 데뷔를 잘 해야 한다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그런데 박 위원장이 마침 온다고 했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시장에 계신 분들이 대개 4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신데, 그 시대에 있어 박 위원장은 아이돌이랑 비슷하니까….(웃음) 박 위원장 방문 이후 시장에 다시 나갔을 땐 유권자들이 웃으며 반기더라."

"북한 3대세습 침묵하는 진보당 당권파, MB정부보다 더 반민주적"

 하태경 새누리당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부산 해운대기장을).
 하태경 새누리당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부산 해운대기장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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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부실·부정선거 논란이 가장 큰 이슈다. 하 당선자도 고(故) 문익환 목사와 함께 통일운동을 했던 NL(민족해방노선) 운동권이었다. 진보당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나.
"안타깝다. 난 새누리당보다 민주당과 진보당에 인간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왜 지금 새누리당에 있느냐. 진보당 당권파 때문이다. 진보당과 연대하는 민주당도 택할 수 없었다. 내 입장이 크게 바뀐 계기는 문익환 목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일 때문이다. 북한이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해체하려 한 문 목사를 안기부 프락치로 몰았다.  충격이었다. 난 비주사파 NL이었는데 그 전엔 그들을 토론할 수 있는 상대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처럼 민주주의 과정에 정면 도전할 줄 몰랐다. 인간적으로 그들을 용납하기 힘들었다."

- 이후 북한 인권 운동에 눈을 돌린 것인가.
"그렇다. 당시 북한에 대량아사가 발생하고 탈북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이 왜 문 목사를 안기부 프락치로 몰고,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지 직접 알아보고자 했다. 중국에서 탈북자를 직접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1980년대 대학생들이 전태일 열사와 광주항쟁의 진실을 목도하고 학생운동을 시작하듯, 나도 탈북자를 만나면서 그런 체험을 했다. 이후 '북한은 동지가 아니다, 오히려 민주화는 북한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토론이 불가능하단 걸 깨달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반(反)민주성이 높은 집단이 진보당 당권파다. MB정부보다 더하다. 그러니깐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침묵하거나 두둔하고 북한 인권에 대해서 한 마디도 안 하는 것이다. 저들은 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게 아니다. 세상은 486세대를 '운동권'이라고 묶지만 사실 그 안에서도 세력은 다양했다. '사노맹(사회주의노동자동맹)' 같은 경우, 폭력혁명을 통해 제헌의회를 꾸릴 것을 주장했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그건 민주주의, 의회주의가 아닌 폭력주의다."

- 공교롭게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3번은 사노맹 출신의 은수미 당선자다.
"궁금하다. 그분이 자신의 사노맹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지식인은 자신의 궤도에 대해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운동권 출신 지성인들이 과거의 생각을 솔직하게 다 드러내고 밝혀야 한다. 사실 우리끼린 다 알고 있지 않나. 포장할 필요는 없다. 그만큼 이제 우리 사회는 관대하다고 본다."

- 진보당 비례대표 2번인 이석기 당선자를 '북한 지하조직원 인사'라고 비판한 바 있다. 진보당에선 당시 "양심수를 간첩으로 둔갑시켰다"고 지적했는데.
"양심수? 맞다. 그런데 자기가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당시 의회주의·민주주의 실현을 추진했던 건 아니지 않나. 양심에 손을 얹고 '당시 민주주의를 지향한 거냐'고 묻고 싶다."

"박근혜 리더십 인정 안 할 수 없어... '박정희 딸' 아닌 자신만의 자산 있어"

 하태경 새누리당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부산 해운대기장을).
 하태경 새누리당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부산 해운대기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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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결과, 새누리당이 당초 예상을 깨고 원내 1당이 됐다. 승리 요인은 뭐라고 보나.
"박근혜 위원장의 리더십을 인정 안 할 수 없다. 솔직히 난 박 위원장을 정치적으로 높이 평가 안 했다. 하지만 선거 중 '박근혜 마니아'를 직접 봤다. 또 박 위원장은 정치적 판단력과 결단력이 있다. 문제가 있는 후보를 빠른 속도로 정리했다. 민주당이 한미FTA 폐기나 제주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중산층을 불안하게 할 때, 전략적으로 잘 파고들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전 대표와 확실히 대조되더라. 민주당은 혁신 없는 통합, 구태로 비쳐지지 않았나. 그래서 예상에 비해 압도적으로 이긴 것이다."

- 새누리당이 사실상 대선경선 구도로 접어들었다. 지지하는 후보가 따로 있나.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다. 하지만 대선후보는 자신의 정치인생에서 쌓은 것을 국민께 평가받는 자리 아니겠나. 그랬을 때 박근혜 위원장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생각한다. 탄핵 역풍 때나 이번 총선에서 박 위원장은 리더십을 발휘했다. 박 위원장을 가깝게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이분 나름의 원칙이 있는 것 같다. '박정희의 딸'이 아니라 독립된,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국민과 맺은 정치적 신뢰에서 비롯된 자신만의 자산이 있는 걸 느꼈다. 다른 후보들도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대로 평가받을 것이다."

- '비박(非朴) 대선주자들의 완전 국민경선제 도입 요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현행 경선룰의 당원투표를 없애고 100% 일반국민들을 대상으로 경선을 진행하자는 얘기 아닌가. 하지만 (투표인단에서) 당원의 비중치를 조절할 수는 있지만 아예 없애는 건 너무 급진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번 선거에서 느낀 거지만 새누리당 당원들은 당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그런 당원들의 사기나 단합을 고려한 점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새누리당의 정권재창출을 위한 하 당선자의 역할이 있다면.
"다른 국회의원 당선자에 비해 특색이 뚜렷하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 활동경력과 486운동권으로서 2040 세대와의 교감, 그리고 노동. 새누리당이 약한 시민사회·노동·청년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여기서 나름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

"이제 안보우파-시장우파 벗어난 3세대 우파가 필요하다"

- 지난 3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당시,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의정 목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지금 당장 시급하다고 보는 건 무엇인가. 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 문제와 우파 혁신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의정활동을 하려고 한다. 그동안 북한 문제는 핵문제 중심으로만 풀어왔다. MB정부의 최대 실정은 핵문제가 안 풀리면 아무것도 안 한다였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핵실험에 대한 제제는 해야겠지만 북한의 정치개혁과 인권개선 문제도 같이 추진해야 한다. 새로 고민하고 있는 게 정치개혁이다. 우선 북한의 종신제부터 폐지하라고 주장하려 한다. 왜 북한의 대남정책이 안 바뀌나. 그건 북한의 고위직이 종신제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이 안 바뀌는 거다. 긴장 관계가 조성될 수도 있겠지만 북한 내 개혁세력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 하 당선자는 꾸준히 '우파 혁신'을 주장했다. 우파 혁신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우리 사회는 이제 '3세대 우파'가 필요하다. 1세대는 '안보·반공우파'였다. 2세대는 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장우파'. 그동안 경제성장 등 성과도 있었지만 경쟁지상주의, 개인주의 등 폐해도 많이 발생했다. 3세대 우파는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내세우고 주민들과 함께 하는 풀뿌리 운동세력이다. 이것이 소위 민생정치다. 새누리당도 민생정치를 지향하고 있지만 실제 당조직은 주민들과 괴리돼 있다. 주민들 사이로 들어가야 한다. NGO나 사회적 기업, 자선단체 등 현장정치를 해야 한다. 이걸 하는 게 3세대 우파라 생각한다. 이런 운동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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