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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당선자가 26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수경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당선자가 26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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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번 선거운동기간 이북5도청에 갔다. 환영받았냐고? 설마. (웃음) 어떤 분이 '당신 같은 사람 여기에 올 데 아니다'고 하더라. 그냥 명함 돌리고 인사하러 간 것 뿐인데. 무력시위하러 간 게 아니라고. 표가 될 일 없으니 거기 간 정치인이 누가 있나. 이번에 뽑힌 300명 중 그들을 기억하고 함께 할 사람은 바로 난데."

어른한테 이런 표현 쓰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그는 '귀엽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만들어내고 같이 키득키득 할 수 있는 소재를 내놓는다. 함께 얘기하다 보면 어지러울 만큼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한 줄기 꼭 내려놓는 메시지가 있다.

그는 평소 정치를 멀리서 봐왔다. 간혹 정치에 관심 없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늙어서 할 일 없을 때"라거나 "국회의원 하면 연금을 준다는데,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해볼까?" 하는 식으로 농담을 했었다.

1989년 학생 신분으로 세계청년학생축전 참석차 평양을 방문했다 3년간 옥살이를 했던 통일운동가 임수경(45). 그가 이번 19대 국회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무엇이 그를 정치로 이끌었을까. 정치의 무대에서 그가 꼭 하고픈 일은 무엇일까. <오마이뉴스>는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그와 만났다. 예의 "할 말도 없는데 뭘?"이라며 눙쳤지만, 그는 곱게 단장한 차림으로 인터뷰 자리에 나왔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정당인이 됐고, 이번 4.11 총선 기간 동안 선거운동에 적극 결합했다. 전국을 누비며 지원유세를 했고, 자신이 유세해준 후보들은 한 사람 빼고 모두 당선했다며 웃었다. 남들이 잘 찾지 않는 곳도 찾아갔다. 물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인 경북 고령군청, 또 서울 평창동에 위치한 이북5도청이다.

고령군청에선 "선거운동 기간에 찾아온 첫 번째 정치인"이라며 반겼다는데, 이북5도청에선 '불청객'이 됐던 모양이다. 아직도 '임수경' 하면 이념적 색깔론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 것일까.

임 당선자는 "그냥 나는 명함 돌리고 인사하러 간 것 뿐이고 1999년 사면받은 뒤로 10년이 훌쩍 넘었고 그동안 비교적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왔는데도 그렇더라"며 "이번에 뽑힌 300명 국회의원 중 그들을 기억하고 함께 하려고 하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정말 분단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며 "내가 정치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고 강조했다.

올바른 북한문제 해결을 위해 임 당선자는 "진보와 보수가 한 자리에 앉아 대북정책의 사회적 협약을 마련해야 한다"며 "극단적 진영논리를 떠나 지속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 남북관계도 덩달아 축소되는 식으로 부침현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으로 남북관계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당선자는 국회 개원일을 앞두고 이런저런 사회단체 행사에 다니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한 날에는 인권재단 '사람' 주최로 열린 '남산 안기부 터를 인권·평화의 숲으로 만들기 위한 시민청원 출발 기자회견'에 다녀왔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인터뷰를 시작한 그는 가방 속에서 리플렛을 꺼내 "왜 남산 안기부 터를 인권·평화의 숲으로 조성해야 하는지"를 설파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황장엽 국립묘지 안장... 국민 한 사람으로 당대표 면담 신청했으나"

- 다시 가본 '남산 안기부 터'는 어땠나.
"사실 내가 아직도 남산 1호 터널을 못 지나다닌다. 그때의 기억이 나서 근접하기도 싫다. 그런 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트라우마다."

- 당시에 고문을 당했나?
"워낙 1989년 방북 사건은 국제적인 뉴스였기 때문에 심한 고문을 하기는 어려웠다. 안 재우기 같은 것 이외에 물리적 폭력은 없었다. 워낙 외국에서 국제적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 1989년 방북 이후 통일운동가로 살다 국회의원이 됐다. 당선된 날,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나.
"진짜 어깨가 무겁게 느껴졌다. 책임감. 나조차 이런 데 다른 분들은 어떨까 생각도 들었다. 우선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 들었다. 국회의원 되면 보좌관들이 다 써주는대로 읽더라, 이렇게 안 할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제대로 된 의정활동을 펴겠다. 정말 실력 있는 국회의원으로 현장과 정책을 깊이있게 준비해서 국민들에게 이로운 정치를 할 것이다."

- 책임감이 막중하다고 했는데 어떤 차원에서 그런가?
"이제는 국민의 대표가 됐다. 국민의 공리민복에 복무해야 할 책임이 생긴 것이다. 예전에는 통일운동을 했어도 그냥 나 혼자 생각하고 나 혼자 평가하고 나 혼자 행동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일일이 생각할 게 참 많다. 처음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는 생각이다. 사회운동가 시절에는 우리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고, 관철하려고 활동했다면, 이제는 좀 더 포괄적으로 국민의 소리를 듣고 열린 자세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선거운동에 투입됐었다. 단 한 번도 정당생활을 해보지 않았는데, 직접 겪은 정당인의 생활, 어땠나. 직접 발로 선거를 뛰어본 후보로서 느낀 한국정치는 어떤가?
"솔직히 말해야 되나. (웃음) 정당 안에 들어와보니 한국 정당의 현실을 다 알겠더라. 사회운동을 할 때는 무조건 아는 대로 다 말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최우선의 가치였다. 그런데, 정치의 영역은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 하는 것도 있더라. 견뎌야 하는 것? 그저 나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에 내가 스스로 최선을 다했고, 이런 저런 활동을 통해 국회로 진입하게 됐으니 앞으로는 정치인 임수경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주력하고 싶다."

- 민주통합당의 이번 총선 전략을 어떻게 평가하나.
"아쉬움이 많다. 자신감을 못 보여준 선거였다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정체성이 무엇인가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선거과정에서 느낀 바를 책으로 쓰라면 10권도 쓸 수 있는데! (웃음) 예를 들어 임수경 같은 사람을 민주당에서 활용할 방법이 있었을 텐데 좀 부족했다. 너무 시야가 좁았던 것은 아닌가 싶다. 워낙 공천과정 초반부터 융단 폭격을 맞아서 그럴 수도 있는데 정작 선거운동에서도 힘을 못 썼다. 언론에서 말하는 경마 저널리즘조차도 못하게 만들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가 뛰는데, 이쪽은... 아쉬움이 많다."

- 이번 선거에서 패한 이유는 한명숙 대표의 리더십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다. 4월 10일 자정이 딱 넘은 뒤에 한 대표와 얼싸안고 꽃을 건넸는데, 그분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나도 선거운동기간 동안에 왜 불만과 답답함이 없었겠나. 그런데 선거운동 마지막 날 밤 12시가 딱 됐을 때 다들 체력이 바닥이 났다. 그나마 40대인 나도 그런데, 저분은 오죽 힘들었을까 싶었다. 그런데 꽃을 드리니 반가워하셨다. 인간적으로 그냥 서로 그렇게 인사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 방북사건 때문인지 오히려 임 당선자는 통합진보당 쪽에 가까운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우리 역사에서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평화관과 세계관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을 몹시 존경한다. 그분은 민주화와 남북교류 두 차례의 주역이었다. 그런데 18대 국회에서 보여준 남북관계의 무력함은 정말 허무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뒤를 이어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구나 싶었다."

-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인가?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뒤에서 박수만 쳤다. 그런데 18대 국회를 보고 정말 화가 많이 났다. 이명박 정부 집권 내내 남북관계는 송두리째 무너졌다. 2010년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가 사망했을 당시 나는 민주당에 쫓아가 대표 면담을 제의했다. 국립묘지 안장 반대 논평을 왜 안 내느냐고, 정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묻고 싶었다.

민주당은 6.15와 10.4선언의 주역이다. 남북교류를 주도적으로 해온 정당이다. 그러니 황장엽의 국립묘지 안장 문제에 대해 우리의 입장은 이것이었다 정도의 기록은 남겨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못하더라."

-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민주당에게도 답답함이 있었던 것인가?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서 보여준 무력함도 문제였다. 한반도 평화와 비전, 미래를 고민하는 정치인들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 지역구만 신경쓰는 게 국회의원의 역할인가? 국내 정치인 가운데 한반도 평화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의 비전을 보려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안 되겠구나, 내가 나가야겠구나 생각하게 된 계기다. (웃음)"

"이북5도청, 내가 도착하니 분위기가 발칵..."

- 최근 진보-보수 간 대북정책의 사회적 협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능할까?
"나는 남북관계는 정권이 바뀐다고 부침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면 남북관계도 덩달아 축소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이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더라도, 우리 이산가족 문제만 생각해보자. 참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나. 그분들 많이 돌아가셨다. 최소한 북에 있는 가족에 대한 생사확인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하고 있나. 답답한 노릇이다. 사실 나는 이번 선거기간에 이북5도청에 갔었다. 서울 종로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정세균 후보가 내가 사는 평창동을 돌아달라고 부탁해서 겸사겸사 갔었다."

- 환영받았나?
"설마. (웃음) 내가 도착하니 분위기가 발칵 뒤집혔던 모양이다. 어떤 분은 날더러 '여기는 당신 같은 분이 오실 데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냥 명함을 돌리고 인사를 드리러 간 것 뿐인데 그랬다. 그분은 내게 들어온 문이 아니라 비상계단을 통해 나가라고 했다. 나는 당선돼서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 전에 이산가족위원장이 불러서 가보니 이산가족과 탈북자, 하나원 얘기 등등을 했다. 일종의 민원도 있었다. 그 사이 이북5도청 내에서는 '이번엔 야당이 된다. 쫓아내면 안 된다' 이런 전화도 오간 것 같다. 여하간, 나는 이북5도청에 순수한 마음으로 명함 돌리러 갔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웃음) 내가 그날 오전 11시 20분 정도에 도착했는데, 기관장 검정 세단들이 12시 20분까지 점심도 못 드시러 나간 모양이다. 계속 차가 서 있었다."

- 환영받을 거라 생각했나?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명박 정부 4년간 그들에게 무슨 지원이 있었겠나. 예산지원이 제대로 됐을까 싶기도 하다. 표가 될 일이 없으니 여기 들어오는 정치인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무력시위 하러 간 게 아니다. 그냥 인사드리러 갔었다. 결국 이번에 뽑힌 300명의 국회의원 중 그들을 기억하고 함께 하려고 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 세월이 흘러도 이북5도청 민심은 안 변한 건가?
"내가 방북한 게 1989년이다. 1999년 사면받고 벌써 12년이 흘렀다. 그동안 비교적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왔다. 나에 대한 검증은 이미 끝난 거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내세울 게 색깔론 뿐이니 나 같은 사람이 또 피해를 보는 거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가 먼저 정면돌파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를 경계하면서 '표 떨어진다'는 소리를 해댔다. 전국을 다녀보면 유권자는 그저 이름 알고 유명하면 다 반가워한다. 나는 정말 분단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내가 정치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 그런데 정말 보수와 진보가 북한문제로 한자리에 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앉아야 한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이 당선되면 이민 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그 사람들, 하나도 이민 안 갔다. (웃음) 이북5도청 도민, 이산가족 등 북녘에 기반을 둔 사람들과 공개 간담회를 열고 싶다. 정말 절절한 바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과 이야기하면 책상머리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정책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귀를 열고 그들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을 것이다. 정치는 매우 보람된 영역이다. 보람 있게 실천을 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직업이다."

- 진보와 보수가 어떻게 하면 북한문제에 대한 결론을 낼 수 있겠나.
"이번에 새누리당으로 당선된 국회의원 중 몇 분은 충분히 남북관계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분들이다. 인적 구성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탈북자 출신인 조명철 박사. 한두 번 만났고, 임수경 다큐멘터리 찍을 때 코멘트도 해주신 분이다. 방송출연도 짧지만 해주셨다.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 북한에 대해 합리적 견해도 갖고 있는 걸로 안다. 하태경씨는 오히려 새누리당 안에서 빨갱이 취급을 당한다. 정말 극단적인 진영논리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 만나 충분히 얘기할 수 있다. 또 민주정부 10년간 평양 다녀온 사람이 한둘인가? 이제 와서 대선을 빌미로 색깔론을 들먹이며 이념논리를 들이밀면 매우 곤란하다."

- 북한에 대한 통합진보당의 입장을 두고 문제제기가 많다. 3대 세습에 대한 입장부터 최근 광명성 3호 발사에 대한 입장 등 같은 진보정치 안에서도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다른 것 아닌가.
"민주사회에서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 왜 의견을 통일해야 하나? 이번 광명성 3호를 발사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과 유엔도 분명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핵심으로 발표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자공존 틀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대안과 의견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꼭 단일화 된 대오를 형성해야 하나? 다양성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국민이 공감할 눈높이에서 남북관계 진전을 말할 것이다."

- 듣다보니, 남북관계 리더십의 세대교체를 선언하는 분위기다.
"세대가 확 바뀌고 있다는 것을 2009년과 2010년 사이에 느꼈다."

- 5.4 원내대표 선거가 임박했다. 민주당의 원내 사령탑은 어떤 리더십이 맡아야 하나.
"민주당의 정체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당에 입당한 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비전 때문이다. 민주당은 남북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한 정당이다. 당선자 대회 때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갖자고 했다. 한반도 평화는 이 당의 정체성이다. 민주당에 가면 두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다. 두 분이 추구했던 가치, 지역감정을 넘고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크게는 한반도 평화로 가는 것이다. 이런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넓은 관점에서 한국정치와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원내대표가 당선되길 바란다."

- 19대 국회에서는 어떤 상임위를 선택할 것인가.
"문화체육방송관광위원회를 원한다. 그런데 경쟁률이 무척 세다고 들었다. 남북교류는 관광으로 시작해야 한다. 남북교류에서 정책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문화교류다. 독일도 방송교류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이질적 문화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겨레말사전> 작업도 멈췄고, 북한 노래와 영화상영도 못한다. 이적 표현물도 아닌데. 민주정부 때 윤도현, 이미자, 조용필이 평양에서 공연했다. 그런 게 거의 '그때를 아십니까' 수준이 됐다. 이래선 안 된다. 남과 북의 많은 사람들이 서울과 평양에서 일부라도 교류하고 입소문을 내야 한다. 인천 아시안게임 때 어떻게 입장할 것인가 지금부터 논의해야 한다."

- 국회의원 4년은 길지 않다. 이 기간 동안 정치인 임수경이 꼭 이루고 싶은 바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지난 민주정부 10년간 만들어온 남북교류의 회복이다. 정권교체가 되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때 했던 체육과 문화교류협력 등을 한 차원 더 넓히고 싶다. 욕심일까. 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주정권을 수립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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