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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절 신부와 신랑이 어른들께 큰절 올리고 있습니다.

신랑 "날씨가 좀 흐려서 그렇지 괜찮을 거야."

신부 "그래, 어쩔 수 없잖아. 이미 타버린 배를..."

신랑 "재밌게(?) 시간 보내면 멀미 걱정 없을 거야." 

신부 "그 말 들으니 좀 안심은 되네..."

 

12월 14일, 제주 가는 배 '특실'에 앉았습니다. 들고 온 짐을 잘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제주도로 떠납니다. 긴장됐던 마음이 한꺼번에 풀립니다. 신부와 나란히 누워 창밖을 봅니다. 바람 때문에 조금 불안하지만 파도는 높지 않네요. 불행히도 그 불안, 곧 현실이 됩니다.

 

항구를 벗어난 배는 잠시 후, 최고급 파도를 만납니다. 배가 고개를 처박더니 이내 하늘로 솟구칩니다. 처음엔 재미있었죠. 공짜로 놀이공원에서 바이킹 타는 기분이었으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점점 크게 요동치더군요. 오르내리는 수준이 장난 아닙니다.

 

낭만적인 바다를 굽어보던 창문에 파도가 달려듭니다. 급기야 속이 울렁거립니다. 옆에 있던 신부도 헛구역질을 합니다. 신랑과 신부 얼굴이 점점 창백해집니다. 이때, 천사의 손길이 뻗쳐옵니다. 신부가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냅니다. 침(針)통입니다.

 

신랑과 신부, 바늘 네 개 꽂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곧이어 제 몸을 더듬더니 온몸에 침을 꽂기 시작합니다. 신부는 오래전에 침(針)과 뜸(灸) 놓는 법을 익혔거든요. 그 기술이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빛을 봅니다. 신부는 흔들리는 배 안에서 침착하게 손에 침을 잡습니다. 이윽고 제 머리와 손등 그리고 배와 다리에 한 개씩 모두 네 개의 바늘을 꽂더군요.

 

아내의 무기 이 침(針)만 빼들면 세 아들은 벌벌 떨죠. 저는 백회, 합곡, 중완, 족삼리에 침 꽂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날 이후, 제 몸에 침 대는 일 거의 없습니다. 뜸은 종종 합니다.

아파도 참았습니다. 놀라운 일은 신부도 자신의 몸에 침을 쑤셔 넣는 겁니다. 신기에 가까운 기술입니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쑥, 쑥 필요한 자리에 침을 놓는 모습에 '경악'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쭉~ 침대에 누워 제주도까지 흘러갔습니다.

 

그러니까 엽기적인 신혼여행은 올해로 딱 10년이 지났네요. 2002년 12월까지 한일 월드컵 열기는 채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 열기에 취해선지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아내와 결혼식을 차일피일 미뤘죠. 그러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 부분은 마음껏 상상하시길.

 

아내가 말하더군요. "하얀 눈이 내리는 날 눈부신 신부가 되고 싶다"고요. 좋습니다. "눈부신 신부" 되고 싶은 마음 이해합니다. 그런데 왜 12월이냐고요. 좋은 날 많잖아요? '5월의 신부' 얼마나 눈부시고 멋진 이름입니까? 따뜻하죠. 사방팔방 꽃 피어 더 좋잖아요.

 

무엇보다 사진이 잘 나옵니다. 덤으로 마음도 따뜻해지고요. 아내는 좋은 날 다 버리고 12월을 택했습니다. 겨울이면 궂은 날이 허다합니다. 특히, 다른 곳 눈 오면 여수는 비 옵니다. 겨울비 맞아보셨어요? 참 기분 우울해집니다. 그러니 12월이라도 가능하면 눈 안 오는 날로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하늘을 움직이는 전능한 신이 아니기에 최선을 다해 날짜를 골랐습니다. 12월 14일,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 중간에 큼지막한 동그라미를 몇 번이나 둘러 치고 열심히 빌었습니다. 제발 눈만 내리지 말라고요. 물론, 아내에겐 비밀로 했죠.

 

"우리 배로 간다!"... 쓰러진 아내

 

고통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침을 놓습니다. 아내가 침을 들면, 세 아이는 저 멀리 줄행랑을 칩니다.

하얀 눈이 오는 날, 눈부신 신부가 되고 싶은 아내가 '눈 안 오는 날'로 결혼식 날짜를 잡은 걸 알면 가만히 있겠어요? 그날 눈이 안 와서 슬퍼할 신부에게 던져줄 변명도 미리 준비했습니다. "여보, 다른 곳 눈 오면 여수는 비 와. 그리고 잘못하면 비행기도 안 뜨잖아"라고 말이죠. 그 말 위로가 됐을까요?

 

다행히 결혼식 날, 눈 안 왔습니다. 하지만 기도가 약했던 걸까요? 하늘이 무척 궂었습니다.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신혼여행 떠나기 위해 지금은 여수세계박람회장으로 유명해진 여수신항에 도착했습니다. 신부는 상황을 이해 못 하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여수공항에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제주로 향해야 하는데 파도 넘실대는 바닷가에 내렸으니 황당하겠지요. 신부가 대뜸 묻습니다. "시간이 그렇게 많아? 쓸데없이 시간 버리지 말고 공항으로 가자." 신랑이 대답했습니다.

 

"미안하다. 우린 배 타고 간다. 단, 특실로 예약했어. 비행기 삯보다 더 비싸."

 

신부가 쓰러집니다. 그런데 웬 특실이냐고요? 여수와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이 있는데 맨 꼭대기 방에 딱 하나, 신혼부부를 위해서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답니다. 그 소식 듣고 두 번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예약했죠. 결혼식 즈음 갑자기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상상이 되실는지 모르겠네요. 드넓은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나가는 배 위에서 샴페인 터트리며 결혼식 올리는 멋진 영화의 한 장면 말이에요. 느닷없이 그 모습이 머리를 때리더군요. 추억으로 남길만한 멋진 신혼여행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주도 함께 찍은 사진 찾으려고 온 집을 뒤졌습니다. 결국 이 사진 한 장 찾았습니다.

아내에게 상의도 없이 신혼여행 배편을 예약했습니다. 비행기는 식상하잖아요? 물론, 아내에겐 선망의 대상이지만 말이죠. 그때 알았습니다. 배멀미는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걸 말입니다.

 

"제주도 비행기로 가야 해!" - "그날 비행기 뜨지도 못 했어"

 

그렇게 2박 3일 동안 아내의 구박과 즐거운 비명(?)을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돌아올 때 교통편 궁금하시죠? 당연히 비행기 타고 왔죠. 또 배 탔다간 아내가 저를 깊은 바다에 처넣든지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큰 침으로 온몸을 찌를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아내는 그때 일을 잊을 만하면 꺼냅니다. 저는 신혼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조용히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죠. 그럼 아내는 제 뒤통수에 대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제주도 갈 땐 꼭 비행기 타야 해! 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바다란 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아?"

 

그렇게 말하면 저는 도망치듯 자리를 옮기면서도 잊지 않고 꼭 한마디 합니다.

 

"신혼여행 배로 갔기에 망정이지, 그날 제주 가는 비행기 뜨지도 못했잖아!"

 

휴, 비행기 못 뜬 게 참 다행입니다. 그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지금쯤 아내의 잔소리에 파묻혀 조용히 반성의 시간만 보내고 있을 겁니다.

덧붙이는 글 | 공정여행 기사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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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