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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수목드라마 <적도의 남자>.
 KBS 수목드라마 <적도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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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수목드라마 <적도의 남자>는 단순하다.

등장인물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고, 그들 사이의 관계 역시 복잡하게 얽혀 있지도 않다. 주인공 선우(엄태웅 분)가 복수해야 될 대상은 드라마 초반 명확하게 드러나고, 남은 것은 '어떻게'이지만 그 또한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주 내에 있다. 치열한 두뇌 게임이나 심리전을 펼치며 시종일관 시청자를 쥐고 흔드는 류의 복수극과는 거리가 멀다.

반전과도 거리가 멀다. 반전을 위한 복선을 장면 곳곳에 깔아놓아 시청자로 하여금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게 만들지도 않고, 극중 인물들의 캐릭터 또한 입체적이나 복잡하진 않다.

일반적인 복수극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적도의 남자>

또한 일반적인 복수극에서 중요하게 다뤘던 지점이나 전개 방식과는 다른 형태로 극이 진행된다.

가령 선우가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는 지점은 일반적인 기억상실에 관련한 복수극보다 꽤나 빠른 것이었다. 선우는 자신을 해치려 한 장일(이준혁 분)로 인해 오랜 시간 잠들어 있다 깨어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의 살해 장소에 도착하고, 그 즉시 잃었던 기억을 되찾는다. 일반적인 기억상실의 복수극이었다면 주인공이 기억을 되찾는 지점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로 다뤄졌을 테지만, <적도의 남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적도의 남자>는 주요 인물들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에 있어서도 인위적으로 엇갈리게 만든다거나 못 알아보게 해 시청자의 애간장을 태우지도 않는다. 극중 각각 2년과 13년, 총 15년의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도 선우는 지원을, 지원은 선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일부러 타이밍을 비틀어 시간을 끌며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지 않는다. 만나야 할 때는 만나고, 만나면 반드시 알아본다.

 로맨스가 시작되면서 선우의 앞이 안 보이는 설정은 멜로를 부각시키는 역할마저 했다.
 로맨스가 시작되면서 선우의 앞이 안 보이는 설정은 멜로를 부각시키는 역할마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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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적도의 남자>는 주인공의 고난을 부각시키지도 않는다. 일반적인 복수극에서, 주인공이 극 초반 겪는 고난은 그 강도가 남다른 법이다. 고난의 크기가 클수록 훗날 복수가 시작되면서 시청자가 느끼는 카타르시스의 크기 또한 배가되는 법이기 때문에, 대개의 복수극은 주인공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큰 고통을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악에 받친 주인공은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선우는 극단까지 치닫지 않는다. 비록 눈은 멀고 생활은 불편해졌지만 그의 곁엔 언제나 헌신적으로 그를 돌봐주는 친구 금줄(박효준 분)이 있고, 비록 원수 장일을 사랑해 그 저의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나름의 정성을 다하는 수미(임정은 분)가 있다. 그들로 인해, 선우는 맹인이 되었지만 크고 깊은 고통을 겪는 대신 착실하게 맹인으로서의 새 삶을 준비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우에게 찾아온 연인 지원(이보영 분)의 존재는 칠흑같이 어두웠던 그의 삶에 비춰진 한 줄기 빛으로 작용한다. 선우와 지원의 로맨스가 시작되면서 선우가 겪는 심리적 괴로움은 일반적인 복수극의 주인공이 복수의 대상인 악역으로부터 당하는 것이 아닌, 그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대체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앞 못 보는 설정이 극의 멜로적 특성을 더욱 강하게 해주는 수단으로 작용될 정도였다.

작고 가볍기에 아찔하고 위태로운 위기

이렇듯 일반적인 복수극의 그것과는 다른 궤로 그려졌기에 자칫 심심하고 밋밋할 수 있었던 <적도의 남자>가 매회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조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극의 세밀한 연출에 있었다. 작가의 극본에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지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 드라마로 만드는 연출진의 작업이 조금의 틈도 없이 맞물려 돌아간 덕분에, <적도의 남자>는 공식을 따르지 않고도 훌륭한 한 편의 복수극이 될 수 있었다.

<적도의 남자>는 동(動)적이기보다는 정(靜)적인 드라마로, 배우들의 움직임은 물론 드라마 전체의 동작이 크지 않다. 선우에게 닥치는 위기는 그 하나하나가 크고 무겁기보다 작고 가볍다. 그러나 작고 가볍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고 가볍기에 그 위기는 아찔하고 위태로운 측면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아찔하고 위태로운 측면에서 <적도의 남자>만이 낼 수 있는 긴장감이 발휘된다.

 <적도의 남자>는 큰 동작 없이도 충분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적도의 남자>는 큰 동작 없이도 충분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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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선우와 장일의 전철역 신이나 술안주로 과일을 먹는 장면은 그런 아찔함과 위태로움이 극대화된 대목이었다.

전철이 곧 역에 도착하는 순간, 앞을 보지 못하는 선우는 정지선을 지나 플랫폼 끝부분에 서고 장일은 뒤에 서서 그 모습을 그저 가만히 지켜본다. 서서히 다가오는 전철과 그것을 쳐다보는 장일, 그리고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만히 서 있는 선우의 멍한 표정을 교차로 잡아주는 카메라의 워킹과 고조되는 배경음은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과일 먹는 장면 또한 발군이었다. 날카로운 과도를 집어 사과를 조각 내 입에 넣으며 선우를 서늘하게 쳐다보는 장일. 과도가 자신의 손에 있다는 것을 선우에게 알리려는 듯 부러 큰 소리를 내 과일을 썰고 과도를 그릇 위에 내던진 장일의 행동과 그것을 애써 무시하려는 선우의 표정에서 시청자의 가슴은 조마조마해진다.

회를 거듭할수록 긴장감이 증폭되는 <적도의 남자>

드라마는 '앞이 보이지 않는 선우'라는 설정만으로 아찔하고 위태로운 순간을 만들고 그 위에 배우들의 세밀한 눈빛, 감정 연기를 더해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들의 연기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얼굴을 확대해 클로즈업샷으로 잡는다. <적도의 남자>에서 유독 클로즈업샷이 자주 등장하는 건 배우들의 눈과 입, 표정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 그리고 이에 비례하여 고조되는 긴장감을 잘 표현해내기 위함이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지만 특히 복수극의 성패는 극적 긴장감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에 달렸다. 그런 면에서 10회에 이르는 동안 긴장감을 유지하며 오히려 매회 그것을 조금씩 증폭시키고 있는 <적도의 남자>의 힘은 대단하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공식이나 인위적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얄팍한 꼼수에서 비롯된 게 아닌, 극본에 충실한 배우들의 호연과 세밀한 연출력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적도의 남자>는 신선하다.

극의 반을 지나왔지만 조금의 늘어짐이나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적도의 남자>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펼쳐 보일 것인가. 벌써부터 수요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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