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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땅을 밟았지만 아직 한진중공업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전국 곳곳에 정리해고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있는 탓이다. 파카한일유압, 시그네틱스, 포레스트, 동서공업의 해고자들처럼.

금속노조 경기지부에 소속된 이들은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넘게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해고없는 세상만들기 경기공투단'(이하 경기공투단)을 꾸려 매달 공동실천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 4월 18, 19일 양일간 서울 곳곳에서 '해고없는 세상만들기'에 나선 사연을 알렸다.

장안공단 파카한일유압 "한국 세금 받아 노동자 잘라"

'해고없는 세상만들기 경기공투단' 해고자들이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파카한일유압 규탄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해고없는 세상만들기 경기공투단' 해고자들이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파카한일유압 규탄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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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구(35)씨는 급식업체 일용일을 하루 쉬고 공동실천에 나왔다. 스물다섯에 입사해 7년 동안 만들던 굴착기용 유압콘트롤벨브를 못 만든 지 3년이다. 일하던 시화공단 내 파카한일유압에서 2009년 5월 31명의 동료와 함께 정리해고를 당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일감이 줄어들 당시였다.

회사측은 "경영이 어렵다"고 했다. 사실은 경기도 화성 장안공단 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회사는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다. 애초에 사측이 197명의 직원 중 113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밝혔던 계획을 수정한 이유다. 하지만 결론은 사측의 계획대로 가고 있다. 2009년 정리해고 이후 수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해 현재 40% 이상 감원된 상태다.

강씨는 "장안공단 외국기업들한테 특혜를 주는 건 고용이나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보탬이 되라고 한 것 아닌가요? 그런데 한국 국민이 낸 세금 받아서 노동자들 자르는 데나 쓰면 안 되죠"라고 말했다.

장안공단은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경기도가 야심차게 준비한 외국인 전용 산업단지다. 입주한 외국인 투자업체는 공장부지 50년간 무상임대, 특별소비세·부가기치세 전액감면, 시설설치비 50% 지원, 신규고용 1인당 50만 원 지원 등 파격적인 혜택을 받고 있다. 파카한일유압은 2006년 미국자본인 파카가 인수한 상태다.

파카한일유압 한국 본사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해고없는 세상만들기 경기공투단'
 파카한일유압 한국 본사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해고없는 세상만들기 경기공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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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동안 두 번의 해고를 당한 영풍그룹 시그네틱스 해고자들이 율동을 하고 있다.
 10년동안 두 번의 해고를 당한 영풍그룹 시그네틱스 해고자들이 율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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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공투단은 파카 한국 본사가 있는 서울 양재동 캠코양재타워 앞 결의대회로 첫날 일정을 시작했다. 권오진 금속노조 파카한일유압분회장은 "현장에서 몸 좀 덜 아프게 일하고 싶어서 노조를 만들었더니 회사는 금속노조 조합원들만 정리해고를 했다. 또 정리해고를 단행한 지 반 년여 만에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다. 경영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민주노조를 파괴하려고 정리해고를 한 것이다"라고 사측을 규탄했다.

영풍그룹 시그네틱스 파주공장은 100% 비정규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풍그룹 시그네틱스 파주공장은 100% 비정규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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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역시 1심에서는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올해 초 고등법원에서는 1심 판결을 뒤집었다. 다시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결과마저 승소를 장담하지 못한다. "대법원에서 질 수도 있을 텐데…"라고 하니 강씨는 "그래도 해야죠"라고 답했다.

"이 투쟁을 통해 세상의 쓴맛은 다 보고 있지만 그래서 더 단맛을 맛보고 싶어요. 옳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으니 후회는 없어요."

강씨는 의연하게 말했지만 해고 3년의 현실은 어쩔 수 없다. "결혼한 지 3년이 넘었는데 아직 아이를 못 갖고 있어요"라며 그는 씁쓸해 했다.

캠코양재타워 건물 속에서 회사 관리자 몇 명이 결의대회를 쳐다본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 놓인 팻말에는 '이 시대 최대의 학살자 정리해고'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곧이어 30여 명의 경기공투단이 영풍그룹 본사가 있는 논현동으로 이동한다. 지하철 여섯 정거장 거리인데 영풍그룹 시그네틱스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여성노동자들은 걸어가자고 앞장을 선다.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 행복한 세상'이란 문구가 새겨진 노란 조끼들이 강남 한복판을 활보한다.

시그네틱스, 10년간 두 번 해고

전금순(53)씨는 시그네틱스에서 10년 동안 두 번 해고를 당했다. 2001년엔 안산공장으로의 이전 과정에서 130여 조합원 전원이 징계해고를 당했다. 1,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부당해고' 판결을 받는데 6년, 2007년 조합원 대부분이 복직됐다. 당시 전씨는 다른 곳에 취업한 상태였다.

"해고 2, 3년 지나고 나서는 다들 경제적으로 어려우니까 돌아가면서 취업에 나갔어요. 시그 출신이라고 안 받아주기도 하고, 나이도 많으니까 작은 하청공장 아니면 비정규직 자리를 전전했지요. 아직도 60, 70년대 공장 같은 데가 많더라고요. 시그와 달리 관리자들 감시도 심하고 복지부분도 없고…. 그때 우리 노조가 많은 일을 했었구나 싶더라고요."

"복직이 꿈만 같았다"던 전씨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복직한 시그네틱스분회 조합원들에겐 사측의 감시와 차별이 이어졌다. 몇몇 찍힌 조합원들은 관리자들이 뒤에 서서 손가락 움직임까지 간섭했다. 현장일을 안 시키고 사무실에서 반성문을 쓰게 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마저 견뎌내니 회사는 2010년 시그네틱스 내 신규 하청회사로 전직할 것을 강요했다. 전직을 거부하자 사측은 작년 7월 경영난을 이유로 조합원들을 정리해고 했다. 2010년에 주식을 상장한 영풍그룹 시그네틱스는 당시 196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었다.

하청회사로 전직하면 5년간 고용을 보장한다는 말도 들렸다. 당시 전씨는 정년까지 5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많이 갈등했지만 결국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해고생활이 얼마나 힘든 줄 아니까 결심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지요. 그런데 동료를 저버리는 건 아무나 못할 짓이더라고요. 스물, 스물 한 살에 회사 들어와서 결혼하고 애 낳고 애들 커가는 걸 같이 봐온 사이인데 저 친구는 어려운 길로 가는 걸 보면서 나만 쉬운 길을 택할 수가 없었어요."

전씨는 회사에 "이제 그만 하겠다"고 말하는 게 꼭 "내 목을 내가 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의 곁에 그처럼 마음 약한 언니, 동생들이 앉아 있다. "우리가 같이 지리산 갔다 온 게 몇 년 전이지?" "너희 애 아픈 거 나았냐?" 서로 나눌 추억도 많고 함께 나눌 일상도 그득한 그들이다. 그래서인지 다들 얼굴이 밝다. 집회가 아닌 꼭 마실 나온 표정들이다. 전씨는 "승리했던 경험이 있어서 다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시그네틱스 윤선애(38·사진 맨 오른쪽) 해고자가 쌍차 100인 희망지킴이 발족 기자회견 현수막을 붙들고 있다.
 시그네틱스 윤선애(38·사진 맨 오른쪽) 해고자가 쌍차 100인 희망지킴이 발족 기자회견 현수막을 붙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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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네틱스 본사격인 파주공장은 최근에도 라인을 새로 깔고 새기계를 들여왔다고 한다. 시그네틱스 사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직원들이 밤낮없이 일해 안타깝다"고 밝혔을 정도다. 이 '잘 나가는' 공장은 전체가 비정규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윤민례 시그네틱스분회장은 "사무직까지 하청업체 소속이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영풍그룹 본사 앞에서 진행한 '영풍그룹 규탄 결의대회'에서 엄미야 금속노조 경기지부 수석부지회장은 "정리해고는 자본만 살찌우고 나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그나마 우리는 노조라도 있어서 아프다고 발악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청, 또 그 아래 하청에 있는 여성노동자들은 '악' 소리 한 번 낼 수 없다, 시그네틱스 언니들은 그런 딸 같은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발언을 했다.

파주공장 내 젊은 여성비정규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와 맞교대근무의 어려움으로 얼마 못 버티고 계속 퇴사를 한다고 조합원들은 말했다. 책으로 뒤덮인 영풍그룹 영풍문고의 깨끗한 이미지 뒤엔 해고당한 50대 여성노동자, 비정규직 20, 30대 여성노동자들의 눈물이 숨어있다.

전씨는 "첫 번째 해고통지서는 우편으로 보내더니 두 번째는 직무교육 중간에 들어와 전해주면서 받았다는 인증샷을 찍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영풍문고에 있는 수많은 인권 서적들을 같은 그룹의 시그네틱스 관리자들은 읽지 못한 것 같다. 아픈 이야기도 담담하게 전해주던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이 결의대회를 마치자 "내일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바삐 집으로 향했다. 학교와 직장에서 돌아와 그녀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가족 곁으로. 투사처럼 보이는 해고자들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걸 우린 종종 잊는다.

프랑스 윤리경영과 거꾸로 가는 포레시아

주한프랑스대사관 관계자가 '포레시아지회 정리해고 문제해결 촉구를 위한 프랑스 대사관 기자회견'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주한프랑스대사관 관계자가 '포레시아지회 정리해고 문제해결 촉구를 위한 프랑스 대사관 기자회견'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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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사람들이 주한프랑스대사관 앞으로 모여들었다. 시그네틱스 조합원들은 "이젠 몸이 힘들다고 말을 해"라면서도 앞자리를 차지한다. 경기공투단이 프랑스대사관을 찾은 건 프랑스자본 포레시아 때문이다. 포레시아는 2003년 자동차 부품업체인 창흥정밀을 인수한 후 2008년 장안단지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포레시아지회 조합원 21명을 정리해고했다.

송기웅 포레시아지회장은 "처음에 포레시아가 프랑스 본사에서 내려온 윤리경영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했었다"며 "법을 지키고, 노조 결성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하지만 불과 5년도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돌아온 건 정리해고밖에 없었다"고 흥분했다.

포레시아 역시 앞의 두 기업처럼 정리해고 당시 다른 지역에 새 공장을 짓는 등 경영상의 어려움은 없었다고 노조는 주장한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소송 1심 재판부 모두 '정당한 정리해고'였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고 '부당해고'라고 판시했다. 긴박한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보기 어렵고 공장이전 시 노사가 체결한 고용안정협약이 유효하다는 근거였다.

고등법원의 판결은 있었지만 포레시아 사측은 복직 이행 대신 대법원 항소를 택했다. 현장탄압도 여전하다. 송 지회장은 사측의 금속노조 탈퇴 압박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탈퇴 안한 조합원 얼굴에 침을 뱉는가 하면 정년이 얼마 안 남은 형님한테 쌍욕을 하면서 앉았다 일어났다 얼차려를 주기도 했어요. 담배 피고 버린 꽁초를 주우라고 하고…."

지난해 회사에서 마련한 체육대회도 금속노조 조합원들만 따로 했다. 복수노조로 있는 기업별노조를 포함한 일용직에게까지 브랜드 체육복을 지급한 사측은 야외에 나가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체육대회를 진행했다. 반면 10여명의 포레시아지회 조합원들에겐 시장에서 파는 1만 원짜리 체육복이 돌아왔다. 휴일날 좁은 농구장에 모인 조합원들은 관리자가 보는 가운데 족구 등을 해야 했다. 물 먹으러 갈 때도, 화장실 갈 때도 줄서서 단체로 갔다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송 지회장은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근무지 이탈로 징계 때리려고 관리자가 지키고 서있었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서 말하는 '윤리경영'의 현주소다.

해고당하지 않은 포레시아지회 조합원들은 3년째 기업별노조 조합원들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3년째 임금교섭이 마무리되지 않은 탓이다. 사측은 교섭에 나와도 "안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송 지회장은 전했다.

해고당한 노동자들의 고통은 더하다. 3개월씩 돌아가면서 일을 하고 있지만 빚만 늘어나고 있다. 자기집을 세주고 다른 집에 얹혀사는 해고자, 대출받아서 사는 해고자, 과정에서 이혼 당하고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해고자 등등. 송 지회장은 "프랑스대사관 앞에도 자주 오고 싶은데 자주 못 온다, 피켓 등을 갖고 오려면 화성에서 차를 몰고 와야 하는데 기름값 등이 만만치 않아서…"라며 현실의 팍팍함을 드러냈다.

대사관 반경 100m는 집회절대금지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이날은 결의대회 대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프랑스대사관 앞을 막아선 전경들 뒤로 대사관 관계자로 보이는 외국인 한 명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었다. 해고된 노동자들의 절박함이 담 너머 이들에게 전해졌을까. 1인 시위 피켓을 챙기면서 포레시아 해고자는 자꾸 프랑스대사관을 뒤돌아본다.

쌍차의 죽음이 남일 아니야

경기공투단은 다시 시청 앞 대한문으로 향했다. 쌍용차 정리해고자와 가족의 22번째 죽음을 추모하는 농성장이 차려진 곳이다. '함께살자, 100인 희망 지킴이(쌍용자동차 노동자 명예회복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다들 바삐 걷는다.

파카한일유압의 강인구 해고자는 "쌍차 해고자들의 죽음이 남일 같지 않다"고 했다. 파카한일유압 해고자 중에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가 있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해고된 동생이 잠을 못잘 정도로 머리가 아파서 신경정신과에서 약을 받아 왔어요. 나도 머리가 아파서 그 약을 먹었더니 머리 아픈 게 가시더라고요. 나도 마음이 아프다는 걸 몰랐던 거죠."

윤민례 시그네틱스분회장은 "차라리 우리처럼 전체가 정리해고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쌍차처럼 산자와 죽은자로 나뉘면 산자는 더 잘 살았으면 좋겠고 죽은자는 산자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더 힘들지 않겠냐"는 얘기다.

기자회견을 알리는 현수막 끝을 시그네틱스 윤선애(38) 해고자가 붙잡았다. 표정이 많이 어두웠다. "죽음이라는 거…,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정리해고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게 서글프다"고 윤씨는 조용하게 말했다.

기자회견엔 소설가 공지영씨 등 몇몇 유명인사가 참석했다. 언론사 카메라들도 꽤 보였다. "카메라도 많은데 단체로 분향이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제안하자 금속노조 경기지부 간부는 "우리 해고자분들이 원래 그림 되고 모양내는 걸 잘 못하신다"면서 "대신 다들 기복 없이 꾸준하다"고 대꾸했다. 오랜 해고 기간 동안 그들이 깨달은 삶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경기공투단은 분향 대신 경기지역에서 매번 만나온 쌍차 해고자들의 손을 굳게 잡고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포스트잇에 적다 "한국3M은 노동탄압 백화점"

한국쓰리엠지회가 한국쓰리엠 본사 앞에 게시한 현수막.
 한국쓰리엠지회가 한국쓰리엠 본사 앞에 게시한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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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공투단 4월 공동실천은 여의도 한화대투증권빌딩 앞에서 마무리됐다. 빌딩 19~22층에는 포스트잇, 스카치 테이프, 산업용 마스크 등으로 유명한 미국계 다국적기업인 한국쓰리엠(3M) 본사가 있다.

현재 금속노조 한국쓰리엠지회 19명의 조합원들은 징계해고를 당한 상태다. 200여 조합원들에겐 250여건의 징계가 내려졌다. 2009년 5월 설립 이후 지회가 처한 상황이다. 3년이 다되도록 아직 단체협상도 체결 못하고 있다. 그동안 600명이 넘던 조합원은 1/3로 줄었다.

지회는 노조를 탈퇴하지 않는 조합원들은 새로 만든 TPM부서로 전환배치해 청소, 제초작업, 허드렛일 등을 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관리자가 매기는 인사고과에 따라 임금인상률도 차등 적용된다. 2011년의 경우, 1~5점 중 1~2점은 동결이나 2% 인상에 반해 4~5점은 8~10.5% 임금이 인상됐다. 문제는 1~2점을 받은 80여명이 모두 조합원이었다. 이마저도 비조합원은 작년 4월부터 인상시켰지만 조합원은 교섭중이라는 이유로 아직 적용 못받고 있다. 지회는 "사측이 조합원들한테 작년 임금인상 적용일인 4월 25일이 지나면 2011년 인상분이 소멸되니 빨리 조합을 탈퇴하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합원들은 한국쓰리엠을 "노동탄압 백화점"이라고 불렀다.

백승철(33)씨는 해고자다. 2010년 8월 지회 대의원이 회사에서 고용한 용역에 의해 질질 끌려가는 걸 막다가 용역들에게 같이 맞았다. 허리디스크까지 걸려 3주간 병가를 내기도 했다. 사측은 치료비 대신 작년 4월 평조합원이었던 그에게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용역에게 맞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한 셈이다. 행정소송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백씨는 스물여섯에 한국쓰리엠 화성공장에 입사했다. 그는 처음에 "일요일마다 쉴 수 있어서" 한국쓰리엠이 좋았다고 한다. 전 직장인 중소기업에서는 1달에 1번만 쉬었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회사가 우리를 한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장갑 등 소모품을 제때 안 주는 것은 물론 여름에 선풍기도 없이, 겨울에도 반팔 작업복을 입고 일하게 했다는 거다. 연매출이 1조5천억이나 되는 한국쓰리엠은 '비용절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매년 1천억이 넘는 돈이 주주배당금과 로열티 명목으로 미국 3M본사로 빠져나갔다. 한국쓰리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원했던 이유다. 3년 전 노조는 세워졌지만 현장은 여전히 어렵다.

한국쓰리엠에서 징계해고를 당한 조합원들이 해고에 이르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쓰리엠에서 징계해고를 당한 조합원들이 해고에 이르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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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씨는 "아직도 식사시간에 조원들이 30분 안에 밥 먹고 교대하느라 사람들이 자주 체해요. 외국기업이라고 일이 편할 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현실은 전혀 아니더라고요"라면서 실망감을 내비쳤다. 노란 포스트잇을 볼 때마다 밥을 후루룩 말아먹는 노동자들이 떠오를 것 같다.

해고 1년이 넘은 백씨가 걱정하실까봐 아직 부모님께 해고사실을 알리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인간적인 고충이 전해진다. 마이크를 잡은 한 해고자가 지나가는 시민들한테 외친다.

"노조 만들었다고 해고되는 사람들,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때로는 쌍차처럼 죽어가기도 합니다."

복직이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해고자들은 생각만 해도 기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 반짝이는 눈들을 바라보면서 문예공연을 온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 꼭 그들에게 전하는 응원가 같았다.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율동패 들불이 문예공연을 하고 있다.
 율동패 들불이 문예공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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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노동세상(www.laborworl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파카한일유압, #시그네틱스, #포레시아, #한국쓰리엠, #경기공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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