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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의 정체성과 본바탕이 무엇인지, 미학자는 물론 미적 심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심거리이면서 연구 과제다. 이는 단순히 특징을 나열하거나 감상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미학적으로 접근하여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타당한 한국미를 찾는 것이다.

 

모든 우리의 예술작품에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시대를 관통하여 해석력을 갖아야 한다. 우리의 미라고 하는 것이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적인 요구에 의해 왜곡되긴 하겠지만, 토속신앙과 불교, 유교문화시대를 거치면서 각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적 욕구를 융합하여 형성된 한국의 미를 찾는 것이다.

 

서산마애삼존불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문화재지만 한마디로 어떤 미인지 얘기하기 어렵다

한국미 연구의 큰 흐름은 소박미 계통과 자연미계통으로 나뉘는데, 대략적으로 '소박한 아름다움'(안드레 에카르트), '구수한 큰 맛', '미 이전의 미',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고유섭), '선적(線的)인 아름다움'(야나기 무네요시), '담백하고 청아한 멋'(김용준), '청초미'(윤희순), '내핍에서 오는 아름다움'(에블린 맥퀸), '둥근 맛'(최순우), '자연의 미'(김원용), '자연 순응성'(조요한) 등으로 요약된다.

 

그중 고유섭과 김원용, 조요한 등은 한국의 미를 자연에서 찾으려 했고 한국의 미를 자연미로 규정하고 해석하려 했다. 이런 관점은 우리의 자연관과 미적가치 지향성, 미적심성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보편타당성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자연미에서 자연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자연(Nature)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Nature'의 자연은 물론 노자사상의 자연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우선 한국의 자연미는 우리의 독특한 자연관에서 나온다. 우리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조그마한 바위 하나에도 신령스러운 기운과 생명이 스며있다고 생각하여 함부로 자연을 해하려 하지 않았다. 자연에 대항하기보다는 비켜서고 돌아가려했다. 자연은 공경의 대상이요, 두려움의 대상이어서 함부로 해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우리의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자연은 볶아내고 끌어낸 자연이다. 자연을 모두 말살시킨 후 새로운 인공적 자연을 꾸민다. 일본의 경우도 자연을 못살게 군다. 이발을 하듯이 자연을 오리고 깎아내고 다듬어 손질을 한다.

 

봉화 닭실마을의 청암정, 삼척죽서루, 불국사석축은 우리의 자연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좋은 예다. 청암정은 커다랗고 넓적한 거북 모양의 바위위에 세워진 정자다. 울퉁불퉁한 바위를 한 군데도 손대지 않고 자연모습 그대로 살려 그 위에 정자를 올렸다. 높낮이가 맞지 않은 곳은 주춧돌과 기둥 길이를 조절하여 높이를 맞추었다. 정자의 생김새로 보면 창덕궁 부용정이 제일이라지만 미 이전에 미적 심성을 본다면 청암정이 제일이다.

 

청암정 울퉁불퉁한 바위를 한군데도 손대지 않고 자연모습 그대로 살려 그 위에 정자를 올렸다

삼척죽서루는 자연바위가 덤벙주초 역할을 한다. 오십천 벼랑 위에 들쭉날쭉한 바위를 손 하나 대지 않고 그대로 주춧돌로 사용하였다. 바위 결에 맞추어 나무기둥을 깎아 기둥을 올렸다. 불국사 석축의 경우도 자연석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석이 '생겨먹은 모습'대로 석재를 깎고 다듬어 석축을 쌓았다.

 

삼척죽서루  나무기둥을 깎아 바위 결에 맞추었다

모두 우리 고유의 그랭이 건축기법을 사용한 것인데 이는 지진을 방지한다는 과학적 사고 이전에, 자연에 대한 경외심에서 나오는 미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덤벙주초와 나무기둥, 자연석과 인공석의 만남은 인공과 자연이 만나는 극적인 장면으로 아름다움을 넘어 미학적 범주로 접어든 것이다.

 

불국사 석축 석재를 깎아 자연석에 맞추었다

건축은 물론 정원을 꾸밀 때에도 자연의 질서를 해치거나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역하지 않았다. 산이 높으면 높은 대로 골이 깊으면 깊은 대로 언덕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 사이에 인공을 다한 누정을 배치하였다. 누정을 세우더라도 자연에 거슬리지 않게 지붕과 건물의 높이와 크기를 조절하였다.   

 

우리의 자연관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차경(借景), 즉 자연을 빌리는 데에 있다. 우리는 자연을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쓰고 함께 공유하려는 생각이 강하였다. 사물화(私物化)의 심리가 상대적으로 커서 자연을 가지려는 생각, 지배하려는 생각이 강한 일본의 경우와는 달랐다.

 

명옥헌원림 산에서 출발한 물길을 살려 연못을 만들고 원림의 규모에 맞게 아담한 정자를 배치하였다

우리의 정원이 집안의 뜰이나 꽃밭을 말하는 사전적(辭典的) 의미의 정원(庭園)보다는 동산이나 숲을 그대로 조경으로 삼는 원림(園林)이라는 말이 더욱 어울리는 것도 우리의 자연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설령 자연과 정원을 구분하기 위해 담을 두르기는 하였으나 담으로 인해 자연과 정원이 단절되지 않는다. 자연과의 조화를 꾀했고 자연을 끌어안음으로써 정원의 영역을 자연으로 연장하였다. 

 

소쇄원담 담은 원림과 자연을 구분하는 역할을 할뿐이다. 담으로 인해 원림과 자연이 단절되지 않는다

차경의 자연관은 정원을 꾸미는데 국한하지 않는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마당으로 태백산맥 전체를 끌어안은 것이라든가, 북악과 인왕산을 마치 경복궁 후원으로 여긴다든지,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의 경우처럼 산 전체를 하나의 기단으로 삼은 점 등은 우리만 갖고 있는 독특한 미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미를 소박미, 청초미 또는 내핍에서 오는 미, 비애미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를 지나치게 작고, 왜소하고 빈약하고 슬프게만 보는 편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미에는 자연을 통째로 빌리는 웅대한 스케일이 있다. 

 

경회루에서 바라본 북악 북악과 인왕은 경복궁의 후원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국의 자연미에는 앞서 얘기한 자연관에서 나오는 자연미와는 약간 다른 성격의 자연미가 존재한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것을 배격하고 철저히 나를 버린 무심한 상태,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미적 발로가 자연미라는 것인데, 여기에는 약간은 철학적인 사고가 개입된다.  

 

이는 돌아간다는 귀(歸)의 철학이다. 인위적·작위적인 것에서 자연으로, 욕심내는 마음에서 무심한 마음으로, 어른의 마음에서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철학이다. 자연이 최고(最高), 최선(最善), 최미(最美)라는 것이다.

 

노자 45장에서 "완전한 것은 결함이 있는 듯하고(大成若缺), 가득찬 것은 비어있는 듯하며(大盈若沖),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大直若屈), 뛰어난 솜씨는 서툰듯하고(大巧若拙), 빼어난 구변은 더듬는 듯하다(大辯若訥)"라고 하고 있다.

 

최고 수준, 최고 형태(대성, 대영, 대직, 대교, 대변)는 자연이 생성하고 소멸하듯 그것의 반대물(결, 충, 굴, 졸, 눌)로 전화(轉化)하여 질적 전환한다는 것이다. 한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최고'라는 것은 없고, 있다면 이것은 작위적인 것이어서 자연을 거스르고 자연의 질서를 해치는 것이다.

 

미학적으로 우리에게는 결함이 있는 듯하고 굽은 듯하며 서툰 듯한 데서 오는 결(缺)의 미, 굴(屈)의 미, 졸(拙)의 미가 있다. 이러한 미는 무아의 경지, 인위적인 것을 버리고 오로지 자연스러움에 기댄 경지에서만 나오는 미다. 잘 만들어보겠다는 욕심도, 가치를 높이려는 아무런 계산도 없이 만든 것이어서 겉으로 보면 너무나 평범한 것이나 그 안에 재주와 솜씨가 담겨 있다.  

 

개심사 심검당 부엌의 기둥은 휘어져 볼품이 없다. 못나고 굽은 나무를 아무 거리낌 없이 천연덕스럽게 사용하였다. 잘 만들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아무런 사심 없이 못난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여 지었다.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의연한 모습을 보면 그 기둥은 건물과 어우러져 최고가 된다. 부러질 듯 휘어져 있으나 결코 부러지지 않는 기둥, 그 내면까지 본다면 이 기둥은 가장 곧은 기둥, 대직약굴의 기둥이다. 그래서 지금은 최고 아름다운 건물 중의 하나로 칭송 받는다.

 

개심사 심검당부엌 심검당부엌은 굴미(屈美)의 극치다

봉은사에는 추사의 마지막 글씨가 있다. '판전(板殿)'이다. 노자의 핵심사상이 되돌아가는 것이라 한다. 근본, 자연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인데 이 글씨는 71세의 노인이 어린애로 돌아가(歸)쓴 글씨처럼 보인다. 어른이 일부러 쓸려고 해도 쓰기 어려운 무기교의 기교요, 무계획의 계획이고 무심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나올만한 대교약졸의 글씨다.

 

봉은사 ‘판전’글씨 판전글씨는 졸미(拙美)의 극치다

중앙박물관 고구려 방에는 고구려집모양토기가 있다. 다른 그럴싸한 토기들이 많은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왜일까? 잘 생기지도 않은 하찮은 토기다. 누가 보아도 밀가루를 반죽하여 거칠게 구워낸 빵 같기도 하고 어린애가 도화지에다 그린 집을 제본 삼아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지붕은 손으로 거칠게 긁은 것 같고 지붕은 머리를, 창과문은 눈과 코를 나타내려 한 것 같다. 완전(대성)하지도, 기교를 부린 것(대교)도 아닌 것이 나의 눈에는 최고로 보인다. 

 

고구려 집모양토기 고구려 집모양토기는 결미(缺美)의 극치다

자연미를 자연재료의 사용이나 자연관에서 나오는 것으로 한정한다면 자연미를 우리의 미로 보는 데에 궁색해지는 면이 있다. 철학이나 사상을 빌려 해석할 때, 즉 미학적으로 접근할 때 우리의 미를 대하는 사고가 넓어진다. 다음기사에는 우리의 미적 심성, 미적가치지향성과 자연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덧붙이는 글 | pressianplus에도 송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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