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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가 농협 청와대지점에서 인출한 5천만 원 관봉. 5만원 신권 100장을 묶은 십자 띠지 위에 '이 묶음은 일련번호 순이 아님'이라고 표시돼 있다.
 <오마이뉴스>가 농협 청와대지점에서 인출한 5천만 원 관봉. 5만원 신권 100장을 묶은 십자 띠지 위에 '이 묶음은 일련번호 순이 아님'이라고 표시돼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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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원 신권 있나요? 한 5천만 원 정도."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과 더불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관봉 5천만 원'을 시중 은행에서 구할 순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일반인은 5만 원 신권 한 장 구하기도 어렵지만 '관봉 5천만 원'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중에선 신권 '품귀'... 청와대지점에선 "준비해 놓겠다"

총선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종로 일대 시중은행 지점들을 수소문했지만 '관봉'은커녕 5만 원 신권 한 장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A은행 ㄱ지점 직원은 "한국은행에서 요즘 신권 발행을 안 해 5만 원은 물론 1만 원 신권도 없다"면서 "명절 때면 몰라도 우리 은행 전 지점을 돌아다녀 봐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가까운 B은행 사정은 좀 나았다. 이 은행 ㄴ지점 직원은 "몇십 만 원 정도는 가능하다"면서도 "2009년 6월 신권 발행 직후 물량이 많을 때도 수백만 원은 몰라도 수천만 원씩 신권으로 지급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농협 청와대지점에 전화를 걸었다. 청와대 특수활동비 때문에 신권 여유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 때문이었다. 간부 직원과 직접 통화한 탓인지 반응은 조금 달랐다. 

"회사에서 쓸 5천만 원 신권이 필요하다"고 하자 이 지점 관계자는 "현재 여유분이 없어 본점에 신청해야 받을 수 있다"면서 "본점도 여유가 많진 않아 다른 지점에도 확인해 보겠다"며 연락처를 남겨달라고 했다.

잠시 뒤 전화가 걸려왔다. 이 관계자는 "기자라고 하던데 민간인 사찰 문제 때문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오마이뉴스> 기자라고 밝히고 "5천만 원 관봉을 직접 확인해 보려는 것"이라고 하자, "여긴 작은 지점이라 시재보유한도도 낮고 이미 자체 소비해서 따로 수배해야 한다"면서 "내일은 선거일이고 목요일(12일)까지 준비해 놓겠다"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농협 청와대지점은 직원 전용?... 외부인 출입 통제

 농협중앙회 청와대 지점이 2009년 2월 입점한 청와대 연풍문
 2009년 2월 농협중앙회 청와대 지점이 입점한 청와대 연풍문(가운데 나무 뒷편 건물)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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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회사 총무 담당 직원과 함께 청와대 방문자센터인 연풍문 안에 있는 농협 청와대지점을 찾았다. 청와대 정문 광장 앞까지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유롭게 오갔지만 연풍문 앞에선 경호원들이 일반인 출입과 사진 촬영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취재진이 "농협에 볼 일이 있어 왔다"고 했지만 경호원은 "이곳은 출입증을 패용한 청와대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다"며 출입을 막았다. "농협에 약속이 돼 있다"고 밝힌 뒤에야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연풍문 안에선 출입구 보안 요원들이 취재진을 맞았다. 농협 지점은 출입통제장치 바깥에 있었지만 이곳이 '보안 건물'이란 이유로 노트북과 카메라가 든 가방을 보안 요원에게 맡겨야 했다. 휴대폰 카메라 앞에도 어김없이 검은색 보안용 스티커를 붙였다. 청와대 직원이나 공적인 방문객이면 모를까 일반인이 이용하긴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은행 지점치고는 규모도 작았다. 고객 부스도 4개 정도였고 직원도 지점장, 부지점장을 포함해 대여섯 명이 고작이었다. 오전이긴 했지만 손님도 뜸했다. 10분 남짓 머무는 동안 청와대 직원으로 보이는 손님 한 명이 다녀간 게 전부였다.

5천만 원 신권을 인출하는 절차도 까다로웠다. 지점 쪽에선 인출자가 개인이 아닌 법인이란 이유로 회사 쪽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요구했다. 또 2천만 원 이상 현금 거래 신고에 필요한 고객현금거래 사유서도 빠짐없이 기록한 뒤에야 5천만 원 신권을 받을 수 있었다.

청와대 주거래은행 변천사... 각종 의혹 휘말려
 한때 청와대 주거래은행이었던 우리은행 효자동지점(왼쪽)과 국민은행 청운동지점
 한때 청와대 주거래은행이었던 우리은행 효자동지점(왼쪽)과 국민은행 청운동지점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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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효자동지점, 국민은행 청운동지점, 농협 청와대지점. 이 세 곳의 공통점은 역대 정부 청와대 주거래은행이란 점이다.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과 청와대 사이에 있는 우리은행 효자동 지점은 80년대 상업은행 시절부터 김대중 정부까지 20년 넘게 '청와대 금고'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난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당시 박계동 전 의원이 대통령 비자금 일부를 이곳 대여금고에 보관했다고 주장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주거래은행은 국민은행 청운동지점으로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반기까지 청와대와 거래를 유지한 국민은행 청운동지점 역시 특혜 대출 의혹에 휘말렸다. 2010년 10월 국감 당시 국민은행 청운동지점이 이명박 대선 캠프 외곽지원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관련 업체인 와인프린스에 17억 원 특혜 대출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당시 지점장이 국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농협 청와대지점이 지난 2009년 2월 청와대 연풍문에 개점하면서 청와대 주거래은행 자리를 넘겨받았다. 청와대는 지난 2008년 11월 시중은행들 가운데 심사를 벌여, 농협을 최종 낙점했다. 우리은행과 끝까지 경쟁을 벌였지만 결국 이 대통령 동지상고 동문인 최원병 회장이 버틴 농협이 최종 승자가 됐다. 지난해 내곡동 사저 신축 논란 당시 이 대통령 아들 이시형씨가 농협 청와대지점에서 6억 원을 대출받은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일련번호' 안 이어진 신권 뭉치?... 한은 "불량 빼고 정상 유통" 

 민간인불법사찰 사건을 폭로한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지난해 4월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입막음용으로 전달한 5,000만원 돈뭉치를 촬영한 사진.
5,000만원은 시중에 거의 유통되지 않는 '관봉'으로 묶인 5만원 신권이 100장씩 묶인 돈다발 10뭉치로 구성되었다.
 민간인불법사찰 사건을 폭로한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지난해 4월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입막음용으로 전달한 5,000만원 돈뭉치를 촬영한 사진. 5,000만원은 시중에 거의 유통되지 않는 '관봉'으로 묶인 5만원 신권이 100장씩 묶인 돈다발 10뭉치로 구성되었다.
ⓒ 오마이뉴스 <이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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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가 12일 농협 청와대지점에서 인출한 5천만 원 관봉. 5만원 신권 100장을 묶은 십자 띠지 위에 '이 묶음은 일련번호 순이 아님'이라고 표시돼 있다.
 <오마이뉴스>가 12일 농협 청와대지점에서 인출한 5천만 원 관봉. 5만원 신권 100장을 묶은 십자 띠지 위에 '이 묶음은 일련번호 순이 아님'이라고 표시돼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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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원 신권들은 100장씩 십자 띠지로 묶여 한눈에 한국은행에서 발행한 상태 그대로임을 알 수 있었다. 농협 직원도 일일이 풀어서 헤아리진 않았다. 다만 100장짜리 소묶음 10뭉치가 노란 고무줄에 감겨 있을 뿐 1000장 단위 대묶음 띠지는 없었다. '관봉' 띠지 형태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이털남'에서 공개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5만원'이라고 적힌 띠지 아래 '이 묶음은 일련번호 순이 아님'이란 문구가 선명했다. 실제 지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일련번호가 계속 이어지지 않고 군데군데 몇 장씩 빠져 있었다.

이에 한국은행 발행국 관계자는 "조폐공사에서 발췌 검사를 하거나 인쇄 상태가 불량한 것을 빼내 일련번호가 연결되지 않은 신권도 관봉 형태로 똑같이 유통한다"고 밝혔다.

또 시중에 5만 원 신권이 품귀 현상을 빚는 데 대해 한국은행 관계자는 "5만원 신권을 발행한 지 3년째여서 이미 많이 찍어 놨고 유통되는 돈 상태도 양호해 요즘엔 신권을 많이 안 찍는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받은 신권 소묶음들 역시 4묶음, 3묶음, 3묶음끼리만 일련번호 구성이 비슷해 서로 다른 대묶음에서 나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한 곳에서 나온 돈이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끌어왔다는 얘기다. 실제 이날 이 돈을 다시 입금하려고 찾은 농협 다른 지점 직원은 "청와대지점에서 받은 돈인가"라면서 "우리 지점에서 나간 돈 같다"고 알아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5만 원 신권 확보는 농협 청와대지점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일까? 지난 12일 C은행 홍보팀에 <오마이뉴스> 기자임을 밝히고 5천만 원 신권을 확보해달라고 요청하자 "본점 자금부에 알아보니 하루 정도면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답변이 돌아왔다.

5년 전까지 시중은행 지점장을 지낸 박아무개씨는 "지점에는 관봉 형태의 신권을 거의 갖다 놓지 않아 관봉째 거래되진 않는다"면서 "대기업처럼 특수한 거래처나 VIP 고객이 요청하면 본점에 특별 주문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일반인이 지점을 통해서는 5천만 원 관봉은커녕 신권 한 장 구하기도 어렵지만, 기업이나 언론사, 정부기관처럼 특수한 곳에서 요청하면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헌 돈이나 새 돈이나 돈의 가치는 똑같지만, 고액 신권 확보 하나에도 이처럼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관봉 5천만 원', 농협 청와대지점 거쳤을까
류충렬 전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관봉 5천만 원' 출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 전 주무관은 2011년 4월 이 돈을 전달받을 당시 장석명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 마련한 돈이라고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류 전 관리관과 장 비서관 모두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류 전 관리관은 애초 돈 출처에 대해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았다"고 밝혔다가, 지난 4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이털남'에서 관봉 사진이 공개된 뒤 "지인에게 빌렸다"고 말을 바꿨다. 또 최근 검찰 조사에선 "돌아가신 장인에게 빌린 돈"이라고 또 번복해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 돈이 실제 청와대에서 나온 돈일 경우 농협 청와대지점을 거쳤을 가능성이 높다. 농협 청와대지점은 청와대 주거래은행으로 관봉 단위의 현금이 유통되는 몇 안 되는 지점 가운데 하나다. 농협 청와대지점이 개설된 시점이 2009년 2월이고 문제의 5천만 원 관봉이 나온 시점은 5만원 신권 발행 직후인 2009년 하반기여서 시기상 일치한다.

노무현정부와 김대중정부에서 각각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박지원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지난 9일 공개된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봉주11회)'에서 관봉 돈다발이 청와대 특수활동비에서 나왔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지원 최고위원은 "그 사진(5천만원 관봉)을 보고 청와대에서 쓰는 돈다발이란 걸 알았다"면서 "나도 써봤는데 그건 청와대 앞 주거래은행에서 한국은행 통해 직접 가져온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상임고문 역시 "특수활동비는 현금 수요가 있어 연락하면 관봉 형태로 가져다준다"면서 "우리 때는 국민은행 청운동지점이었고 지금은 농협 청와대지점"이라고 밝혔다.

문 고문은 "청와대에 관봉 형태로 오면 각 실에 특수활동비로 지급될 때는 해체돼서 민정수석실에선 관봉을 볼 수도 없다"면서 "관봉을 받은 곳(총무수석실)에서 곧바로 지출됐다는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아울러 "한국은행에서 신권을 보내면 일련번호 기록이 남아 있어 사진을 보면 금세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은행에선 신권 발행시 일련번호 기록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옛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 역시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특수활동비가 신권으로 나오긴 했지만 관봉을 직접 본적은 없다"면서도 "관봉은 청와대나 국정원이 아니면 나올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FIU(금융정보분석원)에 기록을 안 남기려면 1천만 원씩 나눴을 텐데 5천만 원 관봉으로 전달했다는 자체가 평소 관봉을 많이 다뤄본 곳에서 나왔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 들어 청와대 안에 농협 지점이 들어와 돈을 더 쉽게 구했을 것"이라면서 "청와대에 은행 지점이 없어도 큰 불편이 없었고 장소도 비좁은 데 왜 지점을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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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미디어 분야를 주로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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