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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섬이 많는 나라다. 북위 45도에서부터 북위 20도에 이르기까지 장장 2750km의 길이에 6852개나 되는 섬이 있다. 섬 3200개가 있는 한국의 2배이고, 7107개나 되는 필리핀에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섬이 많다는 건 인종과 문화와 관습이 다양하다는 뜻이다.

 

일본을 둘러 본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태양의 나라'로, 다른 사람들은 '태풍과 폭우와 폭설과 지진의 나라'로, 또 다른 사람들은 '신사(神社)의 나라'나 '온천의 나라'로 생각하지 않을까?

 

심훈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한울 펴냄)도 결코 다르지 않다. 이 책은 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첫 번째 안식년을 맞이해 일본에 머물면서 보고 듣고 겪은 내용을 옮긴 '일본견문록'이다. 일본이 왜 태양의 나라인지, 태풍과 지진의 여파 속에서 축적한 지혜의 산물은 무엇인지, 왜 신사가 많은지, 그들에게 온천이 주는 각별한 의미는 무엇인지 짚어 준다.

 

사실 태양은 세계 여러 나라 국기에 쓰인다. 그런데도 그들이 빨간 태양을 국기에 새긴 까닭은 뭘까? 그들이 태양의 후예임을 자랑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더욱이 그건 지상을 시뻘겋게 달구는 유아독존의 전제주의와 연결돼 있다고 한다. 그들 일장기에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집 구조가 날 '일(日)' 자 유형인 것도, 그들의 햄버거와 메밀국수에 '달걀'을 넣어 '달보기'(月見)로 이름 한 것도 모두 태양 숭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한편 이 책을 보면 희한한 사진이 몇 장 나온다. 이른바 일본의 지붕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여러 돌과 공중화장실 변기 옆에 설치돼 있는 우산걸이가 그것이다. 이유가 뭘까? 지붕에 놓여 있는 돌은 태풍에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고, 공중화장실의 우산걸이는 수시로 내리는 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라도 마음 편히 일을 보라는 의미란다.

 

심 교수는 한 해 동남아시아의 태평양 상공에 발생하는 태풍수가 평균 27개 정도 된다고 한다. 인터넷을 조사하면 알 수 있는 수치라고 한다. 그 가운데에 일본 본토까지 접근하는 태풍은 매년 11개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일본에서 '감기에 걸렸다'는 말을 '바람에 덜미가 잡혔다'고 표현하는 것도 바로 그런 연유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에 신사가 많은 이유는 '대지진' 때문이다?

 

"실제로,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던 1923년의 간토 대지진 당시, 흉흉해진 민심 속에서 무려 6000명에 달하는 한국인들이 학살당했다. 우물에 독을 풀어 일본인들을 죽이려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흥분한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거리로 끌고 나와 죽창 등으로 찔러 죽였던 것이다. 이러한 혼란상을 틈타 일본 군부 역시,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등 눈엣가시 같던 일본인들을 수천 명씩 살해했고."(75쪽)

 

일본 열도를 뒤흔든 간토 지진의 대비극을 두고서 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2004년 정부 산하의 지진조사위원회를 통해 향후 30년간은 간토 대지진과 같은 강진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1년 3월 11일 미야기 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초대형 지진을 두고 볼 때, 그들에게 지진은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활화산과 같다고 한다.

 

그게 바로 그 땅에 신사가 즐비한 이유란다. 태양의 후예로서 태양을 숭배하긴 하지만 태풍, 바람, 폭설, 폭우, 지진으로 인한 불안과 걱정, 피해를 줄이고자 수시로 신사에 들러 평안을 기원한다는 것이다. 1억3000만 일본인 가운데 기독교도가 1%에 그치는 반면, 신토 신자가 90%를 웃도는 것도, 그 땅에 800만 개가 넘는 미신이 존재하는 것도 그같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신토와 관련된 또 하나의 인상적인 사실은 교리도, 교주도, 경전도, 창시자도 없다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자연스레 형성된 종교이다 보니 생존 본능이 불경(不敬)과 금기, 숭배와 경외의 의식들을 하나씩 완성시킨 '눈먼 시계공의 시계'라고나 할까?"(141쪽)

 

일본의 신사와 미신 숭배 사상은 그런 흐름 속에서 태동된 것인데, 그만큼 그 땅은 신(新)마저 저버린 재난의 땅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신(新)이 선사한 작은 선물이 있단다. 바로 '온천(溫泉)'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구사쓰 온천'은 일본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유황 온천이다.

 

신이 선물한 '온천'과 일본인이 만든 '지혜의 산물'

 

온천이야 지진의 환경 속에서 받은 '은총의 선물'이고, 그들 스스로 재난을 대비하기 위해 터득한 지혜의 산물은 없을까? 왜 없겠는가. 인간은 고난 속에서 부활의 꽃을 피운다고 하지 않던가.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세운 견고한 X자 교각도 그렇고, 지진에 대비한 건물들의 내진설계공법도 그렇고, 적설방지를 위해 섭씨 13도 정도의 물을 1분당 0.32리터(1㎡ 면적 기준)정도 흘려보내는 플라스틱 호스로 된 물 분사기도 그렇단다.

 

그처럼 재난 속에서 나온 산물들도 지혜롭지만 나라 정책은 더욱 지혜롭다고 책은 말한다. 바로 공산주의 외형이 그것이다. 심훈 교수는 일본의 속내는 다를지라도 외형상으로는 공산당이 집권해도 별반 다를 바 없는 나라라고 칭찬한다. 이유가 뭘까?

 

그건 의료비와 공공교육비가 거의 무상에 가까운 까닭이다. 일본의 암검사비가 3만 원 수준이라는 점, 육아시설도 토요일은 물론 공휴일과 일요일까지 포함해 1주일 내내 문을 연다는 점, 집들도 대부분 20평 안팎의 월세에서 살고, 출퇴근도 자동차가 아닌 자전차와 전차로 한다는 점이다. 1억 국민이 모두 중류층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한 1970년대의 슬로건은 그래서 지금까지도 귀한 자긍심으로 남아 있단다.  

 

"1990년대 들어 '1억 총중류'의 신화를 무너뜨리며 국민들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승자'와 '패자'로 냉혹하게 갈라버린 고이즈미 전 총리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공산주의 일본을 자본주의 일본으로 일거에 바꿔버린 폭거 중의 폭거였다. 이에 대해 일본 국민들은 2009년 총선을 통해 55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룩함으로써 신자유주의 반란을 진압시켰고.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여전히 공산국가다."(179쪽)

 

앞으로 한 달 뒤에 일본을 둘러 볼 일이 있다. 물론 지진과는 거리가 먼 후쿠오카와 홋카이도, 큐수와 벳부 지역이 그 일대다. 그곳도 일본 열도에 속해 있으니 태양과 폭설과 온천의 나라인지, 그곳에도 신사가 즐비한지, 그곳의 집과 건물도 소국(小國)의 모습을 드러내는지 유심히 살펴볼 생각이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내게 일본의 견문을 넓히는 데 귀한 가이드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반양장) - 심훈 교수의 신일본견문록

심훈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2012)


태그:#심훈 ,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고이즈미 전 총리, #온천, #지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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