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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운동하러 밖에 나가시며 쪽지를 남기셨습니다.
▲ 운동 어머니가 운동하러 밖에 나가시며 쪽지를 남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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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보살피는 어머니가 요양보호사 시험을 보셨습니다. 결과는 단번에 합격. 지난 10일 아침이었습니다.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선거기간이라 또 누군가 마지막 지지를 호소하는 전화려니 생각했습니다. 전화 안 받으려다 엉겁결에 통화 버튼을 눌러 버렸네요.

수화기 너머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일흔일곱 늙으신(?) 어머니 전화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아들을 찾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요양보호사 시험을 치렀는데 결과가 궁금하답니다. 직접 확인하려니 가슴이 떨린다네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됩니다. 젊지 않은 나이에 난생처음 시험이란 걸 치렀으니 말이죠.

합격 여부를 알아 봐 달랍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어머니 시험 결과 발표일이네요. 아내가 번개같이 컴퓨터로 향합니다. 그리고 따다닥,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합니다. 곧이어 괴성이 들립니다. 합격이야, 합격! 국회의원에 당선된 일 보다 더 기쁩니다.

정작 환호성을 질러야 할 어머니는 잠잠한데 아내가 더 흥분했습니다. 아내 손가락이 바쁩니다. 이곳저곳 전화 넣어 합격 소식을 알립니다. 시어머니가 난생처음 시험이란 걸 봤고 당당히 한 번에 붙은 일이 대단한가 봅니다. 반면, 어머니는 연신 다행이라며 목소리를 낮춥니다.

아버지를 대하는 어머니 행동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도 그럴 일이 허리 수술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와 수년을 함께 살아오셨으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겠지요. 다행히 시험에 합격해 아버지를 돌보면 조금이나마 경제적으로 도움도 될 듯합니다. 어머니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아버지를 돌보면 정부에서 일부 지원을 해주거든요.

실은, 돈 때문이 아닙니다. 그동안 어머니는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돌보는 데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그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제가 요양보호사 시험을 권했습니다.

다행히 시험공부를 계속하면서 조금씩 어머니 반응도 달라지더군요. 예전엔 아버지 행동에 화부터 내셨는데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 이유를 먼저 알려고 하십니다. 그런 어머니 모습 보니 시험을 권유한 일이 참 잘한 것 같습니다. 또 어머니 마음도 훨씬 편해졌답니다.

2012년 3월 14일 제6회 요양보호사 시험을 위해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문제집도 풀어봤구요.
▲ 교재 2012년 3월 14일 제6회 요양보호사 시험을 위해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문제집도 풀어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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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집을 풀었습니다. 열심히 하셨죠?
▲ 연습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열심히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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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쓰시는 돋보기 안경입니다. 손주녀석들 아무곳이다 팽개친 연필을 착실히 모아 두셨다가 요긴하게 쓰시네요.
▲ 안경 어머니가 쓰시는 돋보기 안경입니다. 손주녀석들 아무곳이다 팽개친 연필을 착실히 모아 두셨다가 요긴하게 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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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한글 솜씨로 글 읽던 모습 생각납니다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쓰시고도 글씨가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다며 걱정하던 어머니 모습이 생생합니다. 대학생 전공서적만큼 두꺼운 책을 들여다보시며 서툰 한글 솜씨로 책을 읽으시던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도 납니다.

시험을 며칠 앞두고는 답안지 작성을 두 번, 세 번 물으시며 혹시 잘못 적어 시험을 망치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하시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3월 14일 순천에서 치러진 시험장에선 단연 어머니가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시험 치르는 이들뿐 아니라  감독들까지 어머니를 유심히 보더랍니다.

시험이 시작됐는데 자꾸 감독이 주변을 맴돌았답니다. 시험 감독이 주민등록증을 한번 살펴본 후, 혹시 이름과 수험번호를 잘못 적지나 않는지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는군요. 결국 1교시 시험이 시작되자 감독이 직접 수험번호를 적어주었답니다. 

너무 나이가 많으신 터라 합격여부를 떠나서 온갖 일이 다 걱정이었나 봅니다. 그런 주변의 걱정과 달리 어머니는 평소보다 더 편안하게 시험을 치렀답니다. 시험지를 받아보니 집에서 공부할 때보다 문제가 쉽게 나왔답니다. 역시 열심히 공부한 자에게 내려지는 당연한 상급입니다.

문제집 뒷면에 붙은 연습용 답안지에 표시도 해 봤습니다. 이렇게까지 연습했으니 실전에선 편안했겠지요.
▲ 수험번호 문제집 뒷면에 붙은 연습용 답안지에 표시도 해 봤습니다. 이렇게까지 연습했으니 실전에선 편안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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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응시표입니다. 난생 처음 치르는 시험에 많이 긴장하셨겠지요?
▲ 응시표 제6회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응시표입니다. 난생 처음 치르는 시험에 많이 긴장하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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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봄바람, 너무 상쾌하다

어머니가 열심히 공부한 이유가 뭘까요? 자식들에게 보란 듯이 합격해서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총명했던 지난날을 자랑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네요. 이럴 때 꼭 들어맞는 말이 있습니다. 하고자 마음먹으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지요. 눈 아프게 책 들여다 본 덕분에 단번에 합격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자랑스럽습니다.

합격이 발표되자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에게 축하전화를 넣었습니다. 조카 녀석도 전화했더군요. 할머니 멋쟁이라며 정말 자랑스럽답니다. 어머니에게 이번 시험의 의미는 뭘까요? 생애 처음으로 시험이란 걸 치렀고 당당히 합격했으니 그 기쁨이 정말 크겠죠?

합격 소식을 들은 후, 어머니는 홀로 여수 종화동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제게 전화해서 봄바람이 너무 상쾌하답니다. 합격해서 속이 시원한 걸까요. 아니면 봄바람이 어머니 마음에 불어 들었을까요? 여하튼 그날 이후 어머니는 마냥 기분이 좋습니다. 자랑스러운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는 종종 이 해안길을 산책합니다. 시험을 마치고 난 후에도 어김없이 이길을 걸었나 봅니다. 바람이 시원하답니다.
▲ 산책길 어머니는 종종 이 해안길을 산책합니다. 시험을 마치고 난 후에도 어김없이 이길을 걸었나 봅니다. 바람이 시원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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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지나 가신 길에 뒤편에 붉은 동백꽃이 한무리 떨어져 있습니다. 저 멀리 돌산대교에선 봄 바람이 불어옵니다.
▲ 동백 어머니가 지나 가신 길에 뒤편에 붉은 동백꽃이 한무리 떨어져 있습니다. 저 멀리 돌산대교에선 봄 바람이 불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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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요양보호사, #가족요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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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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