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고, 뜯고...고기 먹을 때만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음악도 고기처럼 먹을 수 있습니다. 음원, 라이브, 악기, 보컬 등을 각각 뜯다 보면, 어느새 맛있는 노래 한 곡을 다 먹게 됩니다. 하지만 포털 등에서 유용한 '개념 기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새롭고 의미 있는, 그럼으로써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평범한 대학생 박종원 드림 [편집자말]
총선 유세기간이 막바지다. 그래서일까. 길거리에서 틀어대는 선거용 로고송의 음량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가요 히트곡부터 CF 로고송을 개사한 로고송까지, 세간에 이목을 끌만한 노래들은 거의 모두 유세에 동원된 것만 같다. 만일 로고송의 역사를 기록하는 이가 있다면, 2012년은 선거 로고송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로고송의 파괴력은 의외로 강하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ce)의 윌 아이 엠(Will. I. Am)이 제작한 민주당 지지 로고송 '예스, 위 캔'(Yes, We Can)이 오바마의 당선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에 선거용 로고송이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된 선거는 1997년 대선이었다. 당시 김대중 새천년 국민회의 후보는 'DOC와 함께 춤을'이라는 노래를 'DJ와 함께 춤을'로 개사한 로고송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그 이후 이정현의 '바꿔'와 박현빈의 '오빠를 믿어'를 개사한 로고송이 각각 2000년 총선과 2007년 대선에서 히트를 치면서 선거 유세는 곧 로고송 전쟁이 됐다.

 2007년 대선 당선 직후 로고송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는 당시 이명박 후보 부부

2007년 대선 당선 직후 로고송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는 당시 이명박 후보 부부 ⓒ 권우성


선거 로고송 '대박'임에 분명하지만

선거일 이틀을 남긴 올해 총선도 다르지 않다. 민주통합당은 현재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주제곡, 시크릿의 '사랑은 무브', 노라조의 '해피송' 등을 중앙당 로고송으로 사용 중이다. 새누리당 역시 거북이의 '빙고',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 울랄라 세션의 '미인' 등을 로고송으로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

로고송이 유세에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정치인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가장 신이 난 곳은 기획사들과 음원가공업체들이다. 일부 업체들은 주요 정당들의 공천 발표에 맞춰 언론사에 광고 배너를 띄우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구사하기도 했다.

로고송을 제작하는 가수들도 대목을 맞았다. 그 중 '갑'은 단연 박현빈이다. 박현빈은 지난 2월 15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총선 때 로고송만 700곡을 녹음했다"며 "내 노래를 통해 당선된 사람도 상당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보통 로고송 녹음비와 저작권료를 포함한 로고송 구입비용은 곡당 20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다. 지역구의 후보들이 약 1000여명인 점을 감안했을 때 단순 산술로만 약 30억을 육박하는 시장규모임을 알 수 있다. 가수나 음원가공업체, 기획사 측에서는 그 자체가 놓칠 수 없는 하나의 대목인 셈이다.

 2008년 블랙 아이드 피스의 윌 아이 엠이 만든 '예스, 위 캔'은 당시 미국 대선에서 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2008년 블랙 아이드 피스의 윌 아이 엠이 만든 '예스, 위 캔'은 당시 미국 대선에서 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 google.com


2007년 대선에서 노브레인이 욕먹었던 이유

이러한 알짜배기 비즈니스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정치적 취향은 중요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후보든 싫어하는 후보든 의뢰가 들어오면 로고송을 찍어내야 한다. 경쟁업체가 20개가 넘는 만큼 특정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따지는 건 낭비고 사치다. 대중들도 어느 가수나 작곡가가 특정 후보에게 자신의 노래를 로고송으로 제공했다고 해서 이걸 정치적 행위로 보지는 않는다.

물론 예외도 있다. 그 예외라는 게 은근히 무섭다. 2007년 대선 당시 노브레인은 '넌 내게 반했어'라는 노래를 당시 한나라당의 선거 로고송으로 제공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과 네티즌들은 보수정당에 로고송을 제공한 그들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그들은 대선 이후로도 한참동안 비난의 표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노브레인이 잘못한 건 없다. 그건 그냥 비즈니스였다. 설사 그들이 당시 한나라당을 지지해서 로고송을 보냈을지언정, 그 행동 역시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에 응당 존중받아야 할 것이었다. 모든 것이 상식선에서 이뤄진 행위였음에도 그들이 '대차게' 욕을 먹은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그들이 하는 음악이 펑크였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청춘 98앨범에서 "문민정부란 개소리는 개한테나 줘버려"라고 외치던 치기 발랄한 펑크족들이 김영삼의 판박이인 이명박 후보에게 로고송을 제공한 것에서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로고송을 제공해 논란을 빚었던 노브레인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로고송을 제공해 논란을 빚었던 노브레인 ⓒ 록스타뮤직앤라이브


로고송 민원...그 자체가 '노란 떡잎'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일종의 연상 작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래를 들을 때 그 노래와 관련된 여러 기억들, 가수의 정보, 개인적 추억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반대로 노래를 들으면서 그 노래에 대해 일정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가수에 대한 이미지일수도, 일상생활, 자신의 판타지에 대한 이미지일수도 있다. 따라서 선거용 로고송을 제작하고 유통한다는 것은 그 노래에 담긴 가수의 이미지를 유통하는 것과 같다.

많은 경우 그냥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곤 하지만, 거리에서 들은 선거용 로고송의 이미지가 평소에 알던 가수의 그것과 다르다고 느끼는 순간, 대중들은 그 가수에게서 왠지 모를 실망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노래를 청각으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노브레인 같은 착잡한 경우가 앞으로 얼마나 더 생길지는 모를 일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문제랄 것도 없고 기술적인 해결책이랄 것도 없다. 그냥 가수들이 몸을 사리기 전에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이 개념 있게 정치를 하면 그만이다. 해당 가수의 이미지를 구입한 만큼  '애먼' 가수들 얼굴에 먹칠하기 않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정치를 잘해야 한다. 이번 국회는 또 얼마나 '난리 부르스'를 치려나 싶지만. 

 2010년 지방선거에서 로고송 없이 당선된 것으로 알려진 홍춘희 안양시의원

2010년 지방선거에서 로고송 없이 당선된 것으로 알려진 홍춘희 안양시의원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모 신문에서 일부 후보들이 저녁시간 주택가에 선거용 로고송을 틀어대는 통에 선관위에 심심찮게 민원 전화가 접수된다는 기사를 봤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보인다 했던가. 유권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이름을 억지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주입하려 하는 행동을 보면, 왠지 그들이 앞으로 원내에서 보여줄 행동들이 눈에 선하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이미 민심을 반영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걸 그들은 진정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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