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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플로리다 해변의 백사장. 그리고 파도.
 끝없이 이어지는 플로리다 해변의 백사장. 그리고 파도.
ⓒ 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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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 나무를 처음 본 것은 웨스트 팜비치(West Palm Beach)에서였다. 문어처럼 수많은 뿌리를 그 나무는 짠물에 담구고 있었다. 그뿐인가. 어떤 가지는 하늘로 뻗는 대신 바닷물로 내리 뻗고 있었다.

육중한 가지를 받쳐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렇게 그 나무는 바다에서 생존을 얻고 수평선과 맞서고 있었다.

바다의 암반 위에 뿌리를 내린 맹그로브 나무
 바다의 암반 위에 뿌리를 내린 맹그로브 나무
ⓒ 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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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의 수평선을 언어로 설명하다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맹그로브 나무를 보고 나서 다시 파도 앞에 섰다. 그리고 몇 마디 언어들을 움켜쥐어 보았다. 이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언어의 모래들....

<습작시> 맹그로브 나무

이 바닷가에 살고 있는 맹그로브 나무
짠물에 발을 잠그고 있는 맹그로브 나무처럼
나도 이 바닷가를 떠날 수 없다
너는 수 천 조각의 파도가 되어
억센 어깨로 달려 나오고
셀 수 없이 햇빛에 반짝이는 맹그로브 잎들처럼
나의 슬픔도 반짝이지만
이제 아픔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사랑은 더 이상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고
너는 파도처럼 부서지며 소리 지르고
하늘로 뻗지 않고 바닷물로 뻗는
저 맹그로브 줄기처럼
내가 물속으로 손을 내밀 때
너는 달려 와 내 손을 굳게 잡으며
파도의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저리 하얀 포말의
눈부신 미소를 터뜨리는구나.

맹그로브 나무와 파도의 사랑을 그려 본답시고 몇 줄 끄적였지만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카약(Kayak)을 타고 내해의 수로를 깊숙이 들어가 보았다.

홍학(紅鶴) 두 마리가 맹그로브 숲 위에 앉아 있었다. 아니 수정한다. 플라밍고 크기였지만 그리고 분홍 깃이었지만 홍학은 아니었다. 부리를 보니 숟가락 모양이었다. 이런 새는 영어로 Spoon Billed Heron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내가 본 것은 Roseate Spoonbill이 아닌지 모르겠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숟가락 부리의 새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숟가락 부리의 새
ⓒ User: Mw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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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는 뿌리가 장관이다. 남양군도에서는 바다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 집들을 받쳐주는 구조물 형상 같은 뭐 그런 것이다. 그래서 맹그로브 나무를 일명 '걸어다니는 나무(Walking Tree)'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상상해 보라. 어스름 달밤 물 가운데 난데없이 나무 비슷한 형체가 보인다고 하자. 그 나무는 걷어 올린 다리들을 놀랍게도 물 위에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성경에 보면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이라고 돼 있다. 밤바다에 나왔다가 맹그로브를 처음 본 사람은 아마 유령이 물 위를 걷는 기괴한 장면에 놀랄 수도 있으리라.

얼기설기 그 구조물 아래나 그 속에는 산호도 보이고 조개류도 보인다. 생태학습을 시켜 주시던 분은 카약을 나무 밑에 접근시켰다. 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금지돼 있지만 몇 개를 반출했으나 다른 일이 바빠 열어 보지는 못했다.

맹그로브 뿌리들 속에는 산호, 굴, 게, 조개들이 서식한다.
 맹그로브 뿌리들 속에는 산호, 굴, 게, 조개들이 서식한다.
ⓒ 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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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는 뿌리를 통해 산소 호흡을 한다. 그래서 호흡근이라고 한다. 이 뿌리가 하는 일이 상식을 무너뜨린다. 뿌리 둘레를 서서히 육지로 만들기 때문이다. 육지나 바다로부터의 퇴적물을 땅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맹그로브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면 해안선을 늘려나가는데 그 속도가 연간 100m나 된다.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플로리다에서 맹그로브는 보호림이다. 파도의 침식작용을 막아주는 울타리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맹그로브는 번식 방법이 특이하다. 다른 나무처럼 씨를 퍼트리지 않는다. 대신 어미나무 몸에서 씨앗을 틔어 실오이 크기만큼 자란 종묘(種苗)를 바닷물에 띠워 보낸다. 종묘는 궁둥이가 무거워 바닷물에도 기립자세가 된다. 발이 바위나 뻘에 닿으면 뿌리를 내리고 성장을 시작한다.

어미나무의 가지에서 싹이 터 자라는 실오이 모양의 종묘(種苗).
 어미나무의 가지에서 싹이 터 자라는 실오이 모양의 종묘(種苗).
ⓒ 이상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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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에 떠내려온 종묘가 암반 위에서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다.
 바닷물에 떠내려온 종묘가 암반 위에서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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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 나무며 Spoonbill이라는 새며 생태학습을 시켜준 지인은 바다의 시인이다. 그 분의 주옥같은 글을 인용하는 것이 구구한 내 말을 줄이는 방편일 것 같다. 

-- 어미는 말한다. 나는 이미 뿌리박은 늙은 나무. 내가 어찌 그 바다를 가로질러 떠나갈 수 있겠느냐? 이 가지와 뿌리를 끌고 떠나갈 수 있겠느냐?
너는 네 몸뿐인데, 너는 내린 뿌리와 가지도 없는 자유로운 혼, 너는 어느 것에도 매이기 전에 허허롭게 떠나렴.

너는 가지에 바람이 없는 자유로운 새다. 어디로든지 날아갈 날개가 있다.
물고기처럼 헤엄쳐 가면 되지 않느냐? 그 모든 것이 귀찮으면 파도에 너를 맡기기만 하면 된다. 그 파도의 은혜로움이 너를 어디로든지 인도해 갈 것이다.
이 좁고 한정된 네 어미의 섬을 떠나라. 어미의 숲과 그늘을 떠나야 네게 고향이 주어진다.

고향은 떠남으로 받는 선물이다. 낯선 땅이어야 네 뿌리가 깊어진다.
거기서 네 고향이 드높이 일어선다. 오늘 내 치마 자락에 떨어지면 정녕 너는 죽을 것이다.
내 품속에서는 큰 나무로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 

바다의 속살을 더 알게 해준 바다의 시인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하며 여기서 줄여야겠다.

어미나무의 뿌리에 갇혀 제약된 운명이 기다리는 종묘.
 어미나무의 뿌리에 갇혀 제약된 운명이 기다리는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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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맹그로브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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