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12월 20일, 그 사람이 세상을 등졌다. 온통 세상은 그 사람을 "대구 중학생"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바보같다고 욕하기도 했고 가해자들의 잔혹함에 진절머리 치기도 했다. 소위 대구 중학생 투신자살 사건은 그렇게 어느새 100일이 흘렀다. 그동안 학교는 어떻게 변했나.

오히려 폭력적으로 실태조사만 반복하는 우왕좌왕 교육청

대구시교육청(교육감 우동기)은 학생들을 상대로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나 전교조 대구지부는 일선학교의 혼란만 야기하고 교사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고 비난했다.
 대구시교육청(교육감 우동기)은 학생들을 상대로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나 전교조 대구지부는 일선학교의 혼란만 야기하고 교사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고 비난했다.
ⓒ 대구시교육청 제공

관련사진보기


지난해 12월 26일. 학급학교 교장·교감·학생부장들은 교육감으로부터 내려온 학생 간 폭력에 대한 긴급 지시사항을 전달받았다. 이 긴급지시사항에 따라 대구시내 초·중·고등학교들은 이튿날 당장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는가?'라는 설문 내용에 대해 피해사례를 적어 내는 것이었다. 이런 설문을 모든 학생들이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일제히 실시하려니 무언가를 적고 있는 사람이 제보자라는 게 바로 드러난다는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학교폭력 실태조사의 지침에는 이러한 문구가 붙었다.

'제보할 사례가 없는 경우에는 애국가 가사 등을 적게 해 제보자 신원이 밝혀지지 않도록 유의할 것.'

결국 모든 학생이 1시간여 동안 책상에 엎드려 똑같은 자세로 잠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적을 것을 강요당했다. 누군가 적는 것을 쉬면, 제보자가 밝혀질 수 있으니 모두가 애국가 가사를 쓰도록 지시받았다. D고의 한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유의 <너랑나랑>의 가사를 적었다. 하지만 설문지를 내고 난 후 담임교사는 장난으로 실태조사에 응한 범인을 잡겠다고 필적대조를 했다. 그야말로 폭력적인 대책이었다. 심지어 피해자들을 향한.

이외에도 대구지역에서는 열흘동안 전수실태조사만 세 번 이루어졌다. 학교에서 따로 행한 실태조사나 담임이 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이틀에 한번은 학생들이 설문지를 받아든 것이다. 아무런 변화도 없고 일률적으로 강제로 해야만 하는 설문조사.

심지어 그 설문조사는 제대로 행해지지도 않았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설문지를 작성하고 보낼 수 있도록 구성된 KEDI(한국교육개발원)의 설문조사는 보충학습 중인 교실에서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그냥 배부되었다. 심지어 어느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교사가 직접 설문지를 나누어주고 자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빈 종이를 회신용 봉투에 넣어 봉하고 우표를 붙이게 한 후 다시 거두는 일도 있었다. 그 누가 이러한 실태조사를 신뢰할 수 있을까.

학생을 묶어두는 것이 학교폭력 예방대책?

김황식 국무총리가 6일 오전 정부중앙청사에서 관계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6일 오전 정부중앙청사에서 관계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으로 설문조사 외에 좀 더 구체적으로 내려온 지침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오전 9시 전에는 업무용 컴퓨터 전원을 켜는 것을 금지한다든가 -컴퓨터 화면만 보고 학생들과 교류하지 않는 교사들을 없애야 학교폭력이 예방될 것이라는 논리-, 오전 7시부터 전교회장단과 부장교사들을 동원하여 교문마다 "멈춰 학교폭력" 피케팅을 하게 한 후 실제 근무시간도 아닌 그 시간에 복무감사를 돈다든가. 심지어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생 간에 30초 이상 대화하는 것을 금지하는 생활규정을 만든 경우도 있었다.

올해부터 전면시행된 주5일제 수업과 학교폭력 예방대책은 맞물려가기 시작했는데 특히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100일이 되던 어제(29일), 지금 실시되는 토요 방과후학교를 전면 폐기하고 새로 구성하라는 지침이 각 학교에 전달되었다. 이유인즉슨, 학교폭력과 주5일제 관련하여 예산이 대규모 편성되었고 현재 수익자부담으로 운영되는 토요방과후학교를 무상으로 확대하여 실시하여야 하니 이미 거둔 수업료는 다 환불조치하고 강의도 새로 구성하여 이번 토요휴업일부터 새로 실시하라는 것이었다.

한 학교당 예산이 수천만 원이 내려왔다. 세금으로 집행되는 예산이라는 게 그렇다. 예산이 내려오면 다 써야한다. 결국 각 학교에서는 새로 강의들을 구성하여 다급히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게 생겼다. 이렇게 다급하게 강의를 개설하려면 학교 교사들이 투입되게 마련이다. 또 예산을 써야만 하고 학교 교사들이 투입되면 수강하는 학생 수도 일정 수준 이상 있어야 한다. 강제 방과후학교와 같은 학생동원이 이루어질 것은 뻔하다.

심지어 대구시교육청은 중고등학교에 3월 첫 날부터 방과후학교(보충수업)를 실시하게 하는 지침을 학교폭력 예방 대책으로 내놓기도 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학생들을 책상에 묶어두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대책인 셈이다.

그 사람에게 필요했던 것은 학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권리

다시 투신 자살한 "대구 중학생"에게 되돌아가보자. 많은 사람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당하고만 있었는지, 왜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못했는지 궁금해하고 답답해했다. 그래서 수많은 신고제도가 고안되었고 실태조사도 여러번 행해졌으며 교사-학생 간 친교시간(상담시간)도 학교마다 필수로 두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렇게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학교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을까? 자신의 힘으로 그 곳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했던 게 아닐까?

그러나 그 사람은 학교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보충수업에 동원되어야 했고 결석할 수 없었고 전세계에서 가장 길다고 말하는 한국의 학교교육에 매여있어야 했다. 학교에서 어떤 일을 당하든 정해진 시간 동안 그 사람은 학교에서 절대 나올 수 없었다.

학교폭력은 전적으로 학교 내 관계에 의존되어 있다. 일진이든 왕따이든 간에 학교를 졸업하거나 다른 학교로 진학한 후 대부분 관계가 재설정되는 것에서 그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학교 내에 학생들이 오랜 시간 매여있을수록 학교 내 관계는 공고해지고 학생들의 삶은 학교 내 관계에 종속되게 된다. 학생들에게 학교 밖의 다른 삶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인이 직장 내 따돌림이 견디기 힘들어도 퇴근 후에 조금 자유로워지는 것과 달리 하루종일 학교에 매여있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왕따이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왕따가 된다.

학교를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공간으로 새롭게 바꾸어내는 것이 또다른 "대구 중학생 투신자살 사건"을 막을 근본 대책이긴 하지만 그와 더불어 학생들이 학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권리도 생각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학생들이 자신의 시간과 자신이 어디에 있을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어쩌면 모든 학생을 폭력과 강제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길일지도.


태그:#학교폭력, #학생, #교육, #학교, #인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매일 겪는 일상에서 분노하는 일도 감동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