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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 전경. (자료 사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 전경. (자료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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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책 알아요, <English literature(영문학)> 말하는 거죠? 세상의 영문소설은 다 모아놓은 것 같은 그 두꺼운 책이요."
"네 맞아요, 맞아. 엄청 비싸고 두꺼운. 하지만 한 학기 동안 100쪽도 진도 못 빼잖아요, 하하."
"어 우리도 그래요. 진짜 100쪽도 못 나가. 어휴."

한 끗 차이다. 비슷한 나이의 대학생들이, 비슷한 거리의 대학들 사이에서, 비슷한 대학 공부를 하고 있다. 이건 정말 7끗과 8끗 만큼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등록금은 삼팔광땡과 1끗만큼 다르다. <English literature>를 누구는 102만 원을 내고 공부하는 반면 누구는 300만 원 이상의 돈을 내고 공부한다. 같은 동대문구에 위치한 서울시립대학교·경희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이야기다.

각 학교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학교들이라 모이기도 쉽다. 지난 27일 저녁, 기자를 포함한 4명의 학생들이 회기역 근처 포차에서 막걸리를 들이키며 이야기를 나눴다.

100만 원 내고 다니는 대학...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정말 부럽죠"

지난해부터 서울시립대학교에서는 반값등록금이 실현됐다. 서울시립대학교 영문과에 재학 중인 26세 김건우씨(가명, 이하 김)는 올해 102만 원의 등록금을 납부했다. 반면 경희대학교 영문학과에 재학 중인 25세의 이가혜씨(이하 이)는 300여 만 원의 등록금을 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에 재학 중인 26세 박종호씨(가명, 이하 박) 역시 300여 만 원이 조금 넘는 등록금이 적힌 고지서를 받았다고 했다.

- 서울시립대에서 반값등록금이 실현됐어요. 다들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김 : "뭐 좋았죠. 100만 원만 내고 학교 다닌다는 게 하하."
이 : "오히려 다른 학교 애들이 더 부러워하죠. 아, 시립대학교 원서를 썼어야 했는데… 쓸까말까 고민했었거든요. 그 때는 등록금이 이렇게 큰 문제가 될 줄 몰랐죠. 어렸으니까."
박 : "부럽죠. 그런데 이제 저는 반값등록금이 된다 하더라도 혜택을 못 받는 졸업 직전의 학생이에요 어휴."

- 학교 분위기는 어때요?
김 : "사실 우리 학교에서 반응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어요. 왜냐면 원래부터 등록금이 쌌고 서울시의 탄탄한 재정지원이 있었거든요. 국가장학금도 다른 학교보다 많은 수의 학생이 받았고요. 올해 우리 학교 입학하는 학생들의 점수가 평균적으로 올랐다고 하긴 하던데. 아, 그러고보니 나이 많은 입학생이 많대요. 아무래도 고학생, 장수생들이 돈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잖아요? 요즘 학우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건 계절학기 등록금이에요. 원칙대로라면 계절학기 한 학점당 등록금이 1만 원 대로 내려가거든요. 기존에 3만 원대였으니까요. 확실하지는 않지만요. 학교에서 고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 : "헉 대박… 시립대학교 진짜 대박!"
박 : "3만 원대만 돼도 좋겠어요. 다른 사립대학교들은 한 학점당 평균 7~8만 원씩 내는데 만 원대가 된다면… 우와!"
김 : "에이, 반값등록금 되면서 없어지는 것도 있어요. 가령 학교에서 비용을 대주던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없어진다고 하더라고요. 반값등록금만 된다고 만사해결인가요. 학교식당은 점점 가격이 올라가고 있고요, 건물이 낡아서 교체해달라는 요구도 하고 있는데 잘 안 되고요."
박 : "귀족노조인데요 완전? 우리 입장에선 그래보여요 하하. 농담인 거 아시죠?"
김 : "반값등록금, 부모님들 굉장히 좋아하시죠. 그리고 대출받는 학생들도 줄고 빚도 적어지겠죠.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니까요. 어디 청년들 문제가 반값등록금만 있나요?"

한명숙-박근혜 반값등록금 실현?... "글쎄요, 총선 때문 아닌가요"

한자리에 모인 동대문구 대학생들.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자리에 모인 동대문구 대학생들.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강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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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정치권에서 청년들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하잖아요?
이 : "사실 반값등록금이 현실화된 걸 본 건 정말 믿기지 않을만큼 놀랍긴 하죠. 이만큼 이슈화된 건 엄청난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청년들 이야기를 듣는다며 몇몇 당에서 청년비례대표를 뽑기도 했지만 결국 '그들만의 리그'였잖아요."
김 : "'그들만의 리그', 이 표현이 정말 적당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 청년들 조차도 관심을 안 가졌는데요. 해적 발언 논란 때문에 통합진보당 후보였던 김지윤씨 정도만 알까요? 나머지는 아무도 몰라요."
박 : "솔직히 민주통합당 같은 경우에 무슨 4명씩이나 뽑아요. 무리수죠. 의도 자체는 좋죠. 반값등록금 같은 문제 실현하려면 청년의 정치세력화도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어느정도 준비가 되고 자질있는 인재를 뽑을만한 조건이 갖춰져 있을 때의 얘기죠. 제가 보기에 이번에 뽑힌 청년비례대표들, 별다른 기대가 안 돼요."

- 이번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반값등록금을 당론으로 내세우기도 했는데 총선에 거는 기대감은 없나요?
김 : "전 정치인들 총선 앞두고 반값등록금 이야기 하는데 '지금 총선이 코앞이니까 하는 말이지 총선이 지나도 이 말을 할까?'하는 생각이에요. 26일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박근혜 비대위원장 만나서 반값등록금 얘기를 했다는데요, 그들이 반값등록금을 실현시켜줄 가능성은…"
박 : "더 큰 이슈가 얼마나 많은데요. 저도 가능성이 커보이진 않네요."
이 : "지난해에 반값등록금 집회가 엄청 컸죠. 최대로 모였을 땐 2만 명이나 모였으니까요. 그런데도 반값등록금 안 됐어요. 통합진보당은 지지율이 낮을뿐더러 민주통합당의 경우에도 솔직히 말하면 새누리당과 다른 점을 모르겠거든요."

- 최근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을 비롯한 몇몇 단체들이 모여 '반값등록금 국회만들기 대학생운동본부'도 만들어졌어요, 삭발식도 하고요.
이 : "아무도 관심 없어요. 삭발식이요? 그놈의 삭발은 이제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삭발하는 사람들은 힘든데 보는 사람들은 무뎌져서 충격도 없어요. '저게 뭐야 또 머리 잘라?'하죠. 그런데 자르는 사람은 엄청 아깝죠. 서로에게 좋을 게 없어요."
박 : "남자들 삭발하는 거야 군대가면 다 하는 거잖아요. 3~4개월이면 다시 자라나는 머리 민다고 뭐가 해결되나요. 사실 반값등록금 실현된다고 청년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한 달에 100시간 알바" - "반값등록금, 청년 문제 전부는 아냐"

학기 중에도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들.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의 한 장면.
 학기 중에도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들.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의 한 장면.
ⓒ M3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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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값등록금만 돼도 황홀할 것 같은데 아닌가봐요?
김 : "그렇죠. 생활비 때문에 허덕이는 같은 학교 친구들이 얼마나 많다고요. 우리 학교는 반값등록금이 됐는데도 그래요. 특히나 자취하는 친구들이 심하죠. 왜 '삼포세대'(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 어쩌고 하잖아요. 연애 포기한 친구들 정말 많아요. 못해도 한 달에 10만 원이 넘어가는 데이트 비용을 감당 못해서요. 월세도 내야하고 밥도 사먹어야 하고…."

이 : "하긴 그건 그래요. 사실 등록금 같은 경우에 이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어찌어찌해서 등록금은 빚으로라도 메꾼다해도 생활비 문제가 있으니까요. 저는 알바를 2개 뛰어요. 월화수목금토일이요. 월수금에는 이 커피숍에서, 화목은 저 커피숍에서, 주말은 랜덤이고요. 한 달에 100시간 일해요."

김 : "저도 알바 해요. 과외 알바. 2명 가르치는데 둘이 합쳐서 70만 원 받아요. 그 중에서 40만 원 정도를 한 달 생활비로 쓰고요, 나머지 30만 원도 여차저차해서 나가더라고요. 새학기 되니까 살 책도 많아지고 핸드폰비도 만만찮고… 통장에 잔고가 없어요 잔고가."

이 : "저는 원래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었어요. 2학년 말에 토플 공부 한답시고 휴학했다가 운동권 선배를 만났죠. 그 때가 용산참사 때였거든요. 뉴스에서 돌아가신 분들 시신도 가족들에게 먼저 안 보여주고 경찰에 넘겼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지?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죠. 반값등록금 집회도요. 그런데 그만뒀어요. 지난해에 집안 사정 어려워지고 나서요. 월화수목금토일 알바하는데 운동은 무슨…"

김 : "저도 취업이 당장 걱정이에요. 반값등록금이든 아니든 당장 대출받아 해결한다 쳐도 나중에는 어떡해요? 취직 못하면 갚지를 못할 텐데. 청년들 문제 한참 멀었어요."

반값등록금이 청년 문제의 전부는 아니라고 입을 모으는 이들. 어느덧 시간은 3시간이 훌쩍 흘렀고 막걸리 빈 병들도 늘어갔다. 편하고 재미있는 자리였지만 팍팍한 20대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마냥 밝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상당한 수준의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가지만 얻을 수 있는 건 적다"며 "대학등록금은 투자의 관점에서 봐도 문제가 있다(박종호)"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이가혜씨는 "대학생들 사이에 '고등학교 나와 취직해 사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말도 나돈다"고 전했다. 현재 대학생들 어깨에 얹혀진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마디였다.

그래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청춘들. 월화수목금토일 일하며 공부하기도 벅차 걱정이라던 이가혜씨는 "하지만 어떻게든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라고 했다. 김건우씨도 "결혼할 때쯤 아파트 전세금을 마련하고 생활비가 부족하지 않게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말했다. 박종호씨 역시 "그래도 청년당이나 녹색당이 출현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며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자리를 파할 때쯤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찬 바람에 몸을 웅크린 채 셋은 자리를 떠났다. 아직 갈 길이 멀고 부족하기만한 청년 정책. 하지만 총선 이후에도 꾸준한 관심을 통해 이들의 앞날에도 따스한 봄이 찾아오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강혜란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2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



태그:#반값등록금, #4.11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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