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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마저 배신하면 이민갈 거야!> 서평
 <너마저 배신하면 이민갈 거야!> 서평
ⓒ 월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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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헤겔이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위대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은 두 번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처음에는 비극적으로, 두 번째는 희극적으로." -마르크스

후대의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012년을 바라본다면 그들은 2012년을 어떤 해로 기억할까? 추측컨대 총선과 대선,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 등으로 올해를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분명 사상 유례가 없는 언론사의 연이은 파업이 있었던 해로 2012년을 떠올릴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최근 MBC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이어지는 언론사의 파업은 심상치 않다. 사상 초유의 방송3사 파업으로도 모자라 언론자유를 외치는 목소리는 <국민일보><부산일보><연합뉴스>로까지 무서운 기세로 번지고 있다. 실 언론자유를 위한 싸움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한국현대사에서 언론의 역사는 곧 언론통제와 언론탄압의 역사이기도 했고, 이에 맞서 언론자유를 위해 싸운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1974년~1975년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싸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의 싸움은 한국 언론사의 한 장을 화려하게 수놓을만한 순간이다. <너마저 배신하면 이민갈 거야!>는 동아투위 위원장이었던 성유보 외 6인이 정리한 '동아투위의 언론자유 투쟁사'다. 이제 40여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현재성을 갖고 살아 숨 쉬는 한국 언론사의 기록이다.   

"차라리 사설을 없애는 게 낫겠다"

유신을 앞둔 시기의 한국 언론은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은 기관원을 언론사에 출입시켜 비판적 보도를 막는 등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했고, 언론은 이에 굴복했다. 한국신문협회와 한국주간신문협회가 유신 선언 다음 날에 지지성명을 발표한 데서 볼 수 있듯 언론은 권력에 빌붙어 구차하게 연명하고 있었다. 1971년 3월 26일에는 서울대 학생회장단이 동아일보사 앞을 찾아가 언론화형식을 하고, '언론인에게 보내는 경고장'을 낭독했을 정도다.

"…듣건대 일선 기자의 고생스런 취재는 겁먹고 배부른 부·차장선에서 잘리기 일쑤고, 힘들게 부·차장 손을 벗어나면 편집국장 옆에서 중앙정보부원이 지면을 난도질하고 있다니 이것이 무슨 해괴한 굿거리인가. 통탄할 언론의 무기력과 타락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언론인에게 보내는 경고장', <카멜레온과 하이에나> 204p에서 재인용

학생들의 말은 다소 과격했을지언정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언론인 송건호가 인용한 당시 어느 언론사 한 논설위원의 말이다.

"상공부 문제는 이런 사정으로, 서울시 관계 문제는 저런 사정으로, 건설부 문제는 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경제기획원 관계 기사는 또 다른 사정으로 모두 사설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회사측의 지시니 차라리 사설란을 없애버리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저항의 움직임은 있었다. 자유언론을 향한 기자들의 열망은 두 번의 언론자유수호운동을 거쳐 마침내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폭발했다. 200여 명의 기자들은 "자유언론실천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선언하고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떤 외부 간섭도 배제할 것 ▲기관원의 출입을 거부할 것 ▲ 언론인의 불법 연행을 거부할 것을 결의했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200여 명의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자유언론실천선언대회>가 열렸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200여 명의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자유언론실천선언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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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를 그냥 놔둘 리 없었다. 박정희 정권은 광고주에게 압력을 행사해 <동아일보>에 광고를 싣지 못하게 하는 강경책으로 이에 맞섰다. 12월 16일 한일약품의 광고부장이 광고 동판을 회수한 이후 광고해약이 줄을 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광고국장이었던 김인호의 말이다.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온 대광고주로는 대기업 및 일반기업, 극장, 출판사 등이 있었다. 이들 회사의 사장과 광고담당 간부들은 중앙정보부에 불려가서 "왜 동아일보에만 광고를 내느냐" "앞으로 동아일보에 계속 광고를 내면 곤란하다"는 등의 협박을 받았다. 몇몇 회사들이 조금 버티기는 했으나 1974년 연말께 가서는 대광고주들의 거래는 완전히 중단됐다."

언론사주, '언론자유의 적'이 되다

당시 <동아일보> 독자들은 사비를 털어 격려광고를 내면서 어려움에 처한 기자들의 싸움을 응원했다. 1974년 12월부터 1975년 5월까지 하루 평균 350건, 총 무려 5만 건의 격려광고가 쏟아졌다. 저자 중 한 명인 임동욱 광주대 교수는 "4개월 동안이나 이어진 격려광고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자발적인 수용자운동이었다"고 말한다. 책 제목 역시 어느 격려광고의 '동아! 너마저 무릎 꿇는다면 진짜로 이민갈 거야'라는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경영난에 빠진 <동아일보>는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문제기자'를 탄압함으로써 사태를 수급하려 했다. 3월 8일에는 자유언론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안성열, 조학래를 포함해 18명의 사원을 해임했고, 10일에는 2명을 추가 해고했다. 기자들은 이에 12일 긴급 총회를 갖고 제작 거부와 농성에 들어갔지만, 17일 회사 측은 보급소 직원을 동원해 폭력으로 이들을 진압하고 해산시켰다.

기자들은 폭도들에 의해 창턱으로 끌려가 창밖으로 내던져졌다. 창 너머 별관 베란다에는 깨진 유리조각들이 수북히 쌓여 있어 밖으로 떨어진 기자들은 손을 다쳤다. 창문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폭도들은 밖으로 나온 기자들의 팔을 양쪽에서 껴안고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욕설을 하고 발길질을 했다. -<너마저 배신하면 이민갈 거야!> 100p

강제해산 다음날 해임기자들은 해임자의 복직, 이동욱 주필과 이동수 방송국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동아투위를 결성했다.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동아투위의 시작이었다.

강제해산당한 기자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 회사와의 투쟁에 들어갔다.
 강제해산당한 기자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 회사와의 투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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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치권력의 탄압에서 시작된 광고해약 사태가 결국 언론사의 자발적인 굴종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저자 중 한 명인 주동황 광운대 교수는 "광고사태의 초기 성격은 권력에 의한 언론탄압이었지만 사건의 처리과정은 결국 언론사주의 야합과 전횡이라는 현대 언론의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던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정권의 탄압에 굴복한 언론사 스스로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언론자유의 적'이 된 것이다. 

"새 시대 새 기수 전두환 대통령"... 제도언론의 굴종

결과적으로 동아투위의 투쟁은 패배했다. 물론 동아투위의 투쟁은 후에 월간 <말>과 <한겨레신문> 등으로 이어졌으니 이들의 싸움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동아일보>를 바꾸지 못했고, 제도언론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동아투위 위원이었던 김진홍 한국외대 교수는 동아투위의 패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기자와 경영주간의 갈등인 동시에 언론과 권력의 대입이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이 동아일보 기자의 대량 해고사건은 1970년대 한국 언론이 처한 문제점을 여러 측면에서 한꺼번에 노출시킨 사건"으로 이로 말미암아 "언론자유의 결실을 못 보고 자유언론실천운동이 무산되고 말았으며, 이로부터 한국 언론은 거의 완전하게 정부의 장악하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한국 언론은 보다 '안정적인 권언유착관계'를 보여주는 유신언론화 시대를 용인하게 되었다. -<너마저 배신하면 이민갈 거야!> 137p~138p

박정희 정권 이후에도 언론의 곡필은 계속 됐다. <동아일보>는 1980년 8월 29일 '새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우국충정 30년…군생활 통해 본 그의 인간상/ 정직 성실…평범 속의 비범 실천','의협심 많은 청소년 시절' 등의 기사를 통해 광주를 무참히 짓밟고 집권한 전두환을 찬양했다.

민주화 열기로 전국이 들끓고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아 사경을 헤매던 1987년 6월 12일에도 "시위자와 저지경찰 중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가리기 어렵지만 폭력과 과잉진압의 악순환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최루탄과 화염병의 악순환-서로 적대감을 줄여나가야 한다')며 어이없는 양비론을 폈다. 동아투위의 패배 후 굴종의 역사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오랜 세월 한국의 제도언론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단 하루라도 '진짜 기자'로 살고 싶다"

언론탄압의 정도와 양상은 다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파업을 벌이고 있는 언론사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치권력과 언론사주가 합작해 <동아일보>를 망가뜨리고 이에 맞선 기자들을 탄압한 1970년대의 동아투위 사태는 현재의 언론사 파업과 겹친다.

MB정권에서 정치권력의 통제에 의해 방송이 망가진 예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MBC <PD수첩>은 '큰집에 불려가 쪼인트 까이고 좌파를 청소한'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 5차례나 방송이 보류되거나 사전 검열됐다. 모두 4대강, 한미FTA 등 정권에 불리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KBS에서는 'MB 특보 출신' 김인규 사장 취임 후 4대강을 다룬 <추적 60분>이 2주간 불방됐고,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정황이 일부 드러났다. 역시 'MB 특보 출신' 구본홍이 취임한 후의 YTN은 김경준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됐던 가짜편지의 작성자 신명 씨 관련 특종 기사를 자르는 등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일절 피하고 있다.

꼭 정치권력의 문제만의 아니지만 '언론자유의 적'이 된 언론사주에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국민일보><부산일보><연합뉴스>의 싸움 역시 과거 동아투위의 싸움을 연상케 한다. <연합뉴스>는 "박정찬 사장은 지난 3년 간 공정보도 훼손과 사내 민주화 퇴행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라며 사장 연임에 반대하는 총파업에 돌입했다. <국민일보> 기자들은 조용기 목사 일가의 편집권 침해를 비판하며 파업 중이고, <부산일보> 역시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 사장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YTN 김수진 기자는 파업을 앞두고 쓴 '단 하루라도 '진짜 기자'로 살고 싶다'는 글에서 "파업투표에 들어가기 전부터 제 머릿속의 기자정신은 이미 폐업신고를 한 상태로 숨을 죽이며 3년 넘게 살아왔다"며 "최근 몇 년 동안 YTN이 정부 정책에 제대로 된 비판을 한 적 있나? 괴로워하는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 준 적이 있나?"라고 묻는다. 그리고 "단 하루를 살더라도 YTN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진짜 기자'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차라리 사설란을 없애버리는 것이 좋겠다"던 40여 년 전의 언론. 그리고 "단 하루라도 '진짜 기자'로 살고 싶다"는 2012년의 언론. 참으로 슬픈 데자뷰다. '진짜 기자'로 살고 싶다는 기자들의 저항을 힘으로 누르려는 것 또한 40여 년 전과 똑같다. MBC는 노조 집행부 16명 전원을 상대로 34억원 규모의 재산가압류 신청을 내고, 정영하 위원장을 비롯한 4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KBS는 2년 전 파업의 책임을 물어 전 새노조 집행부 13명에게 징계를 내렸고, <부산일보> 역시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을 요구한 노조 위원장은 면직하고 이를 기사로 쓴 편집국장에게는 대기발령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언론탄압의 역사는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처음에는 비극적으로, 두 번째는 희극적으로"

그렇다면 이들의 투쟁 역시 동아투위의 싸움처럼 패배로 끝날 것인가? 회사가 휘두르는 징계와 고소의 칼춤 앞에서 무너지고 말 것인가?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상황은 희망적이다. 23년 간 파업을 한 적이 없던 <연합뉴스>까지 나설 만큼 파업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고, 16일에 열린 방송3사 파업콘서트에 2만 명의 시민이 모일 만큼 시민들의 지지도 뜨겁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각오도 높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은 "이번 싸움이 끝을 보는 투쟁이고 퇴로가 없는 싸움"이라 말한다. 임기 말이라 정권의 힘이 약한 것도 사태를 낙관하는 근거 중 하나다.

헤겔을 인용한 마르크스의 말처럼 역사는 두 번 반복됐다. 40여 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정치권력과 언론사주는 비판적 보도를 봉쇄함으로써 언론을 망가뜨려왔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덧붙인 말, "처음에는 비극적으로, 두 번째는 희극적으로"라는 말 또한 실현될 것이다. 40여 년 전 동아투위의 싸움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오늘날 '진짜 기자'를 꿈꾸는 기자들의 싸움은 한바탕 유쾌한 희극으로 끝날 것이다. 마침내 기자들은 언론 자유를 쟁취할 것이고, 자신들을 지지한 시민들을 위해 그 자유를 사용할 것이다. 그리하여 기자들의 싸움은 '모두에게 해피엔딩', 가장 완벽한 희극으로 끝맺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너마저 배신하면 이민갈 거야! 임동욱, 김진홍, 이태호, 성유보, 주동황, 정정일, 홍건표 (지은이) | 월간말 | 2002년 1월 | 8,500원



너마저 배신하면 이민갈 거야!

성유보 외 6인 지음, 월간말(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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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동아투위, #언론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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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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