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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과 이자를 합쳐 1310만 원을 상황하라는 '빚 독촉 문자'
 원금과 이자를 합쳐 1310만 원을 상황하라는 '빚 독촉 문자'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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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를 예속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칼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빚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엘렌 호지슨 브라운이 자신의 저서 <달러>에서 존 애덤스 대통령의 말을 인용한 내용이다. 그는 다시 셸던 엠리의 말을 덧붙이며 빚이 어떻게 나라를 정복하는가에 대해 상세히 묘사한다.

칼로 하는 정복은 피정복민이 들고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문제가 있다. 대들지 못하게 하려면 계속해서 힘을 가해야 한다. 그러나 빚으로 하는 정복은 소리 없이,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피정복민들은 새 주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다. 포식자는 후원자가 되고 보호자가 됐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하면 그들은 정복당한 것이고 그들 자신의 사회가 지닌 여러 도구들은 그들의 부를 포식자들에게 나르고 정복을 완성하는데 쓰이게 된다. -<출간> 중에서

소리없이 다가와 일상에 균열을 내는 '빚' 

2남 1녀를 둔 단란한 가정이 맞는 평범한 아침, 잠에서 채 깨지 않은 눈을 억지로 부비며 식탁에 앉아 하품에 섞어 밥 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고 가라는 잔소리를 식탁에 남겨둔 채 허겁지겁 출근과 등교로 소란스럽고 분주한 아침이 일단락 된다.

매일 아침 고민 끝에 고른 넥타이지만 유심히 관찰하지 않는 한 어제 맨 것과 다르지 않고 옆 자리 동료와 차이나지 않을 그저 그런 날이 아침에서 저녁까지 이어진다. 지친 발걸음을 잡아 끄는 것은 술자리와 학원이 더 빈번한 세상이지만 구수한 된장찌개를 가운데 두고 머리 맞댄 저녁 식사풍경에 여전히 보금자리라는 이름을 붙인다.

안정되고 예측가능한 보금자리는 단조롭지만 평화롭고 지루하지만 편안하다. 비록 보금자리에 대한 향수에 비해 강퍅한 현실을 조마조마하게 살 때가 많지만 언제든 두 다리 뻗을 편안한 일상으로의 보금자리는 아직 그대로다.

그러나 이 보금자리는 위태위태한 살얼음 위에 가까스로 서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지나치게 단조롭고 지루해 일탈을 꿈꾸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날 평화로운 풍경이 찢기는 어떤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그 시간이 간절히 그리워지는 법이다. 사건은 불쑥 찾아온다. 강도가 들 수도 있고 불의의 재난이 닥쳐 '왜 이런 일이 나에게'라고 운명을 탓할지 모른다.

또한 그 사건들은 갑작스런 우연, 예측할 수 없는 불행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지불식간에 소리없이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을 정복하고 파괴하는 것도 있다. 어디에도 핑계를 돌릴 수 없고 오로지 내 탓으로만 상처를 파내게 한다. 일상의 평화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켜 기어이 뒤틀림을 만드는 것, 그것은 바로 '빚'이다.

빚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매월 어김없이 돌아오는 상환 기일에 맞춰 반드시 돈을 벌어야 한다. 빚의 규모가 소액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자비용이 소득의 30%가 넘는 수준이라면 수입이 줄어드는 일도 일어나서는 안된다. 안정과 평화가 전제된 예측가능한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다.

부채 이자에 맞춘 돈벌이에 갇히고 일하는 즐거움을 돈벌이 강박에 내주었다. 빚은 이제 채찍과 곤봉을 들고 채무자들을 이자 상환이라는 감옥에 가두는 간수가 된다. 소박한 월급 봉투에 뿌듯하던 생활은 애써서 꺼내지 않으면 떠올려지지도 않는 무의식의 저장고에 처박힌 신세가 되었다.

우리를 자랑스럽게 만들던 노동의 대가는 만질 수도 없는 숫자로 통장을 스치는 것도 모자라 시스템 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처럼 빚의 이자로 전부 빨려나가버린다. 채무자들은 이미 잠재적 노예상태다. 이자상환이라는 의무를 다하지 않는 순간 위태로운 자유마저 팔려나갈 비극적 결말에 내몰린 노예 말이다.

중상위층도 채무노예...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외환위기 당시 옷 도매업을 하던 A씨는 현재 노숙인 자활 쉼터에서 생활하면서 위드세이브라는 저소득층 저축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재기를 꿈꾸고 있다. 국가적 경제 한파만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도 건실한 도매업 사장님으로 가족들에게 든든한 가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기업들을 도산시킨 경제 불황은 그의 사업을 비켜가지 않았다. 사업은 순식간에 부도가 났고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3억 원의 채무 뿐이었다.

그 또한 일반적인 사업가들처럼 사업상 빚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은행에서 대출 상품을 권유받을 때는 잘 나가는 사장님이란 표창을 받은 듯 우쭐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빚은 순식간에 가게문을 닫게 만들었다. 빚이란 괴물은 사람의 형편이 좋을 때는 친절한 얼굴을 하기도 하지만 약간의 어려운 기미만 비쳐도 금세 찌뿌린 표정으로 돌변한다.

매출이 줄어 이자를 연체하는 횟수가 늘어나니 그의 신용에 대한 평가는 얼굴을 바꿔 카드 한도를 축소시킨다. 만기가 도래한 대출 몇 개는 만기연장을 거부당한다. 가뜩이나 매출 감소로 원금 상환은커녕 이자감당도 어려운 마당에 원금상환 압박이 밀려온다. 어쩔 수 없이 고금리 빚으로 급한 불을 끄지만 그것은 다시 이자 폭탄으로 되돌아 온다. 고금리 빚을 썼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은 더 떨어지고 카드 한도는 더욱 축소된다.

경기는 급랭하는데 현금흐름은 빠른 속도로 사채 빚으로 빨려간다. 하나 둘 연체가 길어지고 결국 도매 점포를 내어주는 상황에 치닫는다. 그러나 비극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점포를 내주고도 빚이 남아 있다. 얼마를 빌리고 얼마를 갚았는지 모르는데 남은 빚이 3억이다. 그 빚은 그에게 가족마저 빼앗았다. 채권추심이 지독해 지면서 점점 가족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탓이다.

2004년 카드대란을 겪으면서 과도한 채권추심이 도마위에 올라 2009년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기까지 채무자들은 어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비인간적인 추심에 노출되어 있었다. 어느 채무자는 아침에 문밖에 추심 직원이 지키고 서있는 바람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도 못했다는 지옥같은 경험을 털어놓기도 한다.

A씨도 바로 그런 지독한 채권 추심을 못 견디고 별 수 없이 가족과 생이별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재기해서 빚도 청산하고 가족과 재결합 할 것이란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건설현장 노동도 마다않고 몸이 부서져라 일해 3억 원의 빚 대부분을 상환했지만 2년 전부터 가족과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는 다시 좌절했고 술에 의존해 방황하느라 노숙인 신세가 되었으며 빚은 조금씩 다시 늘었다.

안타깝지만 내 문제는 아니다?... 천만에!

빚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은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이다.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 채무 상환이 어려워진 것은 안타깝지만 애초에 상환 능력을 초과해 돈을 빌린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은 거두지 않는다. 그런 상식의 기반 위에서 채권 추심이 기본적인 인격권마저 침해하는 것을 모른 척 했다.

채무자들은 상환 능력이 있을 때는 금융회사들의 고객이었겠지만 상환능력을 상실하자마자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하루 벌이 노동으로 갚기에는 3억 원의 빚은 결국 10여 년간 그를 노예로 만들 만큼 큰 것이었다. 가족들은 노예가 된 그를 기다리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사연을 접하는 다수 사람들은 이것은 극단적인 일부의 사례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나와는 거리가 먼 그래서 안타까우나 빚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야 할 만큼 중요한 내 문제로 인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빚은 부도난 사장님에게만 비극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다. 가계부채 1000조 시대를 하우스 푸어, 전세 푸어, 학자금 푸어라는 온갖 푸어 시리즈가 채우고 있다. 집을 사기 위해, 전세를 얻기 위해,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그저 절약을 감수하기만 하던 과거시절에 간절한 질투를 던질 정도다.

생활의 기본을 움켜쥐기 위해 빚에 의존해야 하고 그 빚에 따라붙는 이자를 감당하느라 돈을 벌어도 생계에 허덕이는 온갖 푸어족들이 전 계층에 걸쳐 있다. 원금은 상환하지도 못하고 이자만 납입하고 있으며 심지어 기존 대출 이자를 내고 나서 생활비가 부족해 다시 받은 생계형 대출이 2011년 4분기에만 250조 원을 돌파했다. 전체 가계 부채의 25% 가량을 차지하는 수준이다.

월급날 뭉칫돈이 대출 이자로 빠져나가는 것을 우울하게 지켜봐야 한다. 아니 이미 한달 내내 허탈한 월급날을 예상하며 빚을 갚기 위해 일한다는 자괴감에 허우적 대야 한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직장에서 밀려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하고 폭탄을 들고 악착같이 뛰면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기계발에 내몰려야 한다. 어느 한 구석 안심하고 쉴 구석이 없는 울타리가 해체된 생존의 벌판에 내몰려 산다.

상위 소득 20%안에 해당하는 중상위 계층도 이 지독한 생존의 벌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상위 소득 20% 계층도 전체 가구 중 77.4%가 채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빚의 규모는 억단위에 해당된다. 소득이 높지만 평생 정년을 보장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100만 원 이상을 부채 이자로만 지출하고 나머지 소득으로 원금을 상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우리 사회 중상위 계층에게도 해당하는 냉험한 현실이다.

말 그대로 1%를 제외한 나머지 99%에게 패자가 될지 모른다는 절박감을 심어주는데 그 무엇보다 구체적인 메시지가 빚으로 전달된다.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상식의 잣대로 빚을 해석할 때 현재 채무자의 상당수는 그들의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절망적인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빚은 결국 대다수 사람들의 시간을 정복하고 소리소문 없이 노예의 삶으로 이끌고 있다.

위드세이브 사업은
위드세이브는 서울시 희망온돌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저소득층 자립 자활 지원 사업이다. 위드세이브 사이트(http://www.popfunding.com/pf/withsave)에는 기초생활수급자, 미혼모, 장애인, 탈노숙자, 탈성매매여성 등 소외계층 50가구의 사연과 재무정보가 등록되어 있다.

각자가 필요자금 목표를 정하고 금융복지상담을 통해 저축을 시작하면 기부자들이 후원의 형태로 저축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즉 저소득계층이 스스로 재무구조를 개선해 저축을 시작하고 기부를 보태 함께 재무 목표를 달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이트에서 기부와 더불어 저소득계층의 사연을 보고 응원의 댓글을 남길 수 있다.


태그:#빚, #가계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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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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