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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와 보수 진영에서는 '국익론'을 앞세워 밀어붙이기식 공사를 강행하고 있고, 이에 맞선 반대 진영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념 논쟁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그렇다면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할 만큼 '국익'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거꾸로 대한민국 국익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은 과연 없는 것일까? 네 차례에 걸쳐 게재될 심층분석에서는 이러한 의문을 진단해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해군의 구럼비 폭파 강행을 앞둔 지난 7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건설현장 구럼비 바위에서 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요구하며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해군의 구럼비 폭파 강행을 앞둔 지난 7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건설현장 구럼비 바위에서 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요구하며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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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역량도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공권력과 이념 공세를 앞세워 밀어붙이기를 강행하고 있지만, 이럴수록 사태는 더욱 꼬이기 마련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사유는 무수히 많지만, 최근의 상황은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지난해 71일에 이어 40여일째 옥중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평론가 양윤모씨는 '구럼비와 함께 생을 마감하겠다'고 결의하고 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되고 말 것이다.

또한 강정마을 곳곳에서는 경찰과 시민들의 충돌로 연행자와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영국의 앤지 젤터씨와 프랑스 출신 활동가인 벤자민 모네씨 등 외국 평화운동가들도 포함되었다. 결국 젤터씨는 22일 출국했고, 이에 앞서 모네씨도 강제 출국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세계 곳곳에서는 1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을 정도로 한국의 인권 탄압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국제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는 1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한국의 인권 탄압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높아지면서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국제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해군기지의 입지로 강정마을이 부적절하다'는 점이 해군의 보고서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뉴스타파>가 2009년과 2010년 해군본부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한 것에 따르면, 15만톤의 크루즈 선박은 물론이고 대형 군함도 입출항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강한 바람과 조수 간만의 차이로 민군복합항은 고사하고 군항으로서도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해군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더라도 제 역할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대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민군(民軍) 관계의 회복이다. 국가안보는 국민이 정부와 군을 신뢰하고 정부와 군이 국민을 존중할 때 튼튼해질 수 있다. 그러나 주민·활동가·종교인과 해군·경찰·시공사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는 강정마을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경찰과 해군은 반대 주민들을 '종북·좌파', '외부 불순 세력'이라고 비난하기 일쑤고, 반대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고 때리고 잡아가는 너희는 어느 나라 군대와 경찰이냐'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어코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과연 7500명의 해군 장병과 그 가족들이 1900여명의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평화로운 민군 공동체를 가꿔나갈 수 있을까? 20차례 정도 강정마을을 방문해 본 나로서는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해군이 욕심 버린다면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

'제주해군기자 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 회원과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이 20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파괴되는 강정 구럼비 발파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제주해군기자 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 회원과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이 20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파괴되는 강정 구럼비 발파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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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이 몸집 부풀리기 욕심을 버리고 정부·여당이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 공세용 소재로 삼으려는 정략적 의도를 내려놓는다면, 대안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15년까지 확장될 예정인 제주항 해경전용부두나 화순항에 건설될 예정인 해경전용부두를 해군이 '기항지'로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이는 국가안보상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도 파국으로 치닫는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풀 수 있는 '윈-윈'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2007년 12월 국회가 관련 예산을 통과시킬 때, '민항 위주의 해군 기항지'로 부대조건을 제시했던 만큼 당초의 취지도 살릴 수 있다. 

2010년 12월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국가관리항에 포함된 화순항에는 남방해역에 대한 해상안보와 치안 유지 강화를 목적으로 대형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해경전용부두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제주항 동쪽에도 73m 규모의 대형 해경부두를 2015년까지 짓기로 했다. 제주항에는 소규모의 해군 부대도 있다. 제주해군기지의 대안으로 이들 두 곳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모두를 해군도 기항지로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해보자는 것이다.

이처럼 해경전용부두를 해군 함정의 기항지로도 겸용하는 방안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장점이 있을 수 있다. 우선 해군의 요구를 100%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이어도 등 남방 해역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해군의 대기 및 상황 발생시 신속한 투입이 가능해져 해군의 요구를 일부 충족시킬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강조하고 나설 정도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가장 큰 근거는 "해군 주력 함대가 있는 부산에서 23시간이 걸려 가야하는 이어도 해역까지 제주해군기지에서는 8시간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기실 이 대통령도 강조한 것처럼,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수중 암초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해군이 상륙해 점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주변국들과 마치 함정 경주 시합이라도 할 것처럼 시차를 강조하면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다.

또한 한국 해군의 대형 함정들의 해상 작전 기간이 30일을 넘나든다는 것도 중요하다. 최대 함정인 독도함은 40일, KDX-3는 30일, 209급 잠수함은 50일을 보급 없이도 버틸 수 있다. 즉 이어도 등 남방 해역에서 군사 분쟁이 발생할 조짐이 보인다면, 이들 함정을 우리 영해나 공해에서 대기시키다가 상황 발생 시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 함정의 신속한 투입이 필요하다면, 위에서 언급한 '기항지'로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화순항을 기항지로 사용하면 강정마을에서보다 빨리 이어도에 도달할 수 있고, 제주항을 사용하더라도 10시간 정도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해경부두의 규모를 볼 때, 독도함이나 KDX-3 등 대형 함정의 정박은 어렵더라도 KDX-1급 구축함은 정박이 가능하다. 필요하다면 대형 함정은 해상에서 대기하는 것으로 백업 라인을 형성할 수 있다.

해경과 해군의 공조는 높이고 혈세는 크게 줄이고

'기항지'의 장점은 또 있다. 남방 해역 보호를 위한 해경과 해군의 공조를 강화하면서도 국가 예산은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해군이 주장하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핵심적인 목적은 남방 해역 안전과 해저 자원 및 해양수송로 보호다. 그런데 이는 해경의 임무와 중복된다. 해경 역시 이러한 임무를 위해 제주항 및 화순항에 해경전용부두를 만들고 제주지방해양경찰청을 신설해 대응 능력을 높일 방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해경전용부두를 해군 기항지로 겸용하는 방안은 임무의 중복 문제를 해소하고, 유사시 해경과 해군의 원활한 협조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산 절감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국방부는 앞으로 5년간 6조5천억 원을 투입해 '이어도-독도 함대'를 창설하고 제주해군기지를 모항으로 쓰겠다는 입장이다. 함대가 창설되면 연간 운영유지비도 수백 억 원에 달할 것이다.

반면 해경 부두 건설비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포함한 이어도-독도 함대 비용의 수백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기항지로의 발상의 전환으로 6조 원 이상의 혈세를 아낄 수 있는 셈이다. 또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취소하더라도 케이슨과 트라이포드(일명 삼발이) 등 구조물과 자재를 재활용할 수 있어, 이미 투입된 건설비도 일부 회수할 수 있다. 

이미 강정마을은 세계 평화운동의 성지가 됐다

지난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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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미군의 비호 하에 국가폭력에 의해 수만명이 목숨을 잃은 4·3 항쟁이란 아픔의 역사를 갖고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일제가 최후 거점으로 삼으면서 절멸의 위기를 맞을 뻔하기도 했다. 제주도민들은 이러한 아픔을 승화해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것도 이러한 제주도민들의 한과 염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무장평화론'을 내세우면서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그릇된 결정을 했고, 이명박 정부는 '묻지마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다.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초래된 제주도의 '평화의 위기'가 국제평화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저항 운동을 하면서 많은 종교인·시민·학생들이 고귀한 투쟁에 동참하고 있고, 해외의 많은 단체와 저명한 인사들도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연대와 지지의 뜻을 보내고 있다. 이미 강정마을은 세계 평화운동의 성지가 된 것이다.

이는 강정마을을 국제평화마을로, 제주도를 진정한 의미의 '세계 평화의 섬'으로 만들 수 있는 소중한 토대가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생명평화의 가치가 어우러지는, 그래서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인류공동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외치는 구호 중에 "세계 평화는 강정으로부터"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결코 꿈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꿈꾸고 지혜를 모으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목표다. 물론 그 출발점은 바로 제주해군기지 건설 백지화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시민단체인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제주해군기지,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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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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