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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공산당 선언)이 폭력 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에 이적 표현물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나는 '힘'이라고 번역했다. 영어로는 forces, power란 얘기다. 기존의 정치권력을 강제해서 다른 형태의 권력으로 교체한다는 것이 핵심인데, 이런 일은 총칼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서도 가능하지 않은가."

법정 안은 마치 노(老) 교수의 강의실과 같은 분위기였다. 방청객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백발 노 교수의 진술에 귀를 기울였고, 재판장도 궁금한 부분을 노 교수에게 몇 번이고 물어보았다.

19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대법정. 이곳에선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등의 혐의로 군 검찰에 의해 기소된 해군 K 중위의 공판이 열렸다.

지난 해 3월 K 중위의 집을 압수수색한 군 기무대는 '자본론', '마르크스의 사상',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등 10여 종의 사회과학 서적들과 북한에서 출판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 업적'을 압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군 검찰은 K 중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할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소지하였다"고 기소했다.

하지만 K 중위는 이 책들이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독서토론을 위해 읽었던 책이라고 혐의사실 일체를 부인했다. 북한 서적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선 "신앙인으로서 평소 북한 선교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중국에 갔을 때 구입해서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수행 교수 "자본론은 이적표현물 아니다"

 <자본론 1-상> 맑스, 김수행 번역. 19세기 자본주의의 현실을 낱낱이 파헤친 책.
 <자본론 1-상> 맑스, 김수행 번역.
ⓒ 비봉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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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은 김수행(72)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국내 마르크스주의∙정치경제학의 대부로 손꼽힌다.

김 교수는 이미 세상에 나온 지 160여 년이 넘은 자본론이 오늘의 한국에서 이적표현물로 제시된 데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현재의 북한이 자본주의 이후 나타난 새로운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책에선 궁극적으로 노동자 계급이 주체가 되어 해방된 새로운 세상을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으로 규정하고 있다. 어떻게 북한이 이런 나라인가? 역사적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이 책에는 북한을 찬양하는 구절이 단 한 군데도 없다. 혁명을 하기 위해 자본론을 읽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본론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김 교수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속에서 다시 자본론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를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은 99%의 시민이 1%의 부자와 싸우고 있는 형국"이라며 "이러한 자본주의의 모순은 이미 160여 년 전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자본론이 하나의 지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변호인 "강화도 기행 프로그램 참석이 수사 빌미됐다"

한편, 지난 해 10월 28일 1심 보통군사법원은 K 중위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당시 군사법원은 "(K 중위가) 장교로 임관한 후에도 군 당국의 입장이 아닌 지나치게 북한의 입장에 치우친 주장을 한다든지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각종 도발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옹호하는 발언을 직접 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게시한 점,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는 이시우 등과 함께 강화도 순례를 하거나 그가 실시하는 특강에 참가하는 등 계속적으로 좌익 이념을 강화하는 활동을 해 온 점" 등을 적시해 양형이유에 포함했다.

하지만 K 중위의 변론을 맡은 이광철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차장)는 "당초 기무부대의 내사는 지난 해 3월 K 중위가 사진작가 이시우씨가 강사로 참여한 '조봉암의 길 따라' 강화도 기행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시작되었다"며 "이후 압수수색을 통해 발견된 사회과학 서적들을 가지고 군 수사당국이 무리하게 국가보안법상 고무∙찬양 혐의를 씌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변호사는 "1심 재판부의 양형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국군 조직 안에 좌익분자가 침투해서 좌익 사상을 전파하려고 했다는 얘긴데, 이 혐의는 형법상 내란죄, 군 형법상 반란죄에 해당한다"라며 "이것은 책 몇 권을 읽고 소지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이렇게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면서도 정작 이 부분에 대해선 기소조차 하지 못한 것을 보면 군 수사당국이 굳이 처벌의 이유를 찾으려다 보니 말도 안 되는 혐의를 가져다 붙인 측면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군대 시계는 30년 전에 멈춰 있나봐."

5시간의 긴 공판이 끝나고 법정을 빠져나가던 어느 방청객의 나지막한 혼잣말이 기자의 귀에 크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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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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