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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그것도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이었다. 그런데도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손에 쥔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사람들로 광장은 붐벼만 갔다.


16일 오후 7시 30분부터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MBC·KBS·YTN과 국민일보·연합뉴스·부산일보 조합원들이 함께한 방송 3사 파업콘서트 '방송 낙하산 퇴임 축하쇼'가 열렸다. 오후 11시가 가까워져 올 즈음에야 끝난 이번 콘서트에는 약 2만여 명의 관중이 몰렸다.


김제동 "무섭고 두렵고 떨릴지라도 용기 필요"


이번 콘서트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손님'들이 있었다. MBC <위대한 탄생2> 생방송 리허설 중 잠시 빠져나왔다는 가수 이승환을 시작으로 드렁큰타이거·이은미·이적·DJ DOC가 무대를 꾸몄다. "이들의 단독 콘서트 표 값을 다 합치면 무려 53만8천 원"이라고 했던 MBC 노동조합의 말처럼 웬만한 음악 축제와도 맞먹는 화려한 출연진이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빗속에서 펼쳐진 공연은 열정적이었다. 관중들 역시 "뛰어!"라는 구호에 맞춰 내달렸다.


이들이 남긴 말들도 의미심장했다. 드렁큰타이거는 "(언론인들이) 힘들게 싸우고 계시는데, 나쁜 사람들은 욕하거나 잘못했다고 하면 더 말을 안 듣는다"며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으니 싫어하는 만큼 박수를 쳐 주자"며 환호를 받았다.


이적도 "제가 (표현)하면 '이적표현'이 되고, 단체로 뭔가를 하면 '이적단체'가 돼 그동안 자제해 왔다"는 농담에 이어 파업에 참여한 이들에게 "많은 분들이 응원하고 있다는 것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DJ DOC의 이하늘은 "오늘은 '낙하산 퇴임 축하쇼'라고 하니, 노래로 짧게 하겠다"며 '어서 물러나라'는 뜻이 담긴 노래를 선보이기도 했다.


방송인 김제동과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팀도 화려한 입담으로 관중을 사로잡았다. 김제동은 "무섭고 두렵고 떨릴지라도 빛과 어둠을 직면하고 해결하는 용기, 어둠은 곧 빛을 드러낸다는 확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고, 주진우 기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 중 하나는 이 땅에 민주주의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준 것"이라며 "언론사들의 파업은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의로운 싸움"이라 말했다.


비록 자리에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영상 메시지로 응원의 말을 전한 '손님'들도 있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고문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그리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언론의 공정성을 입을 모아 강조하며 거리로 나선 언론인들을 격려했다.


나영석 PD "사장님들, 이쯤하면 그만둘 때도 됐다"


'손님'들의 응원에 콘서트를 주최한 언론인들도 모든 특기를 동원해 관중을 맞았다. 지난 8일 방송 3사의 연합집회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대회' 1등 출신인 YTN 박진수 기자는 당시 "근래 들어 들어본 후크송 중 최고"라는 극찬을 받았던 '복직송'을 다시 한 번 선보였다.


또한 MBC 노래패 '노래사랑'은 각종 플래시몹 등을 통해 선보인 'MBC 프리덤'을 라이브 밴드의 반주로 불렀고, KBS 기자들은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를 패러디한 무대를 능청스러운 연기와 함께 소화해 큰 웃음을 주었다.


파업을 향한 의지를 드러내는 발언도 잇따랐다. "뿌잉뿌잉"이라는 말과 함께 무대에 오른 MBC 최일구 앵커는 "지금 여의도에는 '꼬르륵'하는 소리가 난다"며 "이제는 배부른 돼지들이 아니라 배고픈 소크라테스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는 현 사태를 겨냥한 듯 "<손자병법>에서 장수가 부하에게 벌을 내릴 때에는 장수의 통치가 곤란에 처했기 때문"이라며 "거북이처럼 한 걸음씩 나아가자"고 동료들을 격려했다.


최근까지 KBS <1박2일>을 연출했던 나영석 PD도 담담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나영석 PD는 시 '낙화'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떠나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그때를 모르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고 일갈했다. 이어 "저도 <1박2일>을 5년 하고 그만뒀는데, (방송사 사장들도) 이쯤 하면 그만둘 때도 됐다"며 "사람은 눈치껏 행동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마지막으로 정연주 전 KBS 사장과 함께 무대에 오른 노종면 전 YTN 노동조합 위원장·이근행 전 MBC 노동조합 위원장·염경철 전 KBS 노동조합 위원장과 조상운 <국민일보> 노동조합 위원장·공병설 <연합뉴스> 노동조합 위원장은 진심을 담은 말들로 심금을 울렸다.


이중 노종면 위원장은 관중들을 향해 "지금 이 순간이 '시대정신'이고, 여러분이 세상을 바꿀 희망"이라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지만 결국 이길 것이라는 확신으로 우리 모두 이 자리에 모인 것"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15일부터 파업에 들어간 공병설 위원장도 "머지않아 (해직 언론인들과) 똑같이 될지도 모르지만 두렵지 않다"며 "정말 죄송하고 사죄드려야 할 것은 지난 3년간 <연합뉴스>가 걸어온 길"이라고 말했다.


"힘들고, 아프고, 더 가기 힘들 때 한 발만 더 나아가 달라"


"감동적이었어요. 정말 훌륭한 분들이고…."


결국 김다솔(22)·김혜윰(15) 자매는 굵은 눈물방울을 떨궜다. 이들은 이날 콘서트의 또다른 '손님'들인 관중으로서 현장을 지켜봤다.


"최근 제주 강정마을 이야기를 <뉴스타파>를 보고 알았는데, 그동안 뉴스에서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걸 알게 돼 충격이었다"는 김다솔씨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만화가 강풀이 그린 포스터를 봤고, 동생에게 같이 가자 했고, 동생도 그러겠다 했다"며 참석한 이유를 설명했다. "해직된 분들이 말씀하실 때 눈물이 났다"며 "저 같은 학생도 응원하고 있으니 힘내시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하는 김다솔·김혜윰씨의 눈에는 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렇듯 현장을 찾은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대학생 박현진(23)·상현호(20)·오윤수(23)씨도 친구들과 함께 현장을 찾았다. 콘서트가 끝나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던 이들은 함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와 관련된 담론들을 공부하는 학회에 속해 있다고 했다. 오윤수 씨는 파업 중인 언론인들에게 "이 길을 가며 힘들고, 아프고, 더 가기 힘들 때 한 발만 더 힘을 내 나아가 달라"며 "우리들이 옆에서 지켜주고 함께 가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딱딱한 집회가 아니라, 소통과 화합의 집회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박관우(25)씨는 대학 학보사에서 일하는 언론인 지망생이었다. 그는 "(언론인들이) 쉽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나서서 시민들을 위해 떳떳하게 입장을 발표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려는 모습에 아직도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는 소감을 전했다.


또 콘서트가 진행되는 도중 언론사 본부석에는 먹을거리를 전하며 성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중 "가카의 피와 살"이라며 구워온 '쥐포'를 건넨 3명의 남성들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20명의 일행과 함께 왔다고 했다. 기자의 질문에 "사실 정권이 다 끝날 때쯤 (언론들이) 나와서 밉기도 하다"고 입을 연 김아무개(38)씨는 "여기까지 온 게 언론의 탓도 크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렸으니 힘을 내라는 의미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편, 파업 중인 언론사들은 앞으로도 함께 투쟁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오는 21일은 박정찬 사장의 연임안을 놓고 <연합뉴스>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이다. 공동 투쟁의 일환으로 MBC·KBS·YTN 노동조합은 서울 중구 수하동 <연합뉴스> 앞 광장에서 <연합뉴스> 노동조합과 함께 집회를 연다는 방침이다.


태그:#낙하산 퇴임 축하쇼, #MBC 파업, #KBS 파업, #나는 꼼수다,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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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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