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세렝게티 평원의 사자 무리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사자 무리는 몇 가지 독특한 품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수사자와 사자새끼들과의 관계이다. 보통 한두 마리의 수사자가 암컷 무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다가 새로운 수사자가 도전에 성공하여 새로운 지배자가 되면 기존 수사자의 새끼들을 모두 살해한다. 우성의 형질을 유전시키려는 동물적 본능일 수도 있고, 기존의 새끼를 제거하므로 암컷들의 발정을 촉진하려는 뜻이 있다고 한다.

 

2012년 3월에 진행된 새누리당 공천과정은 이러한 세렝게티 평원에서 발생하는 야만적인 사자새끼 죽이기를 연상시킨다. 박근혜 대표가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하자 이전에 존재했던 친이계 의원들을 싹쓸이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 의하면 공천탈락자의 70% 이상이 친이계로 분류된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새누리당을 경쟁력 강한 새로운 당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새로운 지배자에 대한 복종을 촉진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세렝게티 정치는 박근혜의 경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이명박이 지배권을 장악하자 제18대 총선에서 친박계 의원들을 대거 공천탈락시킴으로써 '친박연대'라는 특이한 정당을 등장시켰던 역사가 있다. 어쩌면 작금의 상황은 당시의 보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도는 약하지만 민주통합당도 예외가 아니다. 호남출신의 'DJ계 의원들'을 공천에서 대폭 탈락시켰다. 한명숙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현역 물갈이는 28%로 새누리당보다 높다고 한다.

 

세렝게티 정치가 발생하는 이유

 

세렝게티 정치가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자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고 새로운 세력임을 보여주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실한 필요 때문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새누리당처럼 아예 정당의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한국 정치에서는 보통 집권에 성공하고 나면 새 지배자가 새로운 정당을 구성하거나 기존 정당의 명칭을 교체하는 관행이 있다. 그러나 아직 집권하지 못한 상황임에도 정당명을 바꾸게 된 이번 새누리당의 경우는 좀 특이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세렝게티 정치는 신진세력의 등장을 손쉽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한국 정치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높은 식견과 경험이 필요하다. 특히 국정 경험은 축적되는 것이어서 단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소한도의 시민단체 봉사 경험조차 없는 사람들이 국정을 담당할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된다면 필연적으로 의정활동에 있어서 공천을 준 계파 보스의 지시에만 의존하는 행태를 보이게 될 것이다. 또한 이미 중립적 시민단체로부터 입법 활동 평가를 잘 받은 의원들조차도 새로운 지배자와 같은 DNA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천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성적 정치 행태가 아니라 아프리카 초원에서 벌어지는 야만적 정치 행태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세렝게티 정치는 정치적 극단주의를 조장한다. 지배자가 바뀌면 생존조차 보장할 수 없는 정치구조로 인해 합리적 타협과 조정을 도외시하고 지배자 교체를 초래할 수 있는 사소한 변화에도 목숨을 거는 정치행태가 발생한다. 또한 이러한 정치 행태는 합리적 정책 제시와 유권자의 지지보다는 지배자 개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붕당정치를 초래한다. 선거구민으로부터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아도 새로 등장한 지배자에게 개인적 충성을 바치지 않으면 공천에서 탈락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정치 확립을 위해 심히 개탄할 일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불러일으키는 야만적 세렝게티 정치에 대해서 한국의 유권자들도 상당한 책임을 져야한다. 중앙당의 공천이 자유로운 경선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중앙당의 공천 자체가 실제 선거에서 별 의미가 없다면 공천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살육현상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권자들은 반드시 해당 선거구에 거주하는 정당원들의 경선을 통해 각 당의 후보자를 결정하는 민주적 정치과정을 적극 지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당내 경선과 최종 선택 과정에서 유권자들은 객관적인 시민단체의 리더십 검증을 진지하게 참조하여 투표해야 한다. 국민의 수준만큼 정치의 수준이 이루어진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한국의 유권자들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태그:#4.11 총선, #정당 공천 행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