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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주도 사람입니다.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낙천리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제주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제 고향마을은 한라산 중산간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보니 지도에도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육지에서 살면서 제주도 출신이라고 하면, 몇몇 사람들은 아는 척하며 제주도 어디냐고 묻습니다. 낙천리라고 하면 알 턱이 없어서 북제주 서쪽 중산간에다 협재 해수욕장에서 산쪽으로 30여 분 가면 된다는 식으로 설명하곤 했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올레길 13코스가 마을을 지나서 설명이 좀 수월해졌습니다.

제주도 출신이라면 대개 뻔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대학시절에는 "비행기 타 봤겠네?"라는 부러움 섞인 질문이 잦았고, "당연히 수영은 잘 하겠지?" "너는 신혼여행 따로 안 가도 되겠다" 같은 말들이 이어집니다. 저는 수영 못합니다. 농번기를 좀 피해서 여름에 피서로 협재 해수욕장은 종종 갔지만, 대개는 밭일 돕고 소를 돌보며 컸습니다. 동쪽의 성산 바닷가, 남쪽의 중문이나 강정바다, 전부 성인이 되서 여행삼아 돌아다닌 것이지 어렸을 때는 구경조차 못했습니다.

아홉 명의 제삿날이 같은 이유

 제주 4.3평화공원을 둘러싼 3만여 명의 희생자 명단이 적힌 비석들. 얼마나 많은 희생의 필요한가요. 사람들은 강정을 '제2의 4.3'이라고 부릅니다.
 제주 4.3평화공원을 둘러싼 3만여 명의 희생자 명단이 적힌 비석들. 얼마나 많은 희생의 필요한가요. 사람들은 강정을 '제2의 4.3'이라고 부릅니다.
ⓒ 유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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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밭일이 지겹고 힘들어 곧잘 책을 들여다 보니 공부는 꽤 했습니다. 제가 서울로 대학 갈 때, 동네사람들이 아버지 보고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 말해주면 아버지는 어깨가 으쓱하셨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처음으로 서울로 대학 간 사례였으니까요.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은 시골 처녀인 저에게 어리벙벙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사립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시느라 걱정이 많았습니다. 새학기 등록 때가 되면 돈을 마련할 수 있는지 전화를 걸곤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시골 아버지와의 통화할 때 문득 제가 이랬습니다.

"아버지, 그 4·3 사건 있잖아요."

제가 왜 4·3 사건을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때가 1991년도였는데 4·3 진상규명 같은 것이 얘기됐던 것일까요. 제 기억에 아버지는 역정을 내시며 "쓸데없는 데 신경쓰지 말고, 그런 말 꺼내지도 말고 공부나 하라"고 하셨습니다.

낙천리에서 살 때 할아버지 제삿날이 떠오릅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동네에서 아홉 집이 같은 날 제사를 치릅니다. 4·3 사건 때 20대의 동네 젊은이들 아홉 명은 '트럭을 타면 목숨을 살려준다'는 경찰의 말에 얼른 트럭에 올라탔습니다. 단 한 사람만 집에 숨었는데, 그 숨은 사람만 살고 아홉 사람은 총살 당했다고 합니다.

어디 소설책이나 영화에서나 봄직한 이야기가 우리 할아버지 얘기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라고 해야, 사진도 없고 당연히 본 적도 없으니 별다른 느낌은 없습니다. 단지 성질이 급하고, 역정을 잘 내시고 술을 마시거나 화가 나면 자식들에게도 곧잘 손찌검을 하시던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를 막연히 상상해 볼 뿐입니다.

평화의 섬 제주도... 이젠 전쟁터 됐습니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시작한 7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천주교 수녀님들과 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촉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시작한 지난 7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천주교 수녀님들과 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촉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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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면서는 원망도 많이 했던 아버지였는데, 저도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가 되고 보니 이제는 늙으신 아버지가, 그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이기심과 방종이 이해돼 원망을 거뒀습니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 아버지가 총살을 당해 돌아가시고, 홀어머니가 남의 집에 품을 팔면서 겨우겨우 거둬 먹인 아이. 그 소년이 어른이 됐을 때, 제 한몸 먼저 위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냥 살면 그만이지, 4·3 사건이 왜 일어났으며 당신의 아버지가 왜 젊어서 총살을 당해야 했는지 상처의 근원을 굳이 파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4.3 사건에 대해 제주도민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사과를 한 것이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때입니다. 그는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그때 민간인들을 죽인 국가권력은 경찰이었습니다. 이런 제주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것이 2005년입니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는 2007년에 선정됐습니다. 강정마을 이전에도 화순과 위미에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추진됐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자, 강정마을이 선정된 것입니다. 그후 5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강정주민들의 고달픈 해군기지 반대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 7일 전격적으로 강행된 강정 앞바다 구럼비 발파로 인해 강정은 전쟁터가 됐습니다.

저는 몇년 전부터 올레길을 타박타박 걷곤 해서 강정마을을 지나는 올레길 7코스도 두 번 정도 걸어봤습니다. 검은 구럼비 바위를 지나며 왼편으로 펼쳐진, 문섬이 있는 바다는 찰박찰박 낮은 소리를 내며 아늑함을 줬습니다. 한 번은 아이들과 함께 걸었는데, 아이들은 바위를 지나 걷는 것이 흥미로운지, 울퉁불퉁한 바위를 만져보기도 하고, 바위 중간에 솟아서 고인 물을 찰박거리며 즐겁게 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7코스를 다시 찾았을 때는 구럼비가 일부 막혔습니다. 경찰들이 도열해 있었고, 아주머니들이 바다로 가는 길에 쇠사슬을 걸고 앉아 계셨습니다. 여기 저기서 모여든 평화운동가들이 구럼비 바위 앞에 텐트를 치고 조개나 썩은 나무로 만든 목걸이를 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돌고래 '제돌이'가 놀 바다가 위험합니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현장 해상에서 시공사가 평탄화 작업을 하기 위해 모래를 투하하고 있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현장 해상에서 시공사가 평탄화 작업을 하기 위해 모래를 투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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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제주를 찾았을 때는 환경운동의 현장에서 만나 친구가 된 황현진씨가 제주도에 먼저 닿아 있었습니다. 강정마을에서 그녀를 볼까 싶어 연락을 했더니 제주공항에서 1인시위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당연히 해군기지 반대이거니 싶었는데 그녀는 제주 퍼시픽 랜드에서 불법 포획한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씌워준 앙증맞은 돌고래 모자를 쓰고,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기분은 조금 떨떠름했습니다. '지금 제주 해군기지가 급한데, 겨우 돌고래 몇 마리 때문에 1인시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강정마을에 가서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하면서도 매일 '돌고래 방사' 시위를 최근까지 해왔습니다. 아가씨다운 상상력으로 '핫핑크돌핀스'라는 이름으로 홀로 싸워온 것입니다. 지난해 8월부터 했으니 거의 반 년 이상을 했지요. 그녀는 퍼시픽 랜드 앞에서 하는 것이 무섭다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용기 내서 그 앞에 서고 제주도청으로, 법정으로 뛰어다녔습니다. 그 결과, 역시 불법포획 돌고래로 돌고래쇼를 해오던 서울대공원은 지난 3월 12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결정으로 돌고래를 방사하기로 했답니다. 그것도 제주 강정 앞바다에서 뛰어놀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돌고래 아가씨, 혹은 돌꽃이라고도 불리는 황현진은 지금 제주 강정마을에서 밴드 '신짜꽃밴'의 보컬리스트입니다.

"네가 노래를 부른다고 ?"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눈이 휘둥그레 질만큼, 그녀가 노래를 하리라고는 상상 못했습니다. 그후 종종 공연장에서, 시위현장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었는데 숫제 소리지르는 거지 노래라고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친구로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듣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음치를 겨우 벗어난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눈물이 납니다.

현진이의 간절한 기도가, 앵벌이 수준으로 일을 하던 돌고래 '제돌이'에게 자유를 찾아줬습니다. 그녀는 군사기지 건설을 강행하며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려는 정권에게 "거기 사는 붉은발 말똥게랑 연산호한테 물어봤어?'라고 묻습니다. 우리보다 사소하다고 느끼는 생명, 우리보다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지는 말 못하는 짐승들…. 그들도 다 기쁨과 슬픔을 느낍니다. 그들을 죽이기 시작하면, 언젠가 그 칼날이 우리를 겨눌 것입니다.

저는 제주도 사람입니다. 궁핍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도 제주도의 자연 덕분에 크게 위안을 받으며 바르게 자랐습니다. 작은 제비꽃, 늙은 소나무, 들판을 나는 황새, 고운 비취빛 바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저를 아름다운 마음, 착한 것들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줬습니다. 제주도에서 제복을 입은 경찰, 군사기지, 폭력 같은 것들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는 마음의 위로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내려와서 조용히 걷는, 평화의 섬으로 남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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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고 여행하는 삶을 삽니다. 북클럽 문학의 숲을 9년째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을 잇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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