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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제주 구럼비 바위 위에서 벌어지던 싸움이 기어이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선거 때면 어김 없이 드리우던 전쟁의 그림자가 이번에도 한반도에 짙게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늘 북한이 있던 자리에 중국을 끌어들인 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상할 것도 없다. 더 이상 북한만으로는 어렵다는 사실을 저들도 깨달은 탓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위에서 시작된 싸움이 그렇게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선거판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조선일보> 3월 10일자 1면
 <조선일보> 3월 10일자 1면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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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표를 올린 곳은 <조선일보>였다. 주먹을 불끈 말아 쥐고 '나는 해적이 아니다'라며 울먹이는 예비역 해군 장성의 사진 위로 중국이 이어도를 넘보고 있다는 섬뜩한 머리기사를 실었다(2011년 3월 10일자). 그 뒤로도 두 면에 걸쳐 "항모 가진 중국, 이어도 분쟁 유도... 제주 앞바다까지 노린다", "원유 99% 통과... 15일 이상 막히면 수출입 올스톱" 등의 굵은 제목들이 이어진다. 마치 전시 동원령이라도 내릴 듯한 분위기다.

어쩌면 지난 2월 22일,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그것도 지지율 30%를 밑도는 이 정부가 5년이나 끌어온 공사를 밀어붙이겠다며 뒤늦게 으름장을 놓을 때부터 이미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유야 어떻든 결국 이번 선거도 '전쟁'을 비껴갈 수 없게 되었다. 저 멀리 작은 섬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당신과 내가 더 이상 못 본 척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침착하자. 마치 전쟁이라도 부추기려는 듯한 푸닥거리에 놀아나서도 안 되지만, 중국이라는 유령을 두고 저들과 지루하게 다투는 일도 어리석긴 마찬가지다. 그에 앞서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대체 지난 5년 동안, 제주도 푸른 바다와 마주하고 있다는 구럼비 바위 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지난 5년간 강정마을에선 무선 일이 벌어진 걸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7년 4월의 일이었다. 구럼비 바위를 낀 강정마을이 느닷없이 새로운 해군기지의 후보지로 떠올랐다. 2002년부터 제주도와 해군 당국이 후보지로 점찍었던 화순마을과 위미마을 등이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벌써 5년째 사업이 겉돌던 때였다. 그러자 조급해진 당국이 이번에는 조용히 일을 처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즈음 새로운 후보지로 정한 곳이 바로 구럼비 바위가 있는 강정마을이었다.

강정마을의 회장은 당국의 뜻에 따라 '조용히' 총회를 열었다.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이 제주 해군기지의 새로운 후보지로 꼽혔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유권자만 1000명이 넘는 제법 큰 마을에서 그날 총회를 찾은 주민은 겨우 87명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그 자리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의 운명이 박수로 정해지기까지는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결정하자는 조심스런 의견 따위는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묵살되기 일쑤였다고 한다(KBS <추적 60분>, '5년째 반대, 강정마을엔 무슨 일이?', 2011.9.7).

그리고 한 달 뒤 제주도는 강정마을을 해군기지의 새 후보지로 정부에 올렸고, 또 한 달 뒤 정부는 이를 확정했다. 5년을 지루하게 끌어온 문제가 두 달 만에 '조용히' 풀린 것이다.

마을은 그제야 술렁이기 시작했다. 2007년 8월, 주민들은 새 회장을 세웠다. 그리고 주민투표로 주민들의 의견을 물었다. 누군가 투표함을 빼앗아 달아나버린 어이없는 사건 때문에 이미 한 번의 주민투표가 무산된 뒤였다. 주민들에게 의견 묻기를 두려워하던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주민투표는 어렵게 이루어졌고, 1050명의 유권자 가운데 725명이 참여(69%)한 이 투표에서 무려 94%의 주민이 반대표를 던졌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안타깝게도 당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국책 사업을 주민 투표로 결정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2년 뒤인 2009년 12월 제주도 의회는 구럼비 바위 일대가 포함된 공사 예정지에 대한 '절대 보존 지역' 지정을 풀어버렸다. 의회 의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들이 나서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이다. '절대 보존 지역'의 축소·해제를 위해서는 반드시 주민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있었지만, '경미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도의회는 그 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에는 대한민국 국회가 나섰다. 2012년에 잡혀있던 해군기지 예산 가운데 96%에 달하는 1278억 원을 여야 합의로 삭감한 것이다. 5년 전인 2007년 12월 당시 국회가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내세웠던 '민·군 복합형 기항지 건설'이라는 조건을 정부와 해군이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머지 4%는 육상설계비와 보상비일 뿐이니, 대한민국 국회가 정부와 해군을 향해 더 이상 공사를 하지 말라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하지만 당국은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은 뒤, 2011년에 쓰지 않은 1084억 원과 올해 잡힌 49억 원으로 기어이 공사를 시작했다. 대한민국 국회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제주에 해군기지를 짓겠다며 지난 5년 동안 정부와 해군이 벌여온 일들이 대략 이렇다. 그 사이 주민들의 삶은 밑바닥까지 무너져 내렸고, 오랜 세월 지켜온 마을 공동체마저 처참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경찰은 걸핏하면 소환장을 보내 겁을 주고 벌금을 물렸다. 지금까지 집집마다 뿌려진 소환장이 200장이 넘고, 2010년 이후에 물린 벌금만 2억 7000만 원에 달한다. 또 가까운 이웃과 친척 사이에도 편이 갈려 멱살잡이가 벌어지기 일쑤라고 한다. 강정마을의 풍경은 이처럼 스산하기만 하다.

구럼비 바위를 포기해선 안 되는 이유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해군이 구럼비 바위 지역의 발파를 이틀째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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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벼랑 끝으로 내몰린 채 5년을 버텨온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이번엔 정부가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낙인을 찍으려 하고 있다. 보잘 것 없는 바위 하나를 지키자고 국가 안보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며 매섭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주민들은 그저 삶의 터전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아무리 정부라고 해도 그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땅과 바다를 그렇게 막무가내로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힘 없는 국민들이 하는 이야기라도 그 정도는 들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나친 바람이었다. 정부는 그저 해군기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줄 해군기지 말이다.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명박 정부는 늘 이런 식으로 일을 해왔다. 토건주의를 앞세운 이 정부가 지난 4년 내내 멀쩡한 땅과 강을 파헤쳐 흉물스런 시멘트 덩어리들을 세우는 사이 우리가 어렵게 지켜온 민주주의와 생태주의는 그 뿌리부터 흔들리며 설자리를 잃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가치들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뜻에서 구럼비 바위를 지키는 일은 그저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지키는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구럼비 바위 위에는 지난 4년간 우리가 늘 빼앗기기만 했던 민주주의와 생태주의 그리고 여기에 더해 평화주의라는 가치들이 불안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제주도 구럼비 바위는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는 진보의 마지노선이자, 이명박정부와 우리 국민들 사이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싸움터일지 모른다.

낡은 안보 프레임을 거부하자

그래도 해군기지는 필요하지 않느냐고, 중국이 이어도를 넘본다는데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따질런지도 모르겠다. 선거를 앞두고 중국을 끌어들여 판을 키우려는 수구 세력의 주장에 그다지 믿음이 가진 않지만, 혹시라도 그런 것들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면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의 분석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좋겠다.

정 대표는 중국이 지난해부터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넓히려 애쓰는 이유가 거꾸로 제주 해군기지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우리 정부의 전략이 오히려 오랜 세월 이 지역에서 유지되어온 군사 균형을 무너뜨림으로써 중국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행태는 이명박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해온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중국의 한 관변학자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중국 정부와 인민들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프레시안>, 2012.3.11)

1960년대 초 소련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섬나라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다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던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덧붙여 해군력을 키우는 것이 과연 중국과의 분쟁에 대비하는 가장 현명한 길인지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호들갑 떠는 정부와 해군당국, 볼썽사납다

 9일 오전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고 있는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안에서 해군기지공사 중단을 위해 공사장 펜스를 뜯고 구럼비 바위쪽으로 넘어간 천주교 수사한분이 구럼비 발파 지점까지 달려간 뒤 경찰에 강제 연행되고 있다.
 9일 오전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고 있는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안에서 해군기지공사 중단을 위해 공사장 펜스를 뜯고 구럼비 바위쪽으로 넘어간 천주교 수사한분이 구럼비 발파 지점까지 달려간 뒤 경찰에 강제 연행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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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수구 세력이 봇물처럼 쏟아내기 시작한 안보 공세는 앞으로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제주 앞바다를 넘본다는 식의 무시무시한 주장들도 끊이지 않을 것이며, 그런 주장들의 끝에는 늘 선택을 강요하는 질문이 뒤따를 것이다. 가령, 중국이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는 이어도를 넘볼 경우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인지, 아니면 그냥 넘겨줄 것인지를 묻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선거 때면 어김없이 우리 주변을 떠돌곤 하는 그런 식의 질문들은 대부분 답할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앞서의 질문보다는 오히려 이어도를 둘러싼 해역에서 한·중 사이의 해양 경계를 어떻게 정하는 것이 좋을지를 정부에게 되묻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이 궁금해 하는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럼비 바위와 해군기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다그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왜 새로운 해군기지가 필요한지, 그리고 왜 하필이면 제주여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정부와 해군 당국의 몫이다. 정작 5년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그것도 선거를 코앞에 둔 때에 마치 당장 남방 해역에서 무슨 일이라도 터질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모습은 볼썽사나울 뿐이다. 더 이상 그런 식의 낡은 안보 프레임 안에 국민을 가두려하지 말기 바란다.

국가도 군대도 모두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국가나 군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국민의 희생 위에 세워진 해군기지를 결코 용납해선 안 되는 이유다. 우리는 이미 지난 4년 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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