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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7일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심사에서 친이, 친박의 개념은 없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7일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심사에서 친이, 친박의 개념은 없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강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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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망설이다가 이 글을 씁니다. 비판의 글을 쓰기 전에 나타나는 내 습성 탓입니다. 누구나 동의하듯이 비판은 신중해야 합니다. 게다가 비판이 불가피하게 원색적이지 않으면 안 될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예컨대 사람의 심성적 자질 혹은 경제적 능력 따위를 거론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이에 못지않게 개인의 지적(知的) 역량 같은 것을 거론하는 것 역시 매우 난감한 일입니다. 그래서 며칠 망설인 것입니다.

"최근에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추진하셨던 한미 FTA라든가, 해군기지에 대해서 반대하고 계세요. 그래서 이런 부분은 제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정치철학이 뭔가요?" -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3월 7일 관훈토론회 발언

이렇게 박 위원장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게, '도대체 정치철학이 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문맥으로 보아 이것은 질문한 게 아니라 비판한 것입니다. 요컨대 '문재인 이사장은 도대체 청치철학이라는 것이 있는가?'라는 의미의 힐난처럼 들린다는 것입니다.

'철학'을 말하는 박근혜... 아이러니의 극치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습니다. 뉴스 화면을 본 나는 개인적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아이러니는 모순의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평소 나는 박 위원장이야말로 '철학'과는 무관한, 항간에서 많이 쓰는 말로 하면, '철학이 빈곤한' 정치인이 아닐까 하는 편견과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박 위원장 스스로 용감하게 '철학'을 말하고 있었으니 놀라울 수밖에요.

박 위원장의 어록에서는 이런 류의 아이러니가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일례로 박 위원장은 자서전에다 "아버지는 로맨티스트이자 닭살 돋는 애처가였다"고 했습니다. 순간 궁정동에 다녀간 '그때 그 무수한 여인들'을 떠올린 나는 박 위원장에게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박 위원장, '철학'이라고 했습니까? 박 위원장은 "5·16은 구국의 영단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역사적 사례까지 들며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대한 정몽주와 세종대왕의 관점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박정희.
 박정희.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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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5·16을 '조선건국'에 유추하는 논리가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조선은 1392년 이성계의 건국 이후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9년 동안이나 존속된 세계 최장수 왕조입니다. 반면 1961년에 구축된 5·16 체제는 1969년 삼선개헌으로 변조되고 1972년 유신발동으로 기형화된 끝에 1979년 김재규의 총 한 방으로 휘발돼 버린 1인 단막극이었습니다. 따라서 5·16을 조선건국에 빗대는 것은 과대망상적인 발상이 아닐까 합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5·16은 구국의 영단'이라는 박 위원장의 '철학'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5·16은 자타가 인정하는 군사반란, 즉 쿠데타입니다. 그리고 박정희의 18년 공포정치는 독재정치의 속성을 모두 구비한 2차대전 이후 세계 최악의 통치체제였습니다. 박정희의 등장과 체제구축 과정과 말로는 독일의 히틀러, 이란의 팔레비, 필리핀의 마르코스, 베트남의 티우, 칠레의 피노체트, 니카라과의 소모사 등 기라성(?) 같은 독재자들의 속성을 종합세트처럼 갖춘 것이었습니다.

더러는 경제발전의 논리로 박정희의 통치를 변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박정희의 18년 세월에 달성된 국민소득 1644달러의 의미가 그렇게도 큰 것인지요? 나는 개인적으로 그 정도의 경제성장은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가능했다고 봅니다. 당시의 국제정세나 우리 국민의 우수성, 근면성에 비추어 보아, 장면이나 윤보선이 집권했다손 치더라도 별반 차이가 없었을 거라는 말입니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 경제는 박정희 시대 이상의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박정희 통치의 부작용과 후유증에 있었지요.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한국인의 국민소득은 IMF 위기를 맞아 1만 달러에서 6000 달러로 급락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아버지가 일으킨 나라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팠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 대목 역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박 위원장의 말을 정확하게 고친다면, '아버지가 일으킨 나라'가 아니라 '아버지 때문에 골병 든 나라'라고 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5·16은 '구국의 영단'이 아니라, 말을 만들어 하자면, '망국의 독단'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박 위원장, '10월 유신'의 본질을 아십니까

박 위원장, '철학'이라고 했습니까? 박 위원장은 "10월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0월 유신은 중임제 대통령이 아니라 '종신제 대통령' 개헌이었습니다. 중임제 개헌을 제기한 노무현이 '참 나쁜 대통령'이라면 종신제 개헌을 총칼로 밀어붙인 아버지는 어떤 대통령이었을지 짐작이라도 가지 않는지요?

박 위원장은 '혹시 '유신'이라는 말의 출처를 알고 있는지요? 물론 '유신'이라는 용어는 중국 고전 <시경> 등에 보입니다만, 현대적 의미의 '유신'은 아버지가 그토록 선망해 마지않았던 '메이지유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천황제의 절대왕정을 구축했습니다. 10월 유신 이후의 박정희는 사실상 일본의 천황보다도 더 큰 권력을 가졌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또 하나, '소화유신'이란 게 있었지요. 이에 대한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박정희에게는 명치유신 말고도 따라 배운 또 하나의 유신이 있었다. 바로 유산된 유신, 소화유신(쇼와유신)이다. 군부 내의 급진파 청년 장교들과 기타 잇키(北一輝) 같은 초국가주의자들은 명치유신을 재현해 보자고 1936년 2월 26일 천황 친정을 명분으로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들은 조선총독을 지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등 대신 여럿을 살해했지만 천황의 복귀명령으로 진압되어 주동자 15명이 사형을 당했다. 이들 황도파 장교들이 5·16 군사반란 이전 박정희의 또 다른 모델이었다." - 한홍구 <유신의 정신적 뿌리>

이런 10월 유신을 대한민국의 존재와 결부시키다니요? 이것은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에 대한 모독이자 지성과 '철학'의 파탄입니다.

'5·18은 민중반란', 이영조 공천에 앞장 선 친박인사들

이영조 전 진실화해위원장
 이영조 전 진실화해위원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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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위원장, '철학'이라고 했습니까? 4·3항쟁을 '공산주의 모반폭동', 5·18민주화운동을 '광주에서 발생한 민중반란'이라고 하는 사람을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철학입니까? 같은 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조차 "이영조의 역사관은 시대착오적이며 시대역행적인 한심한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영조를 추천한 것은 '친박' 인사라고 하더군요.

나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4·3이 무엇이었고 5·18이 무엇이었는지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한 독서를 해 본 적이 있다면 이런 일은 결코 벌어질 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4·3 학살에는 '친일'과 '반공'이 배후하고 있었습니다. 5·18 학살은 그 '빛나는 유신'을 계승하고자 했던 무도한 정치군인들이 자행한 것입니다.

박 위원장은 어제도 오늘도 아버지를 추모하고 예찬합니다. 아버지의 전유물이었던 친일과 독재에 대한 사리분별이 분명치 않는 한, 박 위원장의 정치철학은 철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편집증적인 신조일 따름입니다.

기왕 철학을 논의했으니 철학 이야기로 마치겠습니다. 2300년 전 맹자가 양혜왕에게 묻습니다. "몽둥이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다릅니까?" 왕은 다르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맹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다릅니까?"

박 위원장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태그:#박근혜, #정치철학, #박정희, #516, #10월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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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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