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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화약 반입 저지를 위해 해군기지 공사장 앞을 지키며 춤추고 노래하는 강정마을 주민들.
 새벽 4시, 화약 반입 저지를 위해 해군기지 공사장 앞을 지키며 춤추고 노래하는 강정마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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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 발파 허가 떨어졌대요."

3월 6일 오후 6시 40분이었다. 제주 강정마을 마을회관 안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강동균 마을회장은 급히 마을 방송용 메모를 써내려갔다. 곧 긴급 사이렌과 함께 주민 전체 대책회의를 소집하는 방송이 마을에 퍼졌다.

"새벽 4시 경찰 집결 명령이 내려졌고 화약 운반은 오전 6시경 할 모양이랍니다. 길목을 막게 동원할 수 있는 자동차나 경운기는 다 갖고 나오세요."

회의가 진행되는 의례회관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래도 강 회장은 "제주도지사가 공사 중지 요청 내린 이상 물러서진 못합니다. 여기까지 압박한 거 처음이고, 대단한 성과입니다"라고 주민들을 독려했다. 이어 강조했다.

"우리의 싸움입니다. 누가 대신 안 해줍니다. 우리가 해야 합니다."

회의를 마치며 주민들은 늘 해오던 구호를 외쳤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회관 마당에서 놀던 5살배기 호찬이를 향해 한 주민이 "해군기지!"를 외쳤다. 호찬이는 바로 "결사반대!"를 외쳤다. "강정마을!"하니 "사랑해요!"가 돌아왔다.

해산하고 새벽에 다시 집결하기로 했으나, 모두들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다들 잠 못 잘 거예요."

마을 주민 오도진씨가 말했다.

"주민들 충격이 크죠. 구럼비가 여기 상징인데. 해군들도 그걸 노리는 거예요. 파괴되면 주민들이 심리적으로 포기할 거라고. 4대강 사업 하는 거랑 똑같죠. 무조건 파헤치고 나면 다음엔 어쩔 거냐는 식이죠. 이 작은 동네에 이 나라 모든 문제가 걸려 있어요. 결정적으로 민주주의 문제가."

"쇠사슬로 몇 시간이라도 버틸 수 있다면"

화약 운반차량을 막으려 공사장 앞을 몸으로 막은 주민들이 연행되고 있다.
 화약 운반차량을 막으려 공사장 앞을 몸으로 막은 주민들이 연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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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4시, 사이렌이 울렸다. 이미 트럭과 자가용으로 만든 바리케이드가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으로 통하는 강정교에 쳐졌다. 그 뒤로 모인 주민들 앞에서 활동가들이 먼저 노래와 춤을 시작했다. 이내 할머니들도 노란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을 품에 꼭 안은 채 몸을 들썩였다.

그 사이 여성 활동가 4명이 차량 바리케이드 앞에 앉았다. 쇠사슬로 제 몸을 차에 묶었다. 강 회장의 어머니가 그들 네 명의 손을 차례차례 꼭 잡아주었다. 남성 주민들이 그 앞에 묵묵히 스크럼을 짜고 방패처럼 앉았다. 지난해 강정마을에서 쇠사슬 농성을 했던 현애자 전 국회의원이 또 그 앞에 앉았다.

구럼비 발파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온 '여옥'씨는 "하루라도, 단지 몇 시간만이라도 구럼비 발파를 막을 수 있다면 내 몫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쇠사슬을 맸다고 했다.

"나라 안보를 위해 여기에 해군기지 짓는다고 한다면, 그럼 우리 국민들은 모두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정말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사람을 희생시키는 안보가 정말 필요한 건지도 되물어야 해요. 이건 한국, 동북아, 전 세계의 문제라고 봐요. 그래서 '외부세력'이란 말은 적합하지 않은 거 같아요. 국민 모두가 자신의 문제로 여겨야 하는 거 같아요."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농성하는 강정마을 주민.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농성하는 강정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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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경찰병력이 등장했다. 진압부대로 악명 높은 '1001' 부대를 비롯해 육지의 병력들까지, 주민보다 더 많은 경찰이 마을에 투입됐다고 했다. 다리를 건너려는 전경들을 주민들이 붙잡았다. 호소와 오열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아저씨 제발 가세요, 돌아가주세요."
"우리 어떻게 살라고, 어떻게 하라고."

울음이 잦아들기도 전에, 전경들이 더 몰려왔다. '일반도로교통위반죄'에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길을 막은 차량들을 모두 압류한다 했다. 스크럼을 짠 주민들을 뜯어내고 쇠사슬을 잘라냈다. 여성 활동가들은 몸에 맨 쇠사슬을 걷어내지도 못한 채 사지가 들려 연행되었다.

경찰은 이어 차 위에서 버티고 있던 주민들도 밀어냈다. "내 아들 왜 잡아가느냐"며 달려든 할머니도 끌려나갔다. 눈이 그렁그렁하던 할아버지가 끝내 울부짖으며 전경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러는 거 아니야, 이러는 거 아니야."

차량들을 견인한 후, 전경들은 순식간에 강정천 양쪽을 막았다. 새벽 3시경부터 나와 있던 주민들은 화장실도 못 가고 다리 위에 갇혀 있어야 했다. 아들이 연행되고 혼자 남은 고옥자(가명)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강정마을로 시집온 지 40년이 넘었지만 마을이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는 그였다.

"우리 생각? 다 표현을 하질 못하지. 어떻게 해. 그래도 가장 힘든 거는 이렇게 경찰들이 막는 거. 여기 와서 계속 보초 서는 거. 애들한테도 안 좋고 불편하고 속도 상하고. 우린 분해. 물론 이 사람들 위에서 지시하는 사람이 첫째로 잘못이지. 어쨌든 우리야 오늘 하루 종일 이렇게 싸워야지 뭐. 바깥에 (우리 일을) 잘 알려줘요."

아침 식사도 못한 할머니들은 쓰게 웃었다.

구럼비 발파에 영등할미도 울부짖네

강정천을 막고 주민들을 가둔 경찰벽.
 강정천을 막고 주민들을 가둔 경찰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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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 560kg와 뇌관 112개는 당초 예정된 육로가 아닌 화순항을 통해 공사장에 반입되었다. 해군은 정오에 구럼비를 발파하겠다고 했다. '인간방패'를 자임하고 미리 구럼비에 들어가 있던 활동가들이 이에 맞섰다.

나머지 활동가들은 강정포구에서 카약을 타고 구럼비 진입을 시도하며 해상시위를 벌였다. 해경 보트 3, 4대가 달려들어 카약을 뒤집는 위험한 사태도 벌어졌다. 카약을 잡은 후 포구에 풀어주지 않고 일부러 끌고 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카약들은 계속해 바다 위에 떴다. "해군기지 결사반대"를 외치며 직접 헤엄쳐 구럼비를 들고 나는 활동가들도 있었다.

평화활동가 에밀리씨.
 평화활동가 에밀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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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도 제대로 못 한 채 하루 종일 차가운 바다에서 헤엄친 활동가들의 몸은 떨렸다.

"춥죠. 그래도 다시 바다에 들어가야죠."

에밀리씨가 젖은 얼굴로 웃었다.

"몇 번이라도 며칠이라도 (해상시위를) 계속 할 거예요. (구럼비를) 지키고 싶으니까. 발파하면 내가 너무 아플 거예요."

타이완에서 온 그녀는 작년 여름을 구럼비 해안에서 보냈다. 마을 주민 '전복'(별명)씨는 구럼비 해안 인근에 시험 발파를 하는 순간 결국 울고 말았다.

"내 가슴에 구멍을 뚫는 거 같아요. 나도 폭파되는 느낌이야. 해경들도 우리랑 눈을 못 맞춰."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쳤다. 이 날은 뱃사람들이 바람의 신 '영등할미'에게 기도드리는 날이라고 했다.

"기도드려야 하는데 구럼비를 폭파한다니까 하늘도 울부짖나봐."

결국 발파는 강행되었다. 구럼비에 진입한 활동가들은 연행되고, 3시부터 5시 30분까지 6차례에 걸쳐 구럼비 해안 옆 경작지에 연기와 폭음이 솟았다. 홍희덕 의원이 해군사업단 측의 폭발물취급법 위반 사실을 폭로했으나 사업단 측은 막무가내였다.

경찰들은 발파시간 내내 강정천에 주민들을 억류했다. 취재진도 마찬가지였다. 현장 지휘관은 서귀포경찰서를 통해 받은 취재협조 요구마저 무시했다. 경찰벽 위에서 주민들을 채증하던 경찰을 향해 한 주민이 달려들어 마스크를 벗겨냈다.

"아저씨 나랑 아는 사람이잖아. 아는 사람끼리 이러면 안 되잖아요."

주민들 앞에 얼굴 돌린 채증 경찰의 귀가 새빨개졌다. 지켜보는 주민들은 말이 없었다. 공사가 시작된 후 친목모임 200개가 모두 깨졌다는 강정마을에서는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전쟁 같은 날들, 그러나 물러날 수 없어

구럼비에 들어간 활동가가 '해군기지 반대' 깃발을 흔들고 있다.
 구럼비에 들어간 활동가가 '해군기지 반대' 깃발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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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발파할 겁니다. 해상을 통해서. 여섯 차례. 화약도 들여올 거고."

활동가 이준형(가명)씨는 전했다. 구럼비 발파 공사는 약 5개월이 걸린다. 제주도지사가 해군 측에 공유수면매립공사의 적법성을 묻는 청문회는 오는 3월 20일에 열린다. 청문회가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국방부는 청문절차엔 협조하되 공사는 그대로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약 5개월 동안 주민들의 고통도 매일 반복된다는 말이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국가가 국민을 고문한다'고 적었다.

강동균 마을회장과 주민들의 얼굴은 예상보다 담담했다.

"도의회와 여당, 야당 대표가 공사 중지 요청을 한 거잖아요. 그럼 제주도민 전체의 의견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그걸 국방부가 무시하는 데 있어서는 도지사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정치권도 나서야죠. 그리고 우리는 몸으로 막는 수밖에요."(강동균)

그 뒤에서 이씨는 연신 담배를 피워 물었다.

"계속 싸워온 주민들로선 외지인들 앞에 힘들다는 말, 잘 못하죠. 또 계속 다치다보면 자기가 아픈 줄 모르잖아요. 그냥 계속 상처 입으면서 싸우는 거죠."

구럼비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왔던 이씨는 투쟁 과정을 몇 년씩 함께 겪으면서 점점 주민들이 눈에 들어오더란다. 그는 주민들의 아픔을 조심스레 가늠하되 이들을 약자로 보지도 않았다.

"재작년쯤이 싸움이 바닥을 칠 때쯤이었어요. '해도 안 되는구나' 그러다가 또 여론의 관심을 받고 탄력이 생긴 거죠. 그렇게 지금까지 온 거거든요. 주민 분들에겐 언젠간 우리가 이긴다는 확신이 있는 거 같아요. 그걸로 싸우는 거죠. 길게 갈 싸움이니까."

8일 오전 5시, 강 회장은 마을회관에서 혼자 방송 원고를 쓰고 있었다. 잠을 잤는지 물었다. 강 회장은 웃기만 했다. 해군기지와의 싸움을 시작한 이래 하루 서너 시간 이상을 못 잔다는 사람이었다. 곧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전날 하루 종일 싸웠던 사람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뛰어왔다. 고문이고 전쟁일지 모를 하루가 또 시작된다. 공사장 앞에 연좌한 이들 중, 한 할머니의 피로한 얼굴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5년을 싸웠는데 여기서 물러설 수 없잖아. 이길 거니까."


태그:#강정마을, #해군기지, #제주도, #미국, #구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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