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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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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제44회 국가조찬기도회가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1500여 명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국민일보>에 의하면 참석자들은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하나님, 지금 이 나라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더 큰 것을 위해 상생하려는 관용과 긍휼의 마음을 이 나라 지도자들에게 주시길 원합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조찬기도회 연설에서 야고보서 2장 15-17절을 인용해 "기독교의 나눔 정신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며 "기독교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더욱 잘 감당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새벽부터 나라를 걱정하는 기도를 하는 기독교인들은 이 나라에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일보>는 이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차분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 … 이 대통령이 힘주어 말했다. 박수와 갈채가 쏟아졌다. 이 순간만큼은 여당도 야당도, 보수도 진보도 없었다. 기도와 고백 속에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이 나라가 한 마음으로 또 한번 난관을 뚫고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장내에 가득했다."(<국민일보>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자 1500여 명 합심기도' 기사 중)

박정희, 전두환을 위해 기도했던 그들

국가조찬기도회는 박정희를 위해 김준곤(CCC·한국대학생선교회 창립)이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5공 시절에는 전두환을 여호수아로 칭송하기도 했다. 이 기도회는 소위 교단의 얼굴 마담들이 많이 참석한다. 심지어 몇몇 종교인들은 국가조찬기도회에 초청을 받으면 영광스러운 모임에 참여하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조찬기도회에서 "지금은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님이 특별히 예비하고 계실 줄 믿는다, 낮은 자세로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다"고 했단다. '소통불가' '밀어붙이기'식의 정책으로 파생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반성 없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지금의 기조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말에 1500여 명의 참석자들이 박수갈채를 보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을 살펴보면 자신의 실정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자신은 잘하고 있는데 마치 하늘에서 도와주지 않아서' 혹은 '같은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들의 기도가 부족해서' 아니면 '사사건건 반대하는 세력이 있어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는 것처럼 믿는 듯하다.

기독교는 반성의 종교요, 회개의 종교다. 동시에 세상권력과 유착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세상권력이 잘못 갈 때에는 매섭게 질책을 하고 회초리를 들어야 하는 종교다. 그런데 유신 독재 당시에는 박정희를 위해 기도하고, 5공화국 때에는 전두환을 위해 기도했다. 지금까지 역사의 정도에 크게 벗어나는 행동을 해왔다.

그 이후에도 국가조찬기도회는 철저하게 권력자들을 비호하는 기도회로 자리 잡았다. 박정희, 전두환을 찬양하고 그들의 안녕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던 그들은 이번 기도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하나님께 기름 부으심을 받은 분'이라며 아부의 정점 찍었다.

노무현-이명박의 연설... 너무 다르다

물론 노무현, 김대중 정권 때에도 국가조찬기도회는 열렸다.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제가 아직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꼭 실천하겠다고 하는 의지는 또한 간절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허락하신 질서는 자유와 평등의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부당한 침략과 지배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지키도록 국가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일본의 침탈에 맞서 나라를 되찾고자 국민들이 일어섰을 때 우리 기독교 지도자들이 앞장섰습니다. 위험과 고난을 무릅쓰고 일어섰고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국민의 자유와 인권이 유린당할 때도 기독교 지도자들은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역시 많은 고난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고귀한 용기이고 또한 거룩한 희생이었습니다."
- 2005년 37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개신교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문과 비 기독교인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비교해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이 훨씬 더 기독교적이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서 명확하게 보는 것이다. 물론, 이 당시에 참석했던 개신교계의 얼굴 마담들은 씁쓸해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지난 8일 44회째 열렸다는 국가조찬기도회는 그야말로 정교유착의 표본이라 할 수밖에 없다.

'구국의 결단'과 '정치적'의 차이는?

서경석 목사를 비롯한 기독교사회책임,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6월 10일 오후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국민촛불대회'가 열리는 청계광장 맞은편 광화문빌딩앞에서 '대학등록금의 포퓰리즘적 해결 반대 및 반값등록금 핑계삼은 제2촛불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서경석 목사를 비롯한 기독교사회책임,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6월 10일 오후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국민촛불대회'가 열리는 청계광장 맞은편 광화문빌딩앞에서 '대학등록금의 포퓰리즘적 해결 반대 및 반값등록금 핑계삼은 제2촛불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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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와 정교일치의 역사는 종교사적으로 정리해야 할 부분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소위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종교는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준엄하게 꾸짖는 이들이 자신들의 정교유착 행위에 대해서는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한 사례로 한기총을 위시한 보수 기독교 단체는 참여정부 당시 사립학교법 개정에 찬성하는 진보적 기독교인들을 두고 '정치적' 행동을 한다고 비난하면서도, 자신들의 '사학법 개정 반대 운동'은 '신앙의 결단'으로 바라본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4대강 문제나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서도 그들은 같은 논리로 공격한다. 반대하는 쪽은 정치적이며, 찬성하는 쪽은 구국의 결단 혹은 신앙의 결단이라는 논리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제 현상과 종교를 분리시킬 수도 없는 일이지만, 정치적이냐 비 정치적이냐를 나누는 기준이 이렇다 보니 그들은 정치적인, 너무도 정치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비 신앙적인 행동들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하는 것에 익숙한 듯하다.

정교유착 행사, 이제 그만 하자

그들이 신앙적인 양심을 가졌다면,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신앙적으로 준엄하게 꾸짖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마구 파괴한 죄에 대해, 가난한 자들과 나눔의 실천을 하지 못하고 대기업과 가진 자들 위주의 정책으로 일관해 온 것,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 남북 간의 갈등의 골을 깊이 만들어 평화통일의 길을 더 멀게 만든 것 등 그의 실정을 예언자 나단처럼 꾸짖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것 없이 그저 우레와 같이 손뼉이나 치고, '기름 부음을 받은 분'이라는 둥 아부하기에 여념이 없는 그런 국가조찬기도회. 감격적인 어조로 대서특필하는 <국민일보>를 보면서 기독교인으로서 느끼는 자괴감은 크다. 기독교인이 이 정도인데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은 어떨까.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조소 거리일 것이다.

조찬기도회에서 나온 이야기들, 표면상으로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말들인가? 그러나 성서는 말한다.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인사들 가운데 예수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장사치들을 내쫓은 성전 정화사건을 모르는 이 없을 터이고, 목숨을 걸고 다윗에게 "그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직언했던 나단 예언자를 모르는 이는 없을 터이다.

예수는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라'고 했다. 구약시대에도 거짓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들은 많았다. 요한계시록에도 말세에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거짓 예언자들은 늘 자신들이야말로 참 목자라고 한다는 점이다. 교계의 얼굴마담 격인 1500여 명의 참석자들, 그들의 면면을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제 국가조찬기도회 같은 정교유착적인 행사는 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태그:#국가조찬기도회, #이명박, #정교유착, #정교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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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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