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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문재인 상임고문이 만났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당내에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한 대표가 극복해 주시길 부탁한다'며 '나는 한명숙 대표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해찬 전 총리의 탈당설이 제기된 8일 밤 민주통합당에서는 4줄짜리 짤막한 서면 자료가 배포됐다. 김현 수석부대변인 명의로 발표된 이 자료는 아주 간단하지만, 상당히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포괄하고 있어 그 행간을 읽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문재인 상임고문이 '누워 있는 부지깽이마저도 일으켜 세워 일을 시키고 싶을 정도로 일이 많다'는 '정치 농번기'에 부산의 모든 선거일정을 취소하고 득달같이 상경했다는 것부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위기의식의 발로인 것.

 

며칠 전 문성근 최고위원도 개별 성명을 통해 '얽힌 실타래 절단론'을 내놓고, 당의 총체적 전략실패와 비리혐의 연루자에 대한 공천문제를 결단하라고 한명숙 대표를 압박했다. 문 최고위원은 당초 기자회견을 예고했으나, 한 대표 측의 만류로 '성명서'만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곧이어 터진 이 전 총리의 탈당설은 민주통합당의 당내 갈등을 최고조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 문 상임고문까지 급거 상경해 한명숙 대표를 직접 만났으니 어느 정도의 위기감이 반영된 것인지는 짐짓 짐작이 된다.  

 

"이 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데..."

 

문 상임고문과 문성근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3시 김해발 김포공항행 비행기를 타고 급상경했다. 4.11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당의 총체적 전략부재를 이대로 놓고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긴급히 제안된 '혁신과 통합(아래 혁통)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혁통 사무실에서 이해찬 전 총리(당 상임고문)와 이용선 전 공동대표, 이학영 전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등과 만나 당의 진로에 대해 숙의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이 당이 어떻게 만들어진 당인데…"라는 탄식과 "국민들로부터 받은 사랑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는 한탄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이날 혁통 관계자들은 최근까지도 당내 공천 불공정 시비 등에 대해 입을 꽉 다물고 말을 아꼈던 이해찬 전 총리가 지인들에게 직접적으로 당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뒤로 탈당설까지 제기돼, 우선 이 문제를 조기에 진화하고자 모였다는 게 중론이라고 전했다.   

 

한명숙 지도부의 총체적인 전략부재와 무능력한 집행라인,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공천 불공정 시비 등에 대한 심각성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고, 향후 당의 운명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마련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날 세 가지 이슈에 대해 핵심적으로 의논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 개혁공천 문제, 둘째 비리혐의 공천자들의 자진 공천반납 문제, 셋째 야권연대의 조속한 타결이다. 임총석 총장의 사퇴와 자진 공천반납 문제에 대해서도 대체로 의견을 하나로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중 가장 심각하게 논의한 대목은 공천문제다. 혁신과 통합 등 시민사회세력은 지난해 '시민통합당'이라는 이름으로 민주통합당과 합당했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강조했던 바는 '지분 나누기 없는 통합'이었다.

 

'혁신과 통합'의 핵심 관계자는 "우리가 시민통합당을 만들어 민주당과 합당할 때 그래도 정치인데 어느 정도의 지분을 얘기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변의 조언을 전달했지만 이해찬 전 총리가 단칼에 잘랐다"며 "우리가 지금 통합하는 것은 국민에게 잘 보여 총선에서 의석을 더 많이 따기 위한 게 아니라 진정성 있는 통합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고 전했다.

 

1987년 양김 분열 이후 흩어졌던 민주진보세력이 다시 하나로 뭉쳐 2013년 체제를 완성하고 복지국가의 길로 가는 중대 길목에서 '지분이나 서로 나눠먹는 협상'을 하면 그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보겠느냐는 비판이었다는 게다.

 

흥행대박, 개혁공천 기대했는데 '묻지마 선거인단 모집'에 자살까지

 

이들은 옛 민주당 출신이든 시민사회 출신이든 당의 전략적 판단으로 정치신인들을 대거 발굴하고, 청년비례대표와 비례대표 경선 등을 통해 소위 '흥행대박'을 터뜨려 국민과 함께하는 '개혁공천'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물거품으로 끝났다. 청년비례대표 경선은 당내에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 어떤 인물들이 경쟁력 있는 후보라는 평가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당내에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니 언론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비례대표 경선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생략되는 분위기다.

 

'혁신과 통합' 측이 밀었던 시민배심원단의 정책검증 절차도 무시됐다. 정치신인들에게 최소한 정견을 발표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그걸 본 유권자들이 인물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가 깔렸지만 이 역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잘렸다.

 

결국 후보들은 시민참여경선에만 목숨을 걸고 뛰었고, '묻지마 선거인단 모집'은 과열경쟁으로 치달아 끝내 광주 동구에선 자살사건까지 벌어졌다. 이 때문에 "도대체 무엇을 위한 국민참여경선인가"라는 비판이 이어졌고 보수언론은 애꿎은 '모바일 민주주의'만 비난했다.     

 

이들은 이처럼 민주통합당이 총체적 난국에 처하게 된 것은 전략적 사고가 빠진 공천문제탓이라고 보았다. 초반에 지나치게 많은 전·현직 486의원들을 단수 공천했고, 비리혐의 전력자에 대해서도 형평성이 어긋나게 공천했다. 누구랑 친하면 살고, 누구랑 안 친하면 죽는 처절한 '파워게임'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날마다 분풀이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그런데도 문제가 되는 비리 혐의 관계자들의 자진공천 반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임종석 총장은 9일 오전 총선 후보직과 사무총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지만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화영 전 의원은 일언반구 말이 없다. 이들의 집단적 대국민 사과와 공천반납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도 이들은 뜻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총장-공심위-총선기획단 3권분립이 당의 운명을 비관적으로

 

'혁신과 통합'의 또 다른 관계자는 "원칙과 기준이 무너진 민주통합당의 공천문제에 대해 심각한 논의가 진행됐다"며 "비리혐의 연루자들에 대한 문제들이 집단적으로 해결돼야 국민들이 흡족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야권연대의 조속한 타결에 대해서도 필요성을 공감했다. 더 이상 서로 밀고 당기기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 허벅지 살을 베어내는 심정으로 야권연대 전략지역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혁통의 관계자는 "민주통합당이 진심을 다해 돕는다면 그 누구라도 당선될 수 있다"며 "문제는 진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제까지 '되겠어?' 탓만 할 테냐"며 "그러다가 민주진보가 공멸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전운이 감돌았던 이날 혁통모임에서 제기된 수많은 문제들은 문재인 상임고문이 모두 싸안고 같은 날 저녁 한명숙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전달됐다. 문 상임고문은 이런 문제들을 전달한 자리에서 "당내에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한 대표가 극복해 주시길 부탁한다"며 "나는 한명숙 대표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이 전해지자 혁통 내부에서는 "한 대표가 우리의 문제의식을 수락하기로 한 것 같다"는 긍정적 반응과 "과도하게 압축한 것을 보니 잘 마무리가 안 된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 반응이 엇갈렸다.

 

문제는 9일 오전 본격화 할 야권연대 협상 결과와 향후 당의 운명에 대한 한명숙 대표의 결단이다.

 

그동안 대표는 당을 장악하지 못했고, 중요 정보의 길목은 486 정치인들이 차단하고 있으며, 총선 기획단은 무능력하게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다는 당의 비관적 '진단서'에 과연 한 대표가 어떤 처방전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혁통 내부에서는 사무총장-총선기획단-공천심사위가 삼권분립하면서 민주통합당의 운명이 매우 비관적으로 변한 것이 현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표는 무엇으로 이 난맥상을 돌파할 것인가.


태그:#한명숙, #문재인, #문성근, #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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