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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다섯 포의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던 날들이 있었더랬다. 내 몸은 나무처럼 말라갔고, 눈물샘은 닳아갔다. 그렇게 비자발적인 휴학이 시작되었다.

한 학기를 마치자마자 난 여행을 시작하였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두발로 꾹꾹 밟아가며 자아 찾기를 떠난 것이다. 국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꼭 이 곳에서 살아남으리라'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땅은 내가 차마 뒤돌아서기에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으므로, 꼭 살아남아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친척들과 여행을 했고, 어이없을 정도로 너무 빨리 여름은 내 곁을 지나갔다.

여름은 지나가고, 학기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학교는 쉬지만, '무언가를 해야 겠다'라는 생각, 그래서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휴학하는 동안 적어도 이력서에 써 넣을 경력은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처음엔 회사를 단지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경력을 쌓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회사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인간관계, 회사에서 취해야 하는 태도, 회사 안의 작은 사회를 경험할 수 있었고, 또한 나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배웠다. 모자란 나를 회사에서 일 할 수 있게 해주신 데에 대한 감사였다.

회사 일만으로는 무언가 성에 차지 않았는지, 다른 일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이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였는데, 내 글을 기고하고, 어느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내게 큰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생활에서 느꼈던 작은 것들을 썼지만, 곧 전공을 살려 책에 관한 내용을 쓰게 되었고, 기사 청탁도 들어왔다.

주말에는 독서모임에 나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마지막 달에는 영어학원에도 다녔다. 틈틈히 단쿠키(학교 커뮤니티)에 칼럼도 올리고, 블로그에도 계속 포스팅을 했다.

이렇게 저렇게 빈 틈 없이 8개월간의 길면서도 짧은 휴학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은 수도 없이 많다. 단지 회사와 기자, 투잡을 하고, 일주일에 세권 이상의 독서를 한 것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떻게 꿈을 꾸고, 꿈에 가까워지는지, 어떻게 현실을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해, 수도 없이 많은 '어떻게'의 해답을 희미하게나마 찾았다. 산다는 건 여행과도 같아 꾹꾹 발로 밟아 곧 사라질 발자국들을 수도 없이 만드는 것은 아닌지.

물론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첫째로는 내 손으로 놓아버린 회사의 승진기회이다. 사무실에서 중요한 자리에 갑자기 공석이 나서, 사장님께서 나를 그 자리에 앉히려고 하셨지만, 내게는 너무나 생소하고 과분한 자리인 것 같아 거절했다. 알고 보니 딱히 어려운 일도 없는 자리였건만 너무 겁을 먹고 물러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새삼스러운 아쉬움이 남는다.

둘째로는 처음부터 기사 연재와 징계이다. 내가 썼던 기사 중 하나가 문제가 있어 징계를 받게 되었고, 체계적인 연재를 시작해야 한다는 따끔한 지적을 받았다. 그래도 나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는 단쿠키 운영진으로서 한 일이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다. 운영진이라는 자리를 맡았으면, 그에 응당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기다려 준 선배들께 감사하다.

매일 조금씩 변하는 출근 하는 길의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반년동안 다녔던 회사를 오늘로 끝낸다.
 매일 조금씩 변하는 출근 하는 길의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반년동안 다녔던 회사를 오늘로 끝낸다.
ⓒ 권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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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은 회사에 출근하는 마지막 날이다. 매일 조금씩 변하는 출근 하는 길의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반년동안 다녔던 회사를 오늘로 끝낸다니 아쉬움에 눈물이 핑 돈다.
회사는 내게 책 <위저드 베이커리>의 빵집과 같은 곳이었다. 주인공이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에 따뜻하게 감싸준 곳이 빵집이듯, 오갈 데 없는 나를 정착하게 해 준 곳은 바로 회사였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가야 할 곳이 회사가 아니라 학교라는 걸 잘 안다.

책의 마지막은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운 주인공이 시간을 되돌리지만 모든 기억을 지우는 쿠키를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 Y의 경우와 N의 경우로 나누어 독자가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나는 책을 읽었을 때처럼 내 인생에서도 N의 경우를 택한다. 시간을 되돌리지도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않으리라. 소중한 추억은 그런대로, 아픈 기억은 그런대로 모두 다 안고 갈 것이다. 이것을 용기라 칭해도 될까.

학교에 돌아가지만, 이번 휴학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번에는 나의 가능성을 알아보았다면, 다음에 언젠가 또 휴학을 하게 된다면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 연재기사를 모아 책을 출판한다든지, 영어 실력을 높여 유학을 간다든지. 내가 하고 싶은 일들과 할 수 있는 과정들은 정말 많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페달을 하나씩 밟아나가야 되겠지. 정말 내게는 벼락과도 같은 축복이었던 이번 휴학은 이렇게 끝나지만, 앞으로의 행복은 물이 한지에 스며들듯 조금씩 찾아올 것이다.


태그:#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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