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0년 6.25전쟁 60주년 서울수복 기념 및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열린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특공무술을 선보이고 있다.(자료사진)
 2010년 6.25전쟁 60주년 서울수복 기념 및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열린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특공무술을 선보이고 있다.(자료사진)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처음에는 일선 부대에서의 해프닝일 거라 생각했다. 지난달 한 부대에서 내려온 '스마트폰의 종북 애플리케이션 삭제 강조 지시'. 그 유명한 <나는 꼼수다>, 촛불 집회 위치를 찾아준다는 '스마트촛불", 이름 그대로인 '가카 퇴임일 카운터' 등 8개의 앱이 종북찬양 앱으로 지정되었다. 만날 불온이네, 친북 혹은 종북이네 붙여대는 것도 우스웠지만, 안 그래도 유명한 <나꼼수>를 왜 이렇게 띄워주나 싶었다. 2008년 국방부가 불온도서 지정한 다음, 그 책들 없어서 못 팔지 않았나.

그런데 해프닝이 아니었다. 일선 부대의 과도한 조치라며 짐짓 우려를 표할 줄 알았던 국방부는 "공식 지시사항은 아니었지만 적절한 조치"라 두둔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팔을 걷어붙였다. 논란이 거세지자 국방부 장관은 지난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직접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 군통수권자를 비방하는 내용의 앱은 군의 정신전력을 좀"먹는다며 앱 삭제 조치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나꼼수>와 싸우는 대한민국 군대

다음날인 18일, 국방부는 아예 공식 지침을 내린다. 하사관 이상 간부들에게 정부 비방 앱, 친북 앱의 문제점을 교육한 뒤 스마트폰에서 자진 삭제하도록 유도하기로 하겠다는 것이다. 자진 삭제라고 표현했지만, 군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전 간부의 스마트폰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2011년, 군사규모 세계 10위권의 대한민국 군대에서 '공식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국방부 장관에게 먼저 하나만 묻자. 군통수권자를 비방하는 것이 군의 정신전력을 좀먹는다고 했는데, 그럼 신문은 어떻게 보나? 당신 말대로 하면, 노무현 정권 때 군통수권자를 갈기갈기 씹어댔던 <조선><중앙><동아> 신문을 군 간부들이 모두 절독했어야 옳다. 군인 생활 오래 하셨는데, 본인은 그렇게 하셨는가? 언론의 존재이유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다. 뉴스를 보다가도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이 나오면 눈을 감고, 귀를 막으셨는가?

김관진 국방부 장관. (자료사진)
 김관진 국방부 장관. (자료사진)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국방부 대변인에게 묻자. 지난 7일 국방부 브리핑 때 걸작인 말을 하셨다. "그런 앱을 보면 결국 자기도 모르게 동조하게 돼 있다." 당신 말대로라면, 군인들은 군통수권자를 옹호하는 친정권적인 것만 봐야한다. 군인이니까. 그럼 모두들 '자기도 모르게' 친정권적이 되지 않겠나? 그건 괜찮나? 군인도 투표라는 것을 하는데, 당신 말대로라면 굳이 투표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안을 진지하게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얼까? 군인의 정신전력 강화를 위해? <한겨레>에서 인터뷰한 6군단 예하 6포병여단 소속의 한 부사관이 고백하는 검열의 실상은 이러했다.

"휴대폰 검열 받은 뒤 서류에 서명하는데, 아무리 군인이라지만 너무 치욕스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중략) '위'에서는 아마 <나꼼수>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못 듣게 하는 것 같은데, 그런 조치가 더 정치적인 행위임을 알았으면 한다."

국방부 장관의 트윗과 국방부의 공식 지침이 내려지자, 이 검열 '면허장'을 받은 부대들의 행태는 더 가관이었다. 앱 삭제 공문을 언론에 공개한 부사관을 색출해내겠다고 6포병 여단의 모든 간부(장교 및 부사관)에게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제출받았다. 본인만이 내역을 조회할 수 있기에 혹한기 훈련 중인 간부 수백 명을 버스에 태워 의정부와 동두천 KT지점으로 실어 날랐단다. 스마트폰 자체도 수거해 삭제된 파일까지 복구하고, 카카오톡과 트위터까지 뒤졌다.

<한겨레>는 이 색출과정을 경험한 간부 역시 인터뷰했는데, 검사 과정에서 개인 동의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자발적이라 볼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그는 일반 공문 유출은 기껏해야 경징계에 불과한데 전 간부의 휴대전화기를 검열하는 것은 코미디라 한탄했다. 군인들은 '정신전력' 강화가 아니라 '치욕감'에 휩싸이고 있다.

지켜야 할 대한민국은 이명박이 아니다

국방부 장관은 앱 삭제 조치를 옹호하며 트위터에 "국군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수호자"라는 거창한 문장까지 더했다. 이 문장 자체를 비판적으로 볼 여지도 있지만, 최대한 보수적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국군이 지키는 '대한민국'은 '정권'이 아니다.

헌법적 가치 아래에서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고, 다양한 정당들이 경쟁하고 비판하면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틀, 이게 지켜야 할 대한민국이다.

군대는 명령이 중요하기에 명령의 정점인 군통수권자를 비난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군통수권자는 인격화된 이명박이 아니라, 헌법적 기구로서의 대통령이다. 이건 반드시 분리해야 할 지점이다.

박정희 경호실장 차지철이 그렇게 외치던, "각하는 곧 국가다"라는 말이 독재 권력의 상징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헌법적 기구에서 내려오는 정당하고 합법적 명령을 군대가 따르면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인이 BBK 실소유주인지 아닌지는 군인의 명령수행과 별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군인은 해당 명령이 합법적인지, 정당한지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군통수권자에게 나오는 명령이라 하더라도, 그 명령의 권위는 정당성과 합법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원칙 없는 검열이 허용되는 것은 오히려 이런 능력을 짓밟는 결과를 낳는다. '까라면 까'는 시대의 군대가 벌였던 참상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대한민국 군대 현실을 고발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대한민국 군대 현실을 고발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 에이앤디 픽쳐스

관련사진보기


군과 민간 사이를 연구하는 민군관계론에서 주요한 명제 중 하나가 "지키는 자를 누가 지킬 것인가"이다. 군대가 사회를 지킨다고 하지만, 사실 많은 역사에서 군대는 쿠테타 같은 방식으로 사회를 차지했기에, 그 지키는 자를 어떻게 감시할 것인지가 주요한 화두였다. 쿠테타 가능성이 현격하게 낮아진 지금 상황에서도 이 명제는 유효하다. 전쟁의 논리로 작동하는 군대에서 어떻게 인권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하기 위해서다.

지키는 자를 누가 지킬 것인가?

국방부는, 군인은 특수한 신분이기에 일정한 기본권 제약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쟁을 수행하기 때문에 적과 관련된 내용을 차단해야 하고, 명령수행의 기강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역시 인권의 관점을 간과할 수 없다. '까라면 까'는 것이 군인인 시대에서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의 군인으로 조금씩 발전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밀자료, 군사자료의 유출이나 노골적인 친북찬양 매체 관련이라면 제약의 필요성이 인정되겠지만, 이 사안은 전혀 다르다. 요즘 이슈가 되는 사법부의 케이스처럼 군 간부가 SNS에 "가카빅엿"같은 글을 올린 것도 아니다(물론 이 경우도 제한의 범위와 정당성을 엄격히 따져야겠지만). 이미 사회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듣고, 이용하는 앱을 다운받고, 청취하는 지극히 사적인 행위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앱을 다운받고, 청취하는 것은 그 어떤 외부적 실현도, 표현도 없는 내심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 내심의 영역은 정신적 자유권으로서, 다원성을 핵심적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아주 두텁게 보호되어야 한다. 설령, 이 제약이 국가의 안보보장이나 군인의 정신전력 강화에 일정한 도움이 됐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인권의 논리가 전쟁의 논리와 공존하는 방식이다.

인권의 논리가 군대 속에서 새겨지는 과정에는 외부의 개입과 감시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8년 불온서적과 관련된 헌법소원에서 군대의 손을 들어주었다. 시민으로서 기본 권리인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군법무관들은 파면되었고, 이 파면 역시 정당하다 결정되었다. 비참한 일이었다. 부당한 명령에 합법적 권리인 헌번소원을 제기했던 이들은 쫓겨났고, 전 국민이 비웃었던 군대 내 불온서적 반입 금지라는 명령은 정당하다고 결정된 것이다.

불온서적 때 해결하지 못한 비극, 이제는 끝내야

이번 앱 삭제 지시는 이 불온서적의 비참함에서 비롯되었다. 국방부가 앱 삭제 근거로 내세우는 군인 복무규율 16조 2항은 "군인은 불온 유인물·도서·도화 기타 표현물을 제작·복사·소지·운반·전파 또는 취득해서는 안된다"이다. 불온서적 때와 같은 근거 조항이다. 군인권 전문가들은 이 조항을 국가보안법에 비유한다. 그 무엇이든 '불온'이라는 이름으로 금지하고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대표적 독소조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기인한 검열과 통제가 정당하다며 백지수표를 군부에 넘겨주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불온서적 마케팅'.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불온서적 마케팅'.
ⓒ 알라딘

관련사진보기


이번에는 '불온'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이름마저 버렸다. 어차피 실체도 없는 '불온'이었지만, 이제는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정부를 비방하면, 이명박 대통령 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군인복무규율 16조 2항을 내세우며 대한민국 군대는 나꼼수와 싸우고 있다.

지키는 자를 감시하지 않으면 어떻게 폭주할지 모른다. 2011년 9월, 국방부는 종북세력의 실체 인식 정훈교육' 자료에서 미군산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를 "종북세력이 벌인 일"이라고 했다. 이번 앱 삭제 공문과 함께 내려온 내용 중 하나는 선거에 대한 군 간부들의 SNS 통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 SNS 통제라는 것이 이정렬 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반어적으로 남긴 "한미FTA야말로 구국의 결정입니다"와 같은 글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님은 뻔한 일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앱 삭제 지시를 비판하고, 철회시키는 일. 군인복무규율을 군인인권법으로 바꾸는 일.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불온서적 금지의 위헌성을 제기하며 커다란 불이익을 감수했던, 파면당한 군법무관들을 기억하는 일. 군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지키는 자를 감시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들이다.


태그:#불온서적, #국방부, #종북앱, #군인복무규율, #나꼼수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