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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녹색연합은 지난 1월 10일∼15일까지 '청소년일본환경연수'를 진행했습니다. 앞으로 함께 일본을 방문했던 청소년과 대전충남녹색연합 실무자들이 한일역사문제, 에너지문제, 원전, 환경 교육센터 등을 주제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금각사  금각사의 모습, 물에 비친 모습도 아름답다.
▲ 금각사 금각사의 모습, 물에 비친 모습도 아름답다.
ⓒ 전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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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0일, 일본으로 가는 날,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약 2시간 후 오사카 공항에 도착했다. 오사카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는 정신이 없었다. 처음 밟는 출국 수속이다보니 아무래도 낯설었는지 정신 차릴 경황이 없었다. 바로 짐을 풀고 오사카에 있는 기요미즈데라(청수사·淸水寺)를 방문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일본에는 우리나라 못지않게 사찰이 많았다. 그 다음날, 우리나라에도 잘알려진 긴카쿠지(금각사·金閣寺)에 방문했다. 사진으로 금각사를 볼 때는 '이게 정말 금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명불허전이라고, 과연 금각사는 그 자체로도 아름다웠다. 심지어 비치는 그림자도 아름다웠다.

그 후,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교에 들렀다. 리츠메이칸 대학에는 리츠메이칸 평화박물관이 있었는데, 그 박물관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박물관에는 일본이 일제시절 당시 저질러졌던 만행이 소개돼 있었다. 박물관을 한바퀴 돌고난 후, 함께 동행했던 사무처장님과 박물관에 대해 약간의 대화를 나눴다. 그 때, 사무처장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이 박물관은 일본이 중국에 대해 저지른 만행들은 자세히 소개돼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 한 만행 등은 제대로 소개돼 있지 않다." 

정말 그 말을 듣고 크게 깨우쳤다. '일본은 아직 동아시아의 국가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정말로 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것들을 보니 전부다 중국, 서양 등 현재 국제적으로 강한 국력을 자랑하고있는 나라들에 대해서만 자세히 소개돼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에게 가했던 행동은 자세히 소개돼 있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리츠메이칸 평화박물관을 떠났다.

그 후, 미야코 에코로지 센터에 방문, 일본에서 미리 시행한 여러 가지 환경친화적 건물들을 보고, 미야코 아젠다를 방문해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환경 연수 셋째 날인 1월 12일. 이날은 환경연수 중 가장 바쁜 날이었다. 오전에는 친환경주택 'NEXT 21'을 봤다. 'NEXT 21'에는 여러 집 모양들이 있었는데, 기억에 깊이 남은 것은 분리된 주택이었다. 원래 한 집이었던 주택을 두 집으로 나눌 수 있는 자유분방한 주택. 때로는 한 집으로 다시 합칠 수 있는 편리한 주택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원래는 일반 가정에서도 이러한 주택을 만들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지만, 일반가정에 보급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결국 실험용으로 바뀌었다는 것. 하지만, 미래세대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여러 설비들을 실험하고, 언젠가 상용화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에 대해서 한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넷째 날은, 아침 일찍 센난지역으로 이동해 센난지역 석면 피해자 분들과 면담을 할 수 있었다. 다른 문제와 달리, 센난 석면문제는 더욱 더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일본에서는 진작에 그 실태가 밝혀져 현재 소송단계까지 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근래에 들어서야 석면의 피해규모 등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 센난 석면 피해자분들과의 면담을 마지막으로, 일본에서의 환경 관련 연수는 끝났다.

이제 남은 하루 반 정도는, 일본 역사, 문화에 관련한 체험 시간이 있었다. 센난 지역에서 우리는 바로 아스카 지역으로 이동했다. 아스카 지역에서는 백제 출신이라는 설도 있는 소가노 우마코(소아마자)가 지은 아스카데라와, 이시타부이 고분과 다카마쓰즈카 고분을 보았다. 특히 다카마쓰즈카 고분에서는 평소 국사책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다카마쓰 고분벽화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벽화를 보니 가슴이 쓰라린다

다카마쓰 고분벽화 다카마쓰 고분벽화 사진. 아직까지 색채가 남아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 다카마쓰 고분벽화 다카마쓰 고분벽화 사진. 아직까지 색채가 남아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 다카마쓰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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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마쓰 고분벽화는 옛 고구려 지역에서 발견된 벽화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바로 주름치마 부분이다. 주름치마 부분이 옛 고구려 지역에서 발견된 벽화와 매우 유사하다. 바로 고구려와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왠지 이러한 벽화를 보니 가슴 한쪽이 쓰라린다. 뭐 때문일까. 예전엔 서로 교류가 활발하고 상호 우호적인 관계로 지냈던 한일 양국이 현재에 와서는 아주 차가운 관계로 변했다. 정말 가슴이 아픈 일이다.

다섯째 날은 문화 체험의 날이었다. 오전엔 오사카부립 사야마이케 박물관을 방문했다. 고대 일본의 저수지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박물관인데, 특히 박물관을 관람하는 관광객들에게 보기 좋게 구조를 설치해 놓은 것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호류사와 도다이지(동대사·東大寺)를 방문했다.

호류사도 다카마쓰 고분벽화와 같이 고구려와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문화 유적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담징이 그린 금당벽화는 1950년대 소실됐다고 한다.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나라에 있는 도다이지는 정말로 컸다. 멀리서 카메라를 들고 비춰 봐도 한 크기로 안들어 올만큼 컸다.

절 안으로 들어가니 더욱 충격이었다. 그 안엔 세계에서 가장 큰 비로나자불이 있었다. 차마 말로 표현 할수 없을만큼 컸다. 도다이지를 마지막으로, 5박 6일 동안의 청소년일본환경연수 일정은 끝이 났다. 너무 많은 걸 봐서 이 기사로 그 느낌을 모두 전하지 못한다는 것이 매우 아쉽다.

일본에서의 즐거운 5박 6일을 보내고 난 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과연 일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어디일까? 뭐니 뭐니 해도 리츠메이칸 평화박물관이었다. 미래의 사학도를 꿈꾸는 나로서는 평화박물관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하지만, 아직도 일본정부와 국민들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들리는 말로는 리츠메이칸 평화박물관이 일본에서 가장 잘 조성되어있는 평화박물관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더욱 더 아쉬웠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과거 2000년을 돌아보아도 몇몇 시기를 빼고는 우호관계였다.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과, 1910년 부터 1945년 까지의 약 50년 시기를 제외하면 한일 양국은 오랫동안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1945년 일제가 패망한 후, 지금까지 한일 양국은 관계가 그닥 좋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에서 교훈 얻어야

 야스쿠니신사
 야스쿠니신사
ⓒ 조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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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이유는 바로 '한국과 일본의 과거 청산 실패'였다. 한국은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져서 친일파 청산에 나섰으나, 국내 여러 문제로 인해 반민특위는 해체되고 만다.

그리고 일본도 마찬가지로, 패망 후 미군정이 들어서는데, 미군정도 첫 번째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전범들을 극동군사재판소에 세운다. 그리고 실제로 사형을 선고받은 전범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민족의 비극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일본의 전범들은 일본 극우주의자들과 섞였다. 결국, 일본에는 극우정당 자민당 38년 장기집권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결국 한일 두 나라 모두 일제시대 때 민족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세력들이 고스란히 집권층으로 흡수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행동들은 현재 한국과 일본의 독도관련 문제와,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열도(댜오위댜오) 문제, 러시아와 일본의 사할린 영토분쟁 등 여러 분쟁에 휘말리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안좋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일제치하 36년 동안 강제 징용, 징병, 공출 등 여러 수단으로 착취를 당했고, 중국인들은 난징 학살 등 일제시대 때 일제에 의해 행해졌다. 하지만, 일본은 이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일본이 아직까지 옛 '일본제국' 시대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국영토를 지키는 자위대는 군력이 거의 세계 몇 위 안에 들 정도로 강하다. 자국의 영토만을 지키는데 그런 군대가 필요할까? 이러한 행동은 주위 국가들의 경계와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군사력을 늘리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한중일은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 전범들을 잡아서 무거운 형을 내렸고, 나치전범에게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음으로써 나치의 잔재를 말끔이 씻어내고 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프랑스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게 점령당했을 때, 독일에게 빌붙어서 협력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사형시켰다. 한중일도 이러한 경우를 본보기로 삼아 과거사 청산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두 번째 해결책은 한중일 공동 역사서 편찬이다. 이리저리 뒤얽혀 있는 삼국의 역사를 하나의 역사책으로 공정하게 정리하는 것만이 동북아시아의 단합,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이바지할 것이다.

일본에 가서 정말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다. 하지만, 나는 특히 역사부문에 관심을 많이 뒀다. 한일 간의 해묵은 앙금은 언젠가 풀릴 것이다. 다만 그 앙금이 양국간의 대화와 타협 등으로 끝날지, 아니면 또다시 새로운 앙금을 만들지는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전종훈 기자는 고등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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