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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인사기록카드도 작성하지 못하고 '해고' 당했다. 빈 인사기록카드처럼 하얀 백수가 됐다.
▲ 인사기록카드 미처 인사기록카드도 작성하지 못하고 '해고' 당했다. 빈 인사기록카드처럼 하얀 백수가 됐다.
ⓒ 박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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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나는 사장실로 불려 가 최종 해고를 통보받았다. 사장은 "정확하게는 수습기자를 채용하지 않을 것을 결정한 것이므로 '해고'가 아니라 '해촉'"이라고 정정까지 해줬다. 지역 일간지에 입사한 지 3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난 무슨 실수를 한 것인지 되짚어봤지만,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더 정확하게는 그 실수들이 왜 '실수'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실수①] 수습 따위가 연봉계약을 미루는 건 건방진 일

나는 입사 첫날을 제외하고 3주 동안 본사로 출근해 교육을 받을 것을 지시받았다. 덕분에 3주 동안 수원에서 인천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다. 사회부에 배정받아 경찰서에 출입하는 선배 기자를 수행해야 했던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첫차를 탔다. 

새벽의 찬바람을 맞으며 수원에서 인천까지 출근해 교육을 받는 고된 일정이 거의 끝나가던 1월 16일. 경영지원실 과장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연봉계약'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저런 설명을 간략히 요약하면, 그 언론사 수습기자의 연봉에 대한 회사방침은 연봉 1천800만 원(세후 월 120여만 원)으로 수습 기간 6개월 동안은 이 임금의 70%인 월 100여만  원의 임금이 지급된다.

지역 언론사에 입사하기 전, 월 130만 원과 부수입에도 생활은 빠듯했다. 내겐 부양해야 할 아내와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 수습기간 6개월 동안 그 임금을 받고 버텨낼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또한, 이런 중대한 사안을 혼자서 결정한 후 아내에게 통보할 수도 없었다. 결국 "아내와 상의해보고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일 뒤에 재논의하기로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실수②] 윗사람이 잘못이라 하면 즉시 사과해야 한다

"가볍게 야단치고 끝날 일이었죠. 그런데 그 친구 분위기가 이상한 거예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조직이란 게 무업니까? 가족이란 게 무업니까? '오야'가 누군가에게 잘못했다고 하면 실수한 사람은 나와야 되는 거죠"
▲ 영화 <달콤한 인생> "그리 대단한 실수도 아니었습니다" "가볍게 야단치고 끝날 일이었죠. 그런데 그 친구 분위기가 이상한 거예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조직이란 게 무업니까? 가족이란 게 무업니까? '오야'가 누군가에게 잘못했다고 하면 실수한 사람은 나와야 되는 거죠"
ⓒ 영화사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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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이는 논의 끝에 어쩔 수 없이 시댁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약속한 1월 19일이 됐다. 설 연휴 직전이었던 그날은 인천으로 출근하는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연봉계약을 위해 경영지원실로 갔더니 난데없이 상무와 면담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노동조합으로부터 공문이 왔기 때문이란다. 그 내용은 수습기자들에게 사규에 없는 연봉제를 강요하는 사측에 대한 경고였다. 상무이사는 나를 포함한 몇몇 수습기자들이 노동조합의 방침에 따라 연봉계약을 거부하고 있다고 봤고, 임원진들은 이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노사 간 대립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재정난으로 15억 원 이상 체납 임금이 쌓인 열악한 회사라는 것도 말이다. 그러나 딱히 그런 이유 때문에 연봉계약을 미룬 것이 아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자 당황스러웠다. 겨우 '수습기자 따위'인 나는 호봉제를 주장하며 연봉계약을 미룬 것이 아니고, 그런 주장을 한 적도 없었다는 것을 해명해야 했다.

그럼에도 상무이사는 "사장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했으니 자네가 이를 해명하지 않으면 연봉계약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며  사장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전했다. 나는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4일, 본사로 출근을 할 테니 그때 사장에게 해명해 오해를 풀겠다고 약속했고, 25일에 재논의하자는 대답을 듣고 사무실을 나왔다.

[실수③] '돈과 빽'은 만고불변의 진리인데

경영지원실을 나오고 퇴근하려는 나를 이번엔 편집국장이 방으로 불렀다. 임원진 회의에서 이번 수습기자들에 대한 사안이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건 없고 오해가 있는 모양이니 풀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편집국장은 이런저런 말들로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문제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암시했다. 자신이 사적으론 나의 어머니와 대학 동기라며 자신이 사장에게 전화 한 통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감히' 이를 사양했다.

마녀는 마녀가 아니지만 사냥 당한다

자신을 죽이려 한 보스에게 우리는 이렇게 물어선 안 된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엉뚱한 대답을 듣고 싶은게 아니라면...
▲ 영화 <달콤한 인생> 중. "저한테 왜 그랬어요?" 자신을 죽이려 한 보스에게 우리는 이렇게 물어선 안 된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엉뚱한 대답을 듣고 싶은게 아니라면...
ⓒ 영화사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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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1월 24일, 그제야 나는 그동안 엄청난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이날 사장은 나를 해고할 것을 임원진 회의에서 결정했다는 것을 통보했다. 이유는 한마디로 "수습기자가 건방지게 연봉을 따지고, 노동조합 지시로 호봉제를 주장했다"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의 지시를 받은 적도 없었고, 연봉계약을 미룬 것은 아내와 상의하기 위해서'라는 내 해명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틀 뒤 임원진 회의가 있고 그때 이 문제를 재논의해 보겠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테니 집에 돌아가서 대기하라"는 대답을 듣고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집에 틀어박혀 이틀간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내게 분명해진 것이 있었다. 사측과 노동조합 사이의 대결에서 중간에 끼인 속죄양이 바로 나였다는 것을 말이다. 노동조합의 '경고'에 심사가 불편해진 사측은 '반격'해야 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손쉬운 카드가 바로 나였다. 대학 생활 내내 그리 살아와 노동조합과 관련한 빌미를 가져다 붙이기에도 적당하고, 회사 내에 지연이나 학연이 없어 해고해도 큰 탈이 나지 않을 녀석이 바로 나였던 것 같다. 나는 이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실수를 통해 세상을 배우다

기자가 될 뻔했던 당시 하루하루 빼곡이 채웠던 활동일지. 한때 내가 기자가 될 뻔 했다는 거의 유일한 물증이다. 영혼 없는 기자가 되지 않아 다행이지만 돈 없는 백수가 돼 웃을 수는 없다.
▲ 수습기자 활동 일지 기자가 될 뻔했던 당시 하루하루 빼곡이 채웠던 활동일지. 한때 내가 기자가 될 뻔 했다는 거의 유일한 물증이다. 영혼 없는 기자가 되지 않아 다행이지만 돈 없는 백수가 돼 웃을 수는 없다.
ⓒ 박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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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 수차례 망설여야 했다. 첫 번째 이유는 호봉제를 주장한 수습기자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사측이 해고의 빌미로 삼은 가장 핵심 사안이지만, 나는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해고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부당하게 해고당하는 나를 어떤 방식으로도 지켜주지 못한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비판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해고당한 이유가 노동조합의 공문 때문이기도 한 점에서 나는 노동조합을 비난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노동조합을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종방어선인 노동조합을 등 뒤에서 겨누는 꼴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최종방어선에 수습기자 따위는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을 비판할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이유. 해고된 수습기자 따위가 언론 기업의 만행을 폭로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는 무력감이었다. 수습이라는 기간은 법적으로 노동자로서 보호를 받지 못하니 사측은 법적으론 아무런 책임도 없다. 수습이라는 특수한 고용형태에 대한 문제를 한 사업장을 넘어 전체 사회와 정치적 문제로 부각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와 아이를 둔 실직자인 나의 능력을 한참 벗어난 일이었다.

실수를 인정하고 철들라는 세상에게

우리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 사회로부터 '철들 것'을 강요받는다. 자신이 이 거대한 사회 속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쓸모없는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주입받는 것이다. 결국, 그 어떤 부당함에도 눈치있게 입 다물고 순응하는 인간형으로 만들어진다. 우리는 또한 그런 인간을 두고 '철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철이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폭로를 통해 그 나물에 그 밥끼리 지지고 볶는다는 언론 시장에 다시는 취직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게 조금은 더 철들지 않고 살아도 된다는 과분한 응원들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나는 이 세상이 실수라 말하는 것들을 남발하며 살아왔다. 그런 내게 이 세상에 서 있을 만한 곳이 점차 없어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내가 이 세상 어디에도 서 있을 수 없게 될 그날엔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도 휘청거릴 것임이 분명하다. 당신이 아무리 실수하려 하지 않아도 언젠가 세상은 당신에게 실수했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세상이 실수라고 말하는 것 중 상당수가 실수가 아님을 말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다. 이것이 중대한 실수인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실수의 책임을 지운 자들이야말로 진짜 실수를 하고 있음을 고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고당한 수습기자 따위에겐 너무 버거운 일이다.

지금도 난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http://ppoppogle.tistory.com)에도 중복 게재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내 인생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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