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목발을 한 초라한 행색의 걸인이 화려한 뉴욕 5번가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결국 가짜인 '보거스 걸인'으로 드러났다.
▲ [장면 1] 영락없는 걸인 목발을 한 초라한 행색의 걸인이 화려한 뉴욕 5번가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결국 가짜인 '보거스 걸인'으로 드러났다.
ⓒ <인사이드 에디션>

관련사진보기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God Bless You!)".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에게 축복하는 보거스 걸인.
▲ [장면 2] 걸인의 얼굴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God Bless You!)".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에게 축복하는 보거스 걸인.
ⓒ <인사이드 에디션>

관련사진보기


화려한 변신. 보거스 걸인이 흰색 점퍼, 디스트로이드 진, 어그부츠를 신은 멋쟁이가 되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 [장면 3] 걸인은 어디 가고 화려한 변신. 보거스 걸인이 흰색 점퍼, 디스트로이드 진, 어그부츠를 신은 멋쟁이가 되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 <인사이드 에디션>

관련사진보기


#1 보거스 구걸 여인

뉴욕 맨해튼 5번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거리로 알려진 이곳에는 구찌, 샤넬, 프라다, 티파니, 까르띠에 등 명품 가게가 즐비하다. 뿐만 아니라 고급 레스토랑과 고층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고 근처에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도 많다. 그래서 돈 많은 부자들과 고급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그러나 뉴욕 5번가의 화려한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칙칙한 풍경 하나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바로 초라한 행색의 젊은 장애인 여인이다. 똑바로 서지 못하는 이 여인은 구부러진 몸을 목발에 의지한 채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구걸을 하고 있다. 

여인이 입고 있는 옷은 최신 유행과는 동떨어진 초라한 반코트와 땅에 닳을 만큼 치렁치렁한 긴 치마. 머리를 연신 구부리며 손에 든 동냥컵을 흔들어대는 여인은 "제발 도와주세요(Please help me)"라며 오가는 사람들의 자비를 구하고 있다. 여인의 얼굴은 한없이 애처로워 보인다.

여인이 들고 있는 동냥컵은 거리가 거리인 만큼 온정의 손길로 넘쳐난다. 동전뿐 아니라 지폐도 거침없이 들어간다. 많이 들어갈 때는 1시간에 무려 50건이나 되는데 여인은 동냥컵에 돈이 가득 모이면 메고 있는 가방에 돈을 쏟아 붓고 다시 '새롭게' 구걸을 시작한다.

여인은 여전히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돈이 들어올 때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고개를 숙이는 여인. 그녀는 잊지 않고 자비를 베푼 이들을 향해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God Bless You!)" 간구한다. 그러나 젊은 여인의 구걸 행위가 어째 좀 의심스럽다.

하루에 두 번 변신하는 그녀의 이름은 '보거스 걸인'

뉴욕 5번가에서 장애인 행세를 하며 구걸을 하던 여인의 실체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9일, CBS 뉴스매거진인 <인사이드 에디션>은 5번가에서 구걸을 하던 장애인 여인의 행적을 추적, 보도했다.

장애인 여인은 알고 보니 '보거스(bogus) 거지'였다.(* '보거스'는 가짜, 거짓이라는 뜻.) <인사이드 에디션>이 잠행 취재한 보도에 의하면 목발을 딛고 힘겹게 구걸을 하던 여인은 잘 짜여진 연극을 무대에 올린 '연기파' 배우였다. 몰래카메라가 추적한 그녀의 연기를 살펴보자.

최고의 거리로 알려진 5번가에서 걸인 행색으로 구걸을 했던 여인. 그녀는 자신의 일터에서 '작업'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퀸즈로 간다. 여기까지는 원래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그녀가 미리 주차되어 있던 미니밴에 올라탄 뒤 다시 내릴 때에는 걸인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대신 신데렐라 마법에 걸린 변신한 아름다운 여인이 있을 뿐이다.  

구걸할 때 필수품이던 목발도 사라졌고 보무도 당당하게 잘 걷는다. 작업할 때 입었던 초라한 옷들도 모두 최신 스타일로 바뀌었다. 어그부츠와 흰색 점퍼, 화사한 핑크색 스웨터, 심지어 구멍이 송송 뚫린 멋쟁이 디스트로이드 진까지 180도 바뀌었다. 또, 성냥팔이소녀처럼 머리에 두르고 있던 후줄근한 스카프도 사라졌고 멋쟁이 염색한 긴 머리도 예쁘게 뒤로 묶었다. 이렇게 변신한 보거스 여인, 친구도 만나고 쇼핑도 즐긴다.

하지만 5번가로 작업을 하러 갈 때면 또 다시 변신을 한다. 미니밴 뒷자리에서 모든 변신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다시 허름한 작업복과 목발, 스카프, 낡은 신발. 물론 목발에 의지해 몸을 구부리고 힘겹게 발걸음을 옮길 때 가장 슬픈 표정을 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인사이드 에디션> 제작진은 보거스 걸인 행세를 해 온 여인을 취재한 뒤 마침내 정체를 드러내고 여인에게 물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당신을 지켜봐 왔다. 오늘 아침에도 당신은 완벽하게 걷고 있었다. 왜 아침처럼 그렇게 똑바로 못 걷나? 당신은 목발이 필요하지 않잖아. 안 그래?"

하지만 완벽한 연극배우가 그렇듯 보거스 여인은 자기가 맡은 역을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여전히 허리를 구부리고 양팔을 힘들게 목발에 의지하며 "자동차 사고로 허리를 다쳤다"는 속 보이는 뻔한 거짓말을 한다. 물론 자신을 계속 비추는 카메라를 외면한 채 그 자리를 피하면서.

홈리스를 돕자고 모금 운동을 펼치는 '스트리트 토크 뉴스'도 보거스 단체로 드러났다.
 홈리스를 돕자고 모금 운동을 펼치는 '스트리트 토크 뉴스'도 보거스 단체로 드러났다.
ⓒ <인사이드 에디션>

관련사진보기


#2 보거스 자선단체

<인사이드 에디션>은 보거스 구걸 여인을 보도한 다음 날(10일), 또 다른 보거스 사건을 방송했다. 이번에는 홈리스를 돕는다는 보거스 자선단체 사건이다. 현재 미국에는 집 없이 떠도는 홈리스들이 약 65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이들을 돕는 순수한 자선단체는 많다. 하지만 이들을 사칭한 보거스 자선단체가 문제가 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곳 역시 뉴욕이다.

화려한 간판과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타임스퀘어. 명동거리를 연상시키는 이곳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어디선가 목청껏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홈리스를 도웁시다."
"홈리스에게 따뜻한 밥을 줍시다."

이들은 '스트리트 토크 뉴스(Street Talk News)'라고 적힌 녹색 조끼를 입고 홈리스를 돕자고 외치고 있다. 조끼 주머니에는 홈리스 소식지처럼 보이는 팸플릿이 그럴싸하게 꽂혀 있다. 영락없이 자선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처럼 보인다. 길가던 선한 사람들은 추운 날 홈리스를 돕자고 외치는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이 돈이 홈리스들에게 가는 거죠?"
"그럼요."

홈리스들에게 간다는 돈, 과연 그럴까

과연 그럴까. 이들이 모은 돈으로 집 없고 배고픈 홈리스들이 따뜻한 밥을 먹게 되는 것일까.

천만에. <인사이드 에디션> 취재 결과, 이들이 모금한 돈은 모두 이들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모금한 돈으로 술을 사는 장면도 목격되었다. 이들은 다른 단체 사람들이 자기네 '구역' 안으로 들어와 모금 운동을 벌이려 하자 이들을 향해 주먹까지 날리는 폭력을 쓰기도 했다.

이들이 갖고 있던 2쪽짜리 팸플릿에는 이들이 '영리 목적'으로 사회 사업을 한다고 적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단체를 운영하는 스티븐 릴리는 과거가 복잡한 자로 2년 전에도 홈리스를 위한다고 수만 달러의 돈을 모아 그 돈으로 쇼핑과 휴가 비용으로 쓰고 신용사기죄로 고소당한 바도 있었다. 결국 이들은 홈리스를 돕는다고 사칭하고 돈 되는 거리, 타임스퀘어에서 확실한 돈벌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짜 자동차 사고로 보거스 환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래픽으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가짜 자동차 사고로 보거스 환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래픽으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CBS 이브닝 뉴스

관련사진보기


#3 보거스 환자

보거스는 모금하는 곳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지난 1월 27일, CBS <이브닝뉴스>는 보거스 환자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플로리다주 템파. 달리는 SUV가 자동차와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사고로 자동차 승객 5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보험금을 신청했다. 하지만 사고 현장을 비추고 있던 한 사업체 보안 카메라에 의해 이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즉, 이들은 사고 당시 차 안이 아닌 차 밖에 있었다. 뒤늦게 사고로 가장하기 위해 자동차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보험금을 노린 사기사건이었고 이들은 결국 체포, 기소되었다.

현재 플로리다를 비롯 미국의 12개주(미시건,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뉴욕, 하와이, 캔사스, 켄터키, 매사추세츠, 미네소타, 노스 다코타, 유타)에서는 과실불문보험(No-Fault Insurance)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는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본인의 과실여부와 상관 없이 보험회사가 부상당한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부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플로리다의 경우 최고 1만 달러, 뉴욕은 5만 달러까지 지급하고 있는데 바로 이 돈 때문에 보험 사기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사고내고 싶은 사람 모집해 받힐 건지 칠 건지 물어봐

한때 보험사기꾼이었던 사람은 CBS <이브닝뉴스>에 나와 사기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먼저 자동차 사고를 내고 싶어하는 사람을 모집한다. 그런 다음 차로 칠 건지, 받힐 건지 묻는다. 교통사고가 나면 가짜 병원을 갖고 있는 조직책에 의해 일이 진행된다. 이들은 가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지 않을 거면서 치료를 받은 것처럼 속여 보험회사 각종 서류에 사인을 한다. 그런 다음 현금을 챙긴다."

이런 보거스 교통사고에는 부도덕한 의사, 변호사, 마사지 치료사 등이 개입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보험 사기를 적발하기 위한 비영리 기관인 '전국 보험 범죄국(National Insurance Crime Bureau)'의 플로리다 지국장인 론 포인덱스터는 CBS 인터뷰에서 "가짜 교통사고가 전국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고, 특히 플로리다에서는 통제 불능 상태로 점점 늘고 있어 큰 문제"라고 개탄했다. 물론 이런 비용은 결국에는 선량한 일반 보험 가입자들의 피해로 돌아오고 있다.

경제가 나아지면 '보거스' 사건 줄어들까?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나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를 국가 공식 표어(모토)로 지정하고 모든 지폐와 동전에도 이 문구가 들어가 있는 나라. 바로 미국이다.

물론 많은 미국인들은 아직도 청교도적 윤리에 기초한 정직과 신뢰를 중요한 덕목으로 지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주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보거스' 시리즈는 정직의 전통을 소중하게 여겨온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있다. 경기침체, 어려운 경제 탓에 그렇다고 하지만 과연 경제가 나아지면 이런 보거스 사건도 줄어들게 될까.


태그:#보거스 걸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