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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라 해서 거창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다. 사람끼리도 이름이나 사소한 것을 알아가면서 깊은 내면까지 알아가듯 길가의 풀이나 나무, 새들의 이름이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다보면 점차 환경이 내 문제가 되어간다."(이승기 정책실장이 한 어느 인터뷰 중에서)
 "환경문제라 해서 거창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다. 사람끼리도 이름이나 사소한 것을 알아가면서 깊은 내면까지 알아가듯 길가의 풀이나 나무, 새들의 이름이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다보면 점차 환경이 내 문제가 되어간다."(이승기 정책실장이 한 어느 인터뷰 중에서)
ⓒ 굴업도를지키는시민단체연석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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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환경운동, 생명평화 지킴이의 외길을 걸어왔던 아름답고 정의로운 한 사람이었는데…. 하필이면 당신이 그렇게 목숨 걸고 지키려던 곳에서 눈을 감으시다니…. 나는 환경운동가도 아닌 평범한 시민에 불과하지만 너무 애통합니다.

평소 자연과 관련된 글을 올리고 있는 블로거 '게낭파'는 최근 실족사고로 생을 달리한 이승기 한국녹색회 정책실장의 죽음을 위와 같이 위로했다.

'굴업도를 지키는 시민단체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는 지난 12일, 인천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 생태탐사를 떠났던 이승기(52) 정책실장이 11일 오후 1시경 토끼섬 산호초 조사 중 실족사했다고 밝혔다. 

연석회의에 따르면, 이 실장은 11일 오후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소속 사진작가들과 함께 굴업도를 방문해 토끼섬을 조사하고 있었다. 이후 뛰어난 해식지형으로 알려진 토끼섬 아래 산호초를 세밀히 살피고 촬영을 하던 중 바위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빠져 사망했다.

이에 연석회의는 바로 이 실장을 애도하는 전문을 통해, 그가 무겁게 홀로 짊어졌던 굴업도 보전을 향한 너른 마음을 꼭 지켜주겠노라고 화답했다. 이어 굴업도의 수호신이 된 그의 풀지 못한 숙제를 꼭 해결하겠노라며 대자연이 숨 쉬는 굴업도에서 편히 쉬라는 말을 남겼다.

작년 11월 17일~18일, 기자가 이틀간 방문했던 연평산 정상에서의 굴업도 전경 모습
 작년 11월 17일~18일, 기자가 이틀간 방문했던 연평산 정상에서의 굴업도 전경 모습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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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 산호초 조사 중 실족사... 14일 오전 인천시청 앞 노제 

전문에 따르면, 이승기 실장은 명문대학을 나왔음에도 입신출세를 탐하지 않고 오롯이 환경운동에만 매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언제나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으로 사람과 자연을 대했으며, 온갖 오해와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한길을 걸어왔다.

이 실장은 굴업도 지키기에 온몸을 바치기까지 이 땅의 강과 산천, 바다와 섬의 뭇 생명의 보전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또 밤섬과 동강, 4대강과 덕적도 섬을 돌며 불철주야 카메라를 들고 걷고 또 걸었다.

"굴업도에 무덤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굴업도를 지키겠다."

이 실장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정말 굴업도의 수호신이 됐다. 사랑하는 부인과 세 자녀를 남겨두고 끝내 그는 굴업도 보존을 위해 아름다운 재물을 자처한 것이다.

연석회의 관계자는 그의 죽음에 비통함을 표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그가 없음으로 해서, 굴업도의 개머리 초지가 쓸쓸해지고, 굴업도가 주인을 잃어 끝내는 대기업의 거대한 욕망으로 인해 개머리 초지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뭇 생명의 위대한 대서사가 종말을 고하는 것이나 아닌지…. 그 누가 있어 이승기 실장님의 부지런한 발걸음을 대신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이승기 실장은 전남 영암 출생으로 대전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경북대 생물학 석사학위를 취득, 1997년부터 한국녹색회 정책실장 간부를 역임했다. 이후 2007년 굴업도를 지키는 시민단체 연석회의를 주도했고, 올해까지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에 적극 참여했다.

이 실장은 또한 1992년 소설가 이호철 선생의 문하생으로 등단 후 <흔들리는 둥지> <그럴 듯한 집> 등 인간과 자연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 수 편을 발표했다. 그의 석사 논문 유작으로는 <한국 수달의 생태>가 있다.

고인의 장례는 14일 오전 9시 인천시청 정문 앞에서 '굴업도를 지키는 시민단체연석회의장'으로 엄수될 예정이다.

이승기 실장 추모시
 굴업도에 묻히다

지난밤은 꿈이었어요
언 겨울 바다에서 오신 그대 소식에
검은 밤은 날갯짓을 하며 팔딱거렸어요

굴업도를 말하던 그대 뜨거운 입김이 기억나요
살붙이나 다름없다던 그대가 아니었나요

왕은점표범나비, 애기뿔소똥구리,
굴업도 어린 매의 눈동자를
얘기할 적마다 그대 눈빛은 깊었어요

개머리초지에서 연을 날리며
생명의 땅 굴업도가 부활하기를 그대는 소원했어요

봄여름가을 그대가 걸었던
굴업도에서 그대는 언 몸으로 왔어요
굴업도로 다시 태어 났어요

굴업도를 너무나 사랑했던 당신,
잘가요, 그대
굴업도를 사랑한 환경운동가

지금 토끼섬에 봄 바다가 오고 있어요
그대가 보았던 산호초는 잘 있을 거예요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굴업도는 잘 있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잘가요, 그대
목기미의 물때 이는 소리는 잘 있을 거예요
개머리초지 왕은점표범나비도 모두 잘 있을 거예요
굴업도 터주 먹구렁이도 잘 있을 거예요

연평산과 덕물산, 느다시뿌리
그대가 보았던 금방망이꽃과 검은머리물떼새
모두 잘 있을 거예요

잘가요, 그대
굴업도를 너무도 사랑했던 어여쁜 그대
누구보다도 굴업도를 사랑한 환경운동가   

잘가요, 부디
이 생은 부끄러운 우리에게 맡기고

굴업도에 봄이 오고 있어요
선단여 화엄 바다가 일렁거리고 있어요
덕적군도 장엄한 아침햇살이 빛나고 있어요

굴업도에 봄바다가 오고 있어요
잘가요, 그대
부디 연꽃으로 태어나 굴업도에서 다시 보아요

- 이세기 시인


태그:#한국녹색회 이승기 정책실장, #굴업도 지킴이, #인천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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