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혁(GK, 왼쪽)과 김남일(MF, 오른쪽) 선수

권정혁(GK, 왼쪽)과 김남일(MF, 오른쪽) 선수 ⓒ 심재철


2012년 K-리그를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에게 '새 옷'이 생겼다. 프로축구 시민구단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13일 오전 11시 30분 인천 송도파크호텔에서 스포츠 용품 업체 르꼬끄 스포르티브와 3년간의 후원 조인식을 통해 2012 시즌부터 선수들이 입고 뛸 유니폼을 선보였다.

이날 행사장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단연 홈 경기 유니폼의 디자인이었다. 문제의 유니폼을 이번 시즌부터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게 된 김남일(MF) 선수가 입고 나왔다. 놀라운 이적 소식의 또 다른 주인공 설기현(FW) 선수는 방문 경기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신구 문지기 권정혁과 유현 선수도 양 옆에 서서 튀는 색상의 유니폼을 뽐냈다.

허정무 "파란색이 우리 전통? 누가 정했나..."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새 유니폼 발표회(왼쪽부터 GK 권정혁, MF 김남일, FW 설기현)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새 유니폼 발표회(왼쪽부터 GK 권정혁, MF 김남일, FW 설기현) ⓒ 심재철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새 유니폼 발표회(왼쪽부터 허정무 감독, FW 설기현, GK 유현)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새 유니폼 발표회(왼쪽부터 허정무 감독, FW 설기현, GK 유현) ⓒ 심재철


선수들과 허정무 감독을 앞에 놓고 기자들의 간단한 질문이 이어졌는데, 역시 질문의 초점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동안 줄곧 지켜 온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 경기 유니폼 디자인(검은색과 파란색이 교차한 세로 줄무늬)의 변화 이유에 맞춰졌다.

구단 마케팅 팀장의 보충 설명에 따르면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이번 시즌부터 숭의 아레나(인천 유나이티드 FC 축구 전용경기장)로 홈 경기장을 옮기면서 새로운 팀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기존 유니폼보다 짙은 파란색 바탕에 붉은색 포인트가 군데군데 눈에 띄는 새 홈 유니폼의 변화 이유를 그렇게 밝힌 것이다.

그런데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팬 입장에서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이 허정무 감독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파란색이 우리의 전통이라고 하는데 누가 정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바로 그것. 바로 그다음에 발표회장 뒤에서 긴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이 발언이 마뜩잖다는 인천 유나이티드 FC 팬들의 원성으로 들렸다.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2003년에 창단한 뒤 시민주를 모아 2004년부터 K-리그에 참가했다. 이번에 발표한 유니폼은 그나마 2004년 첫 해 유니폼과 비슷한 편이다. 그래서 구단은 창단 당시의 유니폼 디자인을 채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지난 2월 3일, 인천 유나이티드 FC 유소년 팀인 광성중학교 선수들이 중국 쿤밍에서 열린 인천 평화컵 유소년축구대회 우승을 차지한 뒤, 당시 선수들이 입고 뛴 유니폼 사진이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일이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팬들 사이에서는 구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니폼 디자인에 대해 불편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열흘쯤 지난 뒤 팬들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광성중학교 선수들이 입고 뛴 유니폼을 그대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간판들이 입고 행사장에 들어온 것이다.

팬들이 만드는 문화, 과연 무시할 수 있을까

 2004년 3월 1일 감바 오사카(J리그)와의 창단 기념경기를 끝낸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창단 멤버들(왼쪽),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창단 멤버로서 지난 해 은퇴한 임중용 선수를 기념하는 페넌트(오른쪽).

2004년 3월 1일 감바 오사카(J리그)와의 창단 기념경기를 끝낸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창단 멤버들(왼쪽),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창단 멤버로서 지난 해 은퇴한 임중용 선수를 기념하는 페넌트(오른쪽). ⓒ 심재철


분명히 유니폼 디자인은 바뀔 수 있다. 아무리 팬들이라고 하지만 유니폼 디자인 결정권까지 쥐고 흔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감독의 '구단 전통' 관련 발언은 팬들의 자존심을 심각하게 건드리는 부분이다. 그곳은 언론사 기자들 말고 일반 팬들도 충분히 드나들 수 있는 공개된 자리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알 힐랄 FC(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지만, 인천 유나이티드 FC 출신 최초의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바 있는 유병수(FW) 선수가 문학경기장을 내달리며 유니폼 가슴에 박힌 구단 엠블럼을 입에 물고 득점 뒤풀이를 펼치는 장면을 벌써 잊었는가?

가장 최근에 구단에서 내놓은 상품이라 할 수 있는 임중용 선수의 은퇴 기념 페넌트(2011 시즌) 또한 인천 팬들이 이른바 전통이라 주장하는 상징색을 주로 사용해 제작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2012년 3월 11일부터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휘저을 숭의 아레나 관중석에도 이 세로줄 무늬 디자인이 서포터즈 좌석에 적용됐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그 역사가 짧다고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들은 그동안 팬들의 함성과 자존심으로 하루하루 쌓아 온 구단의 소중한 역사이자 전통이다. 존중받지는 못할망정 "누가 정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식의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다.

설기현, 김남일, 윤준하 등 어느 때보다 알찬 새 식구들을 데려왔고, 다른 구단 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멋진 축구전용구장을 열게 된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고쳐야 할 부분이 아직 많아 보인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새 유니폼 발표회(왼쪽부터 MF 김남일, 허정무 감독)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새 유니폼 발표회(왼쪽부터 MF 김남일, 허정무 감독) ⓒ 심재철


새 역사를 쓰면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하다. 당연히 경기력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그러나 팬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와 거기서 싹트는 전통들을 과연 무시할 수 있을까. 만약 훗날 어느 시점에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2부 리그로 강등된다면? 돈줄을 쥐고 있는 스폰서도 구단의 재기에 큰 힘을 주지만, 그것보다 더 큰 힘은 팬들의 함성과 자존심으로부터 샘솟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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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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