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역 개발과 인력 고용을 앞세워 시작한 골프장 난개발이 산과 들판뿐 아니라, 종국에는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까지 파괴하고 있다. 골프장 난개발로 좁은 땅에 지나치게 많은 골프장이 들어서는 바람에 이제는 개발을 중도에 포기하는 골프장까지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도 골프장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 도대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휘몰아치는 골프장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말]
구만리 골프장 건설 예정지를 배경으로 서 있는 반종표씨.
 구만리 골프장 건설 예정지를 배경으로 서 있는 반종표씨.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아주 내려와 살 생각은 아니었다. 1997년 3월 IMF가 시작되기 직전, 인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강원도 홍천군 구만리 고향집으로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1∼2년 후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고향에는 몸이 편찮은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 몸이 나아지면 더 이상 고향에 남아 있을 이유도 없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살다 보니, 고향 땅에 터를 잡고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이 붙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해는 농사일이 서툴고 고향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익숙지 않아 조금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고 나서는 서서히 적응됐다. 이웃과는 서로 형 동생 사이로 지내게 되었다, 그러면서부터는 농촌 생활에 더 정감이 가기 시작했다. 그 후로 반종표(46)씨는 구만리의 다른 주민과 마찬가지로 땅을 일구고 가축을 키우며 사는 것 외에 다른 것은 별로 생각해 볼일도 없는 한 평범한 농부로 살았다.

물론 농사일이 쉽지는 않았다. 농사가 돈이 되는 일도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농사라는 게 늘 돈이 되는 산업에 밀려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반종표씨는 그래도 근 10년 동안 고향 땅을 떠나지 않았다. 반씨 생각에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생활이 비록 곤궁하기는 해도 행복지수는 도시에서 사는 것에 비해 훨씬 더 높았기 때문이다.

2006년 마을 뒷산에 골프장(27홀 규모)이 들어선다는 소식만 전해지지 않았다면, 그는 그렇게 계속해서 구만리의 한 평범한 농부로 남았을 것이다. 그의 미래 역시 별다른 곡절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골프장은 그런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고, 그가 그때까지 살아온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그런 변화는 그가 구만리로 농사를 지으려 내려올 때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벌목이 진행돼 황폐해진 산. 눈이 내려 그 흔적을 덮고 있다.
 벌목이 진행돼 황폐해진 산. 눈이 내려 그 흔적을 덮고 있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오가피공장 짓는다고 땅 사들여 '골프장'으로 둔갑시켜

골프장 소식이 전해진 지 8년 뒤인 2012년 현재, 그는 지금 농부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인도 아닌 상태로 살고 있다. 구만리에 짓고 있는 농사는 손을 대는 둥 마는 둥 하고, 거의 매일 춘천 시내에 들어와 살고 있다. 골프장이 반씨로 하여금 원치도 않은 도시 생활을 하게 만든 셈인데, 그런 생활이 결코 편안할 리 없다. 그는 지금 강원도청 안마당에 비닐 천막을 치고 몇 달째 길바닥 위에서 먹고 자는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

2006년 9월, 골프장은 소리 없이 마을을 잠식했다. 골프장 사업주는 골프장 부지로 사용할 땅을 사들이면서 마을에 오가피공장이 들어선다는 말을 흘렸다.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땅을 매입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해 11월, 마을에 골프장이 들어설 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란이 일기 시작했다. 주민들 십여 명이 처음으로 군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반씨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마을 뒷산에 골프장이 들어서면,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오염돼 마을에서는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나 일부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던 주민들에게 골프장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골프장이 들어서려고 하는 자리는 원래 가뭄에 대비해 저수지를 만들려고 계획했던 곳이다. 그런데 그런 곳이 김진선씨가 도지사직을 맡고 있을 당시 갑자기 골프장으로 용도가 바뀌어 버렸다. 당시 주민들은 골프장 사업주에게 특혜를 준 의혹을 제기했다.

그때부터 반씨는 몇몇 주민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찾아 나섰다. 골프장 건설에 문외한이었던 주민들은 먼저 이미 골프장이 들어서 있는 지역이나 당시 구만리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마을들을 방문해 골프장이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조사했다. 골프장 사업주나 관청에서 홍보하고 있는 것들이 정말 맞는 말인지, 골프장이 주는 혜택은 무엇인지 또 고용은 얼마나 창출했는지 알아봤다.

마을 곳곳에 서 있는 골프장 반대 팻말.
 마을 곳곳에 서 있는 골프장 반대 팻말.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골프장 있는 23개 마을 조사, "농민에게 백해무익" 결론 내려

3개월 사이 23개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러고 나서 주민들은 "골프장이 농민들에게는 백해무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골프장이 들어섰거나 들어오려고 하는 마을들에는 인허가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비롯해 공사 중에 발생하는 문제, 그리고 나중에 골프장을 운영하는 데서 일어나는 문제까지,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마을 공동체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됐다.

당시 23개 마을을 조사한 결과, 반씨는 "골프장 인근에는 미꾸라지가 살지 않았다. 골프장이 들어서고 나서 3~4년 후에는 식수가 오염됐다는 사례도 확인했다. 피부병이나 암 같은 질병이 증가하는 사례를 호소하는 마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난 구만리 주민들은 골프장 사업을 이대로 놔둘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주민들 모두가 하나가 돼서 골프장 건설을 막아낼 것을 결의했다.

결속력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주민들 사이에 '골프장 측으로부터 향응을 받거나 했을 때는 구만리 주민이 아니다'라는 약속을 하고 그 내용을 공증까지 받아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골프장 측의 회유는 집요했다. 2008년 6월, 해가 진 뒤에 글도 잘 모르고 혼자 사는 나이 든 사람들을 찾아가 1천만 원씩 주고 골프장 건설에 찬성하는 동의서를 받아냈다. 97가구 중 42가구가 돈을 받았다.

그 사실은 나중에 돈을 받은 주민들 중 11가구가 양심선언하면서 밝혀졌다. 사업주는 그 동의서를 가지고 골프장 건설에 찬성하는 주민이 반대하는 주민과 반반이라고 호도했다. 하지만 실제 찬성 가구는 양심선언 한 가구와 마을에 거주하지 않는 가구 등을 제외하면 10%가 조금 넘는 숫자에 불과하다. 골프장 측이 편법으로 동의서를 받아내긴 했지만, 일부 주민들의 '배신'은 다른 주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골프장 결사 반대', 8년여 투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깃발.
 '골프장 결사 반대', 8년여 투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깃발.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골프장 건설을 온몸을 던져 막아내야만 했던 주민들

하지만 '배신'은 시작에 불과했다. 배신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 사이에 서로 척을 지고 사는 것 외에도, 구만리 주민들이 골프장을 건설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겪어야만 했던 고통과 수난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2008년 7월, 공사가 시작되면서 싸움은 본격화됐다. 주민들은 사업주 측이 용역과 굴착기를 앞세워 공사 부지로 들어서는 걸 온몸으로 막았다.

마을 주민들 중에 젊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이 40~50대들이었다. 그런데 그 수도 얼마 안 되고, 대부분 60대 이상이었다. 그런 주민들은 골프장 측에서 고용한 용역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도시락을 싸들고 가서 기다렸다 장비 밑에 드러누웠다. 골프장을 막아내는 일이 절실했던 주민들이 실제 행동에 옮길 수 있었던 건 그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절박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몸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상해를 입는 주민들이 빈발했다. 용역이 밀치는 바람에 70대 할머니가 헬기로 병원에 실려 가는 일까지 생겨났다. 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고난은 병원에 실려 가는 것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병원으로도 모자라, 경찰서를 거쳐 법정에까지 끌려갔다. 공무나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고, 집시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하는 주민들이 생겼다.

2008년 7월에는 주민 4명이 공동 상해죄로 형사 고발되고, 8월에는 사업자 측이 벌이는 지하수·지질 조사를 저지했다는 이유로 주민 43명이 한꺼번에 고발됐다. 그해 11월에는 사업자 측이 사업 방해를 이유로 구만리 주민 9명을 상대로 11억98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소송을 당한 주민들의 재산을 가압류했다.

재산을 가압류 하는 건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지 말라는 것과 똑같다. 농사를 짓기 위해선 영농자금을 대출받아야 하는데, 재산을 가압류당한 상태에서는 대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반대 의지를 꺾기 위해 사업주와 행정력이 총동원돼 별별 압력을 다 행사했다. 2008년 이후로도 주민들을 상대로 한 소송과 고발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공사를 하는 굴착기의 진입을 막기위해 길에 앉아있는 홍천 구만리 주민들의 모습.
 공사를 하는 굴착기의 진입을 막기위해 길에 앉아있는 홍천 구만리 주민들의 모습.
ⓒ 강원도골프장범대위

관련사진보기


'소송'과 '고발'에 시달리는 주민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

이렇게 해서 구만리에서 소송에 휘말리는 등 법적인 제재를 당한 주민만 50여 명으로 전체 주민 150여 명의 1/3에 달한다. 그중에 전과 기록을 갖게 된 주민만 27명이다. 골프장이 들어오기 전까지 오랫동안 범죄 없는 마을로 소문이 나 있던 구만리가 졸지에 전과자들로 넘쳐나는 마을로 전락한 것이다. 반종표씨 역시 3건의 소송에 휘말려 1건은 벌금형으로 형이 확정되고 나머지 2건은 여전히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는 마을이 형성된 이래, 전례가 없던 일이다. 그 와중에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해 가구마다 빚이 잔뜩 늘었다. 가구마다 매년 1천만 원가량의 빚이 늘었다. 늘 농사만 짓고 살던 주민들에겐 너무나 힘든 싸움이었다. 군청 역시 그들을 돕지 않았다. 주민들은 2008년 9월 군청 앞마당에서 천막 농성을 벌였다. 주민들은 '사업주가 골프장 인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다'고 민원을 제기하고 '골프장 건설을 백지화하라'고 했지만, 군청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주민들은 골프장 측이 저지른 불법과 탈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들고 있다. 골프장 허가 서류 중의 하나인 '산림조사서(임목축적)'를 허위로 작성해서 산지 변경을 받아냈을 뿐만 아니라,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멸종위기종인 담비, 하늘다람쥐, 둑중개 그리고 산작약과 구상난풀 등의 동식물인 존재한다는 사실을 빠트렸다. 그리고 공사를 진행하면서는 아무런 보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군청은 또 그 서류들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사업자들이 주민들에게 가하는 압력이 크면 클수록 주민들의 반대 의지 또한 더욱 더 강해졌다. 그 사이 마을 주민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많이 변했다. 반씨는 "싸움이 지속되면서 마을 주민들이 친환경농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힘을 모을 줄 알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라고 말했다. 골프장이 마을을 둘러싼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된 것도 소득이었다.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생태 전문가로 변신했다.

예전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던 마을의 동식물들이 얼마나 귀중한 자원이었는지를 알게 됐다. 과거엔 마을에 하늘다람쥐가 너무 많아, 그 동물이 천연기념물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살았다. 하늘다람쥐가 어디에나 다 있는 동물인 줄만 알았다. 하늘다람쥐는 전국에 백여 마리가 조금 넘게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2005년 당시)된 희귀종이다. 지금까지 구만리에서만 법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할 동식물이 14종이나 발견됐다. 주민들은 결국 골프장이 들어서는 걸 막아내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됐다.

지난 해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최문순 강원도지사 당선인이 28일 오전 강원도청 앞에서 골프장 백지화를 촉구하며 9일째 단식농성중인 주민들을 만나 위로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지난 해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최문순 강원도지사 당선인이 28일 오전 강원도청 앞에서 골프장 백지화를 촉구하며 9일째 단식농성중인 주민들을 만나 위로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14일 단식 끝에 골프장 사업 재검토 약속 받아내

병원과 법정을 오가는 싸움이 7년째 되던 해, 2011년 4월 반종표씨는 도청 앞 소공원에서 다른 지역 주민 2명과 함께 골프장 건설 중지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단식은 14일 동안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당시 4·27 강원도지사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최문순 후보로부터 강원도 내의 골프장 건설 사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받아냈다. 그러면서 구만리 주민들이 7년째 지속해온 싸움에도 서서히 빛이 들기 시작했다.

그 후 최문순 후보가 도지사로 당선됐다. 그리고 공약에 따라 '도지사 직속 협의체'를 구성하고, 그 자리에 주민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골프장 난개발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구만리 골프장 건설 건과 관련해서는 현지 조사를 거쳐 환경영향평가서가 감추고 있는 문제점을 가려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은 잘못된 부분이 드러나면 인허가 취소를 요구할 작정이다.

이만 하면 주민들도 일단 도청에서의 농성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만하다. 하지만 사업이 완전히 중단되고 공식화되기 전까지는 농성을 접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놓을 수도 없다. 게다가 강원도에서 골프장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역은 홍천군의 구만리뿐만이 아니다. 강원도는 현재 모두 41곳에서 골프장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로 인해 도청 앞마당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주민들 역시 여러 마을 사람들이다.

그리고 구만리가 아닌 대부분의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해결이 불투명한 상태다. 결국 구만리에서 진행돼온 골프장 건설 사업이 완전히 중단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만리 사람인들 결코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여기까지 오는데 구만리에서만 무려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니 투쟁 기간이 그렇게까지 길지 않은 다른 지역은 또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인가?

그러던 중에 지난해 12월 구만리 주민들을 또 한 번 경악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자신들의 마을에 골프장 건설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난 8년여 동안 구만리 주민 상당수를 법정에 서게 하고 농사 짓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생활조차 어렵게 만든 장본인이 충청북도의 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주민들 눈에는 그의 행태가 몹시 이율배반적이었다.

한 지역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일에 사실상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다른 지역에 가서는 그곳 주민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는데 그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소식을 접하고 반종표씨는 크게 분노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 그건 대한민국 국회가 다 썩은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런 사람이 농민과 서민을 대변하겠다니, 위선자다"라며 "용서할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도청 앞마당에 진을 친 농성장. 급하게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지붕이 어른 가슴 높이에 불과하다.
 도청 앞마당에 진을 친 농성장. 급하게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지붕이 어른 가슴 높이에 불과하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주민들이 이길 가능성 100%", 희망이 보인다고 자신

반종표씨에게 골프장 반대 투쟁은 곧 생존권을 건 싸움이다. 반씨는 "만약에 구만리에 골프장이 들어서면, 마을 주민들 모두가 농사를 포기하거나 마을을 떠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그 두 가지 상황 모두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사실 농민이 자신의 농토를 떠나서 살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따라서 그에게 골프장은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막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연일 영하 10도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매서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반종표씨는 지난 3일,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던 날 밤을 얇은 비닐 천막 속에서 자고 일어나 "간밤에 얼어 죽는 줄 알았다"며 허허롭게 웃었다. 골프장 반대 투쟁만 8년째, "이제 싸우는 데 이골이 났다"는 그에게도 올겨울 추위는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어 보인다. 생존을 건 싸움이 아니었다면 애초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반종표씨는 상당히 긍정적인 사람이다. 사실은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낙관적이다. 그러다 보니 소송의 위력도, 전과자 딱지 같은 압력도 그의 기를 꺾지 못했다. 그는 이번 싸움에서 주민들이 이길 가능성이 "100%"라고 자신했다. 마지막으로 새해를 맞는 그의 소망을 들었다. 올해 그의 소망은 8년 전 별 생각 없이 농사를 짓던 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8년여를 거대 권력에 맞서 싸워온 사람치고는 참으로 소박하기 짝이 없는 소망이다.

처음에는 아주 내려와 살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새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싸움이 본격화된 2008년부터는 그 농사마저도 제대로 짓지 못했다. 그 사이 골프장 반대 투쟁에 매달리다 보니 땅에 씨만 뿌리고 결실은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엉터리 농사"를 지어왔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그가 일구던 땅에 가 있었다. 그 또한 천생 어쩔 수 없는 농부였다.


태그:#골프장 난개발, #반종표, #구만리, #홍천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