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결혼 다큐멘터리 <두 개의 선>

안티-결혼 다큐멘터리 <두 개의 선> ⓒ 시네마달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지민'과 대학시간 강사 '철'은 10년째 연애 중이다. 그렇다고 연애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둘은 같이 살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그냥 동거하고 있는 상태다. 연애 6년째, 철은 결혼을 이야기했지만 지민은 대신 동거를 제안했다. 사랑하지만 결혼하고 싶지는 않기에 동거는 결혼의 대안이었다.

분명한 것은 지민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사실이다. 구속하고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한편으로 결혼이란 제도의 틀에 맞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집안과 집안이 만나고 가족이 되는 제도는 뭔가를 얽매는 듯했고 불합리해 보였다. 동거는 절충점으로 내린 결론이다.

주변에서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그가 하는 답은 아주 간단하다.

"도대체 결혼은 왜 하는 거야? 결혼, 그거 꼭 해야만 하는 거야?"

동거는 간음죄를 짓는 것이기에 세례 줄 수 없어

'지민'의 생각에 '철'도 동의하면서 시작한 동거지만 결혼을 한 부부와 특별한 차이는 없다. 법적인 혼인신고가 안 돼 있고, 각자가 가족이란 제도에 매이지 않는 것이 다를 뿐이다. 굳이 양가(兩家)를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단순한 동거는 아니다. 지민과 철은 거창하게 말하면 결혼이란 제도에 대한 저항전선을 함께 구축한 동지이자 서로를 위한 버팀목 같은 존재다. 든든한 연대의식으로 '결혼을 해서 같이 사는 것'과 '결혼을 하지 않고 같이 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하게 사는 둘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다. 결혼을 거부하고 동거인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관습 상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들이나 지민의 부모는 그들의 이기적인 행동과 무책임성에 대해 지적한다. 성당 신부님은 철에게 세례를 주기를 거부한다. 결혼하지 않은 동거는 간음죄를 짓는 것이기에 끊임없이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굳이 자신들의 선택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의 저항 전선에 뜻하지 않은 위기가 찾아온다.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하게 나타나는 '두 개의 선'. 지민에게 아기가 생긴 것이다. 이때부터 지금껏 공세적으로 돌파하던 분위기는 복잡해진다.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에게 발목이 잡히면서 수세적 상황이 전개된다. 제도의 압박도 만만치가 않다. 과연 이들이 호기롭게 선언한 '결혼 해방투쟁'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결혼이란 제도에 맞서는 비혼 남녀의 고민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선>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선> ⓒ 시네마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선>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발칙한 도발이다. 견고하게 구축된 사회적 제도에 맞서는 과정은 무모하게 보이지만, 그만큼 특별한 저항 정신이 엿보이기도 한다. '결혼'과 '가족'이란 틀에서 자유로워지길 원하는 각오의 밑바탕에는 결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이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막연하게 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를 갖게 되는 순간 흐름은 크게 달라진다. 고민의 벽은 차츰 무너진다. 초반에는 잘 밀어붙이는 것 같더니 길게 늘어서 있는 현실의 담은 그들의 거침없는 돌파를 막아선다. 대개의 경우가 그렇듯 혁명이 단번에 성공하는 예는 드물다. 한계에 부딪혀 결단을 해야 하는 모습에서 그 좌절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승승장구할 것 같은 이들의 각오가 아이 앞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밀리는 모습은 무척이나 현실적이다. 아이 앞에서 이기적인 판단을 하거나 고집을 부릴 수도 없다. 선택의 기로에서 아이를 먼저 선택하게 되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하다.

아이가 태어나지만 장이 제 위치를 잡지 못하면서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그토록 거부하던 법적인 부부가 되고 만다. 저소득층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가족'이 돼야 한다는 절차 앞에 그들의 다짐은 무너진다. 법과 제도에 규정된 결혼과 가족에 대한 절차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비혼을 고집하는 두 남녀의 고민이 돈키호테 같거나 뜬금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라오면서 봐 온 가족 관계의 균열이나 경제적 상황은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기도 했다.

지민의 부모님은 이혼한 상태다. 수배생활과 수감생활을 한 노동운동가 부모님 덕택에 지민의 유년 시절은 남달랐다. 세상에 치열하게 맞서온 부모님은 결혼이란 제도 속에서는 화합하지 못했다. 지민에게 '꼭 결혼해서 살아야 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 원인이었다.  

철이 역시 결혼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지민의 생각과 꼭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형편은 사회적 절차로서 결혼을 생각하기 어렵다. 자신과 동생을 뒷바라지 하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장애가 있는 동생은 시설에 맡겨진 상태다. 가난한 살림에 핑크빛 로맨스를 꿈꾼다는 것은 버겁기만 하다. 그래서 둘이 선택한 동거는 이런 부담을 최대한 비켜설 수 있는 교집합이었다.

"혼인 신고한 현재의 삶이 패배적으로 느껴진 것은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선>을 연출한 지민 감독과 남편 이철 씨가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선>을 연출한 지민 감독과 남편 이철 씨가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성하훈


<두 개의 선>은 결혼이란 제도의 틀을 벗어나고 싶은 두 남녀의 고군분투기다. 비혼, 동거, 피임, 혼전 임신 등의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결혼이란 제도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좌절(!)의 기록이다. 물론 아직 그들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처음 꿈꿔왔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현실을 인정하며 물러서는 모습은 궁색해 보이지 않는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인정하면서도 문제의식만은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월 26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연출한 지민 감독은 "지금의 삶이 결혼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혼인신고를 하게 된 현재의 삶이 무언가 패배적으로 느껴져서 아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처음 의도와 다른 결말이 나오게 된 것에 대한 해명이었다.

그는 "만일 혼인신고를 안 했으면 관객들의 접점과 달랐을 것"이라며 "그 점 때문에 더욱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고민을 진행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덧붙였다.

아이로 인해 원치 않았던 혼인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서도 "돈은 대출받을 수도 있기에 돈이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아이가 사회에 밀려난다는 느낌이 들어서"라고 말했다. 제도에 편입되지 못할 경우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 부담감 등이 무겁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TV프로그램의 가상 결혼과 다른 리얼 동거·출산스토리

 아이에게 수유중인 지민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선> 한 장면.

아이에게 수유중인 지민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선> 한 장면. ⓒ 시네마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선> 한 장면. 일러스트를 활용해 촬영하기 어려운 부분을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선> 한 장면. 일러스트를 활용해 촬영하기 어려운 부분을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 시네마달


지민 감독에 따르면 <두 개의 선>은 처음 구상할 당시 결혼하며 사는 사람, 비혼으로 사는 사람, 각 지역의 비혼 공동체 등 다른 사람을 만나는 콘셉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픈 것에 충격을 받게 됐고, 외부를 찾아갈 게 아니라 내면을 다루자고 생각해 초점을 자신에게 맞추게 됐다.

덕분에 예전에는 비혼 친구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타인의 말을 좀 더 듣는 계기가 됐다. 삶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영화를 만들며 얻은 부분이란다.

여성의 솔직한 내면을 그린 탓에 <두 개의 선>은 기획 당시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2010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우수 기획으로 선정돼(옥랑문화상 수상) 제작 지원을 받았는데, 갓 태어난 아이가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였다. 지민 감독 대신 영화의 기획의도를 설명하던 이철씨가 병원에 있는 아이 생각에 목이 매인 듯 눈물짓는 장면에서는 애틋한 부정을 느낄 수 있다.

촬영을 통해 보여주기 어려운 부분은 일러스트를 적절히 활용해 생동감을 불어 넣은 것은 이 영화의 특징이다. 애니메이션과 같은 효과로 두 사람의 연애 과정을 비롯해 성장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눈길을 끈다.

<두 개의 선>은 요즘 젊은 세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을 사실적으로 그려 결혼을 생각하는 연인들의 공감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연출되지 않은 생생한 동거·출산 스토리는 TV 예능 프로그램의 꾸며진 가상 결혼과는 다른 결혼의 행복에 대해 진지한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장르가 '안티 - 결혼 다큐멘터리'로 정해진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덧붙이는 글 2월 9일 개봉.
두 개의 선 다큐멘터리 결혼 동거 비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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