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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가까운 나이에 때 아니게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뭐냐고요? 참 남사스럽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도시락을 싼 이후 30여 년 만에 도시락을 쌌습니다. 새삼스럽다고나 할까요. 학창시절, 도시락에 대한 추억은 넘치고 넘칩니다.

도시락에 대한 추억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이때 반찬은 대개 김치, 어묵 볶음, 멸치조림, 콩자반 등이었습니다. 간혹 밥 위에 달걀 후라이를 얹었지만 달려드는 친구들에게 영락없이 빼앗겼습니다. 빼앗겼다기보다 나눔으로 보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냈던 지혜가 도시락 밑에 계란 후라이를 넣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이 그걸 모를 턱이 있나요. 영특한 녀석들은 그것마저 솔솔 빼 먹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당시 친구 사이 문화에서 하나의 미덕(?)으로 자리했습니다.

특히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2, 3교시에 도시락을 까먹는 일도 많았습니다. 어느 때는 풍기는 냄새 때문에 도시락 검사를 하시는 선생님께 걸려 벌을 서기도 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점심시간 이전에 체육과 교련이 있는 날이면 텅 빈 도시락을 보고 울며 겨자 먹기로 매점으로 달려가 빵으로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는 아름다운 회상으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억은 그립나 봅니다.

끼니 꼬박꼬박 챙겨먹는 '삼식이 새끼'

아내가 싸 준 도시락 가방입니다.
 아내가 싸 준 도시락 가방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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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이 길었습니다. 이처럼 도시락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건 직장생활을 하면서 도시락을 갖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도시락을 들고 다닌 첫날이었습니다. 계기가 있습니다. 우연히 여직원에게 건넨 말이 시작이었습니다.

"도시락을 싸고 다니면 어떨까요? 그러면 아내가 싫어할까요?"
"당근 싫어하지요. 말도 꺼내지 마세요."

하여, 도시락을 싸고 다니는 걸 포기할까 했습니다. 그래도 말이나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어제 아침 출근 전에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 도시락 싸고 다녀도 될까?"

막상 말은 던졌지만 아내 눈치를 살폈습니다. 이런 웃긴 소리가 있어서요. 집에서 밥 한 끼도 안 먹는 남편은 '영식 씨'. 집에서 한 끼 먹는 남편은 '일식이'. 두 끼 먹는 남편은 '두식 놈'. 세 끼 꼬박꼬박 챙겨먹는 남자는 '삼식이 새끼'라고 하니 눈칠 볼 수밖에.

웬걸, 아내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도시락 싸고 다니세요. 지금 당장 싸줘요?"

아내가 준 도시락 가방입니다.

아내가 싸 준 쇼핑 가방을 손에 들고 버스를 타고 직장으로 향했습니다. 뭘 들고 다니기 싫어하는 성질에 쇼핑 가방을 들자니…. 참, 멋쩍더군요. 하지만 든든했습니다. 아내가 싸 준 도시락이 그렇게 고마울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해 청소 중인 여직원에게 자랑했습니다.

"아내가 도시락을 싸줬어요."
"와~. 사모님 대단하네요."

이 소릴 들으니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더군요. 왜냐고요? 뻔할 '뻔'자이지요. '나는 아직도 날 이렇게 날 위해 주는 아내와 산다!'는 거죠.

하지만 분명하게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도시락 싸는 것도 길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눈치껏 움직여야 현명한 남편이라는 걸…. 이게 부부지간 배려 아닐가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도시락, #부부,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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