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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이 한다고 말 잘하는 게 아니듯, 글 많이 쓴다고 글 잘 쓰는 건 아니다. 말이든 글이든 핵심을 진심에 담아 압축해서 전해줄 때 마음을 열고 상큼 다가서는 사람이 생긴다. SNS 시대가 열리면서 까마득히 높은 곳에 앉아 말이나 글에 권위를 싣고 우쭐대던 사람들  대신 누구나 쓰고 읽는 세상이 열리고 있다.

<공감의 한 줄>
 <공감의 한 줄>
ⓒ 북바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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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술의 발명이 서적의 대량 보급으로 이어지면서 시민의식을 성장시켰던 것처럼, 조선후기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시조의 격식을 깬 사설시조의 등장으로 서민의식이 성장했던 것처럼, 변화는 특정 사람들에게 독점되었던 정보와 지식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면서 촉진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SNS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촌철살인의 '어록'들이 주류 미디어를 따돌리고 대중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감의 한 줄>은 SNS 시대 무림고수들이 펼쳐놓은 주옥같은 어록을 분석한다. 주류를 자처하는 조·중·동의 대기자도 아니고 글로 먹고 사는 유명한 작가의 어록이 아니다. 갓 잡아 올린 파닥대는 물고기처럼 생생하고 눈부신 어록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는지 보여준다.

김제동은 반값등록금 집회에서 "더 이상 정치가 젊음을 굴리는 것이 아닌 젊음이 정치를 굴리게 해야 한다"라는 말을 남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주권을 가진 국민이 정치를 굴려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채 정치에 휘둘리며 찌질이처럼 살아왔던 날들을 돌아보게 해 준 통찰력이 돋보인 말이다.

"나는 영리하고 빠른 조직과 느리더라도 건강한 조직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느리더라도 건강한 조직을 택할 것이다"는 안철수의 말은 조급증에 걸려 무조건 빨리, 무조건 최고만을 추구하는 병든 사회에서 지치고 멍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2011년 기득권으로 다져진 정치권을 강타한 안풍(안철수 열풍)이 결코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크레인 위에서 전기는 그냥 불을 밝히는 수단만은 아니었다. 깜깜절벽, 절해고도 세상이 깊은 바닷속이다. 한두 모금 숨 쉴 용량만 남은 산소통 같은 트윗은 불안하다. 오늘밤도 길 건너편 보도블록 위에 앉아 긴긴밤을 밝히는, 누가 부르지 않아도 오는 저들, 불꽃같은 사람들. (책 속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 복직을 주장하며 85호 크레인에 올라 투쟁했던 김진숙의 글은 한 편의 감동적인 '시'다. 전국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응원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모두 각자의 크레인 위에 서 있습니다"라며 오히려 위로해주는 진심 담긴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려주었던 것처럼, 크레인 위에서 까마득한 크레인 아래 세상을 향해 보낸 글이 사람들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명문 칼럼보다 짧은 글이 세상을 움직이는 어록의 시대가 열렸다. 요즘 유명인은 어록을 남기고 어록은 세상을 움직인다. 김제동, 김태원, 이외수, 안철수, 박경철, 김난도, 정혜신, 진중권, 김어준, 노회찬, 손석희 등등. 뿐만 아니다. 이명박, 안상수, 홍준표 등 권력의 실세에 있는 사람들도 어록을 남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룸에 가면 자연산을 찾는다.","25.7%의 투표율은 사실상 승리." 등이 그것이다.

어록은 시대의 산물이다. 트위터를 타고, 페이스북을 통해 확산되는 한 줄 어록이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대중들의 가슴에 맺힌 생각을 핵심만 콕 집어 기막히게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지만 무한경쟁의 틈새에서 가진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기 힘든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준다.

어떤 의미에서 어록은 '현대사의 포스트잇'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록은 그냥 '삐끼'다. 이렇게 우리 시대의 어록 라인업에 들어갈 위인들의 생각 맛보기를 했다면 그들의 저작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맥락을 찾고 철학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록만 따먹는 것으로는 정신을 살찌우지 못한다. 본문을 읽자. 빨간 줄만 긋지 말고. (책 속에서)

덧붙이는 글 | 강명석 외/공감의 한 줄/북바이북/2011.10/13,500원



공감의 한 줄

강명석.고재열.김화성 외 지음, 북바이북(2011)


태그:#소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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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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