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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이 시작된 지 한 달여 남짓. 이 짧은 기간 동안, 한국은 물가 때문에 들썩였다. 한쪽에서는 솟값 폭락으로 신음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물가가 높아 장을 볼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때맞춰 정부는 물가관리 책임실명제라는 전무후무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물건을 사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모두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어떨까. 지난 1월 24일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광장시장을 찾아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원가가 올라 싸게도 못 팔아요"

한 곳에서 40년 동안 과일을 팔아온 권혜경씨는 단골 손님들의 주문도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한 곳에서 40년 동안 과일을 팔아온 권혜경씨는 단골 손님들의 주문도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 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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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하는 사람들도 힘들어. 설이지만 (시장에) 손님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고, 물가도 올라서 손님이 물건을 더 안 사는 거 같아. 가끔씩 물건을 사려는 손님도 조금이라도 저렴한 걸 찾으니까 어쩔 땐 정말 밑지고 팔 때도 있어. 싸게 물건을 들여오면 박리다매라도 하겠는데, 원가가 다 올라서 그것도 어려운 지경이야."

설을 맞이해 찾은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하나 같이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설 특수, 설 대목이란 말이 무색하게 개점 휴업인 곳도 눈에 띄었다. 인터뷰를 부탁하자 냉랭한 반응이 돌아왔다. 지나가던 상인은 "물가고 뭐고 장사가 안 돼서 죽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골목에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돌아다녔지만, 구입한 물건을 손에 들고 지나가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과일 가게가 늘어선 골목에 들어섰다. 다른 골목보다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장을 보는 사람들보다 구경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 뒤로 과일 상자가 쌓여 있었다.

광장시장에서 40년 동안 과일을 팔아 온 권혜경(73)씨는 "물가가 올라도 과일이니까 되도록 손님들한테 바로바로 보내려고 비싸게 가져오는데, 시장에서는 시세대로 판다"며 "(과일은) 창고에 넣어둘 수도 없으니 가격이 올라도 본전으로 팔거나, 때로는 밑지고 팔 때도 있다"고 말했다.

권혜경씨는 "설에도 사람들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로 가니 시장에는 사람이 줄고 있다"며 "시장 물건이 대형마트보다 싸고 좋아야 사람들이 올 텐데, 물건은 좋지만 가격이 싸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점점 시장을 찾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장 따님들이 골목까지? 골목 사람들은 뭘 먹고 사나"

손님이 없어 올해보다 내년이 더 걱정이라는 김점윤씨.
 손님이 없어 올해보다 내년이 더 걱정이라는 김점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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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파는 시장 입구 골목은 다른 곳과 달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가게마다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이고, 사람에 치여 걷기 힘들었다. 시장 입구부터 북적이는 모습만 보면 시장이 활성화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인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광장시장 중심 골목에서 반찬 가게를 하는 박순자(66)씨는 "국산 고춧가루가 한 근에 2만 원이 넘고, 소금, 젓갈, 마늘 등이 전부 다 올랐다"며 "김치 값도 1kg에 8000원, 한 포기에 2만 원이 되니 누가 사먹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박씨는 "김치 담그는 데 들어가는 식재료를 사려면 하루에 버스를 4번 정도 타야 하는데, 이러면 당장 버스비만 올라도 힘들다"고 덧붙였다.

박순자씨는 "젊은 사람들은 김치 한 포기를 하루면 다 먹는데 비싸서 김치를 사먹을 수나 있겠느냐"며 "비싸니까 장사가 안 되는 건데, 사용료나 인건비이 탓에 가격을 내릴 수가 없으니 악순환이 계속 된다"고 말했다.

이어 박순자씨는 "대기업 회장 딸들이 골목까지 들어 온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러면 골목 사람들은 뭘 먹고 살느냐"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세금 낼 건 다 내면서 골목에서도 밀리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중심 골목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니 원단과 한복 같은 의류를 파는 가게들이 나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인들은 거의 없고, 가게 안에 앉아 있는 상인들이 많았다.

좌판에서 원단을 파는 김점윤(78)씨는 "시장에 손님이 계속 줄어 장사가 예년보다 안 되는데 내년에는 더 안 될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김점윤씨는 "원단값은 매년 오르는데 장사가 안되니까 돈도 못 받고, 장사는 장사대로 안 되고… 말도 못한다"며 "원래 광장시장이 원단으로 유명했는데, 이제는 시장 어귀 먹는 곳에만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나머지 가게들은 하루에 몇만 원 팔고 집에 간다"고 털어놨다.

그는 "설인데도 장사가 안 되니까 다들 빨리 문 닫고 집에 가려고 한다"며 "여기는 만날 한가해서 여기서부터 골목 끝까지 뛰어가도 부딪히는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재래시장 살린다고? 이대로면 절대 못 살려

시장 입구부터 늘어선 음식코너에는 사람이 많았다. 시장 안쪽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시장 입구부터 늘어선 음식코너에는 사람이 많았다. 시장 안쪽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 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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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수를 맞은 가게도 사정은 마찬가지. 설에 가장 장사가 잘된다는 한복 가게를 찾았다. 하지만 한복 가게가 늘어선 골목길은 다른 곳보다 한산했다. 구경하는 손님은 많았지만, 적극적으로 한복을 사는 사람은 쉽게 찾기 어려웠다.

한복 가게를 운영하는 이춘자(67)씨는 "설에는 아동 한복이 팔리는 편이라 많이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장사가 안 된다"며 "갈수록 설에 한복을 입지 않는 분위기 같기도 하고, 경기가 어려우니 지출을 줄이면서 설빔도 입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춘자씨는 "재래시장을 살린다고 하는데 이대로면 절대 못 살린다"며 "시장에 위기감이 든 건 오래 전부터였지만, 배운 게 장사고 다른 걸 못 하니까 온종일 서서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만 보일 뿐 가게들의 사정은 비슷했다. 시장 입구와 시장 안쪽의 분위기는 크게 달랐다.

원단 가게를 운영하는 박아무개씨는 "시장에 손님이 없어진 걸 두고 누구를 탓할 수는 없다"면서도 "물가가 높아지고 경기가 어려워서 사람들이 장을 안 보는 건 경제를 잘못 운영한 탓"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박씨는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해서 물가도 잡고, 재래시장도 살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4월에 꼭 투표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물가가 오르면서 힘든 건 소비자만이 아니었다. 물건을 파는 상인들도 높은 물가에 힘겨워했다. 상인들의 한숨이 가득 찬 시장은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날씨보다 더 추웠다. 물가가 잡히고 재래시장도 살아나면 좋겠다는 박아무개씨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태그:#물가, #시장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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