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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에서 판매되는 보통휘발유 가격이 18일째 오르면서 2천원에 육박하고 있다.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유가정보사이트인 '오피넷'에 따르면 25일 현재 주유소의 보통휘발유 판매가격은 ℓ당1973.73원으로 지난 5일(1천933.30원)이후 지속적으로 상승, 연중 최고치를 나타냈다.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보통휘발유 가격이 18일째 오르면서 2천원에 육박하고 있다.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유가정보사이트인 '오피넷'에 따르면 25일 현재 주유소의 보통휘발유 판매가격은 ℓ당1973.73원으로 지난 5일(1천933.30원)이후 지속적으로 상승, 연중 최고치를 나타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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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지 쿠폰은 없어졌어요. 5만 원 이상 넣으면 세차를 2000원에 해드리고요, 10만 원 이상 넣어야 세차 무료예요. 얼마나 넣어드릴까요?"

집 근처에서 가장 저렴하다고 해서 종종 이용하는 주유소. 5만 원 주유하면 마일리지 적립 쿠폰에 도장 하나 찍어주고 세차 서비스가 기본으로 제공되던 주유소는 새해 들어 모든 서비스를 없앴다고 한다.

소비자들이 기름 값에 워낙 민감해서 조금이라도 싸게 공급하기 위해 서비스를 없앴노라고 항변하는 주유소 점원의 말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입간판에 걸린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970원, 당장에 한숨부터 나온다. '만땅'을 부르는 호기는 꿈도 생각지도 못할 일. 5만 원어치 주유를 하고 2000원을 내고 세차를 했다.

기름 값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서 운영 중인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Opinet)' 자료에 의하면 이달 1월 2일 리터당 1933.15원이던 주유소 보통 휘발유 가격이 1월 24일 리터당 1973.35원으로 20여 일 동안 꾸준히 인상되었다. 자동차용 경유 가격도 1월 2일 1788.86원에서 1월 24일 1820.60원으로 31.74원이 올랐다.

고급 휘발유는 리터당 2203.77원(1월 24일), 도시가스가 보급되지 않는 지역의 난방연료로 쓰이는 실내등유 가격도 1385.57원으로(1월 24일) 계속 올라가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보통 휘발유 2000원, 실내등유 1500원 돌파도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 누리집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 누리집
ⓒ 오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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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당 1970원... 가득요? 아뇨, 5만 원어치만!

꾸준히 올라가는 기름 값은 가득이나 힘든 서민들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는 모양새다. 우선은 직접 기름을 소비하면서 살아가는 화물 트럭 운전자나 보일러 등유에 의지하여 겨울을 나는 저소득 노인들의 고통은 직접적이다.

"환장하지요. 미치겠어요. 기름 값이 올라서."
"(빨리) 달리면 경비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4시간 올 거 5시간 정도 걸려요. 1만 원이라도 절약하려고." - <MBN뉴스> 2012. 1. 19.

화물차 팔아치우고 퀵서비스를 한다는 기자의 단골 퀵 기사 아저씨는, 말이 사장이지 월급쟁이보다 못한 빚더미에 사는 사람들이 트럭 운전사들이라고 했다. 운전을 생업으로 살아가는 화물 운전자들의 기름 값 인상 하소연은 삶의 절규처럼 처절하고 서글프다.

"보일러 기름 한 통 넣으려면 30만 원이 넘는다. 노인정에 가서 놀다가 밤에 잘 때 보일러 틀고 자면 되지, 하루 종일 방 뜨뜻하게 해놓고 어떻게 사냐? 아들한테 돈 타 쓰는 노인네들이."

시골에서 혼자 사시는 기자의 어머니는 당신이나 동네 노인 대부분이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아침밥을 드시고 노인정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시거나 집에서 전기장판을 틀어 놓고 사신다고 한다. 서울 같은 도시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도시가스 난방이 되지 않거나 난방 가스비가 걱정 때문에 전기장판이나 석유난로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폐지 줍는 노인들, 저소득층 가정의 삶도 기름 값 인상에 힘겨워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기름 값 인상이 단지 직접 유류를 직접 소비하고 살아가는 트럭 운전자나 저소득층 가정과 노인들에 국한된 고통이 아니다. 더 암울한 전망은 물가에 있다.

설 명절 이전 큰 폭으로 올랐던 과일 값이나 시금치 값 등이 하향세로 돌아서리라는 전망은 서민들이 가지는 한낱 희망에 불과하다. 오히려 공산품과 전기세, 가스비, 교통요금 등 기름 값의 직접 영향을 받는 품목이나 서비스 공공요금은 인상 억제 한계치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름 값 수직상승, '물가 쓰나미'의 암울한 전조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씨가 손녀와 함께 종로구 통인시장의 떡집에서 떡을 고르고 있다. 이같은 '서민행보'는 이 대통령 손녀가 입은 고가의 프랑스 명품 점퍼 때문에 엉뚱한 논란으로 흐르고 말았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씨가 손녀와 함께 종로구 통인시장의 떡집에서 떡을 고르고 있다. 이같은 '서민행보'는 이 대통령 손녀가 입은 고가의 프랑스 명품 점퍼 때문에 엉뚱한 논란으로 흐르고 말았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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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값이 수직상승하면 물가도 가파르게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날마다 기록을 갱신하며 오르는 기름 값은 부유한 1% 집단을 제외한 99% 모두에게 불안한 미래의 전조가 아닐 수 없다. 주부의 장바구니, 학원비, 신학기 아이들 책값, 교복비, 통신요금, 공공요금 어느 것 하나 기름 값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 서민들을 향해서 쓰나미처럼 몰려들고 있다.

이런 급박한 형국에서 정부의 물가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성장제일주의를 천명하던 정부가 올해 들어 성장보다 물가안정에 주력하겠다고 국정의 방향을 선회한 것에는 의미가 없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품목별 담당자를 정하고 3%대로 물가를 잡겠다는 대통령의 신년특별연설은 또 한 번 지켜지지 못할 립서비스에 그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례로 정부는 설 명절 전까지를 '생필품 특별관리 기간'으로 지정하여 생필품과 성수품의 가격을 날마다 점검하기로 했다지만 과일 값, 생선 값의 고공행진은 계속되었다. 그뿐인가? 대통령이 올해 물가인상률을 3%대로 잡겠다고 하자마자 서울시가 지하철 및 버스비 150원 인상안을 발표해 정부는 연초부터 체면을 제대로 구기고 말았다.

이런 누르기식 물가정책은 처음부터 한계가 너무도 분명했다. '배추국장', '무과장'이 있다 한들 물가의 근간이 되는 기름 값이 요동치는데 어떻게 가격안정을 이룰 수 있는가? 대형마트에 주유소 허가, 셀프 주유소 확대에 알뜰 주유조까지 기름 값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대책들. 그래서 기름 값이 잡혔는가? 오히려 주유소는 자본으로 집중되고 영세업자들만 거리에 나앉고 말았다.

대리점 이후 유통 마진은 10% 미만, 유류세 비율은 50% 육박

유통단계별 가격(2011년 11월~12월)
 유통단계별 가격(2011년 11월~12월)
ⓒ 오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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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와 에너지 전략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유류세 인하 부분도 검토할 생각'이라는 발언은 2011년 4월 6일 김황식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기름 값과 물가 대책으로 내놓은 답변이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난 4월 12일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도 "적정 시점에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정부와 정유사의 밀고 당기는 책임 공방만 있었을 뿐 유류세 인하는 아직까지 요지부동이다. 기름 값 인상으로 1조 원 이상의 세수가 더 걷혔다는 작년의 지적을 감안한다면 기름 값이 올라가는 지금도 유류세를 통한 세수 증대는 계속되리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올해 1월 둘째 주 정유사 제품별 평균 공급가격을 살펴 보면 보통 휘발유 1870.03원에 각종 세금이 915.89원으로 49%에 달한다. 자동차용 경유의 경우 1722.91원 중 각종 세금은 39.7%에 이르는 685.38원이다.

그에 비하면 유통 마진이 기름 값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다고 볼 수 없다. 2011년 11월 유통단계별 가격을 보면 보통 휘발유의 경우 세전 가격이 리터당 900.75원, 각종 세금이 첨가되어 1811.82원이 된다. 대리점은 마진을 붙여 1839.76원에 주유소로 공급하게 되고 주유소는 1981.02원에 소비자에게 팔았다는 통계이다.

기름은 정유사에서 대리점을 거쳐 주유소에서 소비자에게 팔린다. 통계에 따르면 대리점 이후의 유통 마진은 리터당 169.2원(9.3%) 정도이다. 알뜰 주유소를 늘리고 대형마트에 주유소를 허가해서 기름 값을 잡겠다는 대책이 얼마나 허구인지 간단한 통계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판단하기에 충분하다.

정유사 평균 공급가격(2012년 1월 둘째주)
 정유사 평균 공급가격(2012년 1월 둘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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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사 마진 공개하고 유류세 인하 적극 검토해야

기름 값이 요동치고 있다. 물론 그 책임이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할 수 없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 관계로 정부가 운신하기 좁은 측면도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수출을 해서 먹고사는 나라에서, 기름 값 폭등은 국가경제는 물론 서민의 살림살이를 되돌아올 수 없는 나락으로 내몰 수 있다는 점이다.

서민부채가 폭증하고 실업자가 넘쳐나고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된 나라에서 기름 값 폭등으로 모든 물가가 서민들이 인내할 수 없는 지경으로 오른다면, 이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도래를 의미한다. 경기 불황에도 물가 상승이 계속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 지금이 시작이라면 멈추지 않으면 안 된다.

서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 매자고 말했던 정부. 아직도 대리점을 거치기 전, 정유사의 마진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수천만 원의 성과급이 주어지고 수억 원의 스톡옵션이 주어진다는 정유사의 돈잔치.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기름 값의 50%에 육박하는 돈이 왜 세금으로 걷혀야 하는지, 국제 유가가 오를 때마다 세금은 왜 거기에 비례하여 더 내야 하는지 국민들은 설득되지 않았다. 국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 매자고 한다면 정유사와 정부의 지갑을 열어 보이는 것이 먼저이다.

이번 설에는 어김없이 재래시장을 돌면서 서민들의 등을 어루만졌던 대통령. 3%대로 물가를 잡는다는 약속이 허언이 되지 않으려면 유류세부터 손봐야 되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서민적인, 너무나 서민적인 대통령에게, 서민들의 고통의 눈물을 정부와 정유사가 먼저 나서서 닦아줄 용의는 없냐고 묻고 싶다.


태그:#기름값, #물가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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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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