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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지내고 나니 '새해'를 좀 더 새롭게 실감하게 된다. 오랜 세월 음력을 사용해온 민족의 후예인 탓인지, 또는 설 명절 덕인지 이제 제대로 임진년 새해를 맞았다는 느낌이다.

 

올해 임진년은 용의 해. 그것도 모자라 '흑룡'의 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용이 재앙을 상징하지만, 동양 문화권에서는 상서로움과 행운과 권위를 상징하는 영물이므로, 그만큼 '용의 해'에 대한 기대도 크다. 더욱이 올해는 4월 총선과 12월 대선, 두 번의 국가 대사가 치러지는 해이다. 올해 국민 모두가 지속적으로 용꿈을 꾸고, 스스로 용이 되기를 소망한다. 총선과 대선을 통해 변화와 변혁을 이룩하는데서 국민은 스스로 용이 되고, 눈부신 비상을 성취할 수 있다.

 

설 명절을 지내면서 다시 한 번 '설'이라는 말의 어원을 되새겨보았다. 그리고 '설'이라는 말 속에는 '쇄신'의 뜻이 내포돼 있음을 자각하게 됐다. 우리 민족이 설날 아침에 설빔을 차려 입고, 조상들께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나누고, 성묘를 하는 것은 '새 마음'을 갖고자 하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쇄신'의 구체적인 발현이었던 것이다.

 

요즘 정치권에서도 쇄신을 구현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사뭇 치열하다. 특히 집권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최근의 충격적인 선거 결과에 따라 그로기 상태가 돼 버린 당을 구하고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로기 상태에 직면한 당을 구할 수 있는 길, 다시 말해 비상대책위원회가 해야 할 일은 한마디로 당을 쇄신하는 길밖에 없다. '쇄신(刷新)'이라는 말은 '나쁜 폐단을 없애고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쇄신을 하려면 나쁜 폐단들을 정확히 식별하고 없애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식의 투철함과 치열함을 지녀야 하고, 그것은 마땅히 '자기부정'의 의지도 포괄해야 한다.

 

그런데 비대위의 움직임을 보면 '비상'이라는 말에 무게 중심이 있고, '쇄신'은 아예 여벌인 것 같다. 정략 쪽으로만 머리를 굴리다 보니 나쁜 폐단들을 없애고 새롭게 하는 일은 정략에 예속돼 있는 형국인 것이다.

 

그것은 한나라당의 한계이자 딜레마다. 한나라당은 생래적으로 쇄신을 할 수 없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쇄신을 하자면 걸리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자기 부정'을 실현한다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도 크기에 그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의지도 미약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나는 쇄신의 기초는 반성이여야 함을 다시금 되새긴다. 정치권에서 '쇄신'을 입에 담는 사람들에게서 '반성'이라는 단어를 접한 적은 거의 없다. 그들은 쇄신과 반성은 별개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반성이 전제되지 않고도 쇄신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고, 오랜 세월 그런 관성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쇄신은 미봉책이며 정략의 산물일 뿐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형국일 따름이다. 정치권의 그런 습성은 반성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찰해보면 반성적 공간이 너무도 미약하다. 숱한 국난을 겪고도, 또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도 그것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없다. 감추고 변명하고 분식하는 행위들만이 습성화돼 있을 뿐, 그 누구도 책임을 지거나 뼈아프게 반성을 한 기록이 거의 전무한 것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국가적인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우리 역사는 반성적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반성의 교훈과 전통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현대에 와서도 일제에 협력하고 부역한 민족반역자들이 오히려 활개를 치는 기현상을 낳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습성은 오늘에도 견고하게 이어지고 있다. 역사 속에 반성의 공간을 만들어 오지 못한 오랜 습성과 오늘의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현실적 딜레마를 보면서, 나 또한 국민의 한 사람이기에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반성적 공간을 확보할 수 없는, 그리하여 진정한 쇄신을 이룩할 수 없는 한나라당의 한계를 연민의 눈으로 보게 된다. 박근혜 자신이 쇄신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그 딜레마를 안고  가면서도 한나라당이 얼마만큼의 쇄신을 이룰 수 있을지, 흥미진진한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쇄신을 하려면 정체성을 잃게 되고 지지율이 흔들리는 박근혜의 딜레마를 안고 가면서도, 즉 반성과 자기부정을 체현할 수 있는 전면적인 쇄신은 아니더라도, 한나라당이 제한된 쇄신이나마 과감하고 슬기롭게 이룩해 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의 요체는 과거의 나쁜 폐단들을 제대로 식별해내는 일이다.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며 지난 5년 동안 집권해온 그 시간 속에 점철돼 있는 사건들, 국민들에게 실망과 자괴감을 안겨주고 분노케 한 일들을 차근차근 되짚어보며 과감하게 자기 살을 도려내는 일을 해야 한다.

 

돈 봉투 사건의 주역으로 떠오른 박희태 국회의장을 비롯해 국정을 농단하고 전횡을 일삼아온 현 정권의 실세들을 과감하게 척결해야 함은 물론이고,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왈패 국회의원들도 공천에서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과거 미디어법과 2011년도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할 때 주먹을 휘두르며 깡패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의원들, 상황에 따라 이리 붙고 저리 붙으며 카멜레온 같은 모습을 보여 온 변신의 귀재들, 과거의 민주화운동 인사들에게 탄압과 고문 등을 자행했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상식과 법 정의를 능멸했던 정치검사 출신 인사들, 공권력을 함부로 휘둘러 수많은 국민들을 죽게 하고 다치게 하며 절망에 빠뜨렸던 냉혈적인 사람들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한나라당은 제한된 쇄신이나마 그것의 실제성을 국민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악습과 나쁜 폐단들을 제대로 식별해 척결하는 일은 한나라당으로서는 절대로 필요하다. '보수'라는 껍데기에서 당장 탈피하지는 못하더라도, '보수'의 유치하고 왜곡된 사고방식을 탄력적으로 쇄신하는 일도 한나라당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현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패악들, 업적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숱한 업보들을 제대로 검증하고 식별해 자기 부정에 준할 정도로 쇄신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권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정권이 다른 정치세력으로 바뀌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라는 실례를 제시한다면 한나라당은 국민들에게 새롭게 보일 수 있는 길도 열릴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 노태우의 6공 정권이 광주학살의 최종 책임자이며 초법적 독재자였던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했던 일은 좋은 참고 사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제한적 쇄신이나마 과감하게 제 살을 깎는 차원의 쇄신을 보여 주기를 바라면서, 한나라당이야 어떻든 간에 다시 한 번 모든 국민들이 올 '용의 해'에 지속적으로 용꿈을 꾸게 되기를 기원한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치르면서 국민 모두 변화와 변혁 속에서 스스로 용이 돼 눈부신 비상을 이룩하게 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가톨릭뉴스/지금여기>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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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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