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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극장가에 <부러진 화살>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의하면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관객들은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그런지 실제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배우 박원상이 역할을 했던 '박준 변호사'다. 실제 인물은 경남 창원에서 주로 노동문제를 변론하고 있는 박훈(46) 변호사. 창원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박 변호사가 서울에서 진행된 재판에 변론을 맡은 사연이라든지, 박원상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등등 궁금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석궁사건 재판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재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어떻게든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 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도중 정지영 감독이 전화를 해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고 말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배우 박원상이 맡았던 박준 변호사의 실제 인물인 박훈 변호사가 창원에 있는 사무소에서 '석궁 사건'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배우 박원상이 맡았던 박준 변호사의 실제 인물인 박훈 변호사가 창원에 있는 사무소에서 '석궁 사건'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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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은 2007년 1월 15일,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수학)가 서울고등법원 민사2부 박홍우 부장판사(현 의정부지법원장)를 상대로 일으켰던 '석궁 사건'을 다룬 영화다. 지난 18일 개봉했다.

박 변호사는 요즘 바쁘다. 인터뷰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지난 1월 15일 연 인터넷 블로그(박훈 변호사의 세상만사)를 관리하기도 바쁘다. 그는 대법원에서 영화와 관련한 '대처'를 다룬 자료를 각급 법원에 보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에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 방문자가 늘어나고 있다. 1주일에 5만 명이 넘었고, 20일 하루에만 1만8000여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블로그에는 석궁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올려놓았다. 우선 "1심 7차 공판 속기록"(2007년 8월 28일, 박홍우 증언), "항소심 2차 공판 속기록"(2007년 12월 10일), "항소심 3차 공판 속기록"(2008년 1월 28일)만 올려놓았다.

박훈 변호사는 누구인가? 그는 민주노총 금속노조(금속연맹) 법률센터에서 9년간 상근 변호사로 있다가 2008년 개인 사무소를 냈다. 그는 2001년 대우차 부평공장 집회 때, 인천지법의 판결문과 핸드마이크를 들고 300여 명의 해고자들 앞에 섰다가 경찰의 물리력 행사로 인해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2007년 수백억 원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았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한테 집행유예와 '준법 강연'이라는 사회봉사 명령이 선고되고, '보복폭행' 혐의를 받았던 김승현 한화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때 박 변호사는 당시 재판을 비판하는 글("정몽구의 '준법' 강연? 이건 코미디다", 오마이뉴스 2007년 9월 11일자)을 쓰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이 높은 것에 대해, 박 변호사는 "부조리한 사회와 국가권력에 대한 정의감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의를 갈망하는 국민들이, 민중들의 심리가 응집되고 있는 결과다"고 말했다.

그는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한국사회 전반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국민의 감시를 받을 수 있는 제도 장치가 필요하다. 법원장·지검장 이상은 선출직으로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박 변호사는 "판사·검사가 가해자나 피해자로 된 경우에는 특별검사제도처럼 최소한 한시적으로 특별법원을 설치해 독립적인 재판을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영화를 통해 제도적 대안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22일 오후 박훈 변호사와 나눈 대화 전문이다.

'철학 있는 양아치 변호사'로 그려달라고 했는데...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 아우라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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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역할을 한 박원상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영화 촬영하기 전에 박원상한테 '너는 절대 박훈 변호사는 안 된다'고 말했다. '철학 있는 양아치 변호사'로 그려주기를 당부했다. 영화에서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덜 양아치로 나왔다. 마지막 10분 정도 장면에서는 연기를 잘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때 박원상과 같이 영화를 봤다. 그때 박원상은 제가 자기를 때릴까 벌벌 떨었다고 했다. 그때 영화 보고 나서 잘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박원상이 무척 기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 박원상은 안성기·문성근·이경영 등 쟁쟁한 배우들에 밀릴 수도 있었는데?
"박원상이 조연으로 출연한 셈이다. 안성기·이경영·문성근 등 명배우들이 나왔다. 특히 투 톱 주인공인 안성기한테 밀릴 거라고 판단해서, 처음 촬영 들어가기 전에 박원상한테 기를 사정없이 불어 넣어 주려고 했다. 일종의 '퍼포먼스' 같은 게 있었다. 박원상이 촬영 전에 창원에 내려와서 같이 밥을 먹었다. 그 때 '안성기 선배한테 밀리면 죽는다'고 말하며 숟가락으로 머리를 두 대 때렸다. 박원상은 안성기한테 밀리는 측면이 있었지만 잘했다."

- 석궁사건의 변론을 어떻게 해서 맡게 되었는지?
"김명호 선생이 이른바 '석궁 사건'이 있고 난 뒤, 가족들을 통해 저를 변호사로 선임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제가 정중하게 거부했다. 처음에는 사건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당시 언론 보도만으로 판단한 것인데, 왜 판결에 불만이 있다 해 석궁을 들고 가서 쏘아야 했느냐는 생각과 함께, 창원에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변호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거절했는데, 1심 공판이 끝나고 선고기일을 앞두고 법원을 통해서, 변호인 선임의뢰서를 보내오기에, 참으로 구애가 끈덕지다고 생각하면서 김명호 선생을 한 번 만나 봤던 것이다."

"1심 선고 앞두고 만나기 이전에 일면식도 없었다"

- 그러면 석궁사건 1심 재판 때부터 변론을 맡았던 것인지?
"그렇지 않다. 1심 재판 과정은 언론을 통해 알았다. 그때부터 재판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뭔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피해자(박홍우 부장판사)가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1심 선고 전에 선임계를 제출했지만, 1심 때 변론을 맡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판결문에는 1심 변호인으로 기재돼 있다."

- 그 전에는 김명호 교수와 일면식도 없었다는 말인지?
"그렇다. 김명호 선생 측에서 먼저 변호를 해달라고 요청해 온 것이다. 김 선생은 미국에서 귀국해서 복직 소송을 냈다. 당시 재임용 탈락 교수들을 구제하는 특별법이 만들어졌는데, 김 선생이 인터넷으로 관련 자료를 챙겨 본 모양이다. 제가 교수노조 추천으로 그 특별법을 만들 때 교육부 논의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제가 재임용 탈락 교수들의 구제와 관련한 글을 쓴 적도 있다. 그것을 김 선생이 보고, 제가 사태 파악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김명호 선생은 귀국한 뒤에 제 사무실로 여러 차례 전화를 했다고 하는데 한번도 받은 적은 없었다. 석궁사건 1심 선고 앞두고 만나기 이전에는 일면식도 없었다."

- 사람들이 <부러진 화살>을 많이 보는 것 같은데?
"관객들이 부조리한 사회와 국가권력에 대한 정의감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의를 갈망하는 국민들이, 민중들의 심리가 응집되고 있는 결과다."

- 지난해 광주 장애학교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개봉되어 반향이 컸는데, 이번 영화도 그 정도 반향을 불러올 것이라 보는지?
"저는 이 영화가 <도가니>와 성격이 다르다고 본다. 도가니는 장애인시설의 성폭력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면서, 사법부는 곁가지로 다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법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도가니>가 장애인 문제를 환기해 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면, 이 영화는 사법부 문제를 온전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다른 범주다. 성격은 같을지 몰라고 범주는 다르다."

"공판속기록에 기초한,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

박훈 변호사.
 박훈 변호사.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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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사실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가 사실인지?"영화는 법정 안과 밖의 장면으로 크게 구분된다. 법정 안에서 판사, 검사, 피고인, 변호인이 말하는 장면은 공판속기록에 기초한 내용이다. 완전히 사실에 기반을 하고 있다. 법정 밖 장면은 창작된 내용이 있다."

- 영화 마지막에 방청객들이 판사를 향해 계란을 던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실제는?
"석궁사건 항소심 5차 공판 때 사건이다. 판사가 재판을 졸속으로 끝내려고 했다. 저와 피고인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퇴정했다. 그 와중에 방청석에 있던 분들이 계란을 던졌다. 던진 계란은 3개 정도로 기억하는데, 판사들이 앉아 있는 '법대'까지는 날아가지 못했다. 그날 법원 직원들이 경호를 하고 있을 정도로 살벌했다. 계란 던지는 것을 막으니까 농구공을 슛하듯이 던졌고, 법원 직원들은 공을 블로킹하듯이 막았다. 계란은 법대까지 날아가지 않았고, 변호인석에 하나, 사무관 앞자리에 하나가 떨어졌다. 영화에서는 계란이 판사가 앉아 있는 의자까지 날아가는 장면으로 나왔지만, 실제 판사석까지 날아가지 못했다. 그때 계란을 던진 사람은 감치 13일 처분을 받았다."

- 영화에서 배후 김지호가 맡은 역할인 여기자는 친구로 나오는데, 실제 어떤 사이인가?
"종합적으로 들어와 있는 캐릭터다. 기자는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언론사 기자인데, 30% 정도만 사실이다. 어쨌든 허구로 만들어 낸 것이다."

- 영화는 사법부 문제를 다루었지만, 언론 문제도 언급하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취재했던 기자가 나중에 배제되는 대상으로 그렸다. 실제 기자가 보도를 못하게 된 뒤에 '죄송하다,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문자 메시지를 날린 적이 있다."

- 영화 개봉 뒤에 주변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계의 반응은?
"개인적으로 법조계의 반응을 알 수 없다. 옛날에 법조계를 비판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실은 적이 있었는데, 누리꾼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법조계는 무반응이었다. 지금도 아마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석궁사건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판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명호 교수는 유죄라고 지금도 확신한다고 했는데?
"자기가 판결을 내렸으니까 유죄를 확신할 것이다. 법관은 유죄의 증거가 될 만한 것을 갖고 확신하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 안타깝게도, 인정할 수 없다. 재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든 그런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정지영 감독이 먼저 전화를 해 영화로 만들어 보겠다고 했는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김명호 교수는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부교수확인소송을 냈지만 패했다. 또 복직소송을 냈지만 역시 패했다. 그 민사소송 결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명호 선생은 1995년 재임용에서 탈락했을 때 부교수확인소송을 냈는데 졌다. 현재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있을 때 1심 선고를 했다. 복직소송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2007년에 내려졌는데, 당시 서울고등법원 박홍우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있었다. 그 판결문의 핵심 요지를 보면, 김명호 선생은 학문적 업적이나 교수의 자격은 있지만, 자질과 품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교수재임용제도의 문제점이 바로 그것이다. 객관적 지표가 아닌, 주관적 지표를 들이대는 것이다. 재임용에서 탈락시키고 싶은 교수가 있으면, 품성이라든지 인화단결을 이유로 든다. 객관적 지표만으로 교수재임용 문제를 심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두 민사소송 판결은 문제의식이 없었던, 아주 안 좋은 판결이다."

검경은 처음부터 '살인미수' 혐의로 수사

- 인터넷에는 영화와 관련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글도 올라오고 있는데, 가령 '김명호 교수는 살인죄로 기소되지 않았고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의 상해죄로 기소되었다'고 한다. 어떤가?
"결과적으로는 맞는 주장이다. 그런데 경찰과 검찰은 수사에서 김명호 교수를 '살인미수'로 수사했고, 언론에도 그렇게 보도됐다. 사건 수사기록에 보면 다 나와 있다. 사건이 발생한 날짜가 2007년 1월 15일인데, 경찰이 작성한 29일자 조사기록을 보면 '살인미수 등'이라고 해놓았다. 30일 검찰이 작성한 조서에도 '살인미수'라 해놓았다. 처음부터 살인미수 혐의를 두고 조사를 했는데, 결정적으로 바뀌게 된 게 피해자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검찰이 살인미수를 해서는 안되겠다 싶어 '상해죄'로 기소를 한 것이다. 그런 것은 언론 보도나 기소 전단계까지 살인미수 혐의로 수사를 했기에 사실과 어긋나지 않다. 기소 전후 과정을 사실에 입각해서 영화로 만든 것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배우 박원상이 맡았던 박준 변호사의 실제 인물인 박훈 변호사는 창원에 있는 사무소 앞에 영화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배우 박원상이 맡았던 박준 변호사의 실제 인물인 박훈 변호사는 창원에 있는 사무소 앞에 영화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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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궁은 시위를 걸어 당기면 자동으로 안전장치가 잠기고, 이를 풀지 않으면 발사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화살이 발사되었다는 것은 김명호 교수의 소행으로 보인다는 것인데?
"판결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는 박홍우 부장판사의 복부에 난 상처가 석궁으로 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판결문의 내용은 고의로 쏘았느냐, 우발적으로 쏘았느냐는 것이다. 전제가 다르다. 우리는 화살이 발사됐다는 것은 맞다고 본다. 화살이 발사됐지만, 박홍우 부장판사의 복부에 맞지 않고 콘크리트 벽 같이 강한 물체에 맞아서 화살 끝이 뭉퉁해지고, 부러지듯 꺾였다는 것이다.

판결문은 화살이 복부에 맞았고, 단지 우발적으로 쏘았느냐 고의로 쏘았느냐를 판단하는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논점이 완전히 다르다. 우발적으로 화살이 나가서 복부에 맞았다면 '석궁은 시위를 걸어 당기면 자동으로 안전장치가 잠기고, 이를 풀지 않으면 발사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맞을 수 있지만, 우리는 화살이 복부에 맞지 않았다고 본다. 두 사람이 석궁을 잡고 드잡이짓을 하다가 넘어지면서 안전장치가 풀어질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화살은 복부에 맞지 않았다는 게 우리 주장이다."

재판 때 피해자 옷 입어 확인하자고 했더니

- 화살은 양복상의, 조끼, 와이셔츠, 내복상의, 속옷(런닝)을 관통하여 피해자의 복부 근육층까지 박혔다 하고, 각 옷의 구멍이 일치한다는데?
"제가 재판에 관여하지 않았던 1심 7차 공판 때의 속기록을 보니, 각 옷의 구멍을 맞추어 본 모양이다. 김명호 교수측은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한테 그 옷을 입어봐서 복부 상처 부위와 뚫어진 옷의 부위가 맞는지 확인해 보자고 했는데 그는 옷을 입지 않았다. 그래서 김명호 교수가 옷을 입어 보겠다고 했는데 재판부는 제지했다. 옷을 입어 봐야 각도가 나오는데 말이다."

- 김명호 교수 측은 박홍우 부장판사의 와이셔츠에 혈흔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국과수 감정결과에는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되었다고 했다는데?
"와이셔츠 화살 구멍 주변에 혈흔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오른쪽 어깨 뒷 부분에 혈흔이 있는데 그렇다면 피해자는 오른쪽 어깨 부위를 다쳐야 한다. 그런데 다친 부위가 없다. 복부 창상만 나고 어깨를 다쳤다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복부 창상이라고 하면 화살구멍 주변에 피가 순차적으로 배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다른 옷에는 혈흔이 있는데 중간에 입은 와이셔츠만 혈흔이 없다. 국과수는 와이셔츠 오른쪽 어깨 부위에 있는 혈흔만 갖고 한 것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2011년 12월 14일 오후 창원을 찾은 정지영 감독이 영화 속 한 인물인 박훈 변호사(박원상 역)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2011년 12월 14일 오후 창원을 찾은 정지영 감독이 영화 속 한 인물인 박훈 변호사(박원상 역)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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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은 어디로 갔나?

- 부러진 화살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미궁이지만, 그것은 수사기관에서 책임을 져야 할 문제가 아닌지?
"수사기관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주장하는 무죄의 주요한 근거다. 조작됐다는 것이다. 피해자로부터 화살을 넘겨받은 경비원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화살이 부러져 있었다는 것이다. 범행 도구를 찾으면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텐데 없어졌다는 것이다. 경비원은 김명호 교수가 허리 춤에 차고 있던 화살 2개와 함께 부러진 화살까지 3개를 수거해서 화단 위에 올려  놓았다고 했다. 그것을 현장에 출동했던 112 순찰 대원이 수거해 갔다. 그런데 부러진 화살이 없어졌다. 범행 현장 주변을 경찰이 수사해서, 1층과 2층 계단 복도에 놓여 있던 석궁 가방과 화살 총 7개, 회칼, 노끈을 가져갔다. 법정에는 화살이 총 9개가 나왔다. 석궁에는 총 10개의 화살이 들어가는데 1개가 없어진 것이다. 그것이 부러진 화살이다."

- 김명호 교수는 피해자의 집을 7회 사전답사하고, 여러 차례 석궁 연습을 했다. 석궁 가방 안에는 회칼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위해를 가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는 것인데.
"우리는 화살이 피해자의 복부에 맞지 않았다는 주장이고, 자기들은 맞았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맞았다고 보니까 그런 정황을 고의로 쏘았다는 증거로 끼워 맞추어 놓은 것이라 본다. 회칼은 재판에서 전혀 논점이 되지 않았고, 수사 과정에서 잠시 나온다. 회칼을 가방에 넣어두었던 것에 대해, 수사에서는 피해자를 납치해서 살해하려고 했던 거 아니냐는 취지로 조사를 했다. 김명호 교수는 이사 준비를 하다 가방에 넣어 두었던 것이라고 한다. 회를 좋아했고,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잊고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 김명호 교수가 '응징하려고 쐈다'는 말을 했다는데?
"김명호 교수는 '응징하려고 쐈다'는 진술을 한 적이 없다. 진술조서를 보면, 박홍우 부장판사의 운전기사가 피의자를 붙잡은 다음에 그가 '판사를 응징하기 위해 쐈다'는 말을 했다고 진술해 놓았다. 그런데 경비원은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진술해 놓았다. 김명호 교수는 민사소송 재판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내려고 했던 것이지 응징하기위해 쐈다는 진술을 한 적이 없다."

-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가 이 영화의 리얼리티에 관한 문제가 있다(<오마이뉴스> 1월 23일자 기사 "사법부를 향한 화살 ... 살짝 빗나갔습니다")고 했는데?
"희한하다. 대법원이 직접 대응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진보적 법조인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영화에 대해 문제제기를 더하고 있어 의아스럽다. 박찬운 교수의 주장은 사건의 본질을 완전히 호도하고 있는 내용이다. 우리는 석궁을 가지고 판사 집으로 가서 위협한 것을 부정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겠다고 했다. 다만 박홍우 부장판사가 화살에 맞지 않았는데, 그것을 맞았다고 주장하며 재판이 진행된 점을 영화에 그리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가 고위법관인데 거짓말을 한 사건이고, 거짓말한 것을 밝혀내려는 과정에서 재판부가 강압적으로 무시했기에 사건이 됐을 뿐이다. 본질을 호도하는 측은 바로 석궁을 들고 갔다는 자체만을 문제 삼고 있는 대법원과 박찬운 교수는 같은 류다. 양비론적 시각은 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모처럼 불붙고 있는 사법개혁 요구를 가로막는 행위다."

석궁사건, 재판 다시 할 수 있다

- 영화를 본 관객들은 지금 단계에서 김명호 교수의 민사소송(부교수확인소송, 복직소송)이나 석궁사건과 관련해  다시 재판을 하는 게 가능한지 궁금해 한다.
"민사소송은 재판을 다시 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 석궁사건은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재심이 가능하다. '인혁당 사건' 등에서 보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해서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서 몇 십년이 지나도 재심을 했다. 새로운 증거가 나오려면 재수사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검찰에 맡길 수 없다. 특별검사가 전면 재수사를 해 새로운 증거가 나오거나 관련자들이 위증을 했다는 선언이 나와 위증죄·무고죄로 확정이 나면 재심이 가능하다. 영화가 흥행을 해서 '도가니사건'처럼 재수사하라는 목소리가 높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한나라당의 한미FTA 국회 비준 날치기 처리를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2011년 11월 23일 저녁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열렸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박훈 변호사
 한나라당의 한미FTA 국회 비준 날치기 처리를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2011년 11월 23일 저녁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열렸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박훈 변호사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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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부 불신이 높은데?
"석궁사건 자체가 사법부의 불신에 연유해서 일어난 것이다. 사법부의 한 식구인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피해자가 된 사건이라면, 더 공정하게 재판을 해서 사법부의 불신이 사라지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사건이 발생한 지 4일 뒤, 전국법원장회의를 소집해서 '사법부에 대한 테러'라며 엄벌해야 한다고 했다.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수사와 판결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 사법부 불신을 해소하는 계기로 삼자고 주장했지만, 재판은 일사천리 졸속으로 진행됐다.  통렬히 반성을 해야 한다."

- 석궁사건과 관련해 고쳐야 할 제도가 있다면?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한국사회 전반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번도 국민의 감시를 받지 않은 폐쇄된 권력이다. 이번 기회에 국민의 감시를 받을 수 있는 제도 장치가 필요하다. 각급 법원장급과 지검장급 이상은 선출직으로 뽑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선출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판사·검사가 가해자나 피해자가 된 경우에는 특별검사제도처럼 최소한 한시적으로 특별법원을 설치해 독립적인 재판을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영화를 통해 이 두 가지 제도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태그:#부러진 화살, #박훈 변호사, #석궁 사건, #김명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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