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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원장 정태인)은 새해를 맞아 2012년 한국 사회를 전망하는 글을 기획했다. 앞으로 10회에 걸쳐 경제 분야에서는 세계경제, 그리고 가계부채와 일자리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경제를 전망하며, 사회 분야에서는 복지 확충을 중심으로 보건의료와 보육 문제를 살펴보고 증세 방안을 검토한다. - 기자 말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에 위치한 베이비빌리지 '마을과 아이들'. 저소득 여성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자녀 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에 위치한 베이비빌리지 '마을과 아이들'. 저소득 여성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자녀 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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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은 황금돼지해, 2010년은 백호해, 올해는 60년만에 돌아오는 흑룡해다. 출산 장려를 위해 해마다 붙여진 수식어도 다양하다. 이때마다 출산율은 반짝 회복되다가 또다시 감소했다.

우리의 합계출산율은 1.2명으로, 사실상 10년 동안 답보 상태다. 선진국들의 출산율은 10년 전에 비해 현저히 회복돼 OECD 평균 합계출산율 2명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우리는 OECD 국가들 중 여전히 꼴찌다.

저출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정치권에서도 무상보육을 당론으로 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임기 1년을 남기고 만5세아의 무상보육을 시작한다. 지난해까지는 자산소득에 따라 차등 지원되었던 것을 올해 3월부터는 시설을 이용하는 만5세아 가정에 매월 20만 원을 지원하고, 2016년까지 월 30만 원으로 올릴 계획이다.

그동안 만5세아 무상보육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정부는 '보육비 부담이 높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안을 내었다가, '무책임하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만0-5세 무상보육은 이명박 정부의 공약사항이었지만, 지난 4년 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취학전 공교육 확립의 기회로 삼아야

이번 만5세아 무상보육에는 보육비 지원 외에도 교육과정에 대한 개정도 들어있다. '누리과정'이라 하여 전체 보육시설(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하루 3~5시간 동일한 과정을 가르치도록 하는 공통교육이 실시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만5세아 교사는 별도로 마련된 누리과정 교육과 추가 지원금을 받는다.

이는 취학전 공교육을 확립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이 기회를 잘 살릴 수 있을지 우려되는 지점이 많다. 우선 현재 보육시설과 유치원은 관리 체계가 다르다. 보육시설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유치원은 교육과학기술부의 관리로 운영되어 감독 체계가 동일하지 않다. 또한 교사양성과정부터 보육과 교육과정도 차이가 난다. 대표적으로 보육시설은 종일제, 유치원은 반일제 운영이 기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내용을 동일화시키기에는 정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교사의 자기계발 시간, 임금 등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많은 차이가 있다. 학부모의 부담 정도도 그렇다. 보육시설의 비용은 표준보육비용이 정해져 있고 기타비용에도 상한선을 두고 있지만, 유치원은 별도의 규정 없이 시장가격에 따라 움직인다. 정부가 월 20만 원씩 지원을 한다 해도, 사립유치원 5세아 가정의 추가 부담은 20~30만 원이 넘는다. 보육시설과 유치원 과정에서 누리과정이 잘 시행될지,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뤄질지, 5세 담당 교사에 대한 처우는 동일하게 맞춰질지 등 복잡한 과정이 남아 있다.

만0~2세아의 무상보육 예산도 통과되었지만, 성급함으로 인해 형평성 논란을 겪었다.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만0~2세아의 경우 보육료를 차별없이 지원해주게 되었지만,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가정에서 돌보는 다수의 영아에는 차등적 양육수당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0~2세아의 절반은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부모가 직접 양육하거나, 조부모와 친인척 등에 맡겨지고 있다. 연령별로 보면 만0세아는 72.1%, 만1세는 48.3%, 만2세는 28.8%가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결국 항의가 빗발치자, 정부는 만0~2세아의 양육수당을 보육시설 이용에 관계없이 보편화하는 것으로 수습했다. 그러나 추가적인 양육수당 예산이나 지원 정도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또한 만3~4세아 보육료 지원은 여전히 선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사각지대가 크다.

양육수당 범위 제한적, 안전한 보육시설 부족

저소득 여성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보육시설 '마을과 아이들'. 저녁6시 종일반 하루 일과가 끝날 시간 아이들은 퇴근한 엄마의 품으로 돌아간다.
 저소득 여성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보육시설 '마을과 아이들'. 저녁6시 종일반 하루 일과가 끝날 시간 아이들은 퇴근한 엄마의 품으로 돌아간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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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는 무상보육이 원칙 없이 진행되면서 중요한 사항을 놓치고 있다.

첫째, 양육수당의 문제다. 현재 양육수당은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만0~2세아 차상위계층에 월 10~20만 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혜택의 범위가 극히 제한적이다. 선진국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가족수당과 아동수당을 통해 차등없이 지원하고, 추가적으로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사정은 다르다. 양육수당만으로 저소득층이 가정 돌봄을 수행하기 어려운데다,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더라도 보육료지원 외 기타경비가 많아 시설 이용을 꺼리게 된다. 또한 맞벌이 가정은 보육료조차 지원받기 어려운 구조여서, 보육료지원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더 유인하지 못한다. 결국 보육료지원이나 양육수당 등 어떤 정책 수단을 통해서도 아이 양육비 부담을 제대로 덜어주지 못한다. 

둘째, 영아의 보육시설 이용률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영아는 어느 연령보다 돌봄의 손길이 절실한 때이지만, 시설에서는 교사 한 명이 만0세 3명을 돌보고, 만1세의 경우 5명~7명까지 돌본다. 양질의 돌봄이 이뤄지기에 미흡할 수밖에 없다. 집단생활 속에서 안전사고와 질병에의 노출도 끊이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아를 둔 부모들은 시설 이용을 피하고, 영아를 맡길 만큼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을 집 가까이에서 찾기도 어렵다. 

시장주의 보육정책, 부모 부담은 줄지 않아

이렇게 된 데에는 이명박 정부가 철저하게 시장주의 관점에서 보육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공보육을 살리려는 의지나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보육료만 지원하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 정책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보육지원에도 부모 부담은 줄지 않는다. 기본 보육비 부담은 줄었을지 몰라도 기타 비용, 바로 사교육 비용이 늘면서 부모 경비는 더 늘었다. 영유아 사교육은 부모의 조기교육 열풍과 민간 보육시설 간 과열경쟁이 낳은 합작품이다.

사교육은 보육시설이 원아 모집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보육시설은 평균 특별활동 3-4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심지어 10여 개에 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정부가 특별활동을 단속한다고 지침을 내렸지만, 이를 제재할 강력한 수단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또한 이명박 정부 들어 가장 후퇴한 정책이 국공립보육시설 확충이다. 참여정부는 국공립보육시설 비중을 30%까지 확대할 계획을 세워 매년 100여 개 이상의 국공립보육시설을 지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농어촌 등 취약지역으로 국공립 확충을 제한하면서 국공립보육시설 비중은 5.3%까지 추락했다. 

보육예산은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보육료지원에 보육예산의 77%가 편중되어 있다. 반면, 양질의 서비스를 담보할 보육인프라 구축은 한참 뒤떨어져 있고, 보육시설운영지원 비중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국공립보육시설 신설 예산이 2008년에는 99억1100만 원이었으나, 2011년 19억8200만 원으로 80% 이상 확연히 줄었다([그림1] 참고). 믿고 맡길 만한 저렴한 서비스 환경은 보육지원과 함께 우선되어야 할 과제이다.

자료 : 보건복지부 보육예산 검토 보고서
▲ [그림1] 보육부문 재정 지출 추이 자료 : 보건복지부 보육예산 검토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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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지역 독점체제가 되어버린 어린이집

사실상 민간시설이 소규모 지역 시장에서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보육정책 하나를 결정하는데 다수 민간시설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부작용이 반복되고 있다. 지자체가 보육시설 수도 제한하고 있어 학부모의 선택권이 넓지도 않다. 보육이 시장에 내맡겨지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집 가까이에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시설이 많지 않다. 보육서비스의 질은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면서 비용은 비용대로 오르고 있다. 

정부도 민간시설의 서비스를 끌어올리기 위해 보육서비스 평가와 지원을 연계한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의 평가인증제와 지자체의 평가항목을 결합해 만든 서울형과 부산형어린이집, 민간의 준공영화를 유인하는 공공형 어린이집 등 이전에 없던 시도들이다.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를 못 내고 있다. 서울형 어린이집은 지정된 시설에 국공립보육시설에 준하는 지원을 하고, 부모 부담도 동일하게 낮춘 제도다. 그러나 서울형 민간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부모들은 서울형 국공립보다 못하다고 인식한다. 안정적인 운영, 양질의 교사 채용, 먹거리 안전, 안심 보육 등의 항목에서 국공립보육시설이 민간시설보다 높이 평가를 받는다. 방대한 보육시설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는 이상 제 효과를 내기 힘들다.

한편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상보육과 함께 여성의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일과 출산, 양육을 병행하는 이중 부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혹은 출산과 양육을 위해 일을 포기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정체되고, 경력단절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그림2] 참고). 선진국의 경우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 높은 나라에서 출산율도 높게 나타난다. 여성이 일하면서 양육을 병행하거나, 자유롭게 일과 가정을 오갈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되어야 함을 말한다.

자료 : 여성가족부
▲ [그림2] 육아휴직을 쓰지 않는 이유 자료 : 여성가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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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여성 경력단절 가져온 나쁜 정책, 유연근문제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일-가정양립 정책은 질 나쁜 일자리만 양산하면서, 경제적 불안을 높이고 있다. 정부는 출산과 양육기 여성을 배려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는 목적으로 유연 근무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오히려 출산 전이나 자녀양육기를 벗어난 여성의 시간제 일자리만 늘리고 있다. 일-가정양립 정책이 오히려 여성의 경력단절을 공고히 하는 나쁜 정책으로 자리한 셈이다. 선진국에서는 유연한 근무형태를 확산하기 전에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과 처우차별 금지법을 마련했다.

미래 불안을 낮추고 출산을 높이기 위해서는 하나의 답만 제시되어 있지 않다. 선진 복지국가들은 여성의 성평등권, 노동권, 부모권, 아동권 등의 과제를 가족정책이라는 큰 틀 안에서 함께 풀어가고 있다. 대다수 선진 복지국가들은 가족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 자녀양육과 관련된 지원정책도 다양하다. 자녀양육을 지원하는 정책들은 재정적 지원(현금급여, 세제지원, 서비스와 재화, 주택지원 등), 시간적 지원(휴가 및 휴직 등), 보육서비스 지원 등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종합적인 대책이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불안을 해소해줄 수 있다. 국내외 경제 불황, 고용 불안정, 주거비 상승, 청년 실업, 사교육비 증가, 맞벌이 갈등 등 총체적인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에 노출되어 있고, 자녀 세대로 고스란히 대물림될까 섣부르게 출산을 결정하지 못한다. 출산과 자녀 돌봄으로 인한 부모들의 갈등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줘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시장주의 보육정책을 먼저 수정하고, 여성고용의 아킬레스건인 경력단절의 문제를 극복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최정은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태그:#무상보육, #보육정책, #일가정양립정책, #여성고용,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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