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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오만한 권력과 비상식을 향해 활을 겨눴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정지영 감독의 신작 <부러진 화살>의 실제 변호인으로 활동한 박훈(46) 변호사가 개봉을 앞두고 파장에 대비하고 있는 대법원을 겨냥해 "엉뚱한 시비를 걸지 말라"고 경고해 주목된다.

 

대법원이 전국 각급법원에 소위 '대응 매뉴얼'을 배포하자, 박훈 변호가 블로그를 개설하고 당시 법정 자료를 차례로 공개해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18일 개봉하는 영화 <부러진 화살>은 2007년 1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판사 석궁테러'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가 교수재임용거부결정무효 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내린 항소심 재판장을 찾아가 석궁으로 쐈다는 사건을 재판 중심으로 다룬 영화다.

 

물론 김명호 전 교수는 '판사 석궁테러'라는 말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최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판사 석궁테러', '사법부 테러'라는 것은 웃기는 말이다. '사법부에 대한 석궁의거'가 맞다. 앞으로 그렇게 표현하라"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의 발단은 성균관대 입시시험에 출제된 수학문제 오류를 발견한 김명호 교수가 수학자적 양심을 갖고 출제오류를 제기한 이후 교수재임용에서 탈락하자 '대학의 보복'이라며 교수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나 항소심에서도 패소하면서 시작된다.

 

그러자 김 전 교수는 2007년 1월 15일 당시 재판장인 박홍우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집 앞에서 석궁을 갖고 기다렸다가, 퇴근하는 박홍우 부장판사와 아파트 입구에서 '항소심 기각'을 놓고 옥신각신 말다툼을 하다가 몸싸움을 벌이게 됐다. 둘은 뒤엉켜 계단으로 굴렀고 그 과정에서 석궁 1발이 발사됐다.

 

김 전 교수는 현장에서 박 부장판사의 운전기사와 아파트 경비원에 의해 붙잡혀 경찰에 인계됐고, 경찰과 검찰은 김 전 교소가 박 부장판사에게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했다. 김명호 전 교수는 결국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돼 복역해야 했다.

 

사건 발생 직후 법원행정처는 긴급 간부회의를 열어 "재판 결과에 대한 불복 차원을 넘어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테러"라고 규정했고, 4일 뒤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도 거듭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못 박으며 법관의 신변보호 등을 골자로 한 '사법질서 보호법' 제정을 추진키로 하며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명호 전 교수 "재판이 아니라 개판"

 

하지만 김명호 전 교수는 재판과정에서 불합리한 재판진행을 꼬집으며 '판사가 법을 지키지 않는다. 법을 지키라'고 호통을 치며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라고 성토했다.

 

변호인인 박훈 변호사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박 변호사는 항소심 2차 공판에서 "원칙적으로 사법부는 사건에 예단을 갖고 임하지 않아야 됨에도, 이 사건이 일어나자 바로 소집된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엄단에 처해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며 "대한민국 사법부는 이 사건에 대해 재판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꼬집을 정도였다.

 

김명호 전 교수와 박훈 변호사가 재판진행을 지적한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것처럼 징역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필요적 변호사건임에도 1심 공판(8,9회)에서 변호인의 출석도 없었고, 국선변호인도 선정되지 않은 채 변론을 종결해 '무효'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에 근거한 공소사실에 대한 채증법칙 위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에 대한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박훈 변호사는 공판과정이나 항소이유서 등에서 "피고인의 진술은 일관된 반면, 판사경력 25년의 피해자(박홍우 부장판사)의 진술 및 증언은 사건 피해자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횡설수설 하고 있으며, 진술의 번복과정도 전혀 이치에 맞지 않아 피해자가 사건 자체를 조작했다는 심증이 가는데도 재판부는 '판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피해자가 주장하는 '복부에 박힌 화살'은 부러진 화살이었고, 당시 화살은 경찰이 가져갔는데 이후 법정에서는 볼 수 없었다. 김명호 전 교수와 박훈 변호사는 이 중대한 증거인 부러진 화살이 증발했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압수한 화살이 피해자 복부에 박혀있던 것이라면 화살에 확실하게 피해자의 혈흔이 검출돼야 함에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 분석 감정서에 의하면 화살에서 혈흔 반응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박훈 변호사의 주장이다. 박 변호사는 "도대체 부러진 화살은 언제 어디로 사라진 것이냐"고 재판부에 물으며 증거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김명호 전 교수와 박훈 변호사 정말 황당해하는 부분을 보면, 피해자는 양복, 조끼, 와이셔츠, 내복, 메리야스 순으로 입고 있었다. 그런데 상처는 복부에 나 피가 스며 나오는데 내복과 조끼에는 혈흔이 있는데 그 사이에 입고 있었던 와이셔츠에는 혈흔이 전혀 없다는 대목에서는 증거조작이 되지 않는다면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항변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 김명호 전 교수는 기자와 만나 자리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비화를 설명했다. 어느 날 시나리오 작가가 공판과정을 담은 <부러진 화살>(서형 지음)이라는 책이 재미있다며 정지영 감독에게 건넸다. 책을 몇 장 넘긴 정 감독은 처음에 흥미가 없어 팽개쳤는데, 작가가 낄낄거리며 재미있게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다시 읽어 본 뒤 영화로 만들겠다며 교도소로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김 전 교수의 말대로 "사실 그냥 묻힐 뻔한 것"이었다.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 졌고 작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아 상영됐는데,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고, 뒤이은 시사회에서도 호평이 이어졌다. 전국 개봉은 내일 18일이다.

 

대법원, <부러진 화살> 정리한 자료 발송

 

그런데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 영화 '도가니' 때문인지 최근 대법원은 전국 각급법원 공보판사에게 <부러진 화살>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리한 자료를 발송했다.

 

김명호 전 교수와 박훈 변호사가 공판 과정에서 일관되게 주장했고, 영화의 핵심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부러진 석궁 화살이 증거물로 제출되지 않은 이유, 화살이 옷을 관통했는지 여부 등에 관해 영화 내용과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된 사건 경위와의 차이점 등을 담고 있다.

 

그러자 박훈 변호사는 15일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당시 사건의 항소이유서와 최후변론문, 상고이유서 등을 공개했다. 우연히도 김명호 전 교수의 석궁 사건이 발생(2007년 1월15일)한 지 꼭 5년 만이다.

 

그는 블로그를 개설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법원이 각급 법원에 이 영화에 대한 대응책을 내려 보내서 영화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하고 있다. 법정 안의 풍경이 실제와 다르다고 하면서 말이다"라며 "제가 영화 개봉에 맞춰 블로그를 개설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 변호사는 "전 이 영화에 직접 관여했고 사건의 진행 과정을 누구보다도 상세하게 알고 있으며 많은 문서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당시 법정 안에서 벌어졌던 판사, 검사, 김명호, 변호인 저의 말들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록된 녹취록이 있다"며 "만약 법원이 이 영화에 대해 엉뚱한 시비를 걸고 온다면 전 녹취록 전체를 공개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바로 그 (공개) 수단으로 블로그를 개설하는 것"이라고 대법원에 사실상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16일 박훈 변호사는 '석궁사건 항소심 제2차 공판 녹취 기록'을 전격 공개했다.

 

한편 김명호 전 교수는 법원이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낼 것도 우려하기도 했었다. 이제 정말 <부러진 화살>의 '화살'은 관객의 평가를 받기 위해 시위를 떠났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관객들이 사법부에 대한 어떤 평결을 내릴지, 나아가 사법부가 어떻게 대응하고 그에 따라 박훈 변호사가 어떻게 응수할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박훈, #김명호, #부러진 화살, #석궁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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