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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산재소년의 손.
 열네 살 산재소년의 손.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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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의 '손무덤'이 놀랄 것이다. 손목 날아간 산동네 정형도 놀랄 것이다. 노동자의 손들을 마구 잡아먹은 80년대 피투성이 프레스도 놀랄 것이다. 노동자를 기계처럼 부리며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을 일삼던 60~70년대가 한참 지났는데 어찌된 일인가? 노동조합도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손가락은 싹둑싹둑 잘리고 마구 밟혀도 '이주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외침은 들리지 않는다.

기계가 멈추면 손해다. 열네 살이면 중학교에 다녀야 하는데 '중도입국자'인 앳된 소년은 3D업종으로 팔려가서 손해를 메꾸어야 했다. 그래서 소년에게 안전교육도 없이 육중한 프레스를 맡겼다. 월 170만 원에 팔려간 이주민 소년은 생전에 처음으로 간 공장에서 피투성이 손을 잡고 뒹굴었다.

내 품 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박노해 시인의 시 '손무덤' 중 일부)

봉천동 산동네 정형처럼 서른여섯에 손이 날아갔으면 덜 한스럽겠다. 이제 겨우 열네 살이다. 소주에 씻어서 공장 담벼락에 묻어줄 손가락이나마 있었다면 피눈물 덜 나겠다. 손가락 네 개가 프레스에 으깨져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중국에서 온 산재소년의 으깨진 손가락

김해성 (사)지구촌사랑나눔 대표가 소년을 찾아가 사건 경위 등을 듣고 있다.
 김해성 (사)지구촌사랑나눔 대표가 소년을 찾아가 사건 경위 등을 듣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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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14)군은 2009년 7월 한국에 왔다. 중국 길림성에서 살던 조부모와 부모가 한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조부모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아버지는 국적을 신청한 상태다. 중국에 남겨졌던 소년은 중학교 1학년 중퇴를 끝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에 왔지만 할 게 없었다.

한국말은 서투르고, 문화는 다르고, 친구도 없으니 단칸방에 갇혀 살다시피 했다. 소년처럼 외국(본국)에 살다가 입국한 경우를 '중도입국자'라고 한다. 수원에 살던 소년은 처지가 비슷한 조선족 형들을 만났다. 더듬더듬 답답한 한국말 대신 유창한 중국말로 중도입국자의 어려운 심정을 나누었다. 그런데 형들이 '상일아, 돈 벌러 공장에 가자!'고 해서 귀가 솔깃했다.

지난해 12월 12일 소년은 조선족 형들과 함께 한 파견업체의 소개로 경기도 평택시 안중에 위치한 자동차 부속품 제조업체 M공업사에서 한 달에 170만 원을 받기로 하고 첫날 일하게 됐다. 소년은 공부보다는 돈을 벌고 싶었다. 돈을 벌면 할아버지 할머니께 용돈도 드릴 수 있고, 멋진 스마트폰도 살 수 있고, 재밌는 퍼즐게임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3시경, 공장에 투입된 지 불과 3~4시간 만에 소년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공장 바닥에 나뒹굴었다. 육중한 프레스가 소년의 왼손을 덮친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소년은 부장 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봉합수술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손가락 네 마디가 형체도 알 수 없게 으깨져서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다.

평택 B병원에 입원 중인 열네 살 산재환자, 소년의 침대 명찰에는 22세라고 적혀 있었다. 연소자 고용금지 위반을 감추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소년을 간병 중인 조부모는 답답한 심정이다. 파견업체와 공장은 산재사고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고, 병원은 밀린 병원비를 정산하라고 독촉하고 있다. 사고 발생 한 달이 넘었지만 공장 사장은 병문안 한 번 오지 않았다.

M공업사 "일 시킨 적 없다"? - "안전교육도 없이 일 시켰다"

소년을 간병하고 있는 중국동포 조부모.
 소년을 간병하고 있는 중국동포 조부모.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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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공업사 측은 소년에게 일을 시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소년이 기계를 임의로 건드려서 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외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M공업사 관계자는 16일 "(소년을 포함한 3명)그분들에게 근로를 시킨 적이 없다. 애초에 그 인원들이 회사를 방문한 목적은 근로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관리자가 일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분(소년)이 임의적으로 작업을 한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M공업사에 소년을 공급한 파견업체 대표는 "소년을 채용한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M공업사가 산재사고와 산채처리에 대한 책임을 전부 떠넘기고 있어서 산재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M공업사의 "전혀 일 시킨 적 없다"는 주장에 대해 소년과 조선족 형은 "나쁜 사람들"이라는 말로 반박했다. 이들은 공장에서 안전교육이나 주의사항도 없었고 무조건 일을 하라고 해서 일을 했다고 말했다.

소년의 조부인 김봉호(74)씨는 16일 "60세쯤 되는 반장이 '이렇게 하는 것이다, 잘 봐라' 몇 번 시범을 보인 뒤에 '너희들도 해봐라!'고 해서 일을 시작했다고 손주가 몇 차례나 분명히 말했다"는 것이다. 소년과 함께 공장에 갔던 황운빈(22)씨는 같은 날 "반장이 상일이에게 일을 시켰다. 부장이란 사람이 상일이 옆에서 일하는 것을 지켜봤고, 사고가 나자 부장이 상일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M공업사와 파견업체가 산재사고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처리와 노동부의 연소자 고용금지 위반에 대한 처벌 여부도 관심사다.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 관계자는 17일 "1월 9일 산재 요양 신청이 접수됐고 현재는 (소년에 대한) 고용 관계가 성립되는지 조사 중"이라면서 "(파견업체와 D공업사 가운데) 실제 고용주가 누구인지 등의 확인을 거쳐서 산재처리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부 평택지사 관계자는 17일 "연소자를 근로시키려면 부모의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면서 "또한, 소년을 적법하게 파견하고, 근로를 시켰는지 조사를 해서 적법 절차를 밟지 않았을 경우에는 처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일이의 피 묻은 꿈... 누가 봉합시켜줄까?

열네 살에 손가락 네 개를 잃어버린 산재소년, 뭉개진 그의 꿈을 누가 봉합해 줄까?
 열네 살에 손가락 네 개를 잃어버린 산재소년, 뭉개진 그의 꿈을 누가 봉합해 줄까?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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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소년의 꿈은 요리사다. 돈을 벌면 요리학원을 다니려고 했는데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소년은 병원에 누워서도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국적 취득에 대비한 것이다. 국적을 취득하면 10년 넘게 살았던 중국은 남의 나라가 될 것이고 할아버지의 나라인 대한민국이 새로운 조국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조국이 되기도 전에 소년의 꿈을 뭉개 버렸다. 열 손가락 온전한 이주민들도 차별과 냉대의 서러움으로 뒹구는데 여섯 개의 손가락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여드름 뽀송뽀송한 소년에게 이런 고민은 아직 실감나지 않을 것이다. 남은 한 손으로 직소 퍼즐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어린 소년에게 다가올 차디찬 세상이 두렵다.

김해성(51) (사)지구촌사랑나눔 대표는 소년의 조부모를 만나 산재처리와 교육문제 등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표는 "붕대에 감겨진 소년의 손을 잡는데 마음이 아팠다"면서 "어린 이주민까지 고용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 슬프다. 한국 출신의 소년이면 이렇게 일을 시킬 수 있겠냐?"고 항의했다.

김 대표는 사각지대에 버려진 '중도입국자'들을 돕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국내 최초로 교육청 인가된 다문화 대안초등학교 '지구촌학교'를 설립한 김 대표는 소년처럼 중국동포 중도입국자나 한국인과 재혼한 이주여성이 데려온 본국 자녀 등의 중도입국자에게 기술 교육 등을 시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학교 설립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이렇게 반문했다.

"물거품이 된 상일이의 꿈과 희망을 누가 봉합시켜 주어야 하겠습니까?"


태그:#산업재해, #중국동포, #이주민,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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