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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노대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위한 시설물인 노대

화성에는 두 곳의 노대가 있다. 동북노대는 창룡문의 북쪽 96보의 거리에 있으며, 서노대는 가장 높은 서장대 뒤편에 자리한다. 동북노대는 치 위에 벽돌을 쌓아 대를 조성했다. 대 아래의 석축은 높이가 13척, 대의 전체 높이는 18척이다. 대의 밑에는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쌓아 올렸으며, 위는 벽돌로 쌓았다. 벽돌을 쌓는 방식은 사각형이지만, 모서리를 깎아 벌의 허리처럼 만들어서 모를 죽인다.

 

노대의 안쪽 너비는 17척 4촌이고, 바깥쪽 너비는 19척이다. 성 밖으로 나온 부분이 25척 5촌, 2개의 현안을 뚫었고, 위에 둥근 여장을 만들었다. 3면에 각각 1타씩이고, 바깥 쪽 2모퉁이에는 둥근 타구를 굽게 접히게 설치했는데, 모두 방안 3구멍을 뚫어 놓았으며, 타구마다 좌우에 '凸'모양의 여장을 끼고 있다.

 

가공할 위력의 쇠뇌를 날리는 동북노대

 

노대 벽돌로 조성한 노대는 치성 위에 올려져 있다

노대의 안  노대의 안쪽 너비는 17척 4촌이고, 바깥쪽 너비는 19척이다.

동북노대의 안쪽 두 모퉁이는 평여장으로 굽게 접었는데, 모두 높이 6척 5촌이다. 가운데에 벽돌 계단을 돌계단과 이어지게 했고, 대 위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았다. 이렇게 대 안을 네모난 벽돌로 깐 이유는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쇠뇌란 걸쇠라는 발사체를 유도하는 홈과, 그것을 발사하는 방아쇠를 갖추고 있다. 하기에 쇠뇌는 일반적인 활보다 그 힘이 강하며, 살상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쇠뇌는 비스듬히 적을 공격할 수 있어서 앞에 여장을 놓고도 적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 힘이 있다 하니 그 사정거리도 일반 활에 비해 월등히 멀리 나갔다고 한다.

 

노대 다연발 활을 쏘기 위한 노대는 강력한 공격소이다

더욱 다연발로 연달아 활을 적에게 날려 보냄으로 해서 가공할만한 위력을 보였을 것이다. 이러한 쇠뇌를 쏘기 위한 동북노대는 창룡문과 동북공심돈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감시와 공격의 효과를 노린 적대

 

장안문의 북서쪽 약 62.5m 지점에 있는 북서적대. 정조 19년인 1795년에 화성 축성과 함께 축조됐다. 적대란 성곽의 중간에 약 82.6m의 간격을 두고, 성곽보다 다소 높은 대를 마련하여 화창이나 활과 화살 등을 비치해 두는 한편,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하는 곳으로 옛날 축성법에 따른 성곽 시설물이다.

 

적대 적대는 치성위에 설치한 구조물이며 포를 쏠 수 있는 곳이다. 2004년 8월 27일 자료

적대 화성에는 장안문 양편에 두 곳의 적대가 마련되어 있다. 2004년 8월 27일 자료.

이 적대의 규모는 높이 6.7m 성곽의 성가퀴와 가지런히 쌓되, 반은 성 밖으로 나가 있고, 반은 안으로 들어와 있다. 아래 부분의 넓이는 7.8m이고 위는 좁아져서 6.4m인데, 거기에 현안 3개가 나있다. 적대의 상부는 '凸'자 모양으로 성가퀴를 둘러쌓고, 밖에 3면에는 높이 1.5m에 두께 85cm의 성첩 11개를 쌓은 다음, 총안을 뚫어 놓았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적대

 

장안문의 동쪽에는 또 하나의 적대인 북동적대가 있다. 이렇게 장안문의 양편에 적대를 마련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적대 안에는 홍이포가 놓여 있다. '홍이포'는 네덜란드에서 중국을 거쳐 유래된 대포이다. 그 당시 네덜란드를 '홍이(紅夷)'라고 불렀기 때문에, 대포의 명칭을 홍이포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영조 때 두 문이 주조됐다.

 

영조 때 홍이포가 주조됐다는 사실은, 화성 축성 때에는 이미 총포가 전쟁에 사용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장안문 양편에 조성한 적대는 법에 따라 적대를 만들어 창과 활 대신 총포를 쏠 수 있도록 총안을 마련했다.

 

적대 2011년 8월 28일 자료. 장안문의 북서쪽 약 62.5m 지점에 있는 북서적대. 정조 19년인 1795년에 화성 축성과 함께 축조되었다.

적대 안 적대는 성벽보다 높게 조성하였다. 감시와 공격을 하기 위한 구조물이다. 2011년 8월 28일 자료.

적대는 성문과 옹성에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성문의 좌우에 설치한 방어 시설물이다. 포루와 치성은 성곽 밖으로 완전히 돌출된 반면, 이 적대는 시설물의 반만 외부로 돌출돼 있고, 반은 성안으로 돌출돼 있다.

 

장안문 양편에 적대를 조성한 까닭은?

 

왜 적대 두 곳을 북문인 장안문의 양편에 설치한 것일까? 북문의 명칭을 장안문이라 붙인 것은 이산 정조의 남다른 뜻이 있었다. 장안이란 도성을 의미한다. 정조는 화성을 거점으로 하여 북진정책을 펴기 위해 많은 고심을 했을 것이다. 북진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북문의 역할이 남다르다.

 

적대 장안문을 사이로 양편의 적대는 그 모습이 동일하다. 기단을 놓고 그 위에 높게 조성이 되어있다. 2011년 8월 28일 자료.

즉, 만일에 북진정책으로 인해 적과 교전이 발생한다면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북문인 장안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안문을 보호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래서 장안문의 양편에 적대를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총포를 쏠 수 있도록 조성한 두 곳의 적대. 그곳에는 정조 이산의 깊은 뜻이 숨어 있다.

덧붙이는 글 | 겨울에 기사를 쓰면서 한 여름에 찍은 사진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이왕이면 눈이 쌓인 겨울을 만나는 것도 좋을 듯해, 일부러 눈이 쌓인 날을 택했다. 12월 24일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손발은 얼었지만, 설원에 묻힌 화성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이 기사는 수원인터넷뉴스와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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