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춘추시대 진나라 범무자의 후손이 다스리던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다. 그때 백성 중 한 명이 종을 짊어지고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짊어지고 가기에는 종이 너무 크고 무거웠다. 망치로 깨서 가져가려고 종을 치니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 백성은 다른 사람이 종소리를 듣고 와서 종을 빼앗아 갈까봐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고 종을 깼다고 한다."

중국 진(秦)나라의 재상 여불위(呂不韋)가 선진시대의 여러 학설과 사실(史實)·설화를 모아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일화다. 바로 '엄이도종(掩耳盜鐘)'이란 사자성어의 유래이기도 하다. '자기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으로 나쁜 일을 하고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서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음을 의미한다.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교수 등 지식인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바로 '엄이도종'이다. 창피하게도 우리 사회의 꽉 막힌 소통 부재가 1년 동안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직접적으로 지적해 준 것이다. <교수신문>이 지난 7일부터 16일까지 <교수신문> 필진과 일간지 칼럼리스트, 주요 학회장, 교수(협의)회 회장, 교무·기획처장 등 주요 보직교수, 대학원장, 대학신문 주간교수, 정년퇴임한 원로교수를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304명의 응답자 가운데 36.8%가 2011년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를 규정지을 수 있는 사자성어로 '엄이도종'을 꼽았다.

'호질기의', '방기곡경', '장두노미'이어 '엄이도종'...MB정부 4년 내내 "불통"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엄이도종'.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엄이도종'.
ⓒ 교수신문

관련사진보기


소통 부재가 만연되고 있음은 곧 민주주의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처럼 자존심 상하게 하는 사자성어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비민주적인 불통 정치를 지적하는 사자성어가 이명박 정부 들어 4년 내내 계속 이어져왔다. 소통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퇴보하고 있는지를 방증해 준다. '엄이도종' 외에도 지나온 MB정부가 지식인들로부터 얻은 점수(사자성어)는 다음과 같다. 

'호질기의(護疾忌醫)'  -2008년
'방기곡경(旁岐曲逕)'  -2009년
'장두노미(藏頭露尾)'  -2010년

MB정부 출범 직후부터 세종시법 수정 논란, 대운하 사업의 4대강 정비사업 전환의혹, 미디어법의 편법처리 등으로 전 사회가 극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MB정부 출범 첫 해인 2008년엔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호질기의'가 사자성어로 선정된데 이어 2009년엔 '일을 바르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한다'는  뜻이 담긴 '방기곡경'이 선정됐다. 모두가 '불통 정치'를 빗댄 사자성어들이다.  

그러더니 천안함 사태와 민간인 불법사찰 등 어느 해보다 진실 규명 논란이 뜨거웠던 지난해 이맘때에도 한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가 다시 그 연장선에 올랐다. '머리는 겨우 숨겼지만 꼬리가 드러나 보이는 모습'을 비유한 '장두노미'가 선정된 것. '진실을 밝히지 않고 꼭꼭 숨겨두려 하지만 그 실마리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속으로 감추는 것이 너무 많아서 행여 들통 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태도를 뜻한 부끄러운 사자성어로 한해를 마무리했다.

과거에도 혼란과 갈등을 빗댄 표현들이 한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되기 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첫 해부터 소통 부재와 독단적 정책 추진을 우려하는 사자성어가 주를 이뤘다. 4대강 사업 강행, 민간인 불법사찰, 한미 FTA 협상, 새해 예산안 졸속 처리, 미디어법 날치 처리, 언론장악 시도, 종편 특혜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의혹을 해명하기는커녕 오히려 진실을 덮고 감추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한미FTA 날치기 통과, 10·26 디도스 공격...가장 가슴 아픈 소통 부재" 

'엄이도종'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김풍기 강원대 교수.
 '엄이도종'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김풍기 강원대 교수.
ⓒ 교수신문

관련사진보기


급기야 올해는 '소통 부재' 현상을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엄이도종'이 선정됐다. 그 이유는 지나온 3년보다 훨씬 노골적이다. 4대강 사업 부실, 역사교과서 수정 논쟁, 대통령 측근 비리, 내곡동 사저부지 불법매입 의혹 등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특히 교수들의 의식에 '소통 부재'를 각인시킨 결정적 사건은 '한미FTA 비준동의안 한나라당 날치기 통과'와 '10·26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 비서와 국회의장 비서, 청와대 관계자 등이 개입한 선관위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거부) 공격' 등이 지적됐다.  

'엄이도종'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김풍기 강원대 교수(국어교육과)는 "FTA 문제라든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공격에 대한 의혹 등이 겹쳤지만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며 "여론의 향배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생각만 발표하고 나면 그뿐이었다. 소통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교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추천 이유를 밝혔다.

전국 대학교수와 칼럼니스트를 비롯한 지식인들만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는 점에서 표본의 한계를 지녔지만, 우리 사회상을 제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사자성어 선정과정을 들여다보면 다른 응답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정치권에서 비롯된 '소통 부족과 독단적인 정책 강행'을 이유로 '엄이도종'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독단적으로 처리해 놓고 자화자찬 식으로 정당화하면서 국민의 불만에 전혀 유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김용찬 순천대 교수는 "선관위 해킹 사건 역시 개인의 단독범행이라는 비상식적인 주장을 서슴지 않고 있다. 6월과 10월의 두 차례  선거에서 민의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여전히 권력 다툼에 매몰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민숙 이화여대 교수는 "올 한 해도 대통령 측근 비리, 내곡동 사저 부지 불법 매입, 한미 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통과 등의 문제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는데, 아직도 선관위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거부) 공격 등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소통 부재에서 연유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겉으론 '소통', '공정사회' 강조하면서 실상은 권력 남용, 사리사욕..."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지난 11월 29일 한미FTA 비준안에 서명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무효 촛불집회'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한미FTA저지', '이명박 심판', '한나라당 해체'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지난 11월 29일 한미FTA 비준안에 서명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무효 촛불집회'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한미FTA저지', '이명박 심판', '한나라당 해체'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 외에도 정문현 서원대 교수는 "교육과학기술부 정책 결정권자들이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대학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일률적인 평가 잣대를 만들어 대학을 무한경쟁의 시장으로 내몰아 가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승호 가톨릭대 교수는 "소통 부재는 현 정부 들어서서 계속 제기되던 문제인데 올해 들어 그 결과들이 더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교수신문>에서 밝혔다.

'엄이도종' 다음으로는 25.7%가 '여랑목양(如狼牧羊)'을 선택했다. '여랑목양'은 이리에게 양을 기르게 하는 격이란 뜻으로, 탐욕스럽고 포악한 관리가 백성을 착취하는 일을 비유한다. <교수신문>이 밝힌 '올해의 사자성어' 선정과정을 보면 크게 세 단계를 거쳐 이뤄졌다. 우선 각 분야 교수들의 추천, 사전 조사, 본 설문조사를 거쳐 확정됐는데, 올해는 사자성어 추천 교수를 대폭 확대한 점이 특징을 이룬다.

지난해에는 국문학·한문학·철학·역사학·정치학 분야 교수 10명에게 추천받았지만, 올해는 사회학·경제학·교육학·민속학·이학·공학 분야 교수 12명을 포함해 모두 23명에게 30개의 사자성어 후보를 추천받았다. 대중적으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자성어를 찾으려는 의도가 배어 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엄이도종'을 추천한 김풍기 교수의 송나라 유학자 '주희'의 당부 말이다.

"종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는 것은 지도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주희'의 이 같은 바람과는 달리 우리 사회는 '불통의 한 해'로 점철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소통'과 '공정사회'를 내세우면서도 실상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 사리사욕을 달성하는 데만 주력한 꼴"이라는 비판이 흘러나올 법하다. 어쨌든 4년 동안 MB정부와 정치권은 지식인들로부터 '불통'의 불명예 상을 연거푸 받은 셈이 됐다.

교수들, "'안철수ㆍ박원순' 그래도 희망, 'FTA 날치기 처리' 가장 실망"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10월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선언에 대해 "서로의 진심이 통했고 정치권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합의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뒤 안 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10월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선언에 대해 "서로의 진심이 통했고 정치권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합의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뒤 안 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그렇다면 교수들에게 가장 기뻤던 올 한해 일들은 무엇이었을까. 올해의 사자성어 설문조사에 응한 교수들 중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고 지적한 대목은 '박원순'과 '안철수' 때문이었다는 것. "그들 때문에 기쁨과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응답했다.

<교수신문>의 설문조사 결과, 교수들은 무엇보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39.7%)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이 응답자들은 "한국 사회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지적하면서 "박 시장에 대한 기대가 단순히 한 개인을 향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 2011년 한국사회에서 가장 의미 깊은 실천을 한 사람으로 응답자의 절반이(49.6%)가량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꼽았다. 그 이유로는 50%의 지지율을 갖고 5%만 지지하는 후보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일이 가장 컸으며, 재산의 절반인 15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한 일도 그를 '올해의 인물'로 뽑은 이유다.

<교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경동 성균관대 교수는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철저하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그를 추천했다. 또 류웅재 한양대 교수는 "난맥상에 빠진 한국사회에서 기존 정당정치의 뚜렷한 한계를 보완하고 많은 국민들이 새롭고 대안적인 정치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희망을 줬다"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한미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일'은 올 한해 가장 안타까웠던 일로 뽑혔다. 절반 가까운 응답자(46.7%)들이 이를 꼽았다. 응답교수 중 상당수는 "서민 경제와 직결되는 문제를 여야 합의 없이, 국민적 반대에도 강행 처리한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이처럼 MB정부는 소통 부재의 꼬리표를 달고 출범한데 이어 그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퇴장을 앞두고 있음이 교수들의 사자성어에서 묻어났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소통 위기는 어느 수준이며, 이를 해결할 방안은 요원한 것일까? 사자성어를 접할 때마다 던져보는 물음이다. 더 이상 대안도, 가능성도 없는 걸까?

임혁백 교수, "온라인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확고히 보장해 주어야"  

<한국사회의 소통위기>(한국언론학회 엮음, 커뮤니케이션북스 출판) 책 표지.
 <한국사회의 소통위기>(한국언론학회 엮음, 커뮤니케이션북스 출판) 책 표지.
ⓒ 커뮤니케이션북스

관련사진보기

"대화와 협상의 성소가 되어야 할 국회는 종종 폭력과 난투극의 무대로 전락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여론을 바르게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는 언론은 '사실의 위기'가 거론될 정도로 이념 대립이 극심했다. 한마디로 생각과 가치가 다르면 무조건 상대방을 불신하고 보는 아노미적 소통의 위기가 한국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양승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제37대 한국언론학회회장)는 사회과학분야 연구자들이 한데 모여 소통 부재의 원인과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고자 내놓은 책, <한국사회의 소통위기>(한국언론학회 엮음, 커뮤니케이션북스 출판) 발간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 사회의 이런 비극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통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면서 그에 대한 해법들을 책에서 다양하게 제시했다. 

이 책은 교수와 연구자 등 16명이 함께 참여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무엇보다 대안 모색에 주력했다. 언론학·정치학·사회학·철학자 등이 공저자인 이 책은 '한국의 위기는 곧 소통의 위기'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 책에서 소통 위기의 역사와 본질을 파헤치고 이 시대에 걸맞은 대안을 다각적으로 제시한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에서의 불통의 정치와 소통 정치의 복원'이란 주제의 첫 편 글에서 "한국에서 다원주의적 소통의 정치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신유목 세대의 소통을 활성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인터넷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면서 "온라인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확고히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강준만 교수, "승자 독식으로부터 자유로운 '비무장지대' 영역 넓혀 나가야"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론장의 역사적 형성 과정: 왜 우리는 불통사회인가?' 편에서 "불통 인식은 들끓는 공론장과  즉각적인 국가 행동 사이의 거리감에서 분출되었다"며 "신문의 방송 진출과 관련된 미디어 정책 역시 국가 주도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이어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소통의 정치경제학: 소통의 구조적 장애 요인에 관한 연구'란 주제의 글에서 실천 가능한 '소통 살리기' 3대 방안을 제시해 주목을 끈다. 첫째는 '승자 독식으로부터 자유로운 '비무장지대'의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각 단위의 지도자 권력에서 '정치 잉여'를 줄이고 이권 분배 기능을 투명하게 만들지 않는 한 선거와 정치에 사생결단의 자세로 임하려 드는 사람들의 수는 결코 줄지 않을 것이며, 소통은 영원히 신기루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두 번째 방안은 '참여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이는 '인물 중심형 참여에서 목적 지향적 참여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셋째는 '권력 중심적인 '인정 투쟁' 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 이는 '왜곡된 입신양명 문화는 고위 공직을 가문의 영광을 위한 '제로섬 게임'의 제물로 전락시켜 소통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그의 주장이다.  

김영욱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한국 언론의 정파성과 사회적 소통의 위기' 편에서 "한국 언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파성 자체가 아니라, 정파성의 정도 혹은 정파성의 구현 방법"이라며 "정파성의 결과로 나타난 한국 언론의 현실이 사회적 소통과 논의의 기본이 되는 사실과 사실관계의 공유를 어렵게 만든다는 우려와 비판이 그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이어 "한국의 공영방송이 영국의 BBC나 독일의 ARD 혹은 ZDF 수준이 된다면 언론으로 인한 사회적 소통의 문제는 상당 부문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와 같이 청와대 혹은 대통령이 실질적 사장 임명권을 가지는 체제에서는 어떤 정권이 들어오더라도 공영방송의 정파성과 그에 따른 신뢰성 문제가 해소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분열', '불통' 딛고 2012년 새해엔 '만사소통' 확산되기를...

지난 10.26 재보선 당일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혐의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수행비서가 구속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한국진보연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 방해행위를 규탄하며 한나라당 해체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10.26 재보선 당일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혐의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수행비서가 구속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한국진보연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 방해행위를 규탄하며 한나라당 해체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 책에서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분열 정치와 분열 언론 그리고 분열 여론의 악순환 이론'이란 주제의 글에서 "언론자유 신장을 명목으로 정치권력이 관리에 나서는 순간,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독재가 되어버리는 역설을 한국 사회는 너무 많이 경험했다"며 "정치권력은 언론 자유에 관한 헌법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선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민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노성종 연구자(미국 코넬대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는'소통의 조건: 한국 사회의 시민 간 정치대화 탐구' 편에서 "소통에 대한 언론 보도의 양은 2008년 이후 급증했으며 다양한 주체와 맥락에 관련된 소통 문제들이 언급됐다"고 전제한 뒤 "2008년 촛불집회의 경험에서 확인했듯이, 시민들은 '광장'을 정당한 대화의 수단이라 보고 이를 실질적인 대화의 자리로 만들고자 했으나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대화가 아닌 충돌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정치사회가 먼저 대화의 수단과 방법에 대해 개방적 태도로 접근하고, 시민들의 주장이나 의견이 표현되고 경청될 수 있는 공간을 가능한 많이 마련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인 대화 연결망을 두텁게 하여 소통을 촉진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다른 학자들도 "변형된 자유주의, 과도한 국가 개입 등이 불통사회를 구성하는 결정 요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또한 "'공론 공동체'에 토대를 둔 성숙된 시민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하나의 가치가 나머지 다른 가치들을 억압하거나 배제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들도 눈에 띄었다.

부디 '호질기의', '방기곡경','장두노미', '엄이도종'과 같은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 독선·불통으로 얼룩진 분열 사회가 사라지고 다가오는 2012년 새해엔 '만사소통(萬事疏通)'이 우리 사회 곳곳에 확산되기를 기원해 본다.


태그:#엄이도종, #만사소통, #사자성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