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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조선은 자전거의 나라였다. 자전거는 자동차 등 다른 교통수단을 압도했을 뿐만 아니라 통근, 통학, 업무, 레저 등 여러 분야에 두루두루 쓰였다. 그 시대 자전거문화는 어땠을까.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앞으로 다가올 자전거 시대에 비슷한 모습으로 재현되진 않을까. 그 시절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본다. - 기자 말

"자전거도 술 마시고 타면 체포되나요?"

자전거는 음주운전 단속이 될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아니다.
 자전거는 음주운전 단속이 될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아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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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자전거 가게에는 막 문을 닫으려고 할 때 자전거를 탄 채로 가게를 들이박은 사람이 있었죠. 꽤 많이 다친 모양이던데. 아, 그래도 그 사람은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하니까 음주운전인 셈이죠."

"자전거도 술 마시고 타면 체포되나요?"
"글쎄요. 그건…. 아무튼 위험하잖아요."


일본작가 아사노 아츠코가 쓴 '<분홍빛 손톱>에 나오는 대목 가운데 하나다. 자전거를 많이 탄다는 일본에서도 자전거가 음주단속 대상인지 아닌지 궁금한 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상에선 자전거도 음주대상이 되는지 묻는 질문이 꽤 많다.

정답부터 먼저 말하자면 자전거는 음주운전 단속 대상이 아니다. 몇 차례 입법 논의가 있었지만 '시기상조' '자전거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이유로 뒤로 미뤄졌다.

자전거 음주운전에 관한 통계는 없지만, 자동차 쪽을 보면 운전과 음주가 얼마나 가까운지 알 수 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인원은 무려 330만여 명. 매우 강한 처벌규정이 있는데도 이 정도다.

음주운전 역사는 꽤 깊다. 조선 태조 때 이미 관련 기록이 나와 있으니 말이다. 때는 1395년(태조4), 왕의 생일을 맞아 잔치가 벌어졌다. 모두들 배부르게 먹고 마신 것까진 좋았다. 고려시대 최고 등급 관리를 지낸 홍영통이 말을 몰고 가다 떨어져 죽었다. 음주운전사고였던 셈. 사흘 뒤 태조는 주요 대신인 정도전, 조준, 김사형을 따로 불러 가마를 하사했다. 술을 마신 뒤엔 자가운전을 하지 말고 '대리운전'을 하라는 하명이었다.

조선 중기 명의인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도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는 구절이 나온다. 술을 마신 뒤 꺼려야 할 것으로 '취포 불가주거마(醉飽 不可走車馬)'라며 취하고 배부른 상태에서는 수레나 말을 몰면 안 된다고 했다. 천하의 명의가 따로 언급할 정도였으니, 당시에도 음주운전이 꽤 흔했다는 것이고,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강조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뜻이겠다.

1915년에도 빈번했던 음주운전

1903년 왕실용으로 첫선을 보인 자동차는 1911년까지 3대에 불과했고, 20년대 말까지도 전국에 2000여 대(추산) 정도였다. 같은 시기 경성 시내를 달리던 자동차는 270여 대. 그래도 그 무렵 벌써 음주운전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음주 운전사는 꽤 일찍부터 나타났다.

1915년, 일찍부터 음주운전이 일어날 것을 예감했는지, 아니면 자동차가 도입되자마자 음주운전이 일어났는지 자동차 음주운전 금지 조항이 만들어진다. 마차 음주운전 금지는 한 해 전인 1914년부터니 대략 이 시기에 음주운전 조항이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

당시 자동차는 적었고, 운전사 또한 드물었으니 술 마시는 운전사는 금세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과감히 술을 마시는 운전사들이 적지 않았다. 오죽하면 "누구나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은 자동차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운전사들이 술을 마시는 광경을 볼 것"(<동아일보> 1929년 4월 28일 치)이라고 했을까.

사람들이 술을 즐겼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당시 음주운전에 대한 관리가 소홀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실제 당시 언론에서는 음주운전이 빈번한 이유로 '당국의 관리소홀'을 들었다.

그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1936년 유성온천 길에서 일어난 음주운전사고다. 당시 사고차량에는 옥천군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두 타고 있었다. 충북도 보안과장을 비롯해 옥천군수, 도의회 의원, 옥천경찰서장, 사회주사 등 일행 5명이 바로 주인공들. 이들은 유성온천에서 먹고 마시며 충분히 논 뒤, 차를 탔다. 이들이 크게 취한 것은 당연지사. 문제는 운전사 또한 술을 마셨다는 점이다.

음주운전 역사는 꽤 길고도 깊다. 어쩌면 차가 나왔을 때부터 음주운전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음주운전 역사는 꽤 길고도 깊다. 어쩌면 차가 나왔을 때부터 음주운전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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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길을 비쳤다는 기사 내용으로 봐선 밤길 운전이었다. 커브에서 전혀 핸들도 틀지 않고 곧장 직진하다가 추락했다 하니 운전사 또한 꽤 술을 마신 듯하다. 음주운전을 단속해야 할 사람들이 운전사에게 술을 먹이고 운전까지 맡겼으니 사람들이 정부 단속 의지를 믿을 수 있었을까.

어쨌든 계속 음주운전 사고가 일어났으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1928년, 경기도 경찰부 보안과는 "운전 중엔 절대 술을 마셔선 안 된다"며 "만일 이를 어길 시에는 용서 없이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1930년 경북도 보안과 또한 법규를 고쳐 '음주운전으로 큰 사고를 일으켰을 때는 면허를 취소한다'고 밝혔으니 이만하면 경찰도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씩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물론 그때도 자전거 음주운전은 단속대상이 아니었다. 자전거는 속도가 느린데다, 술 마신 운전자의 경우 다리가 풀려 평소처럼 속도를 내기 힘들었으니 큰 충돌사고를 내진 않았다. 문제는 추락사고. 술 취한 채 자전거를 타면 중심을 못잡아 좌우로 크게 흔들리니 양 옆에 개울이나 언덕이 있다면 떨어지기 쉬웠다.

"경남 밀양군 밀양읍 가곡리인 산비탈 언덕 밑에는 지난 9일 오후 8시경에 그 동리 이손득(39)이 자전거를 안고 떨어져 참혹히 죽은 것을 발견하였다. 그 원인을 듣건대 전기 이손득은 밀양주조회사 배달부로 그날 밤에 저녁밥을 먹으러 가다가 술을 많이 먹어 길가에 세워둔 우편소 자전차에 부딪혀 약 6척(1.818m) 되는 언덕에 떨어져 뇌진탕을 일으켜 죽은 것을 우편소원이 자전차를 찾다가 발견하였다 한다." (<동아일보> 1934년 3월 16일 치)

술 파는 회사의 배달부였으니 술을 마신 게 하루 이틀이었을까 싶다. 항상 마시니 괜찮겠다 싶었을 테고, 익숙한 길이니 또 별일이야 있으랴 했을 게다. 자기 키 높이 정도 되는 언덕에서 떨어져 죽었으니 참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이보다 몇 해 전엔 음주 자전거 대추격전이 벌어졌다. 술을 마시다 시비가 붙어 한 명은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고, 한 명이 쫓아가 싸운 사건인데 그 광경이 생생하고 아슬아슬하다.

"피해자는 봉래정 3정목 45번지 소곡대(41)로 22일 오후 11시경에 경성역 앞에 '카푸에'에서 술을 먹던 중 어떤 일본인 3명과 서로 말썽이 되다가 그 3명 일인은 전기 소곡대의 화물자전거를 타고 달아남으로 그는 분개하야 전기 봉래교까지 추격하야 그와 같이 격투를 하게 되자 그 부근에 있던 조선인 일본인들이 3명의 편을 들어 그와 같이 폭행을 가한 것이라더라." (<동아일보> 1926년 9월 25일 치)

경찰, '음주 자전거 단속' 언급... 논란 속 백지화

자전거가 음주운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상황은 여전하다. 지금도 강변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보면 옆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술을 마시는 자전거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산에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면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 무는 것처럼 자전거를 타다 몸이 풀리면 자연스레 술을 마시는 이들이 꽤 되는 듯하다.

2008년 경찰이 음주운전 자전거를 단속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선포하며 한동안 논란이 된 것은 이런 자전거문화를 볼 때 당연한 일이었다. 이 법은 '음주경운기도 단속할 것인가' '위험성 때문이라면 음주보행자도 단속해야 한다' '골목과 인도를 다닐 자전거를 어떻게 단속할 것인가' 등 여러 문제 제기 속에 백지화가 됐다.

일부 경찰들도 '어떻게 단속하라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게다가 '자전거를 탈 만한 도로정비와 법령 개정도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슨 규제부터 생각하느냐'는 반론이 제법 힘을 얻었다. 설문조사 결과 약 70%가 시기상조라고 답했다.

경찰이 손을 들었지만, 전 세계에서 음주자전거는 사회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다. 호주에서는 2006년부터 2008년 10월까지 37명의 자전거 사고 사망자가 나왔다. 매달 1명꼴로 자전거 사망자가 나온 셈이다. 2007년 한 해 동안 자전거 사고 부상자는 500여 명이었다고 한다. 사상자 중 음주사고로 인한 사고가 꽤 있다고 보고 호주 경찰은 강력 단속에 나섰다.

사실 호주보다 좀 더 단속이 필요한 나라는 미국이다. 2004년 자전거 사망자 수는 720명. 매달 2명꼴이었다. 그해 자동차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4만2636명이었으니 자전거는 전체 1.7%를 차지했다. 미국 보스턴 소재 다트머스 히치콕 병원 사고 기록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 자전거를 타다 다친 사람 222명 중 35명(16%)이 자전거 음주운전 때문이었다고 한다. 숫자가 적어 대표성을 갖긴 힘들지만 그냥 넘겨버리긴 힘든 수치다.

좀 더 심각한 나라는 우리나라다. 2005년 자전거를 타다 사망한 사람은 303명으로 매달 25명꼴이다. 그 해 전체 교통사고가 7976건이었으니 4.8%쯤 된다. 호주나 미국의 사고발생률을 쉽게 뛰어넘는다. 우리나라보다 10배 정도 자전거를 많이 타는 덴마크는 자전거 이용 중 사망자 수가 2000년 57명, 2002년 52명, 2004년 38명 정도에 불과하다. 다친 사람까지 포함해도 2004년 사상자 수는 124명이다. 무엇보다 해마다 사망자 수가 줄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자전거 사고는 높은 편이고, 음주자전거 법령 신설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던 것이다.

자전거 선진국은 음주 자전거 규제 중

자전거선진국들은 자전거 음주운전을 막기 위해 여러 궁리를 한다. 자전거를 타기 좋은 조건을 만들면서 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자전거선진국들은 자전거 음주운전을 막기 위해 여러 궁리를 한다. 자전거를 타기 좋은 조건을 만들면서 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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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자전거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선 음주자전거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까. 상당수 나라에 벌금 조항이 있으며, 몇몇 나라에선 구금 또는 자동차 면허 취소라는 강력 조항이 있다. 술 마시고 자전거 타는 것을 술 마시고 자동차 타는 것과 똑같이 취급한다.

네덜란드에선 술을 마시고 자전거를 타다 걸리면 벌금이 30~40유로(약 4만5000원~6만 원) 정도다. 무엇보다 자전거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거나, 당하면 보험혜택을 못받을 수도 있다. 이웃나라인 덴마크도 음주자전거에 대해선 벌금을 매긴다.

독일은 좀 더 강력하다. 음주자전거 운전시 혈중알코올농도가 일정 수치를 넘기면 자동차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한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맥주를 물처럼 마시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자전거라도 맥주를 마시고 운전하면 걸리게 된다.

뢰벤브로이(Lowenbrau)가 내놓은 맥주 라들러(Radler)는 이런 사람들을 겨냥해 내놓은 상품이다. 라들러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2.5도에 불과한 저알콜 맥주이기 때문에 마신 뒤에도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취하지 않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부는 음주자전거를 막고자 하고, 사람들은 맥주를 마시고자 하는 가운데 이런 상품을 내놓은 맥주업계가 놀라울 따름이다.

과거 유고 연방 중 하나였던 슬로베니아도 독일처럼 술을 마시고 자전거를 몰다 걸리면 최악의 경우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압수당한다. 면허증을 압수당한 운전자는 운전면허를 다시 따야 하니 취소나 마찬가지다. 일단 음주자전거로 걸리면 벌금이 최하 225유로(약 33만8000원). 8일이 지나면 450유로(약 67만6000원)를 내야 한다.

호주에선 자전거 운전시 알코올농도가 심하면 최고 두 달간 감옥생활을 하고, 벌금도 1134호주 달러(약 133만 원)를 낼 수도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알코올농도가 심하면'이란 대목. <주간동아> 2008년 12월 9일 치에 따르면 적당히 술을 마신 이들은 연말 파티를 한 뒤 자전거릍 타고 귀가해 음주단속을 피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틈새가 있는 셈이다.

음주자전거에 대해 가장 단호한 나라는 일본이 아닐까 싶다. 금액 면에서 다른 모든 나라를 압도한다. 술을 마시고 자전거를 타다 걸리면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만 엔(약 1374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도로교통법 제65조 제1항, 제117조의2제1호). 이외에도 자전거 라이트를 켜지 않았을 때, 한 손으로 자전거를 운전했을 때, 신호 위반했을 때도 5만 엔 이하 벌금을 맞을 수 있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우리도 당장 해야 하지 않나 싶지만, 우리나라 자전거 교통수단분담률은 2.5%(2010년 기준)에 불과하다. 두 자리 수인 자전거선진국과는 격차가 크다. 음주자전거를 단속하는 것이 자전거 타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말이고, 음주자전거 단속조항이 자전거인들 보호조치라는 주장도 수긍할 수 있다.

관건은 앞으로다. 자전거 교통분담률이 계속 지지부진하다면 자전거 관련 조항은 있으나 마나다. 그러나 차도에서 자전거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자동차와 동등한 위치가 된다면 음주운전 단속을 거부할 명분은 약해진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그때가 되면 알코올농도는 얼마로 해야 하는지, 단속구역은 어디까지인지, 단속방법은 어찌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가끔씩 음주자전거를 즐긴 나부터 고민하게 될 것 같다.


태그:#자전거, #음주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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