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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21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원-중진의원 간담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21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원-중진의원 간담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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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당내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난 유일한 인물이다. 정몽준 전 대표는 부친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남한에서 손꼽을 정도로 김 위원장과 가까운 사이였지만, 그 자신은 김 위원장을 만난 적도 없고 정치적으로도 북한에 거리를 둬왔다.

그 밖에는 홍준표 전 대표가 당 대표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하고, 개별 의원들이 금강산에 가 본 정도다.

박 위원장은 2002년 5월 자신이 이사로 있던 유럽-코리아재단의 제안을 받아 방북했다.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 따르면 박 위원장은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여객기를 기다리던 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예정에 없이 보낸 특별기를 타고 평양에 들어갔다. 5월 10일부터 13일까지 그가 머물렀던 백화원 영빈관의 방은 2000년 6월 1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묵은 곳이었다.

김정일과 단독회담 "약속 지키려 노력한다는 확신 얻었다"

일정 마지막 날인 13일 김 위원장이 영빈관을 방문해 두 사람은 속기사만 두고 한 시간 가량 단독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우리 둘 다 위대한 지도자(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자녀들이니, 선친들의 목표를 실현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 위원장이 김 위원장에게 북한 축구팀의 남한 방문을 제안해 9월에 서울에서 남북축구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자서전에서 김 위원장을 "화법과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터놓고 대화를 나누면 약속한 부분에 대해 지킬 것을 지키려 노력한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공교롭게도 김 위원장의 사망소식이 발표된 지난 19일은, 박 위원장이 5년 6개월 만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다시 당의 전면에 등장한 날이다. 한반도 정세를 바꿀 수도 있는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해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이고, 특히 김 위원장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박 위원장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목됐다.

게다가 그는 2009년 5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 강연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일시적인 회담의 틀을 뛰어넘는 보다 효과적인 틀로서, 상설적인 동북아 평화협력체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 틀 안에서 서로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경제공동체를 만들고, 안보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면, 북핵문제와 같은 현안의 해결에 한정된 '소극적 평화'를 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적극적 평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해 그가 집권할 경우 이명박 정권과는 다른 대북정책을 구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면서, '햇볕정책' 진영으로부터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김 위원장 조문·조의 문제에 대해 예상된 선을 넘지 않았다. 원혜영 민주통합당 공동대표의 국회 차원의 조문단 구성 제안을 "북에서 조문단을 받지 않는다고 했고, 정부도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했으니 이런 문제에 대해 정부 기본 방침과 다르게 가는 것은 맞지 않다"며 거부했다. 또 그가 비대위원장인 한나라당은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를 표한다"는 수준의 조의를 표명했다.

"북한 정권과 주민 분리? 붕괴론과 연결되는 논리"

지난 2002년 5월 13일 오후 방북중이던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가 평양 백화원초대소를 찾아온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 2002년 박근혜 방북, 김정일 면담 지난 2002년 5월 13일 오후 방북중이던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가 평양 백화원초대소를 찾아온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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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같은 수준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안보문제에 대한 박 위원장의 '신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는 이같은 태도는 사실상 남북대결의식에 근거한 뉴라이트 대북관과 일치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해 조의를 표하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의 의미인데, 정작 대화의 상대방인 정권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뉴라이트적 발상"이라며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 북한을 민주화시키겠다는 북한붕괴론과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미국도 '북한 주민'에게 위로의 뜻을 밝혔지만, 우리처럼 '청와대 관계자'가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 접근한다고 밝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위원장의 이같은 태도는 그동안 취해온 중도접근 전략과도 배치될 수 있다. '맞춤형 생활복지'를 전면에 걸면서 복지이슈를 강조하고 나서, 민주당을 긴장케 한 그였지만 안보이슈는 그 전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현상>의 5인 공저자 중 한 명인 이철희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좌우와 진보-보수를 가르는 핵심기준이 남북문제"라면서 "복지이슈를 내걸고 중도층을 아우르겠다고 한 박 위원장이 김 위원장 사망문제에 대해 보수노선을 취하고 나서면 이후 중도를 강조해봐야 설득력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원장은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전혀 동요하지 않는 건 평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라며 "김 위원장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선제적이고 전향적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박 위원장이 놓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위원장은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정국에서, 경쟁자인 이명박 후보에게 처음으로 지지율을 역전당했다. 여성 정치인이 이같은 안보이슈를 관리할 수 있겠냐는 의문 속에서 군 미필자인 이 후보에게 밀렸다는 점에서 그로서는 '안보이슈'는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 하에서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됐다는 점에서 한반도평화 문제는 내년 내선의 중요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


태그:#김정일,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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