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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사신영접이나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는 문반은 동쪽, 무반은 서쪽, 품계에 따라 도열했다.
▲ 경복궁 근정전. 사신영접이나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는 문반은 동쪽, 무반은 서쪽, 품계에 따라 도열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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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침이 밝았다. 상쾌한 아침이다. 문무백관들이 길복으로 갈아입고 경복궁에 입궐했다. 내명부의 수장으로 등장한 왕비를 하례(賀禮)하기 위해서다. 칙칙한 상복을 벗어버리니 발걸음도 가볍다. 첫날밤, 색시의 품에 안겨 잠들었던 임금이 곤룡포에 면류관을 쓰고 근정전 어좌에 앉았다. 그 바로 옆에 적의(翟衣) 차림의 왕비가 앉았다.

"배(拜)하라."

전의(典儀)가 큰 소리로 주문했다. 이를 받아 통찬이 외쳤다.

"국궁(鞠躬) 사배(四拜) 흥(興) 평신(平身)이오."

풍악이 울렸다. 계하의 모든 백관이 4배하고 일어나 허리를 폈다. 국모에게 드리는 첫 인사다.

"산호(山呼)"

통찬이 외쳤다. 모든 관원이 두 손을 치켜들고 '천세!'를 외쳤다. 통찬이 다시 산호를 주문하자 다 같이 두 손을 치켜들고 '천세!'를 외쳤다. 이어 통찬이 '재산호'를 주문하자 '천천세!'를 크게 부르고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허리를 폈다.

국궁사배 머리에 꽃을 꽂고 하례하는 문무백관들.
▲ 국궁사배 머리에 꽃을 꽂고 하례하는 문무백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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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인이 덕이 적은 사람으로서 근일에 간신의 변란(變亂)으로 화(禍)의 기운이 절박하였으나 다행히 종사(宗社)의 혼령이 도와 대난(大難)을 평정할 수 있었다. 이제 어진 왕비를 세워 내치를 주장하게 하고 왕가의 후손을 넓혀 선대의 위업을 보존하려 한다.

종친·훈신·문무신료들이 '권도(權道)를 써서 길복을 입어야 한다'고 청하였으나, 과인이 따르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이르기를 '내 한 몸은 종사 생령의 의지하는 바이니 사사로이 할 수가 없는 것이라하여 과인이 여러 사람의 의논에 따라 송씨를 책봉하여 왕비로 삼고 이를 외방에 선포한다.

1.오늘 새벽 이전에 모반(謀反)·대역(大逆)한 자. 조부모나 부모를 모살(謀殺)하거나 때리고 욕한 자, 지아비를 모살한 처나 첩, 주인을 모살한 노비, 고의로 살인한 자, 강도와 절도를 범한 자를 제외한 모든 범죄는 모두 용서하며 이를 면죄한다.

1.오늘 이전에 인민(人民)들이 받아간 나라의 곡식은 모두 감면한다.

1.업무 중 관물을 소손 시키거나 축나 없어진 책임을 묻지 않는다.
대사령이 이와 같으니 과인의 은전이 만백성에게 미치게 하라."

조정의 하례에 이어 팔도의 관찰사·절제사·처치사가 모두 전을 올려 하례했다. 그야말로 전 국토가 경축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것은 관직에 있는 그들만의 잔치일 뿐 대다수의 백성들은 다가오는 보릿고개를 걱정하고 있었다.

궁에 들어 온 지 한칠일도 되지 않은 왕비가 생일을 맞았다. 겹경사다. 종친과 백관들의 부인이 앞 다투어 비단과 옷감을 바쳤다. 눈 맞춤이다. 이럴 때 눈도장을 찍어놔야 부군이 곤경에 처했을 때 구명의 끈을 잡을 수 있다.

"신하들의 뜻에 따라 가례를 올렸지만 탄일 하례는 아니라 생각한다."

거상 중이라는 것을 의식한 임금이 하례를 정지시켰다.

왕릉. 눈 덮인 현릉
▲ 왕릉. 눈 덮인 현릉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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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길도에 파견된 선위별감 박대손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의금부에서 계본을 올렸다.

"종성 판관 정포는 이징옥이 왕명을 거역하여 반역이 명백하였는데도 그를 영접하였고 절제사 정종에게 사람을 보내 이징옥을 맞이하게 하였습니다. 정포의 연통을 받은 정종은 군사를 거느리고 성 밖으로 나가 이징옥을 맞았습니다. 이들은 마땅히 대명률에 따라 참형에 처해야 하나 정포와 정종은 이징옥을 잡아서 죽인 공이 있으므로 논죄하지 마소서."

뒤이어 병조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대호군 이행검, 종성 절제사 정종, 판관 정포, 전 수만호 장영 등 10인이 의(義)를 주창하여 이징옥을 잡아 죽이자고 모의하였으니 1등, 사직 김익맹 등 43인은 도우고 따랐으니 2등, 삼휘진무 전유지 등 5인은 이징옥을 잡을 때 군사들을 거느리고 성을 둘러싸고 지켰으니 3등으로 포상하여야 합니다. 청컨대 이들을 정난에 수종한 사람들의 예에 따라 1등은 3자급, 2등은 2자급, 3등은 1자급씩 올려 관직을 제수하소서."

이어 조정 개편이 단행되었다. 좌사간 조어, 우사간 나홍서, 사헌집의 유규, 박인과 유성원 장령, 좌헌납 허추를 우헌납, 김계우, 조변안과 이극감을 지평, 좌정언 최선복, 우정언 이계손으로 하는 관직 개편이 단행되었다. 의금부에 하옥되었던 성삼문은 풀려났으나 윤기견과 함께 좌천되었다. 인사에서 특이한 것은 종성 도호부사 정종이다. 그는 이징옥을 죽인 공이 인정되어 당상관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천당과 지옥을 오고간 종성으로 금의환향하게 된 것이다.

잘 나가는 사람 밀어주면 별로 표가 나지 않는다. 허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면 목숨 바쳐 충성한다, 막후 실세 한명회가 그 처세를 자신의 입지 닦기에 활용하기 시작 한 것이다.

의금부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전 안악군사 황의헌은 안평의 거사를 돕기 위해 사냥을 칭탁하여 경내의 군사 974명을 무단 징집하였습니다. 고양 기관(記官) 황식배는 안평의 말을 자기 집에서 사육하여 주고 명주 1필을 받았으며, 현감 고덕칭과 병방기관(兵房記官) 황중은 문서를 총패(摠牌)에 내려보내 군마를 징발하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역신과 통하였으니 황의헌과 황식배·고덕칭·황중은을 모두 율에 의하여 능지처사하소서."

"모두 참형에 처하라. 또 그들의 가산을 적몰하고 그 아비는 제주도·진도·남해도·거제도의 고을에 종으로 영속시키고 자식은 나이 16세 이상은 교형에 처하고 15세 이하는 어미에게 주어서 기르게 하여 장정이 되거든 종으로 영속시키라. 그리고 어미와 딸·처첩·할아비·손자·형제·자매, 자식의 처첩도 관노비로 영속시키고 백부·숙부와 형제의 자식은 외방에 안치하라."

명이 떨어지자 황식배의 아내는 목을 매어 자결했다.

이징옥의 난 뒤처리를 마감한 수양이 자신의 저택 명례궁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예조가 주관하고 의정부와 육조가 총동원되었다. 임금도 도승지 신숙주와 좌승지 박팽년을 보내 술과 풍악을 하사했다.

수라가자 임금의 원행 길에 따라가는 수라 수레. 정조대왕 반차도 도자벽화 중에서
▲ 수라가자 임금의 원행 길에 따라가는 수라 수레. 정조대왕 반차도 도자벽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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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나들이, 현릉 참배에 나서다

제비가 온다는 삼짇날이 지나고 열엿새. 임금이 나들이에 나섰다. 현릉 참배다. 가례 직후 찾아보려 했으나 신숙주의 만류로 미루어 오던 것을 비로소 행하는 날이다.

이른 아침 경복궁을 떠난 임금행렬이 흥인문을 지나 중랑포에 이르니 점심때가 되었다. 천변에 막차를 설치하고 수라를 해결했다. 임금의 원거리 행차에는 점심이나 간식거리를 실은 수레가 뒤따랐다. 수라 가자다.

점심 식사 후, 휴식시간도 없이 송계교를 건넜다. 석계역 동쪽에 있던 송계교는 태종이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검암산 아래 모시고 자주 찾게 되면서 나무다리(木橋)를 돌다리(石橋)로 고쳐지었다.

먹골을 지나 능역에 도착했다. 조선 왕릉에는 일정 기준이 있다. 그 첫째가 '도성 10리 밖 100리 이내'다. 교통과 통신이 열악했던 그 시절, 임금의 능행길에 갑작스런 변고가 발생할 경우 빠르게 환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거리다. 후대에 이 암묵적인 규정을 깬 경우가 있었으니 세종대왕의 천릉지 여주 영릉과 화성 융건릉이다.

둘째는 배산임수다. 조선은 도참(圖讖)을 배척하는 유교 국가였다. 하지만 왕실과 사대부 계층에서는 풍수지리설을 숭배했다. 이율배반이다. 잦은 정변에서 오는 불안 심리가 작용한 까닭이다. 세 번째는 상설제도다. 초기에는 고려의 능제를 따랐으나 문종의 현릉부터 세종시대 집대성한 오례의(五禮儀)를 충실히 따랐다. 비로소 조선다운 능제가 정립된 것이다.

동구릉입구 현재는 아홉 능이 자리 잡고 있으나 당시에는 태조 건원능과 문종 현릉이 있었다.
▲ 동구릉입구 현재는 아홉 능이 자리 잡고 있으나 당시에는 태조 건원능과 문종 현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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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 있고 앞쪽에는 원찰 개경사가 자리 잡고 있는 능역에 들어서자 대(大) 홍살문이 임금의 행차를 가로막았다. 홍전문이라고도 불리는 이 문은 양쪽에 높다란 기둥을 세우고 화살과 같은 나무를 박아 붉은 칠을 했고 가운데에 태극문양을 넣었다. 신성한 곳이니 잡귀는 범접치 말라는 뜻이다.

홍살문을 통과 했다. 잘 생긴 소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금강송이다. 십장생도에 등장하는 소나무는 조선왕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신성한 나무다. 잘 가꾸어진 소나무 숲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니 금천교(禁川橋)가 나왔다.

금천교는 속계(俗界)와 영계(靈界)를 가르는 경계다. 즉, 금천교 이전까지는 인간들의 세상이고 그 이후부터는 신들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니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오라는 뜻이다. 궁궐에도 이와 비슷한 뜻을 함축하고 있는 다리가 있다. 경복궁의 영제교, 창덕궁의 금천(錦川橋)교, 창경궁의 옥천교가 그것이다.

참도 왼쪽이 약간 높고 오른쪽이 낮다.
▲ 참도 왼쪽이 약간 높고 오른쪽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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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교를 지나니 또 홍살문이 나왔다. 소(小) 홍살문이다. 그 바로 동쪽에 전돌이 깔려있다. 배위(拜位)다. 가마에서 내린 임금이 배 위에 올라 네 번 절을 했다. 찾아왔다는 신고다. 4배를 마친 임금이 배 위에서 내려와 홍살문을 통과했다. 마주 보이는 정자각까지 박석이 깔려있다. 참도(參拜)다. 왼쪽은 약간 높고 오른쪽은 낮다. 왼쪽은 임금이라도 오를 수 없는 신도(神道)다. 신령들만이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오른쪽 어도(御道)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이때 임금은 신령을 모시고 가는 모양새다. 이  때부터 신령이 참배자와 만나는 것으로 간주했다. 조선 왕릉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다. 죽은 자와 산자의 만남의 공간이다. 진입공간과 제향공간 그리고 능침공간으로 나뉜 능역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계단 어계는 임금이 오르는 계단이고 신계는 신령이 오르는 계단이다.
▲ 계단 어계는 임금이 오르는 계단이고 신계는 신령이 오르는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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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각에 이르렀다. 한자 정(丁)자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 계단에 섰다. 계단이 2개다. 하나는 신계(神階)이고 또 하나는 어계(御階)다. 신령들만이 오를 수 있는 신계는 신이 오르고 임금은 어계로 올랐다. 임금이 제수가 진설된 상 앞에 향을 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혼유석 건국 초기에는 고석이 5개였으나 문종 때부터 4개로 고착화되었다. 북을 닮았다 하여 고석이라 부르는 받침돌에는 벽사 의미 귀면이 조각되어 있다. 헌릉.
▲ 혼유석 건국 초기에는 고석이 5개였으나 문종 때부터 4개로 고착화되었다. 북을 닮았다 하여 고석이라 부르는 받침돌에는 벽사 의미 귀면이 조각되어 있다. 헌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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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에서는 봉분 바로 앞 상석에 음식을 진설하고 제향을 올리지만 왕실에서는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돌을 혼유석이라 부른다. 능침에 잠들어 있는 혼령이 나와 일광욕도 즐기고 노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능침공간은 신성불가침의 공간이다. 임금도 오르지 못한다.

등극 후 네 번 방문했으나 혼례를 올린 후 참배는 처음이다. 조선 사대부들의 인생을 지배하는 네 가지 요체가 있었으니 관혼상제(冠婚喪祭)다. 상중에 관례를 뛰어넘고 혼례를 올리고 친제를 올리기 위하여 방문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정자각 사가에서는 봉분 바로 앞에서 제향을 올리지만 왕실에서는 정자각에서 행한다
▲ 정자각 사가에서는 봉분 바로 앞에서 제향을 올리지만 왕실에서는 정자각에서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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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 무섭습니다"...선왕을 만나다

괴괴한 정자각. 너울거리는 향연(香煙) 따라 선왕이 보이는 것 같다.

"아바마마! 불초 소자를 용서하십시오."
"괜찮다."
"아바마마의 거상 중에 혼례를 올린 것은 소자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바마마! 수양 숙부가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소자는 모르겠습니다."
"그 성정 할바마마도 고치지 못하였으니 네가 이해하거라."
"수양 숙부가 무섭습니다."
"무섭다고?"
"네, 아바마마!"
"수양 숙부가 나에게 누구 되느냐?"
"아우 되십니다."
"그렇다. 네 아비의 아우가 너에게 나쁘게 하겠느냐?"
"그래도 무섭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늘에서 나와 네 할바마마가 지켜보고 있지 않느냐."

정적 속에 향연이 너울거렸다.

안개 속에 잠겨있는 현릉. 수양대군의 의중과도 흡사하다
▲ 안개 속에 잠겨있는 현릉. 수양대군의 의중과도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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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너는 이 나라의 군주이니라. 만백성이 네 곁에 있다. 무엇이 두려울 게 있겠느냐?"
"아바마마! 너무나 힘듭니다."
"오호라! 가여운 것. 네게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지워주고 떠나와 미편하구나."
"소자에게 힘을 주소서."
"그래, 네가 힘들 때 내 손을 잡아라. 힘을 보태주마."

임금의 손을 내밀었다. 허나,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허공을 휘젓던 어린 임금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넘겨주고 먼저 가버린 아버지가 야속하기만 했다. 임금이 고개를 들었다. 분명 눈앞에 보이던 부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환궁하는 길. 가마에 흔들리는 임금의 뇌리에서 부왕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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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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